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서진 흥망사 강의 : 사마에서 사마까지
쑨리췬 / 그러나 / 2021.10.6
– 사마에서 사마까지
이 책에서 다루는 시대는 위진남북조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삼국지 스토리의 후일담이기도 하다. 유비, 조조, 제갈량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들이 떠나간 이후의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위·촉·오 삼국을 무너뜨리고 세워진 서진 왕조는 짧은 전성기를 구가하고 다시 혼란의 시대로 진입했다. 왕조를 세운 것도 사마씨 가문이고 무너뜨린 것도 사마씨 가문이다. 그래서 이 책의 원제는 『사마에서 사마까지』이다.
중국 역사에서 서진과 동진은 150여 년 정도의 시간을 차지한다. 서진은 겨우 51년으로 단명한 왕조였고 동진은 약 100년 동안 유지되었지만 남방 지역에 안주한 정권이었다. 사마씨 가족은 동진 말년에야 역사의 무대에서 완전히 퇴장했다.
진나라의 역사는 사마의가 정변을 일으켜 조위 (曹魏)를 장악한 후부터 사마염이 진나라를 세워 위나라를 대체하기까지, 그 후 다시 사마예가 안정적인 동진 정권을 세울 때까지 사마씨에서 시작하여 사마씨로 끝났다.
이 가문의 흥망성쇠는 격렬한 권력 투쟁으로 가득하고 당시의 사회 변동을 깊이 반영하고 있다. 이 시기의 수많은 인물과 이야기는 매우 흥미진진할 뿐 아니라 깊이 되새겨볼 만하다.
이 책에 나오는 사마씨 집안의 흥망성쇠로부터 이 시기 정치 국면과 사회 구조와 천하를 자신의 집안일로 생각하는 고대 중국의 전제 제도에 대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 목차
머리말
제 1 강 사마의, 세상에 나오다
제 2 강 넘치는 지혜와 풍부한 계략
제 3 강 폭풍 전야
제 4 강 고평릉 정변
제 5 강 부자 전권
제 6 강 사마사의 죽음
제 7 강 사마소의 마음
제 8 강 촉의 멸망과 유선의 투항
제 9 강 죽림칠현
제10강 사마염, 위나라를 교체하다
제11강 천하 통일
제12강 무너지는 사회 풍조
제13강 태자 책봉의 수수께끼
제14강 가후의 정권 농단
제15강 팔왕의 난
제16강 내우외환
제17강 노비 황제
제18강 왕조의 말로
저자 후기
옮긴이의 말
○ 저자소개 : 쑨리췬
중국 텐진 天津 출신의 역사학자로서 난카이대학 南開大學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중국고대사’와 ‘위진남북조사’를 강의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중국고대사』, 『사기선 史記選』, 『중국 봉건왕조 흥망사』, 『신편 중국역조기사본말 新編中國歷朝紀事本末』 등이 있다.
2006년부터 시작된 ‘백가강단 百家講壇’의 『여불위 呂不韋』, 『이사 李斯』, 『범려 范?』, 『한비자 韓非子』, 『천고의 명의들 千古中醫故事』 등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 역자 : 이규일
강원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강원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국민대학교를 졸업한 후, 베이징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국민대학교 중국학부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중국 고전문학 전공으로 위진 남북조 수당 시기의 시가, 문학사, 문학 이론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육기 문학 창작 연구』, 『문부역해』, 『한시, 마음을 움직이다: 중국의 한시외교』, 『한시교양115』 등이 있고, 『이하시선』, 『육기시선』 등의 책을 번역했으며 이외에도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 책 속으로
조조의 주위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미움을 받아 피살되었지만, 사마의는 208년부터 220년 조조가 죽을 때까지 12년 동안 무사하게 조조의 측근으로 자리를 지켰다. 그는 어떤 방법으로 예민하고 의심 많은 조조의 신임을 얻었을까? 사마의는 매사에 조심하고 조심했다. 나아가고 물러남에 근거가 있었고 말과 행동이 선을 넘지 않도록 항상 주의했으며 늘 자신을 보호하면서 조조의 신임을 얻었다. — p.20, 「제1강 사마의, 세상에 나오다」 중에서
사마의는 어떻게 계속 직위가 올라갈 수 있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임기 동안 직무를 수행하면서 탁월한 공적과 뛰어난 계책으로 조위 정권을 위해 중요한 일을 많이 했고, 이 과정에서 보여준 능력으로 자신의 명망과 영향력을 향상시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군둔 (軍屯) 정책을 건의한 일은 조위 정권의 안정에 확실히 큰 역할을 했다. — p.33, 「제2강 넘치는 지혜와 풍부한 계략」 중에서
사마의는 전선에 도착한 후 형세를 냉철하게 분석했다. 제갈량은 과연 지휘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군대의 사기가 높고 전투력이 강했다. 그러나 촉군은 장거리 행군과 긴 전선의 문제로 이전 북벌에서도 군량 공급이 어려워 항상 속전속결을 해야 했다. 반대로 위군은 지연 전술을 펼치다가 촉군이 지치고 군량도 떨어지면 싸우지 않고 이겼다. 전술적으로 촉군을 전진하지 못하게만 막으면 승리할 수 있다. 이후의 전쟁 국면을 거시적으로 봤을 때 사마의의 작전 방침은 매우 정확했다. — p.39, 「제2강 넘치는 지혜와 풍부한 계략」 중에서
사마의의 연기는 그야말로 하늘이 내려준 최상급의 솜씨였다. 옷을 떨어뜨리면서도 알지 못하고 죽을 먹으면서 옷에 쏟을 정도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게다가 형주를 계속 병주, 본주라고 말했으니 쇠약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노인네다. 썩은 고목처럼 늘어진 쇠약한 모습은 사실과 다름없는 생생한 연기였다. 사마의를 염탐하러 왔던 이승도 완전히 속았다. 그는 사마의가 정말 이제는 끝났다고 생각하고 돌아가 조상에게 보고했다. “태부의 병은 다시 회복되기 어렵습니다. 너무나 안쓰럽습니다.” (『삼국지, 위서, 조상전』 배송지 주 『위말전』 인용) 조상은 마음에 걸려 있던 커다란 바위 하나가 땅에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사마의는 이제 나를 막을 수 없다. 천하는 우리 조씨 집안의 것이다!
사실 사마의는 조용히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조상은 향락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형세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전혀 몰랐다. “산비가 쏟아지려 하니 바람이 누각에 가득하다 (山雨欲來風滿樓).”라는 말이 있다. 폭풍 전야라는 의미이다. 지금이 그때였다. 사마의는 시기를 기다리며 조상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궁리하고 있었다. — p.79, 「폭풍 전야」 중에서
정시 10년 (249) 정월 사마의는 고평릉 정변을 통해 조상 세력을 무너뜨리고 조위의 실권을 장악했다. 사마의의 정변부터 265년 서진의 건립까지, 사마씨는 2대 3인 (사마의와 두 아들 사마사, 사마소)의 분투를 거쳐 사마의의 손자 사마염 (司馬炎)에 이르러 결국 조위 정권을 완전히 탈취하고 서진 (西晉) 왕조를 세웠다. 고평릉 정변부터 서진 건립까지 16년 동안 사마의 부자 3인은 계속 조정의 권력을 쥐고 있었다. 그러나 조위 정권 일파와 그 지지자들은 사마씨 집단에 격렬하게 저항했고, 피비린내 나는 살벌한 정치 투쟁이 이어졌다. — p.104, 「부자 전권」 중에서
사마씨에 대한 죽림칠현의 세 번째 태도는 세상을 깔보고 인생을 즐기는 것이었다. 이런 유형의 대표적인 인물은 완함, 유령이다. 두 사람은 인생의 무의미함을 꿰뚫어 본 것 같다. 정치에 참여하지도 않았고 사마씨와 결탁하지도 않았다. 노장 사상을 숭상하며 자유분방을 추구했다. 약간의 관직 생활을 하긴 했지만 거의 신경 쓰지 않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했다. 주위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방종하다 보니 늘 놀랄 만한 언행이 있었다. 요즘의 말로 하자면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려는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 p.201, 「죽림칠현」 중에서
당 태종은 사마염의 과실을 두 가지로 거론했다. 첫째는 “치세에 안주하며 위기를 망각했다”는 점이다. 즉 천하를 통일한 후 성취감에 취해 향락과 부패에 빠진 일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앞서 설명한 바 있다. 둘째는 사마충을 태자로 세워 후계자로 삼은 것이다. 이는 사마염의 가장 큰 실책이었다. 당 태종은 이렇게 말했다. “혜제 (사마충)를 폐할 수 있었지만 폐하지 않아 결국 황위의 기틀을 무너뜨렸다.” 사마염은 태자를 세우고 태자비를 간택하는 문제에서 크나큰 실수를 범했다. 이로 인해 가남풍의 정권 농단과 함께 서진의 운명을 결정한 팔왕의 난이 발발했으며 결국 서진 왕조의 생명력이 한계에 봉착했다. 당 태종의 분석은 서진 역사에 대한 종합적 결론이기도 하지만 당 왕조의 현실 정치에 세운 중요한 교훈이기도 하다. — p.310, 「제15강 팔왕의 난」 중에서
○ 출판사 서평
“창업과 수성, 어떤 것이 어려운가?” 〈자치통감〉에 당 태종이 신하와 문답한 내용이 있다. 생사의 위기를 넘기며 창업에 동참한 방현령은 창업이 어렵다고 했다. 태종을 보좌해 천하를 안정시킨 위징은 수성이 어렵다고 했다. 태종은 두 사람의 의견에 모두 수긍했다.
이 책은 사마씨 가문의 창업과 수성의 역사를 상세하게 이야기하는 강연록이다. 주지하다시피 창업의 주인공은 사마의이다. 사마의는 제갈량과의 대결로도 유명하지만 조조의 수하에서 엄청난 견제와 압박을 견뎌내고 최후의 승리자가 된 인물이다. 중국드라마 〈사마의〉를 통해 국내에도 많은 팬을 확보하기도 했다. 사마의는 험난한 권력투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때를 기다렸고 기회가 오자 과감하고 치밀한 전략으로 권력을 차지했다. 그의 인생 전반에 표현된 신중함과 인내심, 냉철함은 시대를 막론하고 성공에 필요한 소양들이다. 전반부 사마의의 스토리가 성공한 창업의 교훈담이라면 후반부 황실의 권력투쟁 스토리는 실패한 수성의 역사이다. 서진 왕조의 쇠락은 후계자에 대한 사마염의 오판에서 시작되었다. 리더의 선택과 결정은 얼마나 중요한가. 권력에 대한 인간의 추구는 얼마나 집요한지, 부정한 권력은 어떻게 무너지는지, 부패한 정치로 인해 한 시대의 지성과 문화가 어떻게 몰락하는지 생생하게 느껴진다. 역사는 거울이라고 한다. 서진 왕조의 흥망성쇠는 우리에게 반면교사 (反面敎師)가 될 것이다.
역사 강연록의 매력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해당 인물들의 심리와 입장을 강연자의 생생한 육성으로 듣는다는 점이다. 저자 쑨리췬 선생은 뛰어난 이야기꾼이다. 인문학 강좌 프로그램인 ‘백가강단 百家講壇’이 배출한 스타 학자이기도 하다. 사마의의 최대 승부처였던 고평릉 정변 대목을 읽으면 선생의 뛰어난 솜씨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사마의의 창업과 서진의 수성 이야기를 이렇게 다채롭고 흥미진진하게 전해 듣지 못했으리라. 역사적 교훈과 인문학적 성찰에 이야기의 재미 요소를 더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