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사관 칼럼

본다이의 햇살과 맨리의 나무 그늘
시드니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때 바다를 빼놓을 수 없다. 도시의 빌딩 사이를 걷다가도 조금만 발걸음을 옮기면 수평선이 펼쳐지고, 분주한 일상 가까이에서 파도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 가운데 본다이 비치와 맨리 비치는 시드니의 해변 문화를 대표하는 두 얼굴이다. 두 곳 모두 푸른 바다와 아름다운 모래사장을 품고 있지만, 사람을 맞이하는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본다이가 환한 햇살 아래 활짝 열린 해변이라면, 맨리는 나무 그늘과 바닷바람 사이에서 오래 머물고 싶은 해변이다.
본다이의 매력은 도시와 바다가 가깝게 이어져 있다는 데 있다. 시티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면 일상의 풍경이 어느새 해변의 풍경으로 바뀐다. 거리에는 카페와 음식점이 이어지고, 서핑보드를 든 사람과 수영을 마친 사람이 자연스럽게 오간다. 바다는 특별한 날에만 찾아가는 장소가 아니라, 커피를 마시고 운동하며 하루를 살아가는 생활의 일부가 된다. 도시의 활기가 해변까지 이어지면서 본다이 특유의 생동감을 만들어 낸다.

본다이에 서면 무엇보다 모래사장에 눈길이 간다.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넓게 펼쳐진 모래는 햇빛을 받아 밝은 금빛으로 빛난다. 파도가 밀려왔다 물러간 자리에는 물기가 얇게 남아 하늘빛을 비춘다. 마른 모래와 젖은 모래, 흰 포말과 푸른 바다가 겹쳐지며 해변의 색을 완성한다. 멀리서 바라보면 하나의 부드러운 곡선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발자국과 작은 물결 자국이 그 위에 수많은 이야기를 써 놓았다.
‘본다이’라는 이름에도 이 바다의 소리가 담겨 있다. 본다이는 호주 원주민의 언어인 다라왈어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바위에 파도가 부딪칠 때 나는 소리와 관련되어 있다. 흔히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 또는 ‘바위에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라는 뜻으로 설명된다. 이름의 의미를 알고 들으면 해변의 파도 소리도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오래전 이곳에 살던 사람들도 같은 소리를 들으며 바다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내가 본다이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이웃 해변들과 이어지는 해안길이다. 타마라마와 브론테를 지나 쿠지로 향하는 길은 해변 하나를 감상하는 즐거움을 긴 산책의 즐거움으로 넓혀 준다. 길과 계단, 전망을 바라볼 공간들이 이어져 있어 바다를 가까이 느끼며 걸을 수 있다. 모퉁이를 돌면 새로운 해변이 나타나고, 조금 더 올라가면 방금 걸어온 바다가 다른 모습으로 펼쳐진다.
이날은 그 길 위에 조각 작품들까지 놓여 있었다. 실내 전시장에서는 작품을 중심으로 시선이 모이지만, 이곳에서는 작품 너머로 바다가 보이고 작품 사이로 바람이 지나갔다. 보는 위치를 바꿀 때마다 작품과 수평선의 관계도 달라졌다. 자연이 작품의 배경이 되어 주고, 작품은 익숙한 자연을 새롭게 바라보게 해 주었다.

돌고래 가족을 만났다. 푸른 바다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시 물속으로 사라지는 돌고래들을 바라보며 걸음을 멈추었다. 조각 작품을 보러 왔다가 뜻밖의 만남을 선물로 받은 셈이었다. 바다를 그저 아름다운 풍경으로 바라보고 있었는데, 돌고래가 자신의 존재를 뽐내며 물위를 달려가고 있었다.
해변길에서는 모퉁이를 돌 때마다 바다의 표정이 달라진다. 조금 전까지 넓게 열려 있던 수평선이 바위 뒤로 숨었다가 다시 나타나고, 절벽 아래에는 또 다른 모래사장이 펼쳐진다. 작은 만에 안긴 해변과 바다를 향해 돌출한 바위가 번갈아 등장한다. 본다이의 해안길이 아름다운 까닭은 각각의 해변이 지닌 개성을 걸으면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잘 이어진 길은 자연을 가까이 만나게 해 주고, 한 해변에서 느낀 감동을 다음 해변까지 이어준다.

맨리는 도착하는 과정부터 다른 정취를 전한다. 시티의 서큘러 키에서 페리를 타고 항구를 건너가면, 이동하는 시간 자체가 작은 여행이 된다. 선착장에서 내려 코르소 거리를 지나 바다 쪽으로 걸어가면 상점과 카페 너머로 넓은 해변이 모습을 드러낸다. 도시에서 멀리 떠나온 것은 아닌데도, 물을 건너왔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에는 여행의 여유가 생긴다.
오래전 맨리 시장을 만나 그곳의 역사에 관해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들었던 이야기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은 것은 ‘맨리’라는 이름의 유래였다. 필립 선장이 이곳의 원주민 남성들의 건장하고 당당한 모습을 보고 ‘맨리’라고 이름 붙였다는 이야기였다.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그 뜻이 조금 더 분명해진다. 1788년 아서 필립은 이곳에서 만난 원주민들의 자신감과 당시 그의 표현으로 ‘남자다운 행동(manly behaviour)’에 깊은 인상을 받아 ‘맨리 코브’라는 이름을 붙였다.
맨리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해변을 따라 늘어선 나무들이다. 높이 자란 노퍽섬소나무는 맨리의 풍경에 뚜렷한 윤곽을 만들어 준다. 푸른 바다가 시선을 멀리 이끈다면, 나무들은 그 시선을 다시 해변 가까이로 데려온다. 해안을 따라 걷다가 나무 아래에서 쉬고,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 모래사장에서 햇살을 즐기는 시간과 그늘에서 숨을 고르는 시간이 한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래서 맨리의 나무는 단순한 장식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바다를 바라보며 오래 머물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 주는 존재 같다. 본다이의 넓은 모래사장이 햇빛의 밝음을 드러낸다면, 맨리의 해변은 햇빛과 그늘이 함께 만드는 편안함을 보여 준다. 물론 두 해변 모두 활기차고 사람들이 많이 찾지만, 맨리의 나무 아래에서는 걸음이 조금 느려져도 좋을 것 같다.
맨리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서핑 해변이기도 하다. 본다이 역시 서핑으로 유명하지만, 맨리에서는 길게 이어지는 해변과 밀려오는 파도, 그 위에서 균형을 잡는 서퍼들의 모습이 특히 잘 어우러진다. 해변의 여유와 바다 위의 역동성이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이다. 파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서핑은 파도 위에 서 있는 순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기다리고, 물살을 살피고, 다시 몸을 움직이는 시간이 그 짧은 순간을 떠받치고 있다.

맨리에서도 해변을 따라 걷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남쪽으로 셸리 비치를 향해 걸으면 넓은 바다를 바라보던 시선이 아늑한 만으로 옮겨 간다. 본다이의 해안길에서 절벽과 연이어 나타나는 해변의 변화를 즐긴다면, 맨리에서는 해변의 거리와 나무, 작은 만이 가까이 어우러지는 풍경을 맛보게 된다.
어느 해변이 더 아름다운지 묻는다면 쉽게 답하기 어렵다. 밝은 모래사장을 바라보고 해안길을 따라 힘껏 걷고 싶은 날에는 본다이가 떠오른다. 페리 창밖으로 항구를 바라보고, 나무 아래에 앉아 서퍼들이 파도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 싶은 날에는 맨리가 생각난다. 같은 시드니의 바다이지만, 그날의 마음에 따라 가까워지는 해변이 달라진다.
본다이에서는 바다를 따라 더 걸어 보고 싶고, 맨리에서는 바다 앞에 조금 더 앉아 있고 싶다. 하나의 도시 안에서 이렇게 다른 쉼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시드니가 주는 선물이다. 햇살이 아름다운 모래사장에도, 바람이 지나는 나무 그늘에도 저마다의 자리가 있다. 그곳에 잠시 머무는 동안 마음은 느슨해지고, 일상으로 돌아갈 발걸음에는 조금의 여유가 남는다.


은퇴 후, 나의 하루를 다시 배우다
은퇴를 하고 나니 하루를 어떻게 살아갈지 새롭게 묻게 된다.
오랫동안 맡은 일과 정해진 일정에 따라 움직였다면, 이제는 스스로 선택하고 집중해야 할 때가 되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앞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생각한다.
잘 살아가는 웰빙, 잘 나이 들어가는 웰에이징, 잘 마무리하는 웰다잉. 이 세 가지 말이 은퇴 후에는 한층 개인적인 질문으로 다가온다.
나는 오늘을 어떻게 살고 싶은가. 어떤 사람으로 나이 들고 싶은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1. 웰빙(well‑dying)
은퇴 후 떠난 울룰루 여행은 내 삶에 하나의 쉼표가 되었다. 5박 6일 동안 붉은 땅과 거대한 바위를 바라보며 지냈다. 특히 빛에 따라 달라지는 울룰루의 모습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같은 바위도 언제, 어디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른 빛깔과 표정을 드러냈다.
그 풍경을 떠올리면 내 삶도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싶어진다. 지나온 사역을 잘한 일과 부족했던 일로만 헤아리지 않고, 그 모든 시간에 스며 있던 은혜를 발견하고 싶다. 모든 일을 완벽하게 감당하지는 못했지만, 부족한 나와 함께 걸어 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사랑과 기다림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카타추타의 왈파 협곡에서는 자연이 빚어 놓은 성소 안을 걷는 듯했다. 거대한 바위 사이를 걸으며 느꼈던 경외로움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 평소에는 말씀을 준비하고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그곳에서는 조용히 바라보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채워졌다. 말을 멈추고 귀를 기울일 때 들려오는 것이 있었다.
비 때문에 일출을 포기한 날도 있었다. 원하는 모든 풍경을 다 볼 수도 없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니 보았던 것과 보지 못했던 것이 모두 합력해서 여행의 아름다운 기억이 되었다. 그때 문득, 웰빙이 이런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 웰에이징(well‑aging)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익숙했던 자신과 조금씩 다른 자신을 만나는 일이다. 예전에는 쉽게 하던 일에 시간이 더 필요할 수 있고, 몸의 회복 속도가 달라질 수도 있다. 사회에서 맡은 역할과 사람들에게 불리는 이름도 변한다. 은퇴는 이러한 변화를 분명하게 경험하는 계기가 된다.
그때 자신을 과거의 모습과만 비교하면 현재의 삶이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삶의 계절마다 감당할 몫과 누릴 기쁨이 다르다. 지금의 몸과 형편에 맞게 생활을 조정하면서도, 배움과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
잘 나이 들기 위해서는 자신의 경험을 소중하게 여기되, 그 경험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지 않는 겸손이 필요하다. 오래 살아왔다는 이유로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세상은 달라지고, 다음 세대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문제를 마주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새롭게 배울 것이 여전히 많다.
나이 듦에는 상실도 있다. 건강과 역할, 소중한 관계가 달라질 때 슬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잘 나이 든다는 말이 언제나 밝고 의연해야 한다는 요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아쉬움을 인정하고 충분히 애도하면서, 현재 가능한 기쁨과 관계를 찾아가는 과정 역시 웰에이징의 일부이다.
나는 앞으로도 새로운 책을 읽고, 낯선 생각을 만나고, 모르는 것을 질문하며 살아가고 싶다. 익숙한 사람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젊은 세대의 고민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내 경험이 누군가를 판단하는 잣대보다 그를 이해하는 바탕이 되기를 바란다.

3. 웰다잉(well-dying)
지난해 12월 22일,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목회자로서 여러 장례에 함께했고, 슬픔을 겪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해 왔다. 그러나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자리에 선 나는 어머니의 아들이었다. 이별의 슬픔을 설명하는 말보다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먼저 마음을 채웠다.
어머니의 생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나의 삶도 돌아보게 된다. 나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으며 여기까지 왔다. 스스로 이루었다고 여겼던 일들 뒤에도 나를 위해 수고하고 기다려 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랑을 얼마나 알았는지, 감사의 마음을 얼마나 전하며 살았는지 묻게 된다.
은퇴라는 시기를 지나면서 남은 날들에는 감사의 표현을 아끼지 않고 싶어졌다. 특히 가족에게 그렇다. 사역은 나의 직무였지만, 그 세월은 가족의 삶과 함께 흘렀다. 내가 맡은 책임을 감당하는 동안 가족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함께 감당한 몫이 있었다. 그 동행을 당연하게 여기고 싶지 않다.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을 마음에만 담아 두지 않으려 한다. 언젠가 전하겠다고 미루는 사이에 그 말을 건넬 기회를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함께 식사할 수 있을 때 마주 앉고, 안부를 물을 수 있을 때 연락하며, 곁에 있는 사람에게 오늘의 감사의 마음을 전할 것이다.
삶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오늘의 관계가 더욱 소중해진다. 내가 떠난 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지 생각하기에 앞서, 지금 곁에 있는 사람에게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내 말과 태도에 따뜻함이 남고, 함께한 시간에 감사가 쌓이기를 바란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내게는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일이기도 하다.
은퇴 후의 하루를 나는 아직 배우는 중이다. 오늘은 몸과 마음을 돌보며 주어진 하루를 소중히 살고 싶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겸손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삶을 마무리하는 날, 받은 사랑을 기억하고 모든 은혜에 감사하며 주님을 만나고 싶다.

하늘에서 다시 만난 시드니
5박 6일의 울루루 여행을 마치고 시드니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비행기 창밖으로 익숙한 도시가 한눈에 들어왔다. 하버브리지와 오페라하우스, 굽이치는 바다와 빼곡한 빌딩들이 저녁 햇살을 받아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나는 창가에 시선을 고정한 채 카메라를 들었다. 오래 살아온 도시였지만, 그날 하늘에서 바라본 시드니는 잠시 말을 잊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
가장 먼저 마음에 들어온 것은 바다였다. 땅 위에서 생활할 때에는 도로와 건물 사이로 바다를 찾아보곤 했는데, 하늘에서는 바다가 도시의 품을 얼마나 깊숙이 파고들어 있는지 보였다. 물길은 크고 작은 곶을 돌아 흐르고, 땅은 그 물길을 따라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펼쳐져 있었다. 나무가 우거진 언덕과 주택가, 선착장과 공원들이 해안선을 따라 이어졌다. 시드니는 바다를 곁에 둔 도시이면서, 바다와 함께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 온 도시였다.
수면 위에는 배들이 지나간 흔적이 길게 남아 있었다. 작은 배 한 척이 잔잔한 물 위에 흰 선을 그었고, 다른 배는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높은 곳에서는 배의 소리도, 선착장을 오가는 사람들의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움직임은 분명한데 풍경은 고요했다. 그 고요함 속에서 도시의 하루가 천천히 저물어 가고 있었다.

왼편으로 하버브리지의 커다란 아치가 눈에 들어왔다. 육중한 철골과 돌기둥이 물길 양쪽을 단단히 이어 주고 있었다. 가까이에서 올려다보면 그 크기에 압도되지만, 하늘에서 보니 다리는 바다와 도시 사이에 자연스럽게 놓인 하나의 선처럼 보였다. 그 위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을까. 일을 마친 사람,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사람, 나처럼 익숙한 자리로 돌아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멀리서 바라보는 다리 위로 수많은 사람들의 저녁이 지나가고 있었다.
다리 너머에는 오페라하우스가 하얀 지붕을 펼치고 있었다. 겹겹이 솟아오른 지붕은 바람을 기다리는 돛처럼 보였고, 바닷가에 가지런히 놓인 조개껍데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저녁빛이 닿은 부분에는 옅은 살구색이 감돌았다. 주변의 높은 빌딩들과 달리 낮게 바다 곁에 앉아 있으면서도, 시선은 자꾸 그곳으로 향했다. 푸른 물과 흰 지붕, 그 뒤로 펼쳐진 짙은 숲이 서로의 빛깔을 더욱 선명하게 해 주고 있었다.
오른편의 빌딩들은 저무는 햇살을 정면으로 받고 있었다. 유리 외벽에는 금빛이 흐르고, 건물마다 빛과 그늘이 길게 나뉘었다. 높이도 모양도 다른 건물들이 모여 도시의 윤곽을 세우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낮은 건물과 오래된 지붕들이 촘촘히 자리했고, 바닷가의 나무들은 그 사이에 짙은 초록빛을 더했다. 높이 솟은 도시와 낮게 펼쳐진 삶의 자리가 한 풍경 안에 들어 있었다.
시선을 더 멀리 옮기자 항구 너머의 언덕과 해안이 겹겹이 이어졌다. 가까운 물길은 선명했지만 먼 바다는 옅은 빛 속으로 풀어지고 있었다. 만을 감싸는 육지 사이로 바깥바다가 열려 있었다. 항구 안에서는 수많은 길이 나뉘고 굽이쳤지만, 그 물은 결국 넓은 바다로 이어지고 있었다.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라보는 풍경이었지만, 마음은 어느새 그 먼 수평선까지 나아가 있었다.
며칠 동안 바라보았던 울루루의 붉은 대지가 떠올랐다. 그곳에서는 광활한 땅 위에 서 있는 거대한 바위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푸른 물길 사이에 사람들이 일구어 놓은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광야에서는 바람과 침묵에 귀를 기울였고, 시드니에서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리 위로 사람들의 생활을 떠올렸다. 서로 다른 풍경이었지만, 두 곳 모두 오래 바라볼수록 마음에 들어오는 것들이 많았다.

높은 곳에서 보니 평소 크게 느꼈던 것들이 작아졌다. 복잡한 도로도, 높다란 빌딩도, 바쁘게 오가는 배들도 넓은 풍경의 한 부분이었다. 저 아래에서 살아갈 때에는 눈앞의 일에 마음을 빼앗겨 도시 전체를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잠시 거리를 두자 길과 바다와 숲이 서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보였다. 내 삶에도 이런 시간이 필요했으리라. 걸음을 늦추고, 지나온 자리를 돌아보고, 내가 살아온 세상을 조금 넓게 바라보는 시간 말이다.
나는 창밖의 시드니를 한 장의 사진에 담았다. 하버브리지와 오페라하우스, 햇살을 머금은 빌딩과 배들이 남긴 물결이 그 안에 함께 들어왔다.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면 그날의 귀환이 떠오를 것이다. 붉은 광야의 기억을 품고 푸른 항구로 돌아오던 시간, 여행의 아쉬움보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감사가 더 깊어지던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비행기는 서서히 고도를 낮추고 있었다. 이제 저 풍경 속으로 다시 들어갈 시간이었다. 하늘에서 바라보던 길을 걷고, 물가를 지나고, 사람들을 만나며 새로운 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저녁 햇살 속에 놓인 시드니를 바라보며 조용히 감사했다. 아름다운 곳을 다녀올 수 있었고, 아름다운 곳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버브리지 위의 두 깃발
2026년 10월 12일, 시드니의 하늘은 푸르고 맑았다. 은퇴 후 한결 여유로워진 마음으로 올림픽 파크 선착장에서 페리를 타고 오페라하우스를 향했다. 파라마타강을 가르며 달리는 페리 뒤로 하얀 포말이 길게 이어졌다. 강바람을 맞으며 바라보는 풍경에는 오랫동안 이 도시에서 살아온 나의 기억이 겹쳐졌다.
하버브리지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철골이 항구의 양쪽을 잇고 있었고, 그 꼭대기에서는 두 깃발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하나는 푸른 바탕에 하얀 별들이 놓인 호주 국기였고, 다른 하나는 검은색과 붉은색 사이에 노란 원이 있는 애버리지널 깃발이었다. 수없이 보았을 다리였지만, 이날은 그 위의 두 깃발에 오래 마음이 머물렀다.
문득 그 풍경을 조금 더 깊이 바라보고 싶어졌다. 하나의 깃발에는 내가 이민자로 살아온 나라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고, 다른 깃발에는 내가 이곳에 오기 훨씬 전부터 이어져 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1. 호주 국기 — 하나의 국가를 이루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상징
푸른 바탕에 영국 국기와 하얀 별들이 그려진 깃발이 호주 국기이다. 오늘날 호주를 대표하는 국가적 상징이며, 현재 국기의 바탕이 된 디자인은 호주가 연방국가로 출범한 1901년에 선정되었다. 같은 해 9월 3일 멜버른에서 처음 게양되었다.
국기 왼쪽 위의 유니언 잭(Union Jack)은 호주와 영국의 역사적 관계를 보여준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역사와 그 과정에서 형성된 제도적 유산이 국기 안에 담겨 있다.
유니언 잭 아래의 큰 별은 연방의 별(Commonwealth Star)이다. 일곱 개의 뾰족한 끝 가운데 여섯은 호주의 여섯 주를, 나머지 하나는 준주들을 나타낸다. 오른쪽의 다섯 별은 남반구의 밤하늘에서 볼 수 있는 남십자성(Southern Cross)을 표현한다. 국가의 정치적 연합과 남반구에 자리한 지리적 정체성이 한 깃발 안에 함께 담긴 것이다.
따라서 호주 국기는 영국계 주민만의 깃발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원주민과 여러 나라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을 포함하여 호주라는 국가를 함께 이루는 국민 전체의 깃발이다. 하버브리지 위에서 날리는 호주 국기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공동의 사회를 이루어 살아간다는 의미로 바라볼 수 있다.

2. 애버리지널 깃발 — 이 땅의 첫 사람들과 지금도 이어지는 문화의 상징
검은색과 붉은색 바탕 가운데 노란 원이 있는 깃발은 애버리지널 깃발(Australian Aboriginal Flag)이다. 원주민 예술가 해럴드 토머스(Harold Thomas)가 디자인했으며, 1971년 애들레이드에서 처음 게양되었다.
이 깃발은 세 가지 색과 형태로 깊은 의미를 전한다. 위쪽의 검은색은 애버리지널 사람들을 상징한다. 아래쪽의 붉은색은 대지와 의식에 사용되는 붉은 황토를 상징한다. 가운데의 노란 원은 생명을 새롭게 하는 태양을 상징한다.
이 상징들을 함께 읽으면 ‘사람과 땅과 생명의 연결’이라는 의미가 드러난다. 사람은 땅과 떨어져 존재하지 않고, 대지는 삶과 문화가 이어지는 터전이며, 태양은 그 위의 생명을 지속시킨다. 이는 깃발의 공식 색상 설명을 바탕으로 풀어 본 해석이다.
또한 이 깃발은 원주민을 지나간 역사의 한 부분으로만 기억하지 않게 한다. 그들은 오늘도 이 땅에서 살아가며 문화와 정체성을 이어가는 사람들이다. 애버리지널 깃발은 1995년 호주의 공식 깃발 가운데 하나로 인정되었다.
다만 토레스 해협 도서민에게는 별도의 깃발이 있으므로, 이 깃발 하나가 호주의 모든 원주민 집단을 동일하게 대표한다고 설명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3. 두 깃발의 동행 — 역사를 인정하고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가는 상징
하버브리지에는 원래 호주 국기와 뉴사우스웨일스주 깃발이 게양되어 있었다. 그러나 2022년 7월, 애버리지널 깃발이 주 깃발을 대신하여 상시 게양되도록 결정되었다. 특별한 기념일에만 원주민의 존재를 드러내는 데서 나아가, 시드니를 대표하는 장소에서 매일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인정하게 된 것이다. 당시 발표에서도 이를 원주민과 호주의 오랜 역사를 기리고 인정하는 조치로 설명했다.
두 깃발이 함께 있는 모습은 다음과 같은 의미로 읽을 수 있다.
먼저, 호주의 역사를 더 넓고 온전하게 바라보게 한다. 호주의 이야기는 영국인의 도착이나 연방국가의 성립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이전부터 이어져 온 원주민의 역사도 오늘의 호주를 이해하는 데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서로 다른 정체성을 존중하는 공존을 보여준다. 같은 국가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이 각자의 역사와 문화를 지워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두 깃발은 각자의 모양과 색을 유지하면서 같은 하늘 아래에서 날린다. 그 모습은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공동의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화해를 계속 실천해야 한다는 과제를 떠올리게 한다. 깃발을 함께 게양했다고 모든 상처와 불평등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상징적 인정이 경청과 존중, 생활 속의 공정한 기회로 이어질 때 그 의미는 더욱 깊어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버브리지는 더욱 인상적인 장소가 된다. 다리가 항구의 양쪽을 연결하듯, 그 위의 두 깃발은 서로 다른 역사와 사람들이 관계를 이어 가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오늘도 다리 아래로는 사람들이 오가고, 다리 위에서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두 깃발이 함께 바람에 날리고 있다.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리지, 그리고 Iwagumi Air Scape
2026년 10월 12일, 시드니의 하늘은 푸르고 맑았다. 올림픽 파크 워프에서 페리를 타고 오페라하우스를 향했다.
페리는 파라마타강을 가르며 하얀 포말을 뿜어냈다. 햇살은 물결 위에서 잘게 부서지고, 강변의 풍경은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바람을 맞으며 바라보는 강물에는 가을도 겨울도 지나온 시드니의 봄이 반짝이고 있었다.
오랫동안 시드니에 살았지만, 익숙한 도시를 이처럼 여유롭게 바라볼 기회는 많지 않았다. 사역 중에는 목적지에 도착한 뒤 해야 할 일을 먼저 생각했다. 은퇴하고 나니 이동하는 시간에도 마음을 머물게 할 수 있었다. 배가 남기는 물결을 바라보고, 강변의 집들과 나무들을 살피며, 서두르지 않는 하루를 누렸다.
항구의 풍경이 펼쳐지면서 하버브리지와 오페라하우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에 Iwagumi Air Scape라는 예술 작품이 더해지면서, 익숙한 시드니는 새로운 생각을 건네주었다. 세 가지 풍경 앞에서 나는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조용히 그려보았다.

1. 오페라하우스 — 추억 속에서 발견하는 감사
오페라하우스의 하얀 지붕은 푸른 하늘과 바다 사이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바람을 품은 돛처럼 보이기도 하고, 바다에서 막 올라온 조개껍데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곡선은 여러 번 보았어도 눈길을 붙잡았다.
내게 오페라하우스는 가족의 추억이 깃든 장소이다. 오래전 아들이 이곳에서 근무했다. 아들 덕분에 일반 방문객이 쉽게 들어갈 수 없는 지하 공간에도 가 본 적이 있다. 화려한 외관을 바라보던 자리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그 건물을 움직이게 하는 또 다른 일상의 공간을 만났던 기억이 남아 있다.
사람들은 같은 장소에서도 서로 다른 시간을 떠올린다. 누군가에게 오페라하우스는 여행의 목적지이고, 누군가에게는 감동적인 공연을 관람한 곳이다. 내게는 아들이 일했던 곳이며, 아들의 안내를 받아 그 안을 둘러보았던 아버지의 기억이 담긴 장소이다. 세월이 흘러 다시 찾으니 건물의 아름다움 위로 가족의 시간이 겹쳐졌다.
그때 둘러보았던 공간을 생각하며, 무대를 받쳐주는 사람들의 수고를 떠올렸다. 한 편의 공연이 시작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준비가 필요할까. 무대 위의 배우와 연주자뿐 아니라 조명과 음향을 담당하는 사람, 관객을 맞이하는 사람, 공간을 정리하는 사람의 손길이 모여 공연을 완성할 것이다. 박수는 짧은 순간에 울리지만, 그 순간을 가능하게 하는 수고는 오래 이어진다.
목회의 시간을 돌아보아도 그렇다.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는 내 뒤에는 함께 기도하고 묵묵히 섬겨 준 사람들이 있었다. 예배를 준비하고, 음식을 나누고,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고, 교회의 크고 작은 일을 감당해 준 손길들이 있었다. 그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지 못해도, 그 수고가 없었다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은퇴하고 나니 내가 이루었다고 생각했던 일들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헌신이 더욱 또렷하게 보인다. 감사는 지나온 시간을 다시 읽게 한다. 힘들었던 기억 속에서도 나를 붙들어 준 손길을 발견하게 하고, 평범했던 날들 속에서도 하나님의 돌보심을 알아보게 한다.
오페라하우스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감사했다. 아들과 함께했던 시간에 감사하고, 오랜 사역을 함께 감당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이제 그 모든 시간을 천천히 돌아볼 여유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2. 하버브리지 —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
오페라하우스 곁에는 하버브리지가 웅장한 아치를 이루며 서 있었다. 다리 아래로 배들이 지나가고, 그 위로 사람들의 일상이 이어지고 있었다. 여행자들은 다리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지만, 누군가에게 그 다리는 오늘도 일터로 향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의 길이다.
다리의 아름다움은 그 위로 삶이 흐른다는 데에도 있다. 서로 떨어져 있는 곳을 이어주고, 돌아가야 할 거리를 줄여주며, 건너편에 있는 사람을 만나게 한다. 하버브리지는 오랜 세월 그렇게 수많은 만남을 가능하게 해왔을 것이다.
그 다리를 보며 내 삶에도 많은 다리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호주로 삶의 터전을 옮겼을 때, 낯선 환경에 적응하도록 도와준 사람들이 있었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 앞에서 당황할 때 길을 알려준 사람이 있었고, 사역의 어려움 속에서 함께 기도해 준 사람이 있었다. 그들의 따뜻한 말과 실제적인 도움이 낯선 시간을 건너가게 해 주었다.
사람은 혼자 걷는 것 같아도 누군가의 도움으로 건너온 길을 품고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지식을 나누어 다리가 되어 주고, 어떤 사람은 시간을 내어 곁을 지켜 준다. 때로는 “괜찮습니다”라는 짧은 한마디가 두려움의 강을 건너게 한다. 돌아보면 내 삶에도 그런 다리를 놓아준 사람들이 많았다.
이제 나는 오랜 직무의 자리에서 은퇴 이후의 삶으로 건너가고 있다. 익숙했던 일정이 줄어들고, 늘 맡아왔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시간이다. 홀가분한 마음과 낯선 마음이 함께 찾아오지만, 건너편의 모든 것을 미리 알아야만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루씩 걸어가려 한다.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작은 다리가 되어주고 싶다. 마음이 지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길 앞에서 망설이는 사람을 격려하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 대화의 길을 내어주고 싶다. 오랜 경험이 필요한 곳에서는 조심스럽게 지혜를 나누고, 내가 배워야 할 자리에서는 기꺼이 귀를 기울이고 싶다.
하버브리지는 사람들을 건너가게 하면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은퇴 감사 예배에서 했던 다짐을 다시 떠올렸다.
“직책에서는 은퇴하지만 사명에서는 은퇴하지 않겠습니다.”
그 다짐이 앞으로의 일상에서 작은 친절과 꾸준한 관심으로 이어지기를 바랐다.

3. Iwagumi Air Scape — 여백 속에서 배우는 새로운 삶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리지가 오래된 기억을 불러왔다면, Iwagumi Air Scape는 익숙한 풍경에 새로운 질문을 더해 주었다. 호주의 예술 그룹 ENESS가 만든 이 작품은 공기를 채워 거대한 바위의 형상을 구현한 설치미술이다. 일본의 돌 배치 미학인 이와구미에서 영감을 받아 자연의 균형과 조화를 도시의 공간으로 옮겨왔다.
바위의 모습과 공기의 가벼움이 한 작품 안에 담겨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우리는 보이는 형태를 통해 무게와 재질을 짐작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익숙한 짐작을 잠시 멈추게 한다. 무겁게 느껴지는 형상 안에 공기가 들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진다.
얼마 전 다녀온 울루루와 카타추타가 떠올랐다. 붉은 대지 위에 솟아 있던 거대한 바위들, 빛에 따라 달라지던 색깔, 바위 사이를 지나던 바람이 아직 마음에 남아 있었다. 광야에서 만난 자연의 바위 앞에서는 긴 시간과 인간의 작음을 생각했다. 도시에서 만난 바위 형상의 예술 앞에서는 익숙한 것을 새롭게 바라보는 상상의 힘을 느꼈다.
여행의 기억은 이렇게 다른 장소에서 다시 살아난다. 울룰루에서 바라보았던 풍경이 시드니의 예술 작품을 이해하는 배경이 되었고, 시드니에서 만난 작품은 광야에서 느꼈던 감동을 다시 꺼내 주었다. 여행은 돌아온 뒤에도 마음속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작품의 안을 채운 공기를 생각하며, 내 삶에도 숨 쉴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일정과 책임을 중심으로 살아왔다. 하루의 빈 시간이 생기면 무엇인가로 채워야 할 것 같았고, 쉬는 동안에도 다음 일을 생각하곤 했다. 이제는 여유가 찾아왔을 때 그 시간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책을 읽다가 잠시 생각에 잠겨도 좋고, 산책하다가 마음에 드는 풍경 앞에 오래 서 있어도 좋다. 가족과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에게 안부를 전할 수도 있다. 그런 시간 속에서 마음이 새로워지고, 미처 살피지 못했던 삶의 소중한 부분이 다시 보인다.
기도도 그 여백 안에서 깊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해야 할 일을 아뢰던 기도와 함께, 지금 내게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는 기도를 드리고 싶다. 서둘러 말을 이어가기보다 하나님 앞에 잠잠히 머물며, 마음이 충분히 쉬도록 기다리고 싶다.
오늘, 푸른 하늘 아래 시드니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오래 살아온 도시에도 천천히 바라보아야 할 풍경이 많이 남아 있었다. 앞으로는 그 풍경들 앞에서 자주 걸음을 멈추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나누고, 필요한 곳에 손을 내밀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오늘을 감사히 살아가고 싶다.





















사진 = 김환기 사관
김환기 사관 (구세군채스우드한인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