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4월 1일,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가 박종철 (朴鍾哲, 1964 ~ 1987) 출생
박종철 (朴鍾哲, 1964년 4월 1일 ~ 1987년 1월 14일)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가로,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학생회장이던 그는 제5공화국 말기인 1987년 고문으로 인해 요절했다.
부산 서구 아미동에서 태어났으며 혜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4년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언어학과에 입학해 언어학과 학생회장으로 활동했다. 1986년 노학연대 투쟁에 활동하던 중 1986년 4월 1일 청계피복노조 합법화 요구 시위로 구속되었다가, 1986년 7월 15일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출소했다. 1987년 1월 13일 자정 경 하숙집에서 치안본부 대공분실 소속 수사관 6명에 의해 연행되었다. 대학문화연구회 선배이자 민주화추진위원회 지도위원으로 수배 받고 있던 박종운을 잡기 위해서였다. 박종철은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받다가 14일 숨졌다.

○ 6월 민주항쟁과 박종철 열사
우리 사회 민주화의 결정적 분수령이 되었던 1987년의 6월 민주항쟁. 우리는 지역과 남녀노소를 불문한 전 국민적 참여를 통해 만들어 낸 6월 민주항쟁을 통해 비로소 26년간 지속되어 온 군사독재정권을 끝장내고 대통령 직선제 도입을 포함한 우리 사회 ‘민주화’의 결정적 돌파구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 6월 민주항쟁의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박종철 (당시 23세, 서울대 언어학과 84학번)의 의로운 죽음이었다. ‘박종철군 고문 · 치사사건’으로 알려진 1987년 1월 14일의 이 사건은 당시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으로 수배 중이던 한 선배의 소재를 파악하려던 경찰이 박종철을 불법연행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박종철은 사건이 터지기 며칠 전 위기에 처한 조직 재건을 추진 중이던 선배에게 몇몇 인물과의 연락업무를 부탁받은 상황이었다. 박종철은 ‘약속’과 ‘신의’를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겼다. ‘약속’은 단순히 한 선배와의 사적인 약속이 아니었으며,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 우리 사회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민족민주운동의 대의를 지켜내겠다는 약속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종철 열사는 경찰의 물고문을 비롯한 모진 고문에도 선배의 소재를 밝히기를 거부했으며,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민주의 제단’에 바쳤던 것이다.
이러한 박종철 열사의 의로운 죽음은 끝내 6월 민주항쟁으로 활화산같이 폭발하여 우리 사회 민주화의 초석을 놓게 되었던 것이다. 민주주의의 대의를 위해,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을 위해 ‘선배와의 약속’, ‘신의’를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것, 바로 이것이 ‘박종철 정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 민중의 삶과 하나가 되고자 했던 박종철의 불꽃같은 삶
박종철은 1965년 4월 1일 부산에서 아버지 박정기 씨와 어머니 정차순 여사 사이에서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산토성초등학교, 영남제일중학교, 혜광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는 보통의 공부 잘하는 학생이 걷는 평범하고 모범적인 학생의 길을 걸었다. 하얀 얼굴과 재치있는 언행으로 주위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이런 박종철에게 자극을 준 사건은 1979년 박정희 유신독재정권에 조종을 울린 부마민중항쟁이었다. 열사가 중학교 3학년이던 그해 10월, 부산-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유신독재에 반대하며 들불처럼 일어난 부마항쟁의 열기는 어린 열사에게 막연하게나마 자기가 살아가야 할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도록 만든다. 열사의 형인 박종부도 박종철이 자신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서강대 운동권이었던 형의 의연한 모습이나 형이 보던 서적은 박종철이 이후 대학교에 진학해서 학생운동에 참여하도록 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박종철은 재수를 하여 1984년 서울대 언어학과에 입학한다. 박종철이 입학한 그 해는 당시 학생운동을 이완시키고자 전두환 군사정권이 기만적으로 추진한 ‘학원자율화조치’로 제한적이나마 열린 공간이 형성된 시기였다. 박종철은 치열한 고민과정을 거쳐 ‘대학문화연구회’라는 비공개써클에 가입하였고, 체계적인 학습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면서 민중지향적인 학생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2학년 때는 과 대표를 맡았으며, 3학년에 올라가서는 과 학생회장을 맡아 언어학과와 인문대 학생자치활동에도 앞장서면서 학생운동의 선봉에 선다. 공장활동, 농촌활동 등을 통해 노동자-농민 등 민중들의 삶을 체화하고자 노력하였으며, 전두환 군사정권의 폭압에 직접 저항하는 가두투쟁, 민중들의 생존권 투쟁에 연대하는 민중연대투쟁 등에도 앞장선다. 그 결과 도시빈민들을 거리로 내모는 강제철거에 반대하는 사당동 가두시위로 구류 5일 (1985. 5), 한국전쟁이후 최초의 노동자 정치파업이었던 구로동맹파업을 지원하기 위한 연대투쟁인 가리봉동 가두시위로 구류 3일 (1985. 6)을 살기도 했으며, 전태일 열사의 혼이 담겨있는 청계피복노조 합법성쟁취대회와 그 시위에 참가했다가 구속 (1986. 4)되기에 이른다. 박종철은 이런 시련을 겪으면서도 조금도 위축됨이 없이 자신을 추스렸으며, 그해 7월 감옥에서 나온 이후에도 민중지향성을 끊임없이 추구하면서 전두환 군사정권의 주구에 불과했던 폭력살인 경찰에 의해 죽임을 당할 때까지 동료들과 함께 학생운동에 헌신한다.

– ‘박종철 정신’을 실천하는 사람들; 아버지 박정기, 형 박종부, 그리고 (사)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박종철의 의로운 죽음은 온 국민의 분노를 자아냈고, 군사정권의 폭압에 숨죽이고 있던 민중들의 가슴 속에 숨기고 있던 ‘민주주의를 반드시 쟁취하고야 말겠다는 열망과 의지’에 불을 지피게 된다. 여기에 전두환의 ‘4·13호헌조치’, 5월 18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박종철군고문 · 치사 · 은폐 · 조작사건’의 진상에 대한 폭로는 급속도로 타 들어가는 도화선이 되어 마침내 6월 민주항쟁으로 폭발하게 되었던 것이다.
두려움에 떨던 전두환 군사정권은 기만적인 ‘6·29선언’을 통해 위기를 회피해나가고자 한다. 이러한 전두환 군사정권의 시도는 민주세력의 분열과 맞물리면서 일단 성공하여 그해 12월에 치러진 대선에서 전두환의 동료였던 노태우의 당선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6월 민주항쟁은 전두환 군사정권을 즉시 몰아내고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결정적 승리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 더 이상 폭압적인 군사정권이 지속될 수 없도록 하는 ‘우리 사회 민주화의 결정적 분수령’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박종철은 비록 전두환 군사정권의 고문 앞에 쓰러져 갔지만, 온 국민의 마음 속에 깊이 자리잡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박종철의 의로운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는데, 부산의 평범한 공무원이었던 아버지 박정기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 박정기는 이후 서울로 거처를 옮겨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에 적극 참여하면서 ‘박종철 정신’을 앞장서서 실천하였다. 아버지 박정기가 연로하게 되자 이제는 형 박종부가 유가협의 청년회장을 맡아 ‘박종철 정신’을 실천해오고 있다. 친구와 지인들을 중심으로 해서는 (사)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를 매개로 ‘박종철 인권상’ 제정과 시상, ‘박종철 인권 장학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박종철 정신’을 실천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박종철 정신’은 24년이 지난 오늘에도 살아 숨 쉬고 있다.

○ 추모시
우리는 결코 너를 빼앗길 수 없다
오늘 우리는 뜨거운 눈물을 삼키며 솟아 오르는 분노의 주먹을 쥔다.
차가운 날 한 뼘 무덤조차 없이 언 강 눈바람 속으로 날려진 너의 죽음을 마주하고
죽지 않고 살아남아 우리 곁에 맴돌 빼앗긴 형제의 넋을 앞에 하고
우리는 입술을 깨문다.
누가 너를 앗아갔는가! 감히 누가 너를 죽였는가!
눈물조차 흘릴 수 없는 우리.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다. 너는 밟힌 자가 될 수 없음을. 끝까지 살아남아 목청 터지도록 해방을 외칠, 그리하여 이 땅의 사슬을 끊고 앞서 나아갈 너는 결코 묶인 몸이 될 수 없음을.
너를 삼킨 자들이 아직도 그 구역질 나는 삶을 영위해가고 있는 이 땅, 이 반도에 지금도 생생하게, 생생하게 살아있는 너, 철아!
살아서 보지 못한 것 살아서 얻지 못한 것 인간, 자유, 해방 죽어서 꿈꾸어 기다릴 너를 생각하며 찢어진 가슴으로 네게 약속한다.
거짓으로 점철된 이 땅 너의 죽음마저 거짓으로 묻히게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말하리라. 빼앗긴 너를 으스러지게 껴안으며 일어서서 말하리라.
오늘의 분노, 오늘의 증오를 모아 이 땅의 착취, 끝날 줄 모르는 억압, 숨쉬는 것조차 틀어막는 모순덩어리들 그 모든 찌꺼기들을 이제는 끝내주리라. 이제는 끝장내리라.
철아! 결코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우리의 동지여. 마침내 그 날, 우리 모두가 해방춤을 추게 될 그 날, 척박한 이 땅, 마른 줄기에서 피어나는 눈물뿐인 이 나라의 꽃이 되어라. 그리하여 무진벌에서, 북만주에서, 그리고 무등산에서 배어난 너의 목소리를 듣는 우리는 그 날, 비로소 그 날에야 뜨거운 눈물을 네게 보내주리라.




참고 = 위키백과, (사)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