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9년 10월 29일, 오스트리아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 / 난네를 (Maria Anna Walburga Ignatia Mozart, 1751 ~ 1829) 별세
마리아 안나 발부르가 이그나티아 모차르트 (독: Maria Anna Walburga Ignatia Mozart, 1751년 7월 30일 ~ 1829년 10월 29일)는 오스트리아의 피아노 연주자이자, 하프시코드 연주자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누나다.
–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 (Maria Anna Mozart)
.본명: 마리아 안나 발부르가 이그나티아 모차르트 (Maria Anna Walburga Ignitia Mozart)
.출생: 1751년 7월 30일, 신성 로마 제국 잘츠부르크 공국 잘츠부르크
.사망: 1829년 10월 29일(78세), 오스트리아 제국 잘츠부르크 공국 잘츠부르크
.국적: 신성 로마 제국→오스트리아 제국
.직업: 피아노 연주자, 하프시코드 연주자
.장르: 서양 고전 음악
.악기: 피아노, 하프시코드
.부모: 레오폴트 모차르트, 안나 마리아 모차르트
.배우자: 요한 폰 조넨부르크
.자녀: 레오폴드 알로이스 판탈레온, 지네트 바벳, 마리아 바벳
.가족: 남동생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올케 – 콘스탄체 모차르트, 조카 – 카를 토마스 모차르트, 프란츠 크사퍼 볼프강 모차르트
.종교: 로마 가톨릭
평소 마리아네 (Marianne)라고 불리었으며 난네를 (독: Nannerl)이라는 별명으로 자주 불렸다.
○ 생애 및 활동
- 어린 시절
마리아 안나 발부르가 이그나티아 모차르트 (독: Maria Anna Walburga Ignatia Mozart)는 1751년 7월 30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어린 모차르트를 볼피 (볼프강의 애칭)라고 불렀던 것과 마찬가지로 마리아 안나도 어린 시절에는 난네를 (Nannerl)이라고 불렀다가 나중에 마리안네 (Marianne)라고 불렀다.
일곱 살 때부터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에게 하프시코드를 배웠다.
레오폴트는 마리아네의 남동생인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함께 자녀의 재능을 보여주기 위해 비엔나와 파리 등지의 많은 도시로 투어를 다녔다.
초창기에는 그녀가 가장 높은 수익을 얻기도 하였으며, 뛰어난 하프시코드 및 포르테피아노 연주자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당시 사회에 만연하던 부모의 보수적 견해로 인해, 그녀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계속해서 경력을 쌓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뉴그로브》에 따르면, 그녀가 결혼 적령기에 들자 1769년부터는 더이상 동생과 함께 여행을 다니며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선보일 수 없게 되었다.
볼프강이 1770년대동안 레오폴트와 함께 이탈리아를 순회하며 많은 예술적 성취를 이루는동안, 마리아네는 잘츠부르크에서 어머니와 함께 집에서 근신하였다.
볼프강이 어머니와 파리 등지를 다니던 때 (1777년 ~ 1779년)에는 아버지 레오폴트와 집에 머물렀다.
마리아네가 음악 작품을 작곡했다는 증거는 그녀의 작품을 칭찬하는 볼프강의 편지 등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지만, 아버지가 남긴 방대한 서신 중에는 그녀의 작곡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작품도 전혀 없다.
- 결혼과 자녀
아버지와 다툰 뒤 결국 자신의 진로를 관철하고 배우자를 직접 선택한 남동생과는 대조적으로, 마리아네는 전적으로 아버지에게 종속되어 순종하고 있었다.
육군 대위이자 가정교사인 프란츠 디폴트와 사랑에 빠졌지만, 아버지의 강요로 인하여 그의 청혼을 거절하였다.
볼프강이 누나의 의사에 따라 아버지에 맞서야 한다고 거들었으나 허사였다.
마리아네는 결국 지방 치안 판사 요한 밥티스트 프란츠 폰 베르히톨트 추 조넨부르크와 1783년 8월 23일 결혼하였고, 그와 함께 모차르트 저택에서 동쪽으로 29킬로미터 떨어진 오스트리아의 마을 장크트길겐에 정착하였다.
베르히톨트는 두 번 홀아비가 되어 전처 두 명에게서 다섯 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고, 마리아네가 이들을 맡아 길렀다.
그녀 또한 레오폴트 알로이스 판탈레온 (1785 ~ 1840년), 예아네테 (1789 ~ 1805년), 마리아 바베테 (1790 ~ 1791년)라는 이름의 세 자녀를 낳았다.
- 여생과 사망
남편인 요한 폰 존넨부르크는 1801년에 죽었고, 나네를은 아이들을 데리고 잘츠부르크로 돌아와 음악 교사로 재직했다.
1825년에는 시각을 잃었으며, 1829년에 잘츠부르크에서 숨을 거두었다.
마리안네가 세상을 떠나기 한두달 전에 메리 노벨로 (Mary Novello)라는 학자가 마리안네를 마지막으로 방문하였다.
그의 기록에 의하면 마리안네는 눈이 보이지 않아서인지 무척 기운이 없어 보였으며 아주 허약하여 말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
메리 노벨로는 마리안네가 생활이 곤궁하여서 삶에 지쳐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리안네는 무려 7,837굴덴이라는 거액을 유산으로 남겨 놓았다.
1829년 10월 29일 숨을 거둔 마리안네는 잘츠부르크의 장크트 페터 (St Peter) 수도원교회의 묘역에 안장되었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