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소개
화가의 초상 (Portrait de l’artiste)
카미유 피사로 / 캔버스에 유채 / 1873년 /56×46.7cm / 오르세 미술관
카미유 피사로 (Camille Pissarro, 1830~1903)는 덴마크계 프랑스인으로 인상주의 화가이다.
가장 훌륭한 근대 풍경화가 중 한 사람인 피사로는 모네와 친구였고 르누아르, 마네와 가까이 지냈다고 한다.
피사로의 초기 풍경화들은 작가 에밀 졸라와 평론가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일반인들의 관심은 적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60년대 후반부터 피사로는 인상주의 화가들 사이에서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그는 주로 인상주의 화가들의 여러 작품들을 모아 전시회를 구성하거나, 각자 전시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1874년에 친구들과함께 인상파 전람회를 결성해서 여러 번 전시회를 가졌는데, 피사로는 그 중심에 서서 일생을 인상파적인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퐁투아즈 (Pontoise)에 잠시 살면서는 세잔과 고갱을 가르치기도 했다.
1885년 에라니 쉬르 엡트 (Éragnysur-Epte)에 살면서 차세대 네오인상주의 화가 폴 시냑과 조르주 쇠라와 교류를 했다고 한다.
피사로는 섬세한 터치로 물체가 가진 고유의 빛깔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시켰기에 그의 작품은 온기가 흐르듯 따뜻한 감정이 충만하다.
피사로는 눈병으로 시력이 약화되어 야외에서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자 파리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을 그리며 마지막까지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1903년 11월 13일, 그는 패혈증 (혈액 중독)으로 사망했다.
– 화가의 초상 (Portrait de l’artiste)
.화가: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 1830년 7월 10일 ~ 1903년 11월 13일)
.제작연도: 1873년
.사조: 인상주의
.종류: 유화
.기법: 캔버스에 유채(Huile sur toile)
.크기: 56 x 46.7 cm
.소장처: 오르세 미술관
1883년 카미유 피사로는 아들 루시앙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넌 내가 투박하고 우울한 성품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거칠고 무례한 면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면 때문에, 나를 오랫동안 지켜보고 사귄 사람만이 나를 좋아할 수 있단다. 예술도 이와 같다고 난 생각한다. 한 눈으로 보고 빠르게 지나쳐 버리는 사람은 표면 밖에 보지 못한 채,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지. 회화를 비롯한 전반적인 예술이 나를 매혹시키고 있다. 예술은 곧 나의 삶이야. 예술 이외의 것들이 나에게 어떤 쓸모가 있는지조차 생각하고 있단다. 바로 이것이 예술가가 지향해야 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아닐까?”
이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피사로의 예술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도 뜨겁고 헌신적이었다.
이렇듯 헌신이 필요한 예술가라는 직업에 대하여, 그는 자화상을 통해 극도의 단순한 표현으로 완벽하게 피력하고 있다.
물체의 정확한 확인이 어렵거나 불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는 피사로나 세잔의 정물화에서 볼 수 있을 법한 희미한 모티프가 이 작품의 배경을 이루고 있으며, 오로지 화가의 얼굴만이 부각되어 있다.
이 작품은 피사로가 자신의 절정기에 그린 유일한 자화상으로서, 매우 귀중하게 평가되고 있다.
실제로 피사로는 자화상을 거의 그리지 않았는데, 이 작품 이후에는 죽음이 가까워진 말년에 한 번 더 그렸을 뿐이다.
피사로의 따뜻하고 넉넉한 외모와 평온하고 너그러운 성격 덕분에 동시에 사람들은 그를 모세 혹은 신에 비유하기도 했고, 일찍부터 그를 아버지처럼 여기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는 1874년 인상주의 화가들의 첫 전시회가 기획될 때 투쟁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으며, 당시 유행했던 무정부주의를 지지하며, 무정부주의 간행물에 그림을 싣기도 하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