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곡감상
러시아의 작곡가 표트르 차이콥스키 / 차이코프스키 (Pyotr Ilyich Tchaikovsky, 1840 ~ 1893)의 Piano Concerto 1 (B Flat Minor)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Pyotr Ilyich Tchaikovsky, 구력: 1840년 4월 25일 ~ 1893년 10월 25일, 신력: 1840년 5월 7일 ~ 1893년 11월 6일)는 낭만주의 시대의 러시아 제국의 작곡가, 지휘자이다. 백조의 호수와 호두까기 인형, 비창 교향곡의 작곡자이다.
그의 작품은 선율적 영감과 관현악법에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1860년대에는 러시아의 민족주의 음악파인 러시아 5인조의 지도자 밀리 발라키레프와 교제하여 국민악파 음악의 영향을 받았으나 후반에는 낭만주의 경향의 곡을 작곡하였으며 베토벤, 슈베르트의 전통을 러시아로 확산시켰다. 말년에는 유럽 순회 공연을 다녀 성공하기도 했다. 작품 중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잠자는 숲속의 미녀’ 등의 작품으로 고전 발레 음악 중 최고의 작품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1893년 8월 차이콥스키는 교향곡 6번 B단조 작품 74를 완성하고 그해 10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을 지휘했지만 청중들은 야유를 보내거나 호응하지 않았고 그는 실망했다. 그러나 차이콥스키는 망상에 빠져 그릇된 기대를 가졌으며 자신의 작품을 쟁점으로 부각시키려 했다. 차이콥스키는 곧 방송에 출연,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교향곡 6번에 대한 ‘신비한’ 해설과 더불어 그는 이 작품 안에 그의 모든 영혼을 쏟아서 설명하였으나 청중들로부터 외면을 당했다.
1893년 11월 6일 콜레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향년 53세로 사망했다. 그러나 1979년 소련의 문화성에서 부검한 결과 비소 중독이라는 결론이 나와 사인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의 6번째 작품이자 총결산이랄 수 있는 ‘비창’ 교향곡을 자신의 지휘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하고 1주일 후였다. 게다가 교향곡 7번을 동시작곡하다 미완성으로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후 동생인 모데스트의 집으로 시신이 옮겨졌다가 그해 11월 10일 알렉산더 네프스키 수도원묘지에 안장되었다. 그의 장례식에는 인파가 들끓었고, 그가 매장될 때 수도원 묘지에는 8천명의 조문객이 찾아왔었다.
조카 다비도프와 동생 모데스트는 그의 사후 차이콥스키 박물관, 기념사업을 하였으나 다비도프는 모르핀 환자로 자살하게 된다. 그의 죽음은 한동안 콜레라로만 인정되었으나 1980년대부터는 자살설이 대두되기도 하였다.
그의 죽음에 관해서는 콜레라로 인한 사망으로 알려졌으나 사인이 비소 중독으로 나타나면서 그 원인이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의 사후 일반적으로 콜레라가 유행할 때, 시냇물, 혹은 끓이지 않은 물을 마시고 콜레라에 감염되어 죽었다는 설과 그가 동성애로 지탄받게 되고 또한 동성애 대상이 황실의 남자들과 고관들이며 동성애로 비난받게 되자 추문을 피해 음독 자살했다는 설도 있다.
○ 피아노 협주곡 1번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내림 나단조(Op. 23)는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가 1874년부터 1875년의 겨울에 걸쳐서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으로, 애초에는 모스크바 음악원의 감독이었던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을 위해 쓰여졌었다고 알려져 있다.
원래는 루빈스타인이 초연을 하기로 되어있었다. 그러나 1874년 크리스마스에 차이콥스키가 다른 두 명의 음악가 친구들과 함께 그에게 완성된 이 곡을 자신있게 가져갔을 때, 루빈스타인은 이 곡에 대해 혹평을 했다. 즉 이 피아노 협주곡을 “진부하고, 촌스럽고, 부적당하다”며 “연주할 수도 없을 만큼 빈약한” 곡이라고 평했다. 그러고는 차이콥스키에게 그의 바람을 전하면서 대대적인 개작을 주문했다. 하지만 자존심 강했던 차이콥스키는 거기에 응하지 않고, 이 곡을 그의 음악을 존중했던 독일의 피아노 연주자이자 지휘자인 한스 폰 뷜로에게 재헌정했고, 결국 뷜러가 1875년 10월 25일 보스턴에서 이 곡의 초연자가 되었다. 뷜러는 이 곡에 매우 만족하였고, 일주일 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피아노 연주가 구스타프 크로스와 체코인 지휘자인 에듀아르드 나프라프니크에 의해 초연되었다. 3년 후 루빈스타인은 이 곡을 혹평했던 것에 대해 차이콥스키에게 사과하였고, 두 사람의 우정도 회복되었다고 한다.
.1874년 11월부터 1875년 2월에 걸쳐 작곡되었음. (1879년 여름과 1888년 12월에 개정되었음)
.1874년 12월에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해 편곡된 적이 있음. (1888년 12월에 개정됨)
.1874년 12월 25일 미국 보스턴에서 한스 판 뷜로(지휘는 벤자민 존슨 랭)에 의해 초연되었음 (1874년-75년 판)
– 악기 편성
독주 피아노, 플루트2, 오보에2, 클라리넷2, 바순2, 호른4, 트럼펫2, 트롬본3, 팀파니, 현악 5부
– 곡의 구조
이 곡은 전형적인 협주곡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Allegro non troppo e molto maestoso – Allegro con spirito (내림 나 단조 → 내림 나 장조)
.Andantino simplice – Prestissimo (내림 라 장조)
.Allegro con fuoco (내림 나 단조 → 내림 나 장조)
이 협주곡은 비록 피아노 솔로 연주가의 상당한 기량을 요구하고 있지만, 당시 러시아의 다른 보수적이고 특유한 유명 협주곡들과는 상당히 다른 교향곡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이 곡에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와 같은 다른 피아노 작품에서처럼 연주가의 손가락이 건반에서 떠날 필요가 없는 악절이 있는 반면, 일련의 시간 동안에 여러 옥타브에 걸친 연주를 계속 해야 하는 악절도 있다. 첫 번째 악장 도입부의 유명한 주제부는 우크라이나 키예프 근처 카멘카에 있는 시장에서 들었던 맹인 노변 음악가들의 연주에서 기반한 것이다. 그러나 차이콥스키는 이 주제부는 이 곡에서 단 두 번만 들리도록 작곡했다. 이 주제부는 곡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독립적인 느낌이 든다. 그 이유는 이 부분에서, 곡의 전반적인 조인 내림 나 단조를 쓰지 않고 내림 라 장조를 썼기 때문이다.
– 주목할 만한 공연
미국의 피아노 연주자인 반 클라이번은 냉전 기간에 소련의 수도였던 모스크바의 한 가운데에서 열린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하여 첫 우승자가 되면서 세계 곳곳의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소련 모스크바에서 열린 1980년 하계 올림픽 개막식에서 마지막 성화 봉송 구간에서 사용되었다. 또한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2014년 동계 올림픽 폐막식에서도 연주되었다.
러시아에서 일어난 국가 차원의 도핑 스캔들에 따른 세계 반도핑 기구(WADA)의 징계 조치에 따라 러시아라는 국호, 국기, 국가를 사용할 수 없게 된 러시아의 국가대표팀은 2021년부터 2022년 사이에 열린 2020년 하계 올림픽, 2020년 하계 패럴림픽, 2022년 동계 올림픽, 2022년 동계 패럴림픽을 비롯한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선수단을 대표하는 찬가로 사용했다.
○ Tchaikovsky – Piano Concerto 1 (B Flat Minor)
The Piano Concerto No. 1 in B flat minor, Op. 23, was composed by Pyotr Ilyich Tchaikovsky between November 1874 and February 1875.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