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6년 12월 22일, 교황 호노리오 3세가 성 도미니코 (도밍고 데 구스만, Sanctus Dominicus, 1170 ~ 1221)에 의해 설립된 도미니코회 (Dominican) / 설교자들의 수도회 / 도미니코 수도회 (Ordo fratrum Praedicatorum) 인가
설교자들의 수도회, 도미니코 수도회 (Dominican, 라: Ordo fratrum Praedicatorum, O.P.)는 1206년 에스파냐의 사제 성 도미니코 (도밍고 데 구스만, Sanctus Dominicus, 1170 ~ 1221)에 의해 설립되어 1216년 12월 22일에 교황 호노리오 3세로부터 인가를 받은 로마 가톨릭교회 소속 그리스도교 수도회이다.
– 도미니코회 (Dominican)
.창립자: 도미니코 (도밍고 데 구스만)
.창립: 1216년 12월 22일, 프랑스
.본부: 이탈리아 로마
초창기에는 청빈을 중요시하여 탁발 수도사로서 생활했기 때문에 거지 수도회, 탁발 수도회 등의 별칭을 가지고 있었다.
탁발 (托鉢, mendicancy)은 자선에 의존하여 생존을 도모하는 행위를 말한다. 사실상 동냥과 본질적으로 같지만, 대개 금욕주의의 일환으로써 종교인이나 수행자가 자발적 빈곤을 선택하여 동냥하는 것을 특히 탁발이라 한다. 유명한 탁발자로는 프란치스코와 도미니코가 있다.
엄격한 생활과 학문 연구, 설교, 교육 등에 힘써왔으며 작은 형제회와 함께 주요한 수도회이다. 대한민국에는 1990년에 진출하여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와 서울시 강북구에서 수도원을 운영하고 있다.
- 도미니크 수도회 (Dominican)
도미니크 수도회는 1216년 도미니크 드 구츠만 (Dominic de Guzman, 1170 ~ 1221)에 의해 창설되었으며 1220년 승인을 받았다. 그들을 도미니칸스 (Dominicanes)라고 불렀는데, ‘양떼들을 한 곳으로 모는 주님의 개들’이라는 뜻이다. 도미니칸들은 흰옷과 검은 외투를 입었으므로 흑수도사들 (Black Friars)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도미니크는 1170년 스페인의 칼라로가에서 귀족 가문에서 출생하여 팔렌시아에서 수학하였고, 어거스틴파의 신부가 되었습니다. 특히 그는 회교도와 이단들을 교화, 회심시키는데 관심을 가졌던 인물이었다. 그것은 당시 교회가 무력하였고 복음을 변증하는데 약했기 때문이다. 그는 1216년 수도단을 설립하고 걸식 전도하다가 1221년 8월 6일 볼로냐에서 세상을 떠났다.
도미니크는 수도단을 설립하려고 제4라테란 회의 때 교황 이노센트 3세에게 수도원 건립 신청을 하였으나 거절당하고 기존의 프란체스코 수도회에 가입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그후 1216년 이노센트 3세가 죽자 도미니크는 다시 로마로 가서 교황 호노리우스 3세로부터 승인을 받아 수도단을 설립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설교자들의 수도회 (the Order of Preachers)로 불리기도 했다. 도미니크가 죽을 무렵 이 수도단은 유럽 여러 나라에 60여개의 수도원을 가진 수도단이 되었다.
이 도미니크 수도단 역시 탁발 생활 (Mendicancy)을 생활 원리로 삼았고, 1220년 제1회 도미니크 회의가 볼로냐에서 개최되어 걸식을 통한 자신의 청빈과 설교와 봉사를 통한 이웃 사랑의 양대 원리를 결정하였다. 이 수도단은 프란체스코의 그것처럼 걸식과 봉사를 강조하면서도 특히 학문연구를 처음부터 강조하였다.
수도사들이 시편을 가지거나 학문 연구에 몰두하는 것을 경원시했던 프란체스코 수도단과는 달리 도미니크 수도회는 이단들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학문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보아 지적 훈련을 강조하였다. 사실 대학교육을 먼저 시작한 것은 도미니크들이었고 후에 프란체스코 수도단도 교육을 강조하게 되었다.
이 수도단은 고행보다는 연구를, 의식보다는 설교를 중시하였는데, 이 수도단 출신의 인물로는 알베르투스 마구누스 (Albertus Magnus), 그리고 그의 제자인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Aqunas),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Meister Eckhart), 요한 타울러 (John Tauler), 그리고 위대한 설교자 베르톨드 (Berthold van Regensburg) 등이 있다. 프로렌서의 개혁자 사바나롤라 (Savanrola)도 이 수도원 출신이다. 마구누스는 그의 방대한 지식 때문에 ‘우주박사’로 불렸고, 아퀴나스는 ‘천사박사’로 불렸다.
이 수도단은 교황을 위해 이단을 진멸하려는 종교재판을 조정하였고 형벌집행자로 충성하였다. 상황의 변화와 함께 이 수도단도 재산을 소유하게 되었고, 탁발에 의한 생활은 점차 사라졌다. 그 외에도 갈멜산 수도회와 어거스틴파 수도회가 있었는데, 갈멜산 수도회는 1210년 이태리 출신 베르톨드가 팔레스틴 해안에 있는 갈멜산에 설립한 은자들의 공동체로서 1229년 교황의 인준을 받았고, 그후 그들은 서방으로 옮겨갔다.
어거스틴파 수도회는 오스틴 교단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엄격하게 말하면 수도회는 아니었다. 도리어 성직자의 무리로서 속세를 떠나지 않은 채로 청빈과 복종의 공동생활을 하기 위해 조직된 단체로서 1250년 교황 알렉산더 4세가 공식적으로 승인하였다.
이 수도단은 처음부터 설교와 교육에 적극적이었고, 가난한 자와 병든 자와 노약자를 위한 병원과 구호소를 세우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그래서 점차 수도회의 모습을 갖추어 갔고, 1075년에서 1125년 사이에 이 계통의 수도원이 많이 생겨났다. 후일 루터는 이 수도원에 입단하여 수도사가 되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