중국 항저우와 베이징 & 한국 국립중앙박물관 방문기 (1)
필자는 지난 2026년 4월 8~23일 사이에 중국 항저우 (Hangzhou)와 베이징 그리고 한국방문 일정으로 여행했다. 이중 중국 항저우와 베이징 방문중 인상깊었던 부분과 한국에서 방문한 국립중앙박물관에 대해 몇 편 기록하고자 한다. _ 편집자 주.
필자는 지난 2026년 4월 8~23일 사이에 중국 항저우와 베이징 그리고 한국방문 일정으로 여행했다. 이번 일정은 가족여행으로 아내와 둘째, 셋째가 함께 했다. 첫째는 직장과 반려묘 돌보는 막중한 일로 동행할 수 없었다.
지난 2025년 10월 중국여행때 이용한 중국의 항공사 서비스가 훌륭해 이번에도 중국 항공사를 이용해 항저우와 베이징을 둘러보았다. 사실 이번 중국 여행의 중요 목적지는 베이징의 만리장성과 명청대의 유적지 몇 곳을 둘러보고자 한 것이다. 베이징을 가기위해 항저우를 잠시 경유한 것이다.

장강 삼각주에 위치한 항저우 (Hangzhou, 항주)
4월 8일 시드니를 출발한 항저우행 항공편은 쉼없이 달리고 달려 항저우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항저우 샤오산 국제공항 (杭州萧山国际机场, Hangzhou Xiaoshan International Airport)은 중화인민공화국 저장성 항저우시에 위치한 공항이다. 이 공항은 첸탕강 남쪽 기슭에 지어졌으며 항저우시내로부터 약 27km 떨어져 있다.
항저우는 저장성의 북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중국 대운하의 동쪽 끝이다. 장강 평원에 닿는 저지대의 지형으로 성단위 행정구역으로는 서쪽으로는 산이 많은 안휘에 접하고, 동쪽으로는 평지인 항저우만에 접한다. 시내 중심은 서호의 동북쪽, 첸탕강 북쪽으로 형성되어 있다. 일부 하천은 타이후로 흘러들어간다.
항저우의 기후는 사계절이 뚜렷한 습한 아열대 기후이며, 연 평균 기온은 17.5도로 살기에 좋은 편이다. 여름에는 덥고 습하며, 겨울에는 비교적 냉하고 건조한 편이다. 3월 중순부터 5월까지가 가장 여행하기 좋은 시기이다.

쾌적한 항저우샤오산국제공항 (杭州萧山国际机场)
처음 방문한 항저우 샤오산 국제공항은 매우 깨끗하고 세련되게 디자인한 곳이어 쾌적한 인상을 주었다.
막 도착해 일단 입국심사대로 행했고, 베이징으로 갈 때 일찍 도착해 공항산책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항저우 샤오산 국제공항의 건설은 세 단계로 계획되었다고 한다. 첫 단계는 1997년 7월에 건설이 시작되어 2000년 12월 30일에 완공하고 개항하였다. 이로써 기존의 민간, 군사 겸용 공항이던 구 항저우 공항을 대체하게 되었다.
2003년 9월에 중국 정부는 이 공항을 국제공항으로 지정하고 2004년 3월에 입출국 관리 설비를 갖춘 뒤, 공식적으로 국제공항으로서 기능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 공항은 중국항공공사 (CNAC) 저장성의 허브 공항이었다. 중국항공공사가 중국국제항공에 합병된 뒤에도 중국국제항공의 항저우의 허브 공항으로 사용되고 있다.

항저우 (항주, Hangzhou)의 역사
항저우는 2,200년 전 진나라 때 건립되었으며, 중국의 7개의 고도 중 하나로 손꼽힌다. 시 지역에는 7000년 전의 중국 신석기시대에는 양저문화의 발상지이며, 벼농사 유적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인 신석기 문명의 대표유적인 하모도 문화 (河姆渡 文化, 기원전 5000 ~ 4500) 유적이 있다. 중국 육대 고도로 꼽히며, 그 기원은 진나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진나라 때는 회계군을 다스리는 관청이 설치되었다.
항저우에 성벽이 쌓여진 것은 591년 수나라 (隋) 때이다. 또한 수나라 때 건설된 대운하의 남쪽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대운하를 이용한 상업망이 발전하였고, 항주의 거리도 번창해 갔다. 항주의 이름이 시작된 것은 당대이다. 907년 ~ 978년까지 5대 10국 시대에도 오월국 (吳越國)의 수도가 되었고, 서호 (西湖)도 그 당시 이름이 지어졌다. 10세기에는 난징과 청두와 함께 남송의 위대한 문화의 중심지였다. 이곳 순안현에서는 방랍의 난의 마지막 전투였던 방원동 전투가 일어났다.

12세기 전반에 북송의 수도인 개봉이 금나라에 의해서 함락되고 나서는, 남송이 임안부를 두어 실질적인 수도가 되었다. 남송 초기, 금나라에 대해서 강경책을 주장한 악비의 묘인 악왕묘 (岳王廟)가 있다.
항저우는 12세기 초부터 1276년 몽골이 침입하기까지 남송의 수도였고, 임안 (臨安)으로 알려졌다. 당시 북쪽으로는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가 중앙의 중국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항저우는 중국 문화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했다.
남송이 원나라에 멸망되면서, 몽골 제국이 구축한 육상 네트워크와 해상 세계를 묶을 수 있고 교역을 통해서 한층 더 발전을 이루었다. 그 번영성세는 마르코 폴로가 ‘동방견문록’으로 기록하고 있다.
19세기 중반 태평천국의 난으로 거리의 대부분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많은 역사 문화재가 소실되었다.
수많은 철학자와 정치인, 문인이 배출되었으며, 소식 (蘇軾) 등의 대문호가 배출되기도 했다.

항저우와 인연있는 중국 문인들
중국 항저우는 아름다운 서호 (西湖)를 품어 예로부터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이 사랑하고 머물렀던 대표적인 문향 (文香)의 도시다. 항저우와 깊은 인연이 있는 대표적인 중국 문인들은 다음과 같다.
소식 (蘇軾, 소동파) : 북송 시대의 대문호이자 항저우의 지방관(태수)을 지낸 인물이다. 서호의 아름다움을 사랑해 시문을 많이 남겼으며, 호수를 정비하며 흙을 쌓아 만든 제방인 ‘소제 (蘇堤)’가 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백거이 (白居易) : 당나라의 대시인으로 항저우 자사 (지방관)로 부임했다. 서호의 물길을 다스리고 제방을 쌓아 농경을 도왔으며, 항저우와 서호에 대한 애정이 담긴 수많은 명시를 남겼다 (백제방의 유래).
이어 (李漁) : 청나라 초기의 유명한 문인, 소설가이자 극작가다. 저장성 난계 (항저우가 속한 저장성 지역) 출신으로, 희곡과 평론, 생활 미학 방면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소소소 (蘇小小) : 남북조시대 제 (齊) 나라 때 항저우 서호의 기생이자 재기 발랄했던 여류 시인이다. 뛰어난 용모와 시재 (詩才)로 항저우의 전설과 수많은 문인의 창작 소재가 되었으며, 서호 서령교 부근에 그의 묘와 정자가 남아 있다.

항저우 (杭州)의 아름다운 풍경과 역사적 정취를 노래한 대표적인 중국 고전 시 한 편을 소개하자면 당대 시인 백거이의 ‘錢塘湖春行’ (전당호춘행 – 전당호의 봄길을 거닐며)을 꼽는다.
항저우를 대표하는 명승지 서호 (西湖)의 봄날을 배경으로 한다.
‘錢塘湖春行’ (전당호춘행) – 전당호의 봄길을 거닐며
孤山寺北賈亭西 (고산사북가정서) 고산사 북쪽, 가정(亭子)의 서쪽 지나니
水面初平雲腳低 (수면초평운각저) 호수 물결은 잔잔히 차오르고 구름은 낮게 드리웠네.
幾處早鶯爭暖樹 (지처조앵쟁난수) 곳곳의 이른 꾀꼬리 따뜻한 나뭇가지 다투어 차지하고
誰家新燕啄春泥 (수가신연탁춘니) 어느 집 제비 새로이 봄 진흙을 쪼아대네.
亂花漸欲迷人眼 (난화점욕미인안) 어지러운 봄꽃은 점차 사람의 눈을 현혹하고
淺草才能沒馬蹄 (천조재능몰마제) 얕은 풀들은 겨우 말굽을 묻을 만큼 자랐구나.
最愛湖東行不足 (최애호동행부족) 가장 사랑스러운 건 호수의 동쪽, 걸어도 걸어도 부족한 것을
綠楊陰里白沙堤 (녹양음리백사제) 푸른 버들 그늘진 백사 둑길이여.

항저우의 주요 유적지와 명소들
소서호 (西湖) 풍경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항저우의 상징이자 아름다운 호수 공원이다.
량주 고대 도시 유적지 공원 (良渚古城遗址): 약 5,000년 전 신석기 시대의 량주 문명을 보여주는 세계문화유산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유적지기념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 흔적이 남아 있는 역사적 공간이다.
영은사 (灵隐寺) & 비래봉 (飞来峰): 오랜 역사와 독특한 석각 불상들이 있는 유서 깊은 사찰과 명소다.
호설암 고거 (胡雪岩故居): 청나라 말기 거상 호설암의 화려한 전통 가옥 저택이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임운규 목사 (호주성산공동체교회 시무, 본지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