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미하엘 엔데의 글쓰기 : 이야기의 여백에 관한 대화
미하엘 엔데 / 글항아리 / 2022.7.25
“언어야말로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낸다”
– 우연히 다가오는 언어들을 끌어모아 쓰는 글
환상문학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독자라도, 『모모』나 『끝없는 이야기』 같은 제목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시간 도둑에게서 친구들의 삶을 되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소녀와 마법의 책 속으로 빨려들어간 소년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전 세계 독자들을 매혹해왔다. 두 작품을 비롯해 다양한 환상세계를 그려낸 거장 미하엘 엔데의 대화록『미하엘 엔데의 글쓰기』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노년의 엔데가 친구이자 번역가인 다무라 도시오와 나눈 대담을 담고 있다. 두 사람은 엔데의 집이나 병상 등 다양한 장소에서 언어와 이야기가 어떻게 우리 삶에 스며드는지 논하고, 오늘날 현대인이 주목해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재차 묻는다. 그들의 대화를 따라가다보면 엔데가 일상 속에서 어떻게 작품세계와 삶에 대한 통찰을 꾸려왔는가를 읽어낼 수 있다.
엔데는 각 장의 제목에 등장하는 ‘글쓰기’ ‘유년기’ ‘사색’ ‘꿈’ ‘죽음’ 등을 주제 삼아 이야기를 펼친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작품뿐 아니라 삶에 관해서도 자세히 논하고 있다. 엔데는 자신이 슈바빙의 예술지구에서 보낸 어린 시절이나 나치하의 독일에서 목격했던 폭력과 강압, 전후에 입학한 연극학교에서 배운 극적 구조, 이탈리아 여행에서 만난 이야기꾼을 보고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자 결심한 순간들을 회고하고 연결한다. 엔데의 삶과 그가 창작한 이야기들을 되짚어 올라가다보면 한 가지 질문에 다다르게 된다. 이야기는 어떻게 현실에 영향을 미치고, 사람의 내면을 변화하게 만드는 걸까? 엔데는 여기서 한발 더 나가 언어야말로 새로운 형태의 현실을 만들 수 있노라고 이야기한다. 특히 엔데가 임종 전 병상에서 말로 한 기록은 그가 세계와 삶을 이해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던 시간을 엿보게 한다.
오늘날에도 엔데의 작품은 전 세계 독자로부터 꾸준히 사랑받으며 읽히고 있다. 작가가 바라 마지않던,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는 이야기”로서 살아 숨 쉬는 것이다. 오늘날 독자들이 엔데의 작품에 보이는 애정은, 작가가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만들어낸 성찰의 이미지가 지금도 여전히 유의미함을 뜻한다. 『미하엘 엔데의 글쓰기』는 엔데의 작품이 삶을 어떻게 통찰하는지 안내하는 가이드인 동시에 현대인이 고민할 화두를 적극적으로 던지는 목소리기도 하다.
○ 목차
제1장 쓴다는 것
엔데의 문학에 관하여_ 다무라 도시오
언어 그리고 이름
이야기의 자율성 그리고 책이라는 이름의 모험
난파의 경험과 유머
놀이에 관하여
놀이, 문학, 나치와 신화
신화라는 것
자신의 작품에 관하여
『짐 크노프』와 『모모』 사이: ‘사이’의 이야기
『거울 속의 거울』에 관하여
토리노의 성해포
제2장 소년 시절의 기억
엔데의 인생에 관하여_ 다무라 도시오
엔데의 가계와 소년 시절
소년 시절: 말 이야기
소년 시절: 서커스 광대와 피에로 사건 등
이탈리아에서의 경험과 팔레르모의 이야기꾼
제3장 사색의 시기
엔데의 사색에 관하여_ 다무라 도시오
잠수하는 병실 옆자리 사람
슈타이너 인지학의 예술관
유럽의 물질, 아시아의 영성, 역사의 흐름
말과 의미
과학, 경제, 이삭의 원리
제4장 꿈에 관하여
제5장 죽음에 관하여
후기
엔데와 이야기: 엔데 탄생 80주년을 기념하며
옮긴이의 말
○ 저자소개 : 미하엘 엔데 (Michael Ende, 1929 ~ 1995)
1929년 독일 바이에른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에서 초현실주의 화가인 에드가 엔데와 물리치료사루이제 바르톨로메 엔데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유복하고 예술적인 가풍 속에서 유년기부터 작가적 소양을 길렀지만, 나치 정권의 탄압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청소년기에 깊은 공포감을 경험한다. 종전 후 가족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발도르프 학교에서 고등교육을 마쳤다. 이 무렵 처음으로 문학을 공부하며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오토팔켄베르크 연극학교에서 배우로 활동하며 작가로서의 자양분을 쌓았고, 작곡과 평론도 겸했다. 1960년 첫 소설 『기관차 대여행』 출간으로 독일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고, 차기작이 안데르센상 후보작, 베를린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진다. 1973년 『모모』를, 1979년 『끝없는 이야기』를 출간하면서 전 세계 문학계에 명성을 얻었고, 작품이 40여 개 언어로 번역되면서 영화, 연극, 오페라 등으로도 각색되었다. 현실과 환상이 초현실적으로 뒤섞인 미하엘 엔데의 작품세계에서 환상은 현대사회의 문제를 조명하는 빛이 되고, 독자는 이야기와 상호작용하는 존재가 된다. “여덟 살부터 여든 살까지 모든 어린아이를 위한 책”을 쓴다고 말하며, 『끝없는 이야기』 『마법의 수프』 『곰돌이 워셔블의 여행』 『거울 속의 거울』 『자유의 감옥』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20세기 독일 작가 중 가장 유명한 작가로 꼽히며, 두 차례의 독일 청소년문학상 외에 빌헬름하우프상, 바이에른 시인상, 독일 십자공로훈장을 받았다. 1995년 예순다섯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 엮자: 다무라 도시오
번역가. 1952년생. 지은 책으로는 『엔데를 여행하다』가 있고, 옮긴 책으로는 미하엘 엔데의 『엔데의 메모 상자』, 미하엘 엔데·로만 호케(편저)의 『아무도 없는 정원』, 율리우스 포제너의 『근대 건축으로의 초대』, 안나 빔슈나이더의 『가을의 우유』(공역) 등이 있다.
– 역자: 김영란
경희대 관광일본어통역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에서 사회복지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굿네이버스와 사회연대 은행에서 NGO 활동가로 일했으며, 현재는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추억이 뭐라고』 『토베 얀손: 창작과 삶에 대한 욕망』 『로봇 소년, 학교에 가다』 『패션종이접기』 『잘 갔다 와, 똥!』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자주 하는 말이긴 한데, 그러다보니 나는 사실 작가보다는 오히려 화가의 방식으로 일을 하는 편입니다. 내가 아는 화가들은 거의 그림의 대략적인 콘셉트만 가지고 어딘가 한 대목부터 그려나가죠. 그러다보면 중간에 뭔가 떠오르는 게 있거든요. 때로는 그것이 처음에 그리려고 한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해지기도 합니다. 실제로도 끊임없이 작가를 향해 나오는 것들이 있어요. 그러니 마땅히 거기에 귀를 기울여야만 하죠. _28쪽
자주 언급했습니다만, 쓰는 행위는 마치 모험과 같아요.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어떻게 끝이 날지, 나조차 모르는 그런 모험 말입니다. 그래서 어떤 책을 쓰든지 집필 후에는 내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걸 발견하죠. 실제로 내 인생은 내가 쓴 책을 마디로 구분되기도 하니까요. 책을 쓰는 행위가 나를 바꾸거든요. 다시 말해 같은 걸 두 번 쓰는 일은 나에게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작가들 중에는 일평생 결국은 동일한 하나의 책을 여러 버전으로 쓰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쓰고 보면 영락없이 똑같은 책인 거죠. 그런 일이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아요. 어떤 책을 쓰더라도 그 후에는 매번 나 자신이 바뀌어 있기 때문에 내 책은 저마다 각기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어요. _30쪽
플롯이 괜찮다, 글렀다 하는 식의 깨달음은 오랜 감각을 통해 생겨나요. 일을 하며 얻은 경험에서 생겨나기도 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나기도 합니다. 마치 목공 장인이 나무의 어느 면을 쓸지 감각적으로 아는 것과 같은 이치예요. 장인은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나뭇결만 쓱 보고도 어느 쪽 면을 쓸지 정하잖아요. 경험에서 얻는 것이 차차 자질이 된 겁니다. _35쪽
그래요. 예술은 거짓입니다. 하지만 이 거짓은 우리로 하여금 진실을 보게 하는 거짓인 거죠. 예술이 거짓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통해서 진실을 볼 수 있는 겁니다. 허구라는 걸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사실을 망각하면, 예술은 맹독이 되고 맙니다. 선악도 그렇죠. 그 밖에 이런 식으로 분류되는 개념들에서도 마찬가지예요. 하긴 악이 무엇인지 겪어봐야지만 비로소 선을 경험할 수 있을 테니까요. 매여봄으로써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죠. _66쪽
신기하게도 이야기는 그 자체에 의지가 있습니다. 어디론가 가려고 하죠. 거기에 몸을 맡긴 채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보는 겁니다. 이야기가 그저 흘러가는 대로 둡니다. 나를 어디로 이끄는 걸까? 그렇게 하다보면 모든 이야기는 ‘그림’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알게 돼요. _113쪽
말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 바로 이것이 증거인 셈이죠. 인간이 불멸이라는 증거요. 왜냐하면 아이가 생을 부여받았을 때, 이미 이 능력을 지니고 태어난다면 그것은 어딘가에서 와야만 하는 거예요. 그런 형태로 두루두루 이해되는 나라에서 온 것이죠. 그다음에 아이는 점점 말에서 그것을 다시 찾아내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이해하는 존재로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이에요. _237쪽
○ 출판사 서평
“미하엘 엔데는 자신의 삶 속에서도 꾸준히 빛나는 순간들을 발견하여 묘사한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구조를 계획하고 통제하는 방향의 글쓰기를 거부한다.
그의 문장들은 글쓰기 속에서 우연히 마주하는 발견을 소설 안으로 끌어들인다.
이로써 엔데의 이야기는 독자들을 더 낯설고 넓은 세계로 불러들인다.”
미하엘 엔데는 1929년 남부 독일의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에서 초현실주의 화가인 에드가 엔데와 물리치료사 루이제 바르톨로메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화가나 작가들이 찾아오는 아버지의 아틀리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자연스럽게 예술을 접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생의 첫 10여 년을 나치 독일 치하에서 보내면서, 전쟁과 폭력에 대한 뿌리 깊은 공포를 체험했다. 아버지의 그림들이 ‘퇴폐예술’이란 명목으로 금지돼서 가족 모두가 어려운 시기를 겪기도 했다.
힘든 시기 속에서도 엔데의 예술가적 재능은 꾸준히 자라났다. 그는 글 외에도 그림과 연극 등 다방면의 예술에 관심을 보였으며, 전쟁이 끝나고서는 오토팔켄베르크 드라마 학교에 다녔고, 배우이자 극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 엔데는 직접 자신의 첫 희곡 「유산 상속 게임」을 거론하며, 그에 얽힌 일화도 함께 이야기한다. 그가 연극의 구조를 공부하면서 체득한 희극성과 비극성은 이후 그가 쓴 장·단편 소설에서도 자연스레 드러난다.
엔데가 무엇보다 천착했던 주제는 다름 아닌 이야기 그 자체다. 도시오와의 대화에서도 이런 생각은 재차 드러난다. 엔데는 삶이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진 ‘인과 논리’ 너머의 것이라 강조했고, 이에 따라 일반적인 인과관계를 따라가는 ‘이야기 논리’의 껍질을 깨트리고자 노력했다. 그는 예술에 특정한 목적이나 기능을 부여하려는 생각을 거부했으며 오히려 예술의 무익함에 큰 방점을 뒀다.
또한 엔데는 이야기하는 이와 듣는 이의 관계를 중요시하며 글을 썼다. 젊은 시절에 만난 팔레르모 광장의 이야기꾼이 읊어주던 소설을 듣고서 “한 세기가 지난 뒤에도 메르헨의 이야기꾼이 들려줄 수 있는 정도의 이야기”를 만들겠노라 결심한 일화는 그가 이야기의 어떤 점을 중시하는지 선명히 보여준다.
이처럼 오래도록 읽히는 이야기를 쓰겠다는 결심은 추후 『짐 크노프』 시리즈, 『모모』와 『끝없는 이야기』부터, 『거울 속의 거울』이나 『자유의 감옥』 등의 작품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이미 초기작 『기관차 대여행』으로 독일 아동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큰 성공을 거뒀지만,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이 더욱 다가가고 싶은 문학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10년의 기나긴 노력을 통해 집필한 작품이 바로 『모모』다.
엔데에게 있어 언어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재료인 동시에, 사람들 사이를 연결하는 매개였다. 그에게 언어란 인간의 문자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는 각자 형식이 다를 뿐 현실 곳곳에서 마주하는 색채나 소리 역시 다른 방식의 언어라고 본다. 언어는 이미 세계 곳곳에 자리 잡고 있기에, 작가가 만든 것이 아닌 이미 ‘거기’에 존재하거나 나타나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이 같은 증언은 자신이 글쓰는 방식이 “작가보다 화가에 더 가깝다”라던 말을 보완하고 있다. 엔데는 자신에게 우연히 다가오는 언어들을 끌어모아 서로 조화로운 그림을 만드는 데 가장 집중했다고 한다. 그는 소설을 쓸 때 중요시하는 일이 “그 자체로 조화로운 ‘그림’의 세계를 찾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 같은 태도는 현대사회에서 흔히 놓치기 쉬운 정신세계를 향한 몰두로 이어지고 있다.
- 삶 너머를 바라보기
이 책에서 엔데가 언어나 이야기만큼 자주 언급하는 주제는 바로 현대사회에서 사라진 정신성이다. 엔데는 신체 능력 등 물질적 가치만을 높이 평가하는 사회를 비판하면서 우리가 삶의 근원적인 면을 되돌아봐야 한다고 권한다. 엔데가 아시아 문화에 특히 관심을 품고 탐구하는 모습은 바로 이런 태도와 연결되는 듯하다. 그는 현대사회가 환상이나 영성 등의 정신적인 가치를 잊어가는 모습을 경계했다.
그런 엔데에게 언어란 정신성을 들여다볼 수 있는 지표이자 세계의 구성 요소 그 자체다. 그는 언어를 인간의 소통 양식에 국한하지 않으며, 나무의 생장이나 새의 울음도 또 다른 언어의 형식으로 받아들인다. 이처럼 세계의 다양한 층위를 향한 깊은 애정이야말로 미하엘 엔데가 그려낸 섬세한 환상의 원동력일 것이다.
엔데의 비판적 사고를 현대적 가치관이나 과학적 사고에 대한 비난으로 여기면 곤란하다. 그보다는 엔데가 오늘날 자연과학적 사고를 ‘진리’로 받아들이는 세태를 중점에 두고 비판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는 세계의 모든 요소를 기존 과학의 영역으로 치환하여 그 안에서만 해석하려 하는 태도를 하나의 선입견으로 명명한다. 이때 ‘선입견’은 엔데가 글쓰기에서 탈피하고자 했던 ‘인과 논리’와도 연결된다. 그는 기존 지식이 만드는 경계 너머에서 세계를 보려는 태도가 우리 삶을 더 깊고 풍요롭게 만들 수 있음을 재차 강조한다. 과연 엔데가 말하듯 “새로운 자세”를 취하는 인간들이 더 나은 미래를 가져올 수 있을까? 가상과 현실을 오가는 세계에 사는 독자가 꾸준히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 미하엘 엔데라는 정원을 거닐기
엔데는 자신의 책이 “여덟 살부터 여든 살까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는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성인이 되어서 그의 책을 다시 읽어본 독자라면 이 말에 크게 공감할 것이다. 그가 그려낸 수많은 환상의 나라는 여전히 우리에게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설렘과 탐구심을 가져다준다. 엔데가 그리는 마법이 단순히 현실에서 도피하는 수단이 아닌,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탐구하게 만드는 상징으로 읽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좋은 환상은 우리를 다시 어린아이로 만들며, 세계 곳곳을 새롭게 볼 수 있도록 한다.
인터뷰어 다무라 도시오는 엔데의 친구이자 번역가이며 애독자다. 그는 엔데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미하엘 엔데라는 정원을 무작정 거니는 것만 같았다”고 추억한다. 정원이란 꽃이 가득한 화단이나 계절에 따라 다른 색의 잎사귀를 흔드는 나무만큼 ‘여백’이 중요한 공간이다. 다무라 도시오의 말에 따르면, 그 여백이야말로 정원의 본질이다.
미하엘 엔데와 다무라 도시오의 대담은 엔데가 만드는 이야기의 여백을 거니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작가의 예상치 못한 인간적인 모습을 만날 수도 있고, 지금과는 전혀 다른 시대적 정서에서 오는 당혹감을 느낄 수도 있다. 다만 여전히 분명한 사실은 엔데의 이야기들이 매혹적이라는 것이다. 이때 ‘이야기’란 엔데가 문학적 언어로 엮어온 것뿐만 아니라, 그가 이 대화에서 꺼내는 여러 장면도 함의한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만들던 연극이나, 팔레르모 광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이야기꾼이 우렁찬 목소리로 들려주던 소설, 투병생활 중에 마주친 일상의 유머러스한 순간까지, 엔데는 자신의 삶 속에서도 꾸준히 빛나는 순간들을 발견하여 묘사한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구조를 계획하고 통제하는 방향의 글쓰기를 거부한다. 그의 문장들은 글쓰기의 순간 우연히 마주하는 발견을 소설 안으로 끌어들인다. 이로써 엔데의 이야기는 독자들을 한층 더 낯설고 넓은 세계로 불러들인다. 그 과정을 묘사하는 엔데의 말을 읽어나가다보면 앞으로 마주할 수 있는 미지의 세계를 사뭇 고대하게 된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