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9년 5월 9일, 프랑스의 고전주의 작곡가 클로드 발바스트르 (Claude-Bénigne Balbastre, 1724 ~ 1799) 별세
클로드 발바스트르 (Claude-Bénigne Balbastre, 1724년 12월 8일, 프랑스 디종 ~ 1799년 5월 9일, 프랑스 파리)는 당대 가장 유명한 프랑스의 작곡가 겸 오르가니스트, 하프시코디스트 중 한 명이었다.

– 클로드 발바스트르 (Claude-Bénigne Balbastre)
.출생: 1724년 12월 8일, 프랑스 디종
.사망: 1799년 5월 9일, 프랑스 파리
.직업: 프랑스 작곡가
.장르: 고전주의
.활동기: 18세기
.대표곡: 14 organ concertos, quartet sonatas, two collections of harpsichord pieces (from 1748 and 1759) 등
발바스트르가 파리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을 무렵, 즉 인생에서 큰 행복을 누리고 있던 시기에 작곡한 작품들은 대부분 곡들의 느낌이 밝고 희망적이다.
클로드 발바스트르는 음악 전공자에게도 다분히 생소한 이름일 것이다. 프랑스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이자 연주가로서 한때 시대를 이끌어 나갈 최고의 음악가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기구한 운명으로 예술을 접어야 했고 어느새 역사에서 그의 이름은 희미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가 남긴 작품 일부는 지금까지 살아남아 당시 프랑스 바로크 시대에는 상상하지도 못할 초고층 빌딩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삶의 위로와 활력을 준다.

○ 생애 및 활동
클로드 발바스트르는 1724년 프랑스 디종에서 태어났다. 오르가니스트였던 아버지에게 어렸을 때부터 음악 수업을 받았다. 그의 천재성을 익히 알아본 아버지는 그가 13세 때 클로드 라모에게 음악 지도를 부탁했다고 한다.
클로드 라모는 ‘프랑스 바로크 시대 최고의 음악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장 필립 라모의 동생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그의 탁월한 재능을 알아본 클로드 라모 또한 자신의 형인 장 필립 라모에게 발바스트르를 추천했다.
발바스트르는 당시 세상의 중심이었던 프랑스 파리로 가서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했다. 장 필립 라모 또한 발바스트르와 같은 디종 출신으로 그를 무척 아끼고 지원하며 베르사유 사교계에 그를 소개했다. 발바스트르의 천재적 재능과 감성, 기품의 조화가 일품인 음악 스타일은 곧바로 당시 음악계에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켰다. 그리고 장 필립 라모의 뒤를 이어 프랑스 음악계를 이끌어 나갈 차세대 음악가로 인정을 받게 된다.
발바스트르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냐면 그가 파리 생로슈 성당 오르가니스트로 재직할 당시 주교가 그의 미사 연주를 금할 때도 있었다. 발바스트르가 연주할 때면 그의 연주를 들으러 온 수많은 인파로 성당이 미어터지기 일쑤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후 발바스트르는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음악 교사 그리고 루이 18세의 하프시코디스트로 임명됐다. 그의 커리어는 정점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발바스트르는 오르간과 하프시코드를 위한 작품을 다수 작곡했다. 그의 선배인 장 필립 라모의 창의적인 표현과 프랑수와 쿠프랑의 시적인 표현이 조화를 이루는 곡이었다. 이후 모차르트가 생각나는 듯한 고전 시대적인 표현을 활용하기도 하고 음악 또한 가볍고 달콤하게 표현한다. 이 또한 당시 베르사유를 대표로 하는 상류 사회의 취향이었으리라.
이러한 감성적인 음악으로 당시 음악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할 때쯤 그의 인생에 엄청난 변화가 찾아온다. 1789년 프랑스에는 대혁명이 일어나고 있었다. 모든 도시에는 시민의 봉기가 일어났고 그 분노는 모두 베르사유 궁전에 향해있었다. 시민군에 의해 파리와 베르사유 궁전이 함락되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이후 해외로 도피하지 못한 모든 귀족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는 발바스트르의 삶에도 엄청난 변화를 요구했다. 그가 모시던 귀족들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그들을 위해 작곡, 창작 및 연주가 금지되었다. 그것을 넘어 귀족 사회의 후원으로 음악 활동을 한 그의 목숨도 위태로웠다. 그는 결국 혁명 세력에 동조함으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이후에 그는 사뭇 다른 작품을 작곡한다. 그는 혁명가를 편곡해 오르간으로 연주하며 살아나갔다고 한다. 용맹하고 기상을 북돋는 듯한 그의 혁명가 편곡 작품에서는 그전에 베르사유 궁전을 위해 작곡한 고즈넉하고 섬세한 감성을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다. 같은 사람의 작품일까 생각이 들 정도로 이질적인 느낌이 든다. 물론 그가 혁명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정치의 성향을 떠나서 한 예술가로서 평생 몰두했던 예술의 취향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새로운 음악을 해야만 했던 그의 처지가 어땠을까 생각하면 삶의 아이러니에 마음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그는 1799년 대혁명이 마무리될 때쯤 파리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이후 그의 이름, 작품 등은 한동안 세상에 잊혔다. 프랑소와 쿠프랑이 자신의 말년에 하프시코드 작품에서 그가 평생 쌓고 다듬은 예술의 경지를 표현했듯 발바스트르가 계속 그의 예술 세계에 전념할 수 있었다면 어떠한 아름다움으로 귀결됐을까 하는 생각도 탄식과 함께 들곤 한다. _ 안종도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 연주학 박사, 함부르크 국립음대 기악과 강사)

○ Works
Marche des Marseillois chantée sur diferans theatres, London: W. Holland, 1792.
Balbastre’s best-known compositions include the following:
14 organ concertos (all lost but one)
quartet sonatas
two collections of harpsichord pieces (from 1748 and 1759)
four noëls variés suites for the organ or fortepiano (1770).
variations on La Marseillaise: Marche des Marseillois et l’Air Ça-ira Arrangés pour le Forte Piano / Par le Citoyen C. Balbastre / Aux braves défenseurs de la République française l’an 1792 1er de la République
- Media
Jean-Luc Perrot play the Romance from l’Art du facteur d’orgues, Dom Bedos de Celles on the organ François-Henri Clicquot, Souvigny
Joseph est bien marié (4:45), from Pièce pour orgue pour le temps de Noël
- Records
Balbastre: Premier Livre de Pieces de Clavecin (1759) – Jean-Patrice Brosse, clavecin Kroll 1774 (label: Pierre Verany) [1999]
Balbastre: Pièces de clavecin, Premier Livre – Ursula Dütschler
Balbastre: Pièces de clavecin (1759) – Sophie YATES, clavecin Andrew Garlick 1996, d’après Goujon 1748 (label: Chandos) [2011]
Balbastre: Pièces de clavecin (1759) – Korneel BERNOLET, clavecin Augusto Bonza 2011, d’après Hemsch 1736 (label: Aliud) [2013]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