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목사의 특별기고

몸을 통해 마음을 돌보다
사람의 몸은 참 신기하다. 마음과 신체, 그리고 영혼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신체가 건강하면 마음도 건강해지기 쉽고, 마음이 건강하면 신체 역시 건강해지기 쉽다.
언젠가 학교에 아주 예쁜 학생 한 명이 입학했다. 키는 170cm 정도였고 얼굴은 작았으며 이목구비도 뚜렷했다. 겉모습만 보면 참 아름다운 학생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학생을 바라보면 어딘가 5%, 혹은 10% 정도 부족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엇 때문일까 생각해 보니, 그것은 그 학생이 신체를 통해 표현하고 있는 것 때문이었다. 키는 컸지만 몸을 약간 웅크린 채 등이 굽어 있었다. 표정에는 겁을 먹고 주저하는 듯한 모습이 있었고, 몸에는 힘이 없는 것처럼 흔들흔들 움직였다. 웃는 모습도 자연스럽지 못했으며 말이 빠르고 쉽게 욕을 하기도 했다. 그 학생은 자신의 마음의 상처를 직접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몸은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마음에 상처가 많아요.’
‘그 상처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어요.’
마음의 상처는 몸에도 흔적을 남긴다
마음의 상처를 치료할 때 우리는 일반적으로 심리치료를 떠올린다. 안전한 환경에서 과거의 경험과 감정을 이야기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면서 치유를 돕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언어는 매우 중요한 치료 도구다.
그런데 프로이트의 제자였던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는 억압된 감정과 과거의 경험이 마음에만 남는 것이 아니라 근육의 긴장과 경직 같은 형태로 몸에도 나타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언어 중심의 심리치료를 넘어 신체와 정서의 관계에 주목했던 초기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실제로 불안을 많이 경험하는 사람들을 보면 굳어진 표정이나 경직된 목과 어깨, 불안정한 자세 등에서 지속적인 긴장의 흔적을 발견할 때가 있다.
라이히보다 앞선 시기에 활동했던 프랑스의 심리학자이자 정신의학자 피에르 자네(Pierre Janet) 역시 트라우마 경험이 언어적 기억뿐 아니라 감각과 정서, 행동과 신체 반응의 형태로 지속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신체의 움직임과 감각, 근육의 긴장 등을 다루는 다양한 치료법이 발전했고, 이후 신경과학과 심리학의 발전은 몸과 마음의 관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연구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신체 기반 심리치료
오늘날 잘 알려진 신체 기반 치료 접근으로는 **소매틱 익스피리언싱(Somatic Experiencing, SE)**과 감각운동 심리치료(Sensorimotor Psychotherapy, SP) 등이 있다.
이러한 접근들은 트라우마의 영향이 생각이나 언어적 기억뿐 아니라 신체 감각과 움직임, 긴장, 각성 반응 등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또한 **스티븐 포지스(Stephen Porges)**가 제안한 **다미주신경 이론(Polyvagal Theory)**은 안전과 위협에 대한 자율신경계의 반응을 이해하려는 신체 기반 치료 분야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치료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몸에서 시작하여 마음의 회복을 돕는 상향식(bottom-up) 접근이다. 생각을 통해 감정과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과는 다른 방향에서, 신체의 감각과 움직임, 호흡과 긴장을 다루면서 심리적 안정을 돕는다.
필자가 읽었던 한 치료 사례에서는 심각한 틱 증상을 가진 내담자가 감각운동 심리치료를 통해 상당한 호전을 경험하기도 했다. 물론 하나의 사례가 모든 사람에게 같은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치료 효과는 개인의 상태와 치료 과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사례들은 몸을 통한 접근이 심리적 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몸을 먼저 안전하게 만드는 것
신체 기반 접근은 그 자체로 치료에 활용될 수도 있지만, 다른 심리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내담자가 자신의 몸을 좀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느끼도록 돕는 방법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자신의 호흡과 몸의 감각, 자세를 천천히 알아차리면서 ‘나는 지금 여기에 있고, 지금은 안전하다’는 느낌을 경험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러한 신체적 안정은 이후 심리적인 작업을 해 나가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다.
또한 신체를 돌보는 것은 심리적인 어려움을 가진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좋은 자세와 적절한 운동, 호흡과 신체 자각은 누구에게나 유익하며, 몸을 건강하게 돌보는 일은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가장 기초적인 신체 자각, 그라운딩
이러한 맥락에서 비교적 간단하게 시도해 볼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그라운딩(grounding)**이다. 그라운딩은 현재 자신의 몸과 주변 환경을 알아차리면서 안정감을 찾는 데 활용하는 방법이다.
일어서서 하는 간단한 그라운딩을 해보자.
먼저 발을 어깨너비 정도로 벌리고 무릎을 살짝 부드럽게 구부린다. 그리고 발바닥 전체가 바닥과 만나는 느낌에 주의를 기울인다.
몸의 무게를 네 지점으로 나누어 느껴본다. 오른발의 앞쪽과 뒤꿈치, 왼발의 앞쪽과 뒤꿈치에 각각 어떻게 체중이 실리고 있는지 천천히 알아차린다.
이제 열 개의 발가락을 부드럽게 들어 올렸다가 하나씩 도장을 찍듯 바닥에 내려놓는다. 발바닥과 바닥이 만나는 접촉면을 조금 더 선명하게 느껴본다.
상체를 앞뒤와 좌우로 아주 미세하게 움직이면서 발에 실리는 힘과 몸의 변화를 느껴본다. 그러다가 가장 편안하게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중심에서 멈춘다.
이제 발바닥으로 바닥을 부드럽게 밀어내면서 바닥이 나의 몸을 단단히 받쳐주고 있다는 감각을 느껴본다. 상체의 긴장을 조금 내려놓고, 내 안의 불편한 감정이나 긴장이 발을 통해 땅으로 흘러나간다고 상상해 보아도 좋다.
이 방법은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혼자서도 시도할 수 있다. 다만 심각한 트라우마를 경험했거나 신체 감각에 집중하는 것이 오히려 강한 불안이나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라면 무리하게 시도하기보다 훈련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몸을 돌보는 것이 마음을 돌보는 일
신체 기반 심리치료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단순하다.
마음의 고통은 때로 몸을 돌보는 것에서부터 회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 힘들다고 해서 계속 누워 있기보다는 가능한 범위에서 몸을 조금씩 움직이고 일상적인 활동을 이어가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거창한 운동일 필요도 없다. 천천히 걷고, 깊게 호흡하고, 몸의 감각을 느끼며 자세를 바로잡는 작은 행동부터 시작할 수 있다.
마음과 몸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우리가 몸을 돌보는 것은 단순히 몸만 돌보는 일이 아닐 수 있다. 때로 그것은 지친 마음을 돌보며 상처받은 자신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내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나를 돌보고 있다.’
그러므로 마음이 힘들 때 몸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오늘 하루 단 몇 분이라도 몸을 움직여 보자. 발이 땅에 닿는 감각을 느끼고, 천천히 자신의 호흡을 바라보자.
어쩌면 마음으로 시작하기 어려운 회복의 길을, 몸이 먼저 시작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훈 박사 (호주카리스대학 학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