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
롤랑 바르트 / 동녘 / 2013.2.23
<사랑의 단상>, <밝은 방>, <애도 일기> 등으로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롤랑 바르트의 자전 에세이. 신비평의 기수, 기호학자, 문학평론가 등으로 불리며 프랑스의 대표적인 사상가로 자리매김한 바르트는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중에서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는 그가 사망하기 5년 전인 1975년에 출간된 책으로 바르트가 자신에 대해 쓴 단상들의 모음이다.
글쓰기, 문체, 복수주의, 분쟁 등과 같은 바르트가 애정을 갖고 있던 개념들이 무정형적으로 배열된 이 책에는 그의 어린 시절의 사진을 비롯해 직접 쓰고 그린 메모들도 함께 담겨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독특한 구성을 취한다. 사료 중심, 순차적인 시간 구성을 취하는 기존의 자서전 형식에서 벗어나 200여 개의 단장들을 나열한다.
또한 바르트를 ‘나’, ‘그’, ‘자기 자신’, ‘당신’ 등으로 다양하게 호명하며 자신을 다각도에서 조명한다. 그러니 이 책의 제목에 쓰인 두 번의 롤랑 바르트는 서로 다른 의미의 바르트를 지칭하는 셈이다. 기호학 이론을 그 어느 책보다 유희적으로 실천했다고 평가받는 이 책은 바르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
○ 목차
능동적, 반응적/ 형용사 / 안락 / 유추의 악마/ 흑판에서/ 돈/ 아르고 선 船/ 오만/ 점치는 승려의 제스처/ 선택이 아니라 동감/ 진리와 단정/ 아토피아/ 자기순환 표현/ 산책차/ 술래잡기 놀이를 할 때…/ 고유명사/ 우매함에 대해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관념에 대한 사랑/ 부르주아 계급의 소녀/ 아마추어/ R.B.에 대한 브레히트의 비난/ 이론에 대한 공갈/ 채플린/ 영화의 충만성/ 결구 結句/ 우발적 일치/ 비교는 이성이다/ 진실과 고형성/ 무엇의 동시대인인가?/ 계약에 대한 모호한 찬사/ 시의 時宜에 반하는 것/ 내 육체는 다만 …으로만 존재한다/ 복수 復數의 육체/ 늑골 조각/ 이마고의 미친 듯한 궤적/ 어휘의 가치 체계를 이루는 쌍/ 이중의 날것/ 분해하다, 파괴하다/ 여신 H./ 친구들/ 특권적 관계/ 위반에 대한 위반/ 제2도와 나머지들/ 언어활동의 진리로서의 데노따시옹/ 그의 목소리 / 특이한 변증법들/ 복수, 차이, 분쟁/ 분할에 대한 기호/ 피아노에서의 운지법…/ 나쁜 객체/ 독사, 파라독사/ 부기 浮氣/ 양의어법 兩義語法/ 비스듬히/ 공명실/ 글쓰기는 문체로부터 시작한다/ 유토피아는 어디에 쓰일까/ 환상으로서의 작가/ 새로운 주체, 새로운 과학/ 당신인가, 엘리즈여……/ 생략법/ 문장 紋章, 개그/ 발신자들의 사회/ 시간의 사용/ 사적인 것/ 사실…/ 에로스와 연극/ 미학적 담론/ 인종학의 유혹어원/ 폭력, 자명한 이치, 자연/ 제외작용/ 셀린과 플로라/ 의미의 면제/ 꿈이 아니라 환상/ 천박한 환상/ 소극 笑劇으로서의 회귀/ 피로와 신선함/ 허구/ 이중의 문채 文彩/ 사랑, 광기/ 단조법 鍛造法들/ 푸리에 혹은 플로베르?/ 단장 短章들의 원/ 착각으로서의 단장/ 단장에서 일기로/ 딸기주/ 프랑스인/ 틀리게 친 것/ 의미의 떨림/ 질주하는 귀납/ 왼손잡이/ 관념의 제스처들/ 심연/ 숫자 계산에 대한 취미/ 그리고 내가 만약 읽어보지 않았더라면…/ 이형학 異型學과 폭력/ 고독의 상상계/ 위선?/ 즐김으로서의 관념/ 알려지지 않은 관념/ 문장/ 이데올로기와 미학/ 상상계 또는 상상물/ 댄디/ 영향이란 무엇인가?/ 섬세한 도구/ 휴식: 상기기술 想起記述/ 어리석은?/ 글쓰기의 기계/ 단식하여/ 질랄리의 편지/ 즐김으로서의 패러독스/ 환희의 담론/ 충족/ 말의 노동/ 언어활동의 두려움/ 모국어/ 불순한 어휘계/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 / 구조와 자유/ 용인 가능한 것/ 읽을 수 있는, 쓸 수 있는, 그리고 그것을 넘어/ 마테시스로서의 문학/ 자아의 책/ 요설/ 명증성/ 결혼/ 어린 시절의 추억/ 이른 아침에/ 메두사/ 아부 노바스와 은유/ 언어학적 알레고리들/ 편두통/ 유행에 뒤늦은 것/ 위대한 단어들의 유연함/ 무용수의 장딴지/ 정치적, 도덕적/ 모드로서의 단어/ 가치로서의 단어/ 색깔로서의 단어/ ‘마나’로서의 단어/ 과도적인 단어/ 평균적인 단어/ 자연적인 것/ 신품의/신규의/ 중성/ 능동적, 수동적/ 조절작용/ 누멘/ 담론 속에 대상을 통과시키기/ 냄새들/ 글쓰기에서 작품으로/ “그것을 알고 있다”/ 불투명함과 투명함/ 대비법/ 기원들의 이반/ 가치의 요동/ 파라독사/ 편집증의 미약한 동력/ 말하다, 포옹하다/ 통과하는 신체들
유희, 파스티슈/ 패치워크/ 색채/ 분할된 인격?/ 분량사/ 바타유, 공포/ 단계들/ 문장의 고마운 효과/ 정치적 텍스트
알파벳/ 내가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는 순서/ 폴리그래피로서의 작품/ 사제 司祭로서의 언어/ 예측 가능한 담론/ 작품 구상/ 정신분석학과의 관계/ 정신분석학과 심리학/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떤 추론?/ 퇴행/ 구조적 반사/ 통치와 승리/ 가치들 통치의 무효화/ 무엇이 표상을 제한하는가?/ 반향/ 성공한, 실패한/ 의상의 선택에 대하여 / 리듬/ 그것이 알고 싶다/ 살라망크와 발라돌리드 사이/ 학교용 연습 문제/ 지식과 글쓰기/ 가치와 지식/ [부부싸움의] 장면/ 극화 劇化된 과학/ 나는 언어를 본다/ 세드 콘트라/ 오징어와 그 먹물/ 성욕에 관한 책의 계획/ 섹시한 것/ 성욕의 행복한 최후?/ 유토피아로서의 쉬프터/ 의미작용 속의 세 가지/ 단순주의 철학/ 원숭이들 중의 원숭이 / 사회적 분할/ 나와 나/ 나쁜 정치적 주체/ 다원적 결정 / 자기 자신의 언어에 대한 난청/ 국가의 상징계/ 징후적 텍스트/ 체계, 체계성/ 전술, 전략/ 더 나중에/ 텔 켈/ 오늘의 날씨/ 약속의 땅/ 내 머리가 혼란스러워지다/ 연극성/ 테마/ 가치로부터 이론으로의 변환/ 금언/ 전체성의 괴물
주/ 롤랑 바르트 연보/ 롤랑 바르트의 저작물/ 찾아보기/ 본문에 쓰인 도판 설명/ 옮긴이의 말
○ 저자소개 : 롤랑 바르트
프랑스의 기호학자, 문학이론가, 문학평론가, 작가.
프랑스 노르망디 셰르부르에서 태어났으며, 1935~1939년까지 소르본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전공했다. 1952년 파리 국립과학연구센터 CNRS의 연구원이 되었고, 1953년 언어 구조의 자의성을 고찰한 『글쓰기의 영도 Le Degrézéro de l’criture』를 출간했다. 1957년에는 부르주아 문화의 상징을 고찰한 『신화론 Mythologies』을 출간했으며, 1962년에는 프랑스 고등연구원 École pratique des hautes études의 연구 책임자가 되었다. 1960년대 『기호학 요강 Éléments de sémiologie』(1965), 『유행의 체계 Système de la mode』(1967) 등을 출간하며 기호학과 구조주의에 전념했다. 그러나 그는 곧 『S/Z』(1970), 『기호의 제국 L’mpire des signes』(1970), 『텍스트의 즐거움 Le Plaisir du texte』(1973) 등을 출간하며 구조주의를 폐기했다. 1976년에는 콜레주 드 프랑스 Collège de France의 문학기호학 교수로 초빙되었다.
그의 글은 종종 문체가 까다롭기도 하지만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가장 많이 알려진 저서로는 『기호학 요강』, 『S/Z』를 비롯하여 『라신에 관하여 Sur Racine』(1963)를 꼽지만, 이 책들이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을 거둔 것은 그의 반자서전적 작품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 par Roland Barthes』(1975)와 『사랑의 단상 Fragments d’n discours amoureux』(1977)이 출간된 후였다. 1980년 교통사고로 사망했으며, 사후 출간된 『작은 사건들 Incidents』(1987)에서 동성애에 대한 고백을 발견할 수 있다.
– 역자 : 이상빈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홀로코스트에 관련된 미학적 접근을 주제로 프랑스 파리 제8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한국판) 편집위원과 번역위원장, 송석문화재단 부설 문래 컬처팩토리 공장장, 제1회 월드뮤직 필름 페스티벌 기획위원장, 2016년 세계문자심포지아 학술단장, 한국외국어대 불어과 대우교수,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인문 교수, 한국 동서비교문학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대표 저·역서로는 《아우슈비츠 이후 예술은 어디로 가야하는가》,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 《나폴레옹의 학자들》 ,《르몽드 20세기사》 ,《NO! : 인류 역사를 진전시킨 신념과 용기의 외침》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P.63
나는 한 곳은 파리에, 다른 한 곳은 시골에 작업장을 갖고 있다. 그 두 공간 사이에는 아무런 공통 물품이 없는데, 무엇 하나도 이리저리 운반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장소들은 동일성을 갖고 있다. 왜 그럴까? 종이, 펜, 책상, 추시계, 재떨이의 배치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즉, 동일성을 구성하는 것은 공간의 구조다. 이런 사적인 현상을 보기만 해도 구조주의가 무엇인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체계가 사물들의 존재보다 중요하다. <아르고 선>
P.69
말의 힘과 관련된 큰 승부에서도, 우리는 술래잡기 놀이를 하고 있다. 하나의 언어는 다른 언어에 대해 잠정적으로만 우세할 뿐이다. 제3의 언어가 대열에 나타나는 것만으로도 침입자는 즉시 퇴각하지 않을 수 없다. 수사법의 전투에서는 ‘제3의 언어’를 제외하고는 어떤 언어에게도 승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제3의 언어의 임무는 포로를 풀어주는 것, 즉 시니피에, 교리 문답을 흩뜨리는 것이다. 술래잡기에서처럼 ‘언어활동에 대한 언어활동’에는 한계가 없다.<술래잡기 놀이를 할 때…>
P.74~75
그는 기꺼이 정치적 주체가 되기를 원하지만, 정치적 ‘이야기꾼’은 사절한다 (‘이야기꾼’은 자신의 담론을 거침없이 반복해 설명하고, 동시에 그것이 그의 담론임을 통고하고, 거기서 서명해 두는 사람이다). 그리고 일반적이고 ‘반복된’ 담론으로부터 정치 현실을 분리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그는 정치로부터 배제된다. 하지만 이런 배제로부터 그는 적어도 자신이 쓰는 글에 대한 ‘정치적’ 의미를 만들 수 있게 된다.
P.82
그 자신은 때때로 자신을 번역하며, 한 문장에 다른 문장 (예를 들면, “그러나 만약 내가 그 요구를 좋아한다면?”, “내가 어떤 모성애적인 욕구를 갖고 있다면?”)을 붙여서 이중화한다. 이는 마치 자신을 요약하고 싶다고 바라면서도 어느 것이 제일 좋은 것인지도 모른 채 헤쳐 나가지 못하고, 요약에 요약을 덧붙이는 것과 같다. <비교는 이성이다>
P.96
나는 글을 쓴다: 이것이 언어활동의 제1도이다. 그리고 ‘내가 글을 쓴다’고 쓴다. 이것은 제2도이다. 우리는 오늘날 제2도를 엄청나게 소비하고 있다. 우리들의 지적 노동 가운데 꽤 많은 부분은 모든 언표가 몇 번에 걸쳐서 구성하고 있는 단계성을 명확하게 하고, 그 언표에 혐의를 두는 데 소비되고 있다. 이러한 단계성은 끝이 없다. <제2도와 나머지들>
P.188
이것은 ‘고백’의 책이 아니다. 이 책이 불성실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이 오늘 소유하고 있는 지식이 어제와 다르기 때문이다. 이 지식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내가 나라는 자아에 대하여 글 쓰고 있는 것은 결코 그 자아에 대한 ‘최후의 응답’이 아니다. 내가 ‘성실’하면 할수록 나는 그만큼 더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갖는다. <명증성>
P.249~250
그는 부부싸움의 장면에서 폭력의 순수한 경험을 늘 목격했다. 그는 자기 부모의 말다툼에 겁먹는 아이와 같이 어딘가에서 싸우는 소리만 들려도 그 장면에 늘 ‘공포’를 느낄 정도였다 (언제나 그는 파렴치하게도 도망치고 만다). 싸움의 장면이 그 정도로 강한 반향을 일으키는 것은 그것이 언어활동의 암을 적나라하게 노출시키기 때문이다. 언어활동은 언어활동을 닫는 데 무기력하다고 싸움 장면이 가르쳐주고 있다. 말대꾸는 살인이라는 결론 이외에는 다른 가능한 결론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부부싸움의〕장면>
○ 출판사 서평
- 세계, 언어, 그리고 자기 자신을 치밀하게 탐색한 바르트 문학의 정수! “나는 하나의 텍스트를 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롤랑 바르트라고 부른다.”
《사랑의 단상》, 《밝은 방》, 《애도 일기》 등으로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롤랑 바르트의 자전 에세이가 출간됐다. 신비평의 기수, 기호학자, 문학평론가 등으로 불리며 프랑스의 대표적인 사상가로 자리매김한 바르트는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중에서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는 그가 사망하기 5년 전인 1975년에 출간된 책으로 바르트가 자신에 대해 쓴 단상들의 모음이다. 글쓰기, 문체, 복수주의, 분쟁 등과 같은 바르트가 애정을 갖고 있던 개념들이 무정형적으로 배열된 이 책에는 그의 어린 시절의 사진을 비롯해 직접 쓰고 그린 메모들도 함께 담겨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독특한 구성을 취한다. 사료 중심, 순차적인 시간 구성을 취하는 기존의 자서전 형식에서 벗어나 200여 개의 단장들을 나열한다. 또한 바르트를 ‘나’, ‘그’, ‘자기 자신’, ‘당신’ 등으로 다양하게 호명하며 자신을 다각도에서 조명한다. 그러니 이 책의 제목에 쓰인 두 번의 롤랑 바르트는 서로 다른 의미의 바르트를 지칭하는 셈이다. 기호학 이론을 그 어느 책보다 유희적으로 실천했다고 평가받는 이 책은 바르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
- 단장 短章 형식으로 써 내려간 200여 편의 조각들!
사고의 고착, 의미의 고정성, 중심으로의 회귀를 경계한 언어 실험!
“‘글의 첫머리’ 부분을 발견하거나 글 쓰는 것을 좋아하기에, 그는 그 즐거움을 배가시키려 한다. 그가 단장을 쓰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단장의 수만큼 글의 첫머리들이 있고, 즐거움이 있다.” <단장들의 원> 중
이 책은 바르트가 자신의 가족, 어린 시절에 살던 집과 정원, 작가의 모습 등 60여 장의 사진들을 차례로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역사 속의 자신과 기억 속의 자신을 중첩시키며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모든 이미지에 못 견뎌하며, 명명되는 것에 대해 고통스러워” (<형용사>)했던 그는 자신을 파편화시키고 해체시키려는 욕망을 강하게 드러낸다. “나의 현재는 나의 과거에 대해 지배권을 가질까?” (<명증성>), “영원히 당신을 영상으로밖에 볼 수 없는 자는 바로 뿐이다”와 같은 말들을 서슴지 않고 던지며, 자신의 생애 전반을 탐구한다.
이러한 특징은 바르트가 이 책의 구성방식으로 택한 단장과도 연결된다. 단장은 바르트가 매혹 당했던 니체의 문학에서 빌려온 것인데, 이름 그대로 짧은 글을 뜻한다. 그가 애정을 갖고 있는 200여 개의 단어들로 구성된 단장들은 압축적이고 농밀한 언어로 서술된다. 그러나 각 단장들이 모두 의미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각 글들은 쓰이는 순간 의미 결정, 장르의 고정성을 거부하며 파편적으로 흩어져 버린다. 그러나 이 허약하고 변화무쌍한 공간은 사고의 고착을 지속적으로 경계하기 위해 바르트가 세운 전략이다. 당시 완벽함과 완성도를 높게 치는 문학에 시비를 걸며 자신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서술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배격하려는 하나의 장치인 것이다.
- ‘인간 바르트’와 ‘텍스트로서의 바르트’가 나누는 사랑의 대화! 사진, 음악, 연극부터 기호학, 구조주의까지 담아낸 바르트의 후기 사상의 집약물!
“나에 대해 주석을 단다? 얼마나 권태로운 일인가! 나에게는 지금부터 자신을 ‘다시 한 번 쓴다’-멀리서, 아주 멀리서-는 것 이외에 다른 해결책이 없었다. 책, 테마, 회상, 텍스트들에 또 다른 언표 행위를 추가하는 것.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이 나의 과거에 대해서인지 아니면 현재에 대해서인지 결코 알지 못한 채.” <패치워크> 중
이 책에는 바르트의 개인적인 이력을 비롯해 그가 탐구했던 사상 전반에 대한 글이 많다. 바르트가 젊은 시절부터 앓았던 폐병과 편두통, 어머니와의 각별한 사랑, 동시대 연구자들과의 관계 등과 같은 사적인 영역뿐 아니라 기호학, 구조주의 등과 같이 그가 치밀하게 탐구했던 학문을 다시 보려고 노력한다. 또한 미슐레, 슈만, 니체, 바타유, 프루스트 등 그가 애정을 갖고 있던 작가들에 대한 생각도 엿볼 수 있다. 바르트의 다른 저서에 비해 자신의 내면적인 이야기가 솔직하게 드러나 있기에, 쉽지 않은 독해를 따라 가다보면 그의 사상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다. 또한 그가 제시한 문학과 사회에 대한 담론이 당시 현실과 얼마나 밀접한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 책에는 그가 지속적으로 탐구했던 ‘글쓰기’에 대한 글들이 유독 많이 등장한다. 이 책을 쓸 당시 바르트는 기호학을 정립시키면서 정치적으로 강한 색채를 띄던 《텔 켈》지와의 교류를 끊고 방향 전환을 한다. 글 속에서 직접적인 정치적 메시지를 제거하고 중립적인 글쓰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글쓰기가 세상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진실이라고 믿었던 그는 이 책에서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통해 글쓰기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려고 한다. 자신이 썼던 저서들을 호명해 고정된 의미들을 풀어낸다. 당시 그에게 글쓰기는 “협소한 공간에서 내가 어떻게든 몸의 방향을 바꾸는 ‘유희’” (<글쓰기에서 작품으로>)였던 셈이다. 그렇다면 자신을 텍스트화한 이 모든 과정은 자신에 대한 분해와 파괴로 수렴되는 것일까? 절대 아니다. 바르트는 자신을 탐구 대상으로 삼으면서 고통과 즐거움의 언어유희에 동참했다. 이 책에 곳곳에서 ‘즐김’과 ‘즐거움’이라는 쉽게 단어를 찾을 수 있는 것도 여기서 연유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인간 바르트가 텍스트로서의 바르트가 나누는 사랑의 대화, 영원히 끝날 수 없는 텍스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1997년 강 출판사에서 출간된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이상빈 옮김)를 복간한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