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년 11월 20일, 로마제국의 제47대 황제 막시미누스 다이아 (Gaius Valerius Galerius Maximinus Daia, 270 ~ 313) 출생
막시미누스 다이아 (Gaius Valerius Galerius Maximinus Daia, 270년 11월 20일 ~ 313년 8월)는 로마제국의 제47대 황제 (재위, 305년 5월 1일 / 311년 5월 5일 ~ 313년 8월)이다.
– 막시미누스 다이아 (Gaius Valerius Galerius Maximinus Daia)
.휘: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갈레리우스 막시미누스 다이아 (Gaius Valerius Galerius Maximinus Daia)
.생사: 270년 11월 20일 ~ 313년 8월
.재위: 305년 5월 1일 / 311년 5월 5일 ~ 313년 8월
.군인황제시대를 연 막시미누스 트락스가 막시미누스란 이름을 써 막시미누스2세라함.
.리키니우스와 권력다툼에서 패해 몰락•사망(42)
로마시대 갈레리우스 황제의 외조카로 305년 외삼촌인 갈레리우스에 의해 동방의 부제의 자리에 올라 이집트와 시리아의 통치권을 위임받았다. 하지만 308년 자신의 외삼촌에 의해 리키니우스라는 무명의 군인이, 삼촌 갈레리우스가 전현직 여러 황제들을 소집한 회동에서 서방의 정제에 오르게 되자 불만을 품게 된다. 그래서였는지, 동방 정제인 삼촌이 멀쩡히 살아있던 310년에, 자신에게도 정제 지위를 달라고 삼촌에게 요구했지만, 삼촌 갈레리우스는 정제의 희소성을 생각해서 딱 잘라 거절하고 대신 Filius Augusti(아들 황제)라는 칭호를 주었다고 한다. 아들이면 곧 후계자를 의미하는 건데, 하지만 그런 것에 아랑곳없이 막시미누스는 정제의 복장과 상징을 자기 멋대로 그냥 썼다고 한다.
기독교를 싫어해서, 삼촌 갈레리우스가 사후 한 달 전쯤(311.4) 발표했던 기독교 관용령 (Edict of Toleration by Galerius)를 무시하고 자신의 지배 영역에서 유혈 탄압을 행했다고 한다. 심지어 병사들이 쫓기는 기독교인들을 쫓다가 그것도 모르고 어느새 아르메니아 국경을 그냥 넘어가서 아르메니아 쪽에서 크게 항의를 했다고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기독교 사가 락탄티우스의 ‘박해자의 최후’ (De Mortibus Persecutorum)에 의하면, 그의 최후에 대한 묘사는 삼촌 갈레리우스처럼 최대한 리얼하게 나와 있는데, 잘 죽었다고 비꼬는 것으로 보인다.
311년 외삼촌 사후 서방 정제의 직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동방으로 오게 된 리키니우스와는 관할권을 두고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게 되었고, 2:2 구도가 되니 막센티우스와 동맹을 맺게 된다. 하지만 막센티우스가 콘스탄티누스에게 패해 죽어서 먼저 떨어져 나갔고, 결국 313년에는 리키니우스에게 4월 30일 트라키아의 치랄룸 (Tzirallum)에서 패하게 되면서 결국 몰락하고 후퇴하면서에 의하면 노예로 위장하고 달아났다고 한다.
니코메디아를 거쳐 그 해 8월, 소아시아남동부의 타르수스에서 향년 만 42세로 죽었다.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에 의하면 독 (Poison)이 확실히 언급되었으므로, 독살이었거나 독으로 자살했을 것으로 보인다.
당대의 자료인 위에 언급했던 ‘박해자의 최후’에서도 ‘그는 독을 삼켰다’고 하고 있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