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 선종한 교황들
535년, 56대 로마 교황 요한 2세 / 615년, 67대 로마 교황 보니파시오 4세 / 685년, 81대 로마 교황 베네딕토 2세

○ 535년 5월 8일, 56대 로마 교황 요한 2세 선종
교황 요한 2세 (라: Ioannes PP. II, 이: Papa Giovanni II)는 제56대 교황 (재위: 533년 1월 2일 ~ 535년 5월 8일)이다.
470년 로마에서 프로엑투스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첼리오 언덕에 있는 산 클레멘테 성당의 주임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리고 533년 1월 2일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본명이 메르쿠리우스(Mercurius)였던 그는 교황으로 선출되자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요한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여 요한 2세가 되었다. 그 이유는 메르쿠리우스라는 이름이 고대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메르쿠리우스)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교황의 이름으로 사용하기에는 지나치게 이교적이었기 때문이다. 요한 2세는 교황으로 선출되면서 본명이 아닌 교황으로서의 새 이름을 사용한 최초의 교황이 되었다.
이 당시에는 교황 선출이나 주교들의 서임 과정에서 성직자들과 평신도들 사이에 이따금씩 성직매매가 성행하였던 시기였다. 교황 보니파시오 2세가 선종한 후 2개월 동안의 사도좌 공석 기간에도 뻔뻔스럽게도 성직매매가 거리낌 없이 자행되었으며, 미사 때 사용하는 제구들이 패물들과 같이 매매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이 문제는 원로원에 상정되었으며, 원로원은 이 문제를 동고트 왕이 거주하는 라벤나로 보냈다. 교황 보니파시오 2세 역시 생전에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교황 선출 과정에서 발생하는 성직매매를 금지하는 법령을 내렸다. 교황과 원로원의 법령은 동고트의 왕 아탈라릭으로부터 확인받았다. 533년 아탈라릭은 이 법령을 성 베드로 대성전 안마당 대리석에 새길 것을 지시하였다. 또한 이는 로마 원로원에서 규정한 마지막 법령 (세나투스 콜술툼)이 되었다. 아탈라릭은 추가적으로 로마 사제단과 신자들이 성직매매에 연루될 경우, 라벤나의 고트족 법정에 출두하여 재판을 받도록 처리하고, 만약 유죄가 입증되면 벌금으로 3천 솔리두스를 내도록 하는 법령을 제정하였다. 그리고 벌금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용도로 사용할 것을 지시하였다.
요한 2세는 아리우스주의를 신봉하는 아탈라릭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동로마 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로부터 정통 신앙 고백을 받아내었는데 성공하였다. 당시 동로마 제국에서는 단성설이 점차 교세가 확장되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동로마 황제의 신앙 고백은 그 의미가 더욱 깊다.
프로방스에 있는 리에즈의 콘투멜리오수스 주교가 간통 행위로 악명을 떨친다는 소식을 들은 요한 2세는 갈리아 지역의 주교들에게 그를 체포해 수도원에 구금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리고 그를 대신하여 새로운 주교로 아를의 주교를 임명하였다.
535년 아리우스주의에 빠졌던 주교들이 회개할 경우, 성직을 유지하는 것을 허락해야 할지 아니면 평신도로 환속시켜야 할지에 대한 문제로 주교 217명이 카르타고에 모여 교회회의를 한 결과, 교황 요한 2세에게 판단을 요청하였다. 북아프리카에서는 재신임 문제로 노바시아노주의와 도나투스주의가 출현하게 되면서 혼란스러운 상태가 이어졌다. 요한 2세가 535년 5월 8일 선종하면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후임자인 교황 아가피토 1세가 대신하게 되었다. 요한 2세의 시신은 성 베드로 대성전에 안장되었다.

○ 615년 5월 8일, 67대 로마 교황 보니파시오 4세 선종
교황 보니파시오 4세 (라: Bonifacius PP. IV, 이: Papa Bonifacio IV)는 제67대 교황 (재위: 608년 9월 15일 ~ 615년 5월 8일)이다.
보니파시오 4세는 발레리아 태생의 마르시인이자 의사인 요한네스의 아들이다. 교황 보니파시오 3세가 선종한 후 이어진 10개월 간의 공석 끝에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9월 15일에 주교로 성성 (成聖)되었다. 그가 선종한 날짜는 615년 5월 8일이라고 전해진다.
교황 그레고리오 1세가 재임하던 시절에 그는 로마 교회의 부제로서 교회가 소유한 수익형 농지들의 행정관리 직책 (dispensator)을 맡고 있었다.
609년 5월 13일 보니파시오 4세는 동로마 제국의 황제 포카스의 동의를 구하고, 로마에 있는 판테온을 기독교 성당으로 개축하도록 지시하였다. 그는 판테온 안에 있던 아그리파의 모습을 새긴 조각상과 더불어 유피테르, 베누스, 마르스 등의 고대 로마 신상들을 모조리 철거하였다. 그리고 판테온을 축성한 후에 성모 마리아와 모든 순교 성인에게 헌정하는 의식을 거행하였다. 그리고 카타콤바 (지하 묘지)에 안장된 순교자들의 유해를 28개의 바구니에 나누어 담아 판테온에 설치한 중앙 제대 밑에 이장하도록 하였다. 이 사건은 로마에서 이교 사원을 기독교 성당으로 바꾼 최초의 사례였다.
보니파시오 4세가 교황으로 재위하고 있던 시기에 초대 런던의 주교 멜리토가 신생 교회인 잉글랜드 교회와 관련한 중요한 문제들을 교황과 논의하기 위해 로마를 방문하였다. 수도자들의 삶과 평화에 관한 주제로 소집된 로마 시노드에 참석한 그는 잉글랜드 교회가 준수해야 할 사항들에 대한 로마 시노드의 결정을 캔터베리 대주교 라우렌시오와 잉글랜드의 모든 사제, 켄트의 애설버트 왕과 모든 잉글랜드 백성에게 전하기 위해 다시 잉글랜드로 떠났다.
612년에서 615년까지 오늘날 이탈리아의 봄비오에 거주하던 아일랜드 선교자 골룸바노는 랑고바르드 왕국의 왕 아길루프의 요청에 따라 삼장서를 단죄한 것과 관련하여 보니파시오 4세에게 서신을 써서 보냈다. 그는 교황이 553년에 소집된 제2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를 수용했다는 이유로 이단의 혐의를 받고 있다면서 교황으로서의 정통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공의회를 새로 소집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촉구하였다. 그는 서신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적었다. “이 세상의 가장 먼 곳에 사는 우리 아일랜드 사람들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그리고 성령의 인도 아래 거룩한 법전을 기록한 제자들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 복음과 사도들의 가르침 이외에는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 저는 제가 이 나라에서 성 베드로좌에 대한 나쁜 평판으로 매우 고통스럽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 로마는 위대하고 멀리까지 알려졌지만, 그것은 오직 이 베드로좌 때문에 우리에게 영광스럽고 위대한 것입니다. 교황 성하, 이리에 맞서 성하의 양떼 앞에 서서 교회의 평화를 지켜 주십시오.”
보니파시오 4세는 자신의 개인 저택을 수도원으로 바꾼 후에 그곳에 들어가 살다가 선종하였다. 그의 시신은 성 베드로 대성전의 주랑 현관에 안장되었다. 그의 유해는 10세기와 11세기 그리고 교황 보니파시오 8세에 의해 13세기 말엽 등 총 세 차례 이장되다가 1603년 10월 21일 최종적으로 성 베드로 대성전에 다시 안장되었다.
사후 성인으로 시성되었으며, 축일은 5월 8일이다.

○ 685년 5월 8일, 81대 로마 교황 베네딕토 2세 선종
교황 베네딕토 2세 (라: Benedictus PP. II, 이: Papa Benedetto II)는 제81대 교황 (재위: 684년 683년 / 6월 26일 ~ 685년 5월 8일)이다.
베네딕토 2세는 로마 출신이며, 전임 교황 레오 2세가 선종한 후에 즉시 새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동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4세 황제의 승인을 받지 못해 684년 6월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로마 교황 기록’ (Liber Diurnus Romanorum Pontificum)에 따르면, 베네딕토 2세는 콘스탄티누스 4세로부터 새로 선출된 교황에 대한 황제의 승인을 완전히 폐지 내지는 황제의 승인을 라벤나 총독에게 이관한다는 칙령을 받아냈다고 한다. 이는 곧 새로 선출된 교황에 대한 인증을 교회와 로마 시민들이 갖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베네딕토 2세는 콘스탄티누스 4세와 좋은 관계를 맺었다. 콘스탄티누스 4세가 베네딕토 2세에게 아들들의 머리카락 한 타래를 보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베네딕토 2세는 상징적인 의미로 콘스탄티누스 4세의 두 아들인 유스티니아누스와 헤라클리우스를 자신의 양자로 입적시켰다.
단의설을 제거하기 위해 그는 히스파니아의 주교들이 678년 소집된 제3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의 결정들을 수용하게 하였으며, 특히 단의설을 주장하여 안티오키아 주교 자리에서 쫓겨난 마카리우스가 단의설에 반대한다는 공의회의 결정을 순응하게 만드는데 고군분투하였다.
한편 베네딕토 2세가 교황으로 즉위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로마에 있는 수많은 성당이 복구된 것으로 여겨진다. 베네딕토 2세는 685년 5월 8일에 선종하였다. 사후 성인으로 시성되었으며, 축일은 5월 8일이다.

56대 로마 교황 요한 2세 / 67대 로마 교황 보니파시오 4세 / 81대 로마 교황 베네딕토 2세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