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11월 13일, 덴마크계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카미유 피사로 (Camille Pissarro, 1830 ~ 1903) 별세
카미유 피사로 (프: Camille Pissarro, 1830년 7월 10일 ~ 1903년 11월 13일)는 덴마크계 프랑스인의 인상주의 화가다. 가장 훌륭한 근대 풍경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며, 감정은 섬세하고, 초기 농원 (農園)의 연작 (連作) 또한 아름다운 매력이 있다.
– 카미유 피사로 (Camille Pissarro)
.출생: 1830년 7월 10일, 샬럿아말리에
.사망: 1903년 11월 13일, 파리
.직업: pastellist, 제도사, 석판화가, 판화가, 화가, 그래픽 예술가
.학력: Académie Suisse (1859 – )
.스승: François-Édouard Picot, Isidore Dagnan, Henri Lehmann, Fritz Melbye
.제자: 폴 고갱
.사조: 인상주의, 신인상주의
.부모: 부) Frédéric-Abraham-Gabriel Pissarro, 모) Rachel Pissarro
.배우자: Julie Vellay (1871 – )
.자녀: Lucien Pissarro, Félix Pissarro, Georges Henri Manzana Pissarro, Paul-Émile Pissarro, Ludovic Rodo Pissarro, Jeanne Bonin-Pissarro, Jeanne Rachel Pissarro
.주요 작품: View of the Village of Éragny, Boulevard Montmartre, sunny afternoon, Hoar-Frost at Ennery, Two Women Chatting by the Sea, St. Thomas, Jalais Hill, Pontoise, Road to Versailles at Louveciennes (The Snow Effect), La Guaira, Panoramic View of Caracas, New Road, La Guaira, Inlet and sailboat, Les Couseses, Maiquetia River 등
카미유 피사로 (Camille Pissarro, 1830 ~ 1903)는 덴마크계 프랑스인으로 인상주의 화가이다. 가장 훌륭한 근대 풍경화가 중 한 사람인 피사로는 모네와 친구였고 르누아르, 마네와 가까이 지냈다. 피사로의 초기 풍경화들은 작가 에밀 졸라와 평론가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일반인들의 관심은 적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60년대 후반부터 피사로는 인상주의 화가들 사이에서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그는 주로 인상주의 화가들의 여러 작품들을 모아 전시회를 구성하거나, 각자 전시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1874년에 친구들과함께 인상파 전람회를 결성해서 여러 번 전시회를 가졌는데, 피사로는 그 중심에 서서 일생을 인상파적인 그림을 그렸다.
퐁투아즈 (Pontoise)에 잠시 살면서는 세잔과 고갱을 가르치기도 했다. 1885년 에라니 쉬르 엡트 (Éragnysur-Epte)에 살면서 차세대 네오인상주의 화가 폴 시냑과 조르주 쇠라와 교류를 했다. 피사로는 섬세한 터치로 물체가 가진 고유의 빛깔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시켰기에 그의 작품은 온기가 흐르듯 따뜻한 감정이 충만하다.
피사로는 눈병으로 시력이 약화되어 야외에서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자 파리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을 그리며 마지막까지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1903년 11월 13일, 그는 패혈증 (혈액 중독)으로 사망했다.
○ 생애 및 활동
덴마크령 서인도 제도중 하나였던 세인트토머스섬 (현재의 미국령 버진아일랜드)에서 태어났으며 12세 때에 프랑스 파리로 나가 도화 (圖畵)를 익힌 다음 회화에 뜻을 두고 1855년에 재차 동경하던 파리에 나타났다.
처음에는 코로와 도비니 (Charles-François Daubigny)의 풍경화에 매력을 느꼈고 연구소에서 모네와 세잔을 알게 되며 그 후에도 야외에 나가 햇볕 아래에서 풍경 그리기에 열중한다.
그는 루브센에 주거를 두고, 보불전쟁이 시작되자 전화 (戰禍)를 피하여 런던으로 가서 거기서 다시금 모네를 만난다. 두 사람은 런던에서 터너를 만나서 빛의 표현에 대한 지도를 받고 인상파의 표현을 완성시켰다.
그러나 전후 귀국해 보니 그의 집은 전화로 황폐되어 있었다.
피사로는 얼마 동안 퐁토아스에 살며 거기서 세잔을 만나 그를 인상파의 표현을 끌어들였다. 거기에서 1874년에 친구들과 더불어 인상파 전람회를 결성했다.
인상주의 화풍에 있어서 그의 영향과 헌신은 상당하다. 1874년부터 1886년까지 총 8회 열린 인상주의 전시회에 모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인상주의가 나아가야 할 길을 연구했다.
물론 모네, 마네, 르누아르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들에 비해 인지도가 낮을 수는 있지만, 카미유는 동료 인상파 화가들을 독려하고, 함께 논의하고, 그들이 경제적으로 힘들 때 자신의 집을 내어줄 정도로 인자한 인물이었다.
카미유는 동료들에게 있어 인상파의 맏형이자 아버지같은 존재였다. 평소 동료들은 카미유를 ‘아버지 피사로(Pere Pissarro)’라고 불렀으며, 폴 세잔의 경우 당시 유명했던 미술상 앙브루아즈 볼라르(Ambroise Vollard)에게 “나이든 피사로는 나의 아버지 같은 존재다. 매번 나의 고민상담을 들어주던 신과 같은 존재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카미유와 모네는 두 살 터울이었지만, 세잔과는 9살 모네와는 10살이나 차이가 났다.
프랑스에 인상파가 상당히 유명한 상황에서 새로운 화법을 적용해 인상주의를 해석하는 화가들이 생겨났다. 이른바 조르주 쇠라와 폴 시냑으로 대표되는 ‘신인상주의’다. 점묘법을 사용한 인상주의 작품은 카미유에게도 상당히 신선해 보였다. 기존 인상파 작가들 중 유일하게 신인상주의를 받아들이고 점뵤법을 사용해 작품을 내기도 했다. 나이는 가장 많았지만, 항상 열린 마음으로 미술을 바라본 것이다.
1884년 이후 완성된 카미유의 작품은 점묘법이 활용된 화풍이다. 그리고 이쯤부터 카미유는 퐁투아즈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골 마을 에라니 (Eragny)의 풍경을 자주 그렸다. 1887년 작품 ‘에라니에서의 건초 수확’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한눈에 달라진 화풍이 느껴진다. 이외에도 에라니를 대상으로 한 풍경화가 많다. 같은 공간이지만, 다양하게 변하는 에라니의 사계절과 햇빛을 묘사한 것이다.
인상주의부터 신인상주의까지, 카미유는 여러 동료 화가들을 뒷받침하는 소나무같은 사람이었다. 항상 그 자리에서 늘 헌신하고 도와주려는 아버지 같은 화가 카미유 피사로였다.
피사로는 인상파전 (印象派展)의 중심인물이 되어 그의 생애는 인상파적인 그림 제작으로 일관했다.
만년에는 루앵 항구나 파리의 오페라가 (街) 등의 풍경을 그렸다.
그는 1903년 11월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향년 73세로 별세했다.
○ 작품 세계
피사로의 작품에는 온기가 통하는 듯 따스한 감정이 충만하다.
인상파의 이론을 실천하여 섬세한 터치로 색채를 쌓음으로써 색채는 아로새기듯 빛나는데, 피사로는 단지 색채를 물체의 빛깔 이상으로 보는 자기의 감정의 언어로 하여금 섬세하게 감정을 펴고 있다.
○ 작품
주요작품으로 View of the Village of Éragny, Boulevard Montmartre, sunny afternoon, Hoar-Frost at Ennery, Two Women Chatting by the Sea, St. Thomas, Jalais Hill, Pontoise, Road to Versailles at Louveciennes (The Snow Effect), La Guaira, Panoramic View of Caracas, New Road, La Guaira, Inlet and sailboat, Les Couseses, Maiquetia River 등이 있다.
View of the Village of Éragny
Boulevard Montmartre, soleil après-midi
Hoar-Frost at Ennery
Two Women Chatting by the Sea, St. Thomas
Jalais Hill, Pontoise
Road to Versailles at Louveciennes (The Snow Effect)
Inlet and sailboat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