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진 박사의 특별기고

몸은 여기 있지만 마음은 그날에 머물러 있습니다
몇 년 전 천국으로 먼저 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혼자 살고 계시는 어머니를 만나러 부산으로 내려갔다. 어머니와 함께 병원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잠시 쉬었다 가려고 아파트 놀이터에 앉았는데, 한 어르신이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바라보고 계셨다. 핸드폰 화면에는 어린아이의 사진이 있었다.
“손주인가요?”
조심스럽게 여쭈었더니 그렇다고 하셨다. 그런데 잠시 후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우리 손주가 2년 전에 죽었어요.” 딸과 사위는 사랑하는 아이를 잃은 후 강아지를 자녀처럼 키우며 서로를 위로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은 도무지 그 슬픔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고 하셨다. 밤에는 잠을 이루기 어렵고 가슴이 답답해서 낮에도 수시로 놀이터에 나와 그렇게 앉아 계신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하시는 동안에도 눈동자에는 힘이 없었다. 울지도 않으셨다. 너무나 슬픈 이야기를 하시는데도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몸은 분명 놀이터에 앉아 계셨지만 마음은 아직도 손주를 잃어버린 그 시간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이 참 아팠다.
사람은 몸으로는 오늘을 살아가면서도 마음은 과거의 어느 날에 머물러 있을 수 있다. 우리의 마음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생각과 감정이 찾아온다. 그런데 상실과 충격의 기억이 반복해서 떠오르고 그것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통이 되면, 어떤 사람은 멍해지거나 현실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몸은 여기에 있지만 마음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고,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처럼 생각이 흐릿해지기도 한다.
상담과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경험 가운데 일부를 **‘해리(dissociation)’**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해리는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이나 고통을 경험할 때 현실감이나 감정, 기억과의 연결이 일시적으로 약해지는 현상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이인증(Depersonalization), 주변 세상이 꿈속처럼 낯설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비현실감(Derealization), 고통스러운 사건과 관련된 중요한 기억의 일부를 떠올리지 못하는 해리성 기억상실(Dissociative Amnesia) 등이 그 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감정적 마비(emotional numbing)**가 나타나기도 한다. 너무나 슬픈 일을 겪었는데도 슬픔이 느껴지지 않고, 울고 싶어도 눈물이 나오지 않으며 몸과 마음이 멍하고 무감각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물론 놀이터에서 잠시 만난 그 어르신의 모습을 보고 어떤 심리적 상태라고 진단할 수는 없다. 다만 그분의 모습에서 깊은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이 때때로 보이는 정서적 마비와 비슷한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우리의 뇌와 몸은 너무 큰 고통을 한꺼번에 감당하기 어려울 때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한다. 위험을 만나면 우리는 흔히 싸우거나 도망가는 반응을 생각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느껴질 때는 얼어붙거나 감각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반응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런 반응을 단순히 마음이 약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몸과 마음이 보이는 반응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경험을 할 때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첫째, ‘지금, 여기’로 돌아오는 연습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를 ‘그라운딩(grounding)’이라고 한다. 발바닥이 바닥에 닿는 느낌을 천천히 느껴 보고, 손을 쥐었다 펴거나 주변에 보이는 것들을 하나씩 바라보면서 현재의 감각에 집중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몸의 감각을 통해 현재의 순간을 확인하는 것이다.
둘째, 천천히 호흡하며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편안한 자세에서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긴장된 몸을 진정시키는 것이다. 억지로 깊게 숨을 쉬기보다는 자신에게 편안한 속도로 호흡하는 것이 좋다.
셋째,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이 곁에 있다면 혼자 내버려두기보다 현재와 다시 연결될 수 있도록 차분하게 도와주는 것이 좋다. 이름을 부르며 “지금 제가 옆에 있어요”라고 말해 주거나, 주변에 보이는 것과 들리는 소리를 함께 확인해 볼 수 있다. 물을 천천히 마시거나 손을 씻으며 물의 온도를 느끼는 등 오감을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먹고, 자고, 걷는 평범한 일상의 리듬을 조금씩 회복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분들은 자신에게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내가 이상해진 것은 아닐까?”라고 걱정한다. 그래서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견디기도 한다. 그러나 심한 충격과 상실 이후에는 멍해지거나 현실감이 떨어지고 감정이 무뎌지는 경험이 나타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부끄러워하거나 숨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태를 이해하고 필요한 도움을 받는 것이다.
특히 이런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거나 일상생활과 수면을 심하게 방해한다면 상담이나 정신건강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은 반드시 혼자 견뎌야 하는 짐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날 놀이터에서 만난 어르신의 핸드폰 속에는 세상을 떠난 어린 손주의 사진이 여전히 환하게 웃고 있었다. 손주는 떠났지만 할머니의 마음은 아직 그 아이가 떠난 그날을 떠나지 못한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상실에서 회복된다는 것은 사랑했던 사람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을 마음에 품은 채, 멈추어 버린 나의 시간을 다시 오늘로 데려오는 것이다.
매일같이 놀이터에 나와 사랑하는 손주를 그리워하며 홀로 앉아 계시던 그 어르신께 마음의 위로와 치유가 있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나보낸 후 몸은 오늘을 살아가지만 마음은 아직 그날에 머물러 있는 모든 분들에게도, 다시 오늘을 살아갈 힘이 조금씩 찾아오기를 소망한다.

서미진 박사
(호주카리스대학 부학장, 호주한인 생명의 전화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