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몽고메리의 “식물의 방식”
야콘
최근에 몽고메리 지음, “식물의 방식”이라는 책을 읽었다. 30여평 남짓한 텃밭에다 이것저것 농작물을 재배하며 수확의 기쁨도 있지만 농작물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며 식물이라는 생명체의 삶의 지혜에 놀라워하는 경우가 많다. 며칠 전에 (22.5.18.) 고추밭 사이에 심었던 “야콘”이라는 작물을 수확하였다. “야콘”은 남아메리카가 원산지인 국화과의 다년생 식물이다. 뿌리 부분은 ‘땅속의 배’라 부르며 채소로 먹는다. 뿌리의 생김새는 길다란 고구마와 비슷하고 맛은 마와 배가 적절히 조화된 맛이다. 좀 밍밍하면서도 뒤끝 없는 단맛이 난다. 그 덕에 먹기 좋게 썰어놓고 냉장고에 넣어놓은 후 차갑게 해서 먹으면 더위와 갈증 해소에 제격인 건강식품이다. 생으로 씹어먹을 때 전혀 맛보지 못했던 고구마 나무를 체험하는 것 같다. 고구마와 비슷하게 생기긴 했으나 껍질을 깎는 순간 아삭하고 물기 많은 식감이라는 것 때문에 단번에 차이가 느껴짐으로 쪄 먹을 생각은 안하게 되지만 열을 가해도 식감은 그다지 변하지 않는다. 텃밭에 심은 야콘이 대 여섯 포기가 밖에 안되는데 캐보니 수확량이 만만치 않아 놀랬다. 고추두렁사이에 심었었는데 고추와 영역경쟁을 하지 않은 것 같다.
약하고 처량한 존재
식물성은 탐욕과 폭력의 거부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약하고 처량한 존재로 비치기도 한다. 살아도 살았다 할 수 없는 식물인간에 빗대어 식물정부니 식물대통령이니 하는 조어들도 사용된다. “몽고메리”라는 학자는 ‘식물의 방식’라는 책에서 이런 관념을 깨라고 한다. 저자는 식물도 동물 못지않게 활기차고 창의적으로 ‘행동’한다고 강조한다. 역동적으로 경쟁하고 전략적으로 변혁한다. 저자는 식물에 대한 최신 연구들을 종합해 식물에 대한 편견을 무너뜨린다.
식물이 빛을 이용해, 물과 이산화탄소로 포도당과 산소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여기서 좀 더 세부로 들어가면 더욱 흥미롭다. 어떤 씨앗들은 땅속에서 빛에 자극받아 싹을 틔우고, 콩 모종의 새잎은 받아들이는 빛의 양을 조절하기까지 한다. 식물이 단위 시간당 잎의 단위 표면적이 흡수하는 광자의 수를 감지할 수 있다는 사실까지 밝혀졌다. 환경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조율하고 조절한다는 것이다. 또한 많은 식물들이 공기 중으로 휘발성 유기화합물을 배출해 서로의 존재를 감지한다. 이 화합물은 언어의 한 형태로 간주되기도 한다. 휘발성 화합물은 방어용 도구가 되기도 하는데, 예컨대 옥수수는 잎이 나비·나방 유충의 공격을 받을 때 포식자인 말벌을 유인하는 화학물질을 방출해서 자신을 보호한다.
식물의 협업과 연대
오랜 역사를 가진 ‘세 자매 농법’은 식물들 간의 협업과 연대를 보여준다. 옥수수, 콩, 호박을 함께 심는 방식인데, 옥수수는 콩이 수직으로 자라도록 지지대 역할을 하고, 콩은 질소를 비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전환하고, 호박은 잡초를 억제하고 토양의 수분을 유지해준다. 지하에서도 세 자매는 서로 지지하고 보완한다. 옥수수는 뿌리를 얕게 내려 토양의 윗부분을 차지하고, 그 아래 콩이 곧은 뿌리를 깊이 내리고, 호박은 두 자매가 차지하지 않은 곳에 자리 잡는다. 이런 관계는 땅속에 있는 박테리아 등 균군과의 관계까지 어우러져 시너지를 낸다. “자매 식물들이 정착하며 생장하는 타이밍은 안무가 잘 짜인 춤과 같다.” 이 책은 최신 연구에 바탕해 식물의 감춰진 비밀을 차근차근 설명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원제는 ‘식물들로부터 얻은 교훈’ (Lessons from plants)이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주변 환경에 대한 적절한 판단과 의사결정, 주변 식물을 비롯한 다양한 유기체들과의 소통을 통한 환경 개선, 식물들 간에 원활하게 이뤄지는 소통과 협력 등 식물의 생명력의 비결에서 배우자는 것이다. 인간 역시 공동체와 공생관계를 구축하고 유한한 에너지 자원을 사용하기 위해 전략적 결정을 내린다. 이때 식물의 방식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주변 환경을 파악하고 전략을 세우고 경쟁하거나 협력하는 방식으로 행동할 때, 전제되는 것은 자기 성찰이다.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은 필히, 수십억년 동안 삶을 일궈온 식물에게 지혜를 얻어야 한다. “좋은 선택과 올바른 결정을 내리려는 우리의 능력과 의지는 유전자에게 새겨져 있지 않다. 그것은 학습된 기술이고, 식물은 훌륭한 선생님이 될 수 있다. 동물의 세계는 약육강식이 지배한다. 먹고 먹히는 법칙이 규율하는 동물의 왕국과 달리, 식물은 평화와 공존의 원리 속에 살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박광하 (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3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민주화 실천과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생명과학이야기’ (북랩)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