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6일, 청년의 날: 남아프리카 공화국
6월 16일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청년의 날’이다.
1976년 6월 16일, 남아프리카 공화국 학생들이 대규모 시위를 일으켰다. 이는 학교 수업의 절반을 아프리칸스어(Afrikaans)로 진행해야 한다는 정부 방침 때문이었다.
아프리칸스어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나미비아에서 주로 쓰이는 언어로서, 네덜란드 출신 이주자의 후손이 써오던 네덜란드어가 독자적이 변화를 거치면서 성립된 언어이다.
당시 남아프리카에서는 아프리칸스어가 아파르트 헤이트를 강화한 정부의 언어로 인식되고 있었기 때문에 반발이 컸다.
소웨트 올란도 웨스트 초등학교 학생들이 처음으로 등교를 거부하였고, 다른 지역까지도 등교 거부 및 시위가 확산되었다.
학생들을 비롯한 시민들의 시위를 경찰이 강경 진압하면서 150여명이 사망했고, 다수는 어린 학생이었다. 이 항쟁을 계기로 많은 흑인 시민이 인종차별의 현실을 인식하고 투쟁에 눈뜨기 시작했으며 일부 백인 시민도 정부 지지를 철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웨토 항쟁 (Soweto uprising)이 일어난 6월 16일은 오늘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청년의 날로 기념되고 있다.
○ 개관
1976년, 6월 16일 수요일 아침, 모든 과목을 아프리칸즈(남아공 보어인의 언어)로 가르치겠다는 교육부의 개정안에 대한 반발로 소웨토의 초,중,고교 학생들이 올란도 웨스트(Orlando West)에 모여 평화로운 시위를 하고 있었다.
“아프리칸즈 집어쳐라 (Down with Afrikaans)”, “반투 교육 꺼져라 (To Hell with Bantu Education)” 등의 피켓을 들고 소풍이라도 온 듯 웃고 떠들며 행진하던 어린 학생들에게 발포가 시작된 것은 오전 9시, 총탄에 맞아 쓰러진 13살 헥터의 시신을 누이 앙또아넷 (Antoinette)과 18살 음뷰사 (Mbuyisa Makhuba)가 울부짖으며 들고 가는 모습이 사진기자 샘 (Sam Nzima)의 카메라에 포착되었고, 남아프리카 민중의 쌓이고 쌓인 울분과 설움은 이 한 장의 사진으로 폭발하여 18년간 지속된 가열찬 투쟁과 94년 민주 쟁취의 대장정을 이끌어낸 뜨거운 도화선이 된다.
‘소웨토 봉기’는 일주일 사이 176명의 학생 사망자를 내며 이후 15개월 동안 남아프리카 전역 200여개 타운과 도시로 들불처럼 번져갔다.
1976년 ‘소웨토 봉기’는 남아프리카 민중으로 하여금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한 것이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