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년 11월 9일, 교황 성 실베스테르 1세에 의해 라테라노의 성 요한 대성당 (라테라노 대성당) 봉헌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 (이: Basilica di San Giovanni in Laterano)은 로마 교구의 주교좌 성당이자 로마교구 교구장은 교황이다. 대개 라테라노 대성당이라고 간략하게 부르기도 한다.
대성당은 바티칸 시국 영토 안에 있지 않은데, 대성당이 있는 토지는 이탈리아 공화국의 로마 시내 안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다른 몇몇 건물의 경우처럼 라테란 조약의 체결과 함께 로마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 성좌의 자산으로서 특별한 치외법권 상태를 누리고 있다.
교황좌 (Cathedra Romana)가 있는 로마 교구 주교좌 성당으로서 로마 가톨릭교회의 다른 어떤 성당보다 우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조차 예외는 아니다.
대성당은 바티칸 시국 영토 안에 있지 않은데, 대성당이 있는 토지는 이탈리아 공화국의 로마 시내 안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다른 몇몇 건물의 경우처럼 라테란 조약의 체결과 함께 로마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 성좌의 자산으로서 특별한 치외법권 상태를 누리고 있다.
대성당을 헌납받은 정확한 날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학자들은 교황 멜키아데의 재위 중 313년 도나투스파에 대항하고자 주교회의를 소집하여 그들을 이단으로 선언한 시기였을 것으로 믿고 있다. 궁전에 딸린 대성당은 개축과 확장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로마 주교로서의 교황좌가 있는 로마의 주교좌 성당이 되었다.
라테라노 궁전과 인접한 대성당이 공식적으로 봉헌된 날짜는 교황 실베스테르 1세에 의해 ‘하느님의 집 (Domus Dei)’으로 선포되고 교황의 통솔 아래에 들어간 324년 11월 9일이다. 내부에는 교황좌가 배치되어 있어, 로마 주교의 주교좌 성당으로 발전하는 원인이 되었다. 대성당의 으뜸 직을 반영하고자 중앙 입구에는 라틴어로 ‘전 세계 모든 성당의 어머니이자 머리인 지극히 거룩한 라테라노 성당 (Sacrosancta Lateranensis ecclesia omnium urbis et orbis ecclesiarum mater et caput)’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라테라노 궁전과 대성당은 두 번에 걸쳐 다시 봉헌되었다. 10세기에 교황 세르지오 3세는 대성당의 세례당을 새로이 축성하면서 이곳을 성 요한 세례자에게 봉헌하였다. 12세기에 교황 루치오 2세는 라테라노 궁전과 대성당을 다시 성 요한 복음사가에게 봉헌하였다.
교황 멜키아테 시대부터 프랑스인 교황 클레멘스 5세 시대에 교황청이 1309년 아비뇽으로 옮겨져 아비뇽이 프랑스 영토 안에 둘러싸인 교황의 영지가 될 때까지 모든 교황은 라테라노 궁전에 거주하였다. 아비뇽 유수 동안 라테라노 궁전과 대성당은 그대로 방치되어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1307년과 이후 1361년에 일어난 두 차례의 화재로 라테라노 궁전과 대성당은 크게 손상되었다. 양쪽의 사례에서 아비뇽에 있던 교황들은 재건과 유지 비용 명목으로 로마에 있는 주교들에게 자금을 전달하였다. 그러한 조처가 내려졌음에도 라테라노 궁전과 대성당은 과거의 화려함을 상실하였다.
아비뇽 교황 시대를 완전히 끝내고 교황이 로마로 돌아오고서, 라테라노 궁전과 대성당은 그동안 축적된 손상을 고려해볼 때, 교황이 거주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교황들은 산타 마리아 인 트라스테베레 성당을, 나중에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을 임시 관저로 삼아 거주하였다. 최종적으로는 바티칸에 궁전을 건설하여 교황청을 그곳으로 이전하였다. 이후 오늘날까지 교황은 바티칸에 거주하고 있다.
라테라노 궁전은 또한 5차례에 걸쳐 세계 공의회 (라테란 공의회)가 개최된 장소이기도 하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전례력에서 11월 9일은 324년 콘스탄티누스 1세가 라테라노에 대성당을 세워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날인 ‘라테라노 대성당 봉헌 축일’이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