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11월 2일, 이탈리아의 영화감독•시인•평론가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 파솔리니 (Pier Paolo Pasolini, 1922 ~ 1975) 별세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Pier Paolo Pasolini, 1922년 3월 5일 ~ 1975년 11월 2일)는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시인, 평론가이었다.
그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 파시즘에 비판적이었는데 권력과 종교의 결탁과 끔찍한 살육을 사디즘으로 그린 영화 《살로 소돔의 120일》이라는 작품을 완성한 후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Pier Paolo Pasolini)
.출생: 1922년 3월 5일, 이탈리아 왕국 볼로냐
.사망: 1975년 11월 2일(53세), 이탈리아 로마 오스티아
.묘지: Casarsa della Delizia Casarsa Cemetery
.직업: 영화 감독, 소설가, 시인, 저널리스트
.국적: 이탈리아
.활동: 1954 ~ 1975년
.수상: 황금곰상, 칸 영화제 그랑프리, 칸 영화제 각본상, Grand Jury Prize 등
.영향을 준 인물: 안토니오 그람시, 도나시앵 알퐁스 프랑수아 드 사드, 조반니 보카치오 등
.영향을 받은 사람: 실비아 플래스, 로베르토 사비아노, 미하엘 하네케, 세르게이 파라자노프 등
이탈리아의 영화감독으로 이탈리아에서는 그의 이름을 줄여 PPP로 쓰기도 한다.
3대 영화제 모두에서 본상을 받은 만큼 세계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감독이지만 시인, 소설가, 극작가로도 활동하여 높은 평가를 받았다.
“내게 있어 진정한 우상은 리얼리티다.”
○ 생애 및 활동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Pier Paolo Pasolini, 1922 ~ 1975)는 1922년 3월 5일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태어났다.
볼로냐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대학교까지 졸업한 후 어머니의 땅이기도 한 프리울리 지방 농민들에 대한 애정을 담은 첫 시집 『카사르사의 노래』를 발표해 젊은 나이에 이탈리아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하지만 자신의 동성애 성향이 알려져 공산당에서 축출되고 쫓겨나듯이 로마로 이주했다.
파솔리니는 로마 변두리에 사는 좀도둑, 동성애자, 살인자 등에게 강한 동질감을 느끼고 그것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사회 비판적으로 로마 변두리 문화를 탐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소설 『거리의 아이들』과 『폭력적인 삶』을 발표했다. 이 소설들은 과격한 표현과 적나라한 성 묘사로 당시 이탈리아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이 때문에 파솔리니는 음란죄로 기소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폭력적인 삶』을 통해 파솔리니는 소설가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했고,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눈에 띄어 「카리비아 밤」 등의 시나리오를 쓰게 되었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당시 사회의 허상을 파헤친 시와 소설을 발표해 네오레알리스모 문학의 기수가 되었다.
꾸준히 시나리오 작업을 해 오던 파솔리니는 1961년 「아카토네」를 통해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는 영화를 통해 파시즘과 부르주아를 향해 투쟁을 벌였으며, 평생 시와 영화, 현실의 결합을 꿈꿨다. 그는 신화를 재해석하고 지배 체제에 저항하려는 에너지를 영화에 담았다.
「데카메론」이 1971년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을, 「캔터베리 이야기」가 1972년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천일야화」가 1984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마지막 작품인 「살로, 소돔의 120일」을 완성한 직후인 1975년 11월 오스티아 인근에서 살해당했으나 자세한 경위는 밝혀지지 않았다.
– 활동
볼로냐 대학에서 공부한 다음 1941년경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1942년 소개령에 따라 북부의 마을인 카잘사에 이주하여 본격적으로 문학활동으로 들어갔다.
1949년 어머니와 함께 로마에 나와 그 후의 폭넓은 활약(시인, 작가, 각본가, 영화감독, 평론가, 비평가, 사상가, 극작가, 화가)이 시작되었다.
도회의 최하층 노동자에 공감을 가지고 그의 문학은 하층 인간의 빈곤, 고독, 상처받은 감정 등을 주로 테마로 삼았다. 로마에서는 빈민굴에 출입하면서 빈민들의 생활 중에 직접 경헙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1955년 이 시기의 경험에 근거한 소설 《생명의 젊은이》들을 발표하여 콜롬비이 퀴돗티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책이 발행금지 되자 그는 전투적인 자세의 시집, 소설 들을 차례로 발표하였다.
그 후에는 오로지 영화에만 몰두하여 이탈리아 영화의 ‘항의자 집단’의 리더로 활약한다.
1954년 〈강의 여자〉의 각본에 참가. 그 후 〈카비리아의 밤〉, 〈광란의 밤〉, 〈더럽혀지지 않은 포옹〉, 〈잔혹한 밤〉, 〈장식창의 여자〉등의 각본에 참가하였다.
1961년 〈아카토네〉를 스스로 연출, 감독함으로써 이름을 알렸다. 이미 이 처녀작부터 그 특이한 재능은 주목 받았는데 이어서 〈맘마 로마〉, 〈마태복음〉 등을 발표하였다. 기성의 체제, 종교에 통렬한 비판을 하였다.
특히 그의 유작이 된 <살로 소돔의 120일>은 부패한 종교와 권력이 결탁하면 어떻게 인간을 파괴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영화다. 이 영화의 개봉으로 바티칸 교황청은 크게 분노했다.
그는 1975년 로마 옆의 항구도시 오스티아에서 살로 소돔의 120일에 출연했던 17세 소년 피노 펠로시와 함께 바닷가를 산책하던 중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다.
피노 펠로시는 파솔리니가 자신을 유혹했기 때문에 죽였다고 주장하였고 결국 법원은 단독살해로 결론지었으나 정치적 타살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이 때문에 파졸리니의 죽음을 소재로 <누가 파졸리니를 죽였나> (감독 마르코 툴리오 지오르다나)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도 만들어졌다.
– 사상
그의 작품에서 그는 이탈리아 사회의 부정의 더 나아가 세계 전체의 파시스트적 구조 내지 기제 권위주의적 체제 등 모순을 지적하였고 인간 사이의 관계에 관하여 성찰하였다.
그의 성격은 사회적으로 아웃사이더라 할 수 있고 반항적이었다. 배우들은 일반인을 쓴 경우가 많다.
평론가로서도 그가 1960년대와 1970년대 이탈리아 사회에서 관찰하였던 사회 구조의 붕괴 현상을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이러한 붕괴현상의 주요 특징은 사회 진보의 기초로서의 민중 문화의 사라짐과 그로부터 기인하는 인간 간의 공존의 가치나 내용의 소멸 등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과정의 원인과 주동력은 바로 파시즘 (이전의 파시즘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를 지니는)이라는 것이 그의 진단이었다.
이 파시즘은 개인들에 있어서도 내면화되어 다름을 특히 문화적 차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새 파시즘의 형태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발전모델에 대한 순응적인 Omologation이며 따라야 할 유일한 인간형으로 소시민이 등장한다. 이 파시즘은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현상이다. 프랑스 5월 혁명 이후에 등장한 68 세대도 예외가 되지 못한다.
– 영화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혁명가이자 영화감독인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는 현대영화의 기린아이다. 폭력에 대한 과격한 묘사와 파시즘과 반파시즘의 기묘한 줄다리기는 그를 언제나 논쟁의 중심에 세웠으며, 그 스스로도 논쟁가이자 영화이론가이기도 했다.
1942년에 첫 시집인 <카사르사의 노래 : Poesie a Casarsa> (1942)를 시작으로 이탈리아 문화의 중심이 된 파졸리니는 파시스트 장교인 아버지와 농민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 기묘한 운명은 그를 극단적인 세계관에 몰입토록 한다. 그의 첫 시집인 <카사르사의 노래>는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파졸리니 영화와 달리 프리울리 농부들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자 목가였다. 그러나 농부들의 대지주에 대한 반란과 스스로 동성애자 혐의로 당조직에서 추방되면서 비운의 삶이 시작된다. 로마로 옮겨간 파졸리니는 생계를 위한 활동과 자신의 정치적 강령을 고수하면서 투쟁의 삶을 시작한 것이다. 1961년에 만든 데뷔작 <걸인 Accattone>은 자신의 소설을 기초로 하여 계급적인 입장을 드러낸다. 이때부터 부르주아에 대한 혐오와 공격을 시작하여 <마마로마 : Mamma Roma> (1962), <백색 치즈 : La Ricotta> (1963), <마태복음 : Il Vangelo Secondo Matteo> (1965), <매와 참새 : Uccel-lacci e Uccellini> (1966), <오이디푸스 왕 : Edipo Re> (1967) 등을 만든다.
이들은 크게 두가지 계열로 해석되는데, 하나는 신화적인 세계를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해석하는 것이다. 데이비드 보드웰은 <세계 영화사>에서 파졸리니를 ‘우화’를 통한 정치적 강령을 내세우는 감독으로 묘사하였는데 이러한 작품들이 여기에 속한다. <마태복음>, <오이디푸스 왕>, <메데아 Medea> (1970), <살로 소돔의 120일 : Salo le 120 Giornate di Sodoma>(1975) 등이다. 가령 <살로 소돔의 120일>의 경우 파시스트들이 벌이는 최후의 만찬은 가학과 자학이 한데 뒤섞여 혼돈스러운 파시스트의 축제를 발한다. 이 영화 완성 직후 파졸리니는 동성애 상대자인 17살의 청년에게 살해당했다고 전해지는데, 영화만큼이나 충격적인 삶을 살았던 파졸리니의 최후는 너무나 운명적이다.
그리고 다른 대부분의 작품들은 일상의 폭력과 현실의 겹침 속에서 조소하며 살아가는 인물들을 그린다. 그는 항상 지배체제에서 일탈하려는 욕망을 보여준다. 반사회적인 것, 반문명적인 것, 비도덕적인 것에 대한 강렬한 동경을 보여주는 파졸리니는 사회의 위선을 드러내는 데 앞장선다. 그의 영화의 현실감은 주로 의상과 인물들의 알맞은 선택에 의해 드러난다. 그는 결코 스튜디오 촬영을 하지 않았으며 일부러 세트를 만들지도 않았다. 그는 영화 속의 모든 상황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일부러 그와 유사한 것들을 찾았다. 배역도 마찬가지. 극중인물과 실제로 동일한 출신 배경을 지닌 인물들을 골라냈다. 비록 연기력은 뒤처졌을지 몰라도 이들이 몰입하였을 때 보여주는 리얼리티는 기존의 드라마에 비할 것이 아니었다.
또한 미술적인 재능도 그의 영화에 큰 영감을 불어넣었다. 그의 영화가 상당 부분 신화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데 이러한 분위기를 한층 돋우기 위하여 색채 사용에 항상 신중했다. 혹자는 그의 평면적인 영화 공간을 중세 회화의 시각적인 특성과 연결하여 설명하기도 한다. “나의 모든 영화의 중심은 신성함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신성함이 일상 생활 속에서 실존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삶의 궁극적인 실재는 신성함이며 자본주의 사회의 억압에도 불구하고 이는 반드시 표출된다.” 파졸리니와 연대하였던 혹은 그를 따르는 많은 이들은 파졸리니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설명하기에 그의 죽음은 느닷없었고, 파시즘을 제압하기 위해 그가 사용하는 표현 방식은 어느새 파시스트의 언어를 닮아 있었다. 그는 <살로 소돔의 120일>을 완성한 순간에 이 사실을 깨달은 것이 아닐까. 때아닌 죽음과 논쟁으로 일관한 그의 영화 세계는 또하나의 신화적 공간으로 우리에게 던져진다. _ 영화감독사전 (1999) 중에서
○ 주요작품
- 각본
1975 살로 소돔의 120일 / Salo O Le 120 Giornate Di Sodoma aka 120 Days of Sodom
1971 데카메론 / The Decameron
1969 돼지 우리 / Porcile
1968 테오레마 (정리)/ Teorema aka Theorem
1966 매와 참새 / Uccellacci e uccellini aka Hawks and Sparrows
1964 마태복음 / The Gospel According to St. Matthew
1963 백색 치즈 / Ro.Go.PaG aka La Ricotta
1962 맘마 로마 / Mamma Roma
라비아모치 일 세르벨로 / Laviamoci il cervello aka RaGoPag
1961 걸인 / Accattone
1957 카비리아의 밤 / Le Notti Di Cabiria aka Nights Of Cabiria
- 감독
1975 살로 소돔의 120일 / Salo O Le 120 Giornate Di Sodoma aka 120 Days of Sodom
1974 아라비안 나이트 / Arabian Nights
1971 캔터베리 이야기 / The Canterbury Tales
데카메론 / The Decameron
1970 메데아 / Medea
1969 돼지 우리 / Porcile
1968 테오레마 / Teorema aka Theorem
1967 다섯 마녀 이야기 / Le Streghe aka The Witches
오이디푸스 왕 / Edipo re aka Oedipus Rex
1966 매와 참새 / Uccellacci e uccellini aka Hawks and Sparrows
1964 마태복음 / The Gospel According to St. Matthew DVD
1963 백색 치즈 / Ro.Go.PaG aka La Ricotta
1962 맘마 로마 / Mamma Roma
라비아모치 일 세르벨로 / Laviamoci il cervello aka RaGoPag
1961 걸인 / Accattone
- 배우
1971 데카메론 / The Decameron
1967 오이디푸스 왕 / Edipo re aka Oedipus Rex
- 제작
1964 마태복음 / The Gospel According to St. Matthew DVD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