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소개
이탈리아의 화가 크리스토파노 알로리 (Cristofano Allori, 1577 ~ 1621)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든 유디트’ (Judith with the Head of Holophernese)
크리스토파노 알로리, 캔버스에 유채, 116 x 139cm, 1610~1612년경
크리스토파노 알로리 (Cristofano Allori, 1577년 10월 17일 ~ 1621년 4월 1일)는 후기 피렌체 매너리즘을 이끈 이탈리아의 화가이다. 1577년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화가였던 아버지 알레산드로 알로리에게 화가 수업을 받지만, 차갑고 해부학적인 화풍에 염증을 느껴 그레고리오 파가니의 작업실에 문하생으로 들어가 화가 수업을 받았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들고 있는 유디트”가 있다.

– 크리스토파노 알로리 (Cristofano Allori)
.출생: 1577년 10월 17일
.사망: 1621년 4월 1일
.직업: 화가
.부모: 알레산드로 알로리
.스승: Alessandro Allori
.사조: 바로크, 매너리즘
.주요 작품: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담아 들고 있는 유디트 (Judith with the Head of Holofernes)
크리스토파노 알로리 (Cristofano Allori)는 16세기 후반 이탈리아 매너리즘 화가로 피렌체에서 주로 활동했다. 그는 알로리 데토 일 브론지노(Allori detto il Bronzino)로 불리기도 했다. 알로리는 1577년 10월 17일 후기 르네상스 화가였던 알레산드로 알로리 (Alessandro Allori)와 마리아 세발데시 (Maira Cevaldesi)dml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미술 교육 과정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크게 없으나, 아버지인 알레산드로의 르네상스 화풍을 배우는 대신 그레고리오 파가니 (Gregorio Pagani)의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파가니 밑에서 공부를 하던 알로리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Michelangelo Buonarotti)와 코레지오 (Corregio)의 영향도 많이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알로리는 자신의 경험을 반영한 작품들을 제작하는데 관심을 가졌는데 이는 이 당시 매너리즘 작가들에게서 종종 찾아볼 수 있는 경향이었다. 이런 경향을 바탕으로 제작된 것이 예술가의 초상화가 들어간 작품들이었다. 알로리 역시 이런 작품을 제작했는데 그 작품이 바로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들고 있는 유디트 (Judith with the Head of Holophernese, 1610~1612년경)이다.

–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든 유디트 (Judith with the Head of Holophernese, 1610~1612년경)
17세기 피렌체의 자랑, 크리스토파노 알로리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든 유디트’ 는 구약 외경에 나오는 유디트의 설화를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의 주제는 구약성경 외전인 유딧서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피렌체에서 굉장히 인기가 많았다. 알로리는 이 작품을 그리고 나서 금방 유명해졌으며 그의 작품을 모사한 작품들도 많이 생겨났다.
알로리의 전기를 쓴 작가인 발디누치 (Baldinucci)에 따르면 이 작품에는 알로리의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반영되어 있다. 알로리는 이 작품에 자신의 연인이었던 마리아 데 지오반니 마자피리 (Maria de Giovanni Mazzafirri)와의 이야기를 녹여냈는데 그 둘의 끝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알로리는 홀로페르네스의 얼굴에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넣었으며, 유디트는 마자피라의 얼굴로 그렸다. 그리고 유디트 뒤에 있는 하인은 그녀의 어머니와 닮아 있다.
알로리는 이 작품에서 풍부한 색상을 사용하고 질감과 형태를 정교하게 표현했는데 특히 유디트의 부드러운 피부와 화려한 의상이 눈에 띈다. 유디트는 전혀 동요가 없는 홀로페르네스의 잘린 머리를 들고 있는데 홀로페르네스의 창백한 피부와 유디트의 맑고 부드러운 얼굴 그리고 밝은 색채의 의상이 대비를 이룬다. 또 유디트의 화려한 의상은 이 당시 피렌체에서 섬유 산업이 발달했기 때문에 이를 상징하는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이 작품은 1621년 알로리가 죽고 난 이후 메디치 (Medici) 가문의 컬렉션이 되어 1666년 피티 궁 (Pitti Palace)에 전시되었다. 섬세한 구성과 관람자의 눈 앞에서 사건이 벌어진 것만 같은 생생한 장면 묘사는 바로크 시기의 대표 작가인 카라밧지오 (Caravaggio)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 알로리作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든 유디트”
.시련의 고통 안겨준 연인에 대한 호소
17세기 피렌체의 자랑, 크리스토파노 알로리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든 유디트’ 는 구약 외경에 나오는 유디트의 설화를 그린 그림이다.
아득히 먼 옛날, 잔인한 아시리아 군대가 평화롭던 유대의 산악 도시인 베툴리아를 침략했다. 군대를 이끌고 온 장수 홀로페르네스는 잔인하기 그지 없었다.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겁탈하고, 재산은 약탈하는 등 도시 전체를 유린했다. 이를 보다 못한 귀족 출신의 과부 유디트는 화려하게 치장하고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한 후 가차없이 목을 잘랐다.
수장을 잃은 아시리아 군대는 물러가게 됐고, 유디트 덕분에 베틀리아는 자유를 되찾았다. 우리의 ‘논개’ 이야기와 비슷하다. 이런 유디트는 유대인에게 전설의 영웅으로만 남았다. 후대의 그 누구도 유디트가 순결을 버린 것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술가들의 시점은 좀 다른 것 같다. 많은 화가들은 영웅으로서의 유디트가 아니라 ‘잔인한 에로티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화폭 속에서 유디트는 팜므 파탈로 재탄생했다. 영웅이 아니라 ‘정복자’, ‘승자’로서의 파격적인 여성이 된 것이다.
특히 최초의 페미니스트 화가로 알려진 여류화가 아르테미시아의 그림이 그렇다. 그녀의 유디트는 보는 이가 두려울 정도다. 긴 칼로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고 있는’ 유디트의 표정에는 전투적 감정이 넘쳐 흐른다.
그런데 이 그림, 알로리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든 유디트’는 어쩐지 정복자 같지 않다. 무표정하지만, 어딘가 부드럽다. 이는 그림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기 때문. 그림 속 유디트는 바로 앞서 이야기한 여류화가, 아르테미시아다. 그리고 그녀는 알로리의 연인이었다.
아르테미시아는 집안에서 시킨 억지 결혼을 정리하고, 타향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런 그녀를 사랑하게 된 알로리는 그녀가 예술가로서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알로리는 곧 이별을 통보받았고, 그의 아픔이 그림에 투영된 것이다.
목이 잘린 홀로페르네스는 알로리 자신이다. 감정 없는 눈빛과 굳게 다문 입술로 무표정함을 나타내는 유디트와 달리 일그러진 얼굴로 고통과 아픔을 드러내고 있는 홀로페르네스. 알로리는 이별이 자신에게 목 베이는 아픔임을 연인에게 호소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어쨌거나 아르테미시아는 팜므 파탈의 이미지임에는 틀림없다. 남성에게 고통을 주었으니 ‘나쁜 여자’이지만, ‘그 아픔이라도 알아주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매혹적인 여인인 것.
종종 드라마나 영화를 소개하는 기사에서 악역을 맡은 여배우들이 자신의 캐릭터를 팜므 파탈로 표현하는 것을 본다. 그리고 이 경우 대개는 ‘사연 있는 악녀=팜므 파탈’을 의미한다. 하지만 팜므파탈은 결코 악녀나 요부를 뜻하는 말이 아니다. 용단으로 도시를 구한 유디트, 이혼녀였지만 잘나가는 화가의 구애를 거절한 아르테미시아를 기억하자. 팜므 파탈은 바로 자의식과 자신감으로 세상과 당당히 맞설 줄 아는 여성, 그렇기 때문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오는 여성을 뜻하는 말이다. _ 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보도자료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