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성지 답사기 중에서 (4)
<시드니 인문학교실 제 2차 인문학여행팀> 여러분! 모두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홍길복입니다. 저는 아주 오래전 부터 어디 여행을 하게 되면 그때 그때 마다 여행일기를 쓰는 것이 하나의 습관 처럼 되어 왔습니다. 정확하게 세어보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썻던 여행일기가 아마도 한 200일 분은 될 것 같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더해 가는지라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런 여행일기를 쓸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올리는 글은 16년전에 썻던 글 중 일부입니다. 부족한 사람이 2007년 1월 15일 부터 약 3주에 걸쳐 서울에 있는 장로회신학대학 <성지 답사팀>과 더불어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 이스라엘, 이집트 등 5개국을 방문했을 때 썻던 <여행 일기> 중 한 부분입니다. 저는 그 때, 여행 중에 썻던 일기를 당시 시드니에서 발행되던 주간지의 요청에 따라 주 1회 씩 59회에 걸쳐 1년이 넘게 연재했었습니다. 물론 그 일기는 전문성을 지닌 글은 아닙니다. 전문가들이 읽으시면 잘못된 것들도 적지 않게 지적해 내시리라 생각되어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2023년 시드니인문학교실에서 준비하고 있는 <제 2차 인문학여행>의 참가자들과 함께 오래 전에 경험하고 생각했던 보잘 것 없는 이런 작은 여행 이야기 이지만 나누고 싶어서 우리가 방문하게 될 <이집트> 부분만을 추수려서 1주일에 한번 정도씩 몇번에 걸쳐 올려드릴려고 합니다. 이 글이 여행을 떠나기 전, 우리가 서로 더 가깝게 사귈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센 땅을 지나 나일강을 따라가다
1월 30일, 화요일입니다. 날씨는 맑고 쾌청한데다가 기온도 섭씨 20도 안팍입니다. 참 상쾌하고 기분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은 스에즈운하를 끼고 있는 아름다운 해변도시 이스말리야를 떠나 카이로를 향하여 달려갑니다.
중간에 우리 일행은 이곳 나일강 하류 삼각지에 있는 <고센, Goshen>지역을 둘러보았습니다. 이 곳은 그 옛날 요셉의 초청을 받아 이집트로 내려갔던 야곱과 그의 가족들이 처음으로 정착했던 지역입니다. <야곱이 유다를 요셉에게 미리 보내어 자기를 고센땅으로 인도하게하고, 그들이 모두 고센땅에 이르니 요셉이 친히 수레를 타고 고센으로 올라가서, 그의 아버지와 이스라엘을 맞이하였더라> (창46:28) 이는 그 동안 꼭 죽은 줄로만 알았던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대신이 되어 늙은 아버지와 형제들을 초청하여 넓고 기름지고 풍요로운 고센땅에 정착하게 되었다는 스토리입니다.
현재의 고센지역은 지중해로 흘러들어가는 나일강 하류 부근에 넓게 퍼져있는 <나일강 삼각지 Nile Delta>의 한 부분입니다. 이곳 나일강 하류 델타의 동쪽에는 <라암셋, Raamses>과 <비돔, Pithom>이 있습니다. 성서에도 등장하고 있는 이 고대 도시들은 지금 옥스포드나 켐브릿지를 비롯하여 하바드나 컬럼비아 같은 유수한 대학 고고학 팀이 대대적인 발굴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19세기 후반 부터 고고학이 학문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서구신학자들은 본격적으로 성서고고학(Biblical Archeology) 연구와 발굴에 뛰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를 비롯하여 메소포타미아의 거이 모든 지역에 대해 고고학적 발굴을 시작했는데, 그들 중 일부는 나일강에 물이 줄어드는 시기를 이용하여 여기 나일강 삼각지와 고센 지역도 집중적으로 발굴해 왔습니다. 지금은 거이 폐허가 되어 그 옛날의 영화와 흔적을 찿아내어 재현해 내기가 어렵지만, 그래도 지난 백여년 동안 성서고고학자들은 지치지 않고 발굴을 계속하여 지금은 구약성서의 기둥이랄수 있는 출애굽 현장인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의 흔적을 어느 정도는 재현해 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들이 있다고 자랑하는 한국교회와 신학교들이 언제나 이런 고고학을 통한 학문의 세계에 발을 디딜수 있을지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성서에는 <바로, Pharaoh>라는 이름으로 붙여진 왕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일찌기 요셉을 총리로 세웠던 사람도 바로왕있는데, 그로부터 400년이 지난 모세시대, 출애굽시대의 왕 역시도 <바로>라고 표기합니다. <파라오, Pharaoh>, 우리 말 발음으로는 <바로>라고 부르는 이 이름은 사실 고유명사가 아닙니다. <바로>는 <고대 이집트의 모든 왕들>을 총칭하는 보통명사입니다. 원래 그 뜻은 <큰 집> 이라는 의미로 왕들이 사는 큰 집, 왕궁을 나타내는 단어였으나 차츰 왕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동일어가 되었습니다. 파라오는 고대 이집트에서는 정치적으로만이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최고의 통치자요, 지배자였습니다. 그러므로 파라오는 인간이면서도 신으로 숭배 되었던 그 시대, 모든 이집트의 왕들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이집트에서는 예수 보다 수천년이나 앞서서 파라오를 하느님이면서도 동시에 사람인 神人兩性을 지닌 존재로 일컬었습니다.
<요셉이 바로의 명령에 따라 그의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거할 곳을 주되 이집트의 좋은 땅 라암셋을 그들에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해 주었고 또 그의 아버지와 형들과 그 온 가족들에게 먹을 것을 넉넉하게 주어 섬기도록 하였더라> (창47:11-12) <바로가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하며 자기를 위해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였더라> (출 1:11) 요셉시대의 이집트 왕도 바로이고, 400년 후 모세 시대의 이집트 왕도 바로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오늘날 역사학자들은 출애굽시대의 성서기록과 기타 다른 이집트 문서들 속에 등장하는 <바로>라는 인물은 <라암셋 2세>라고 보고 있습니다. <라암셋 2세>는 <온, On>지역, 곧 지금의 <카이로> 근방에 있던 수도를 여기 <고센땅>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수도를 자신의 이름을 따서 <라암셋>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라암셋 2세>가 새 수도 <라암셋>을 건설할 때 동원한 인력은 이스라엘백성들 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400년 전, 요셉시대와는 달리 신분 상태가 급격하게 떨어져 노예로 전락되어 있었습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그들은 거대한 이집트왕조 속에서 소수 민족이요, 노예로 부림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라암셋> 옆에 있는 현대 도시 <텔 에드 다바, Tel Ed-Daba>에 잠시 들렸습니다. 여기는 나일강의 지류들이 둘러싸고 있는 습지대입니다. 여기가 3천년 전 이스라엘이 이집트땅에서 학대를 받으면서 벽돌을 구웠던 바로 그 자리라고 합니다. 옛날의 유적지 처럼 보이기는 했지만는 선명하게 눈에 띠는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가난한 동리 아이들이 몰려와 우리들의 관광 버스를 둘러싸며 외쳤댔습니다. 몇몇이 1달라 짜리 지폐나 사탕을 나누어 주면서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태양신을 모셨다고 하는 신전 자리와 왕궁터라고 하는 곳도 둘러 보았으나 기초적 고고학공부가 부족한 우리들은 별로 알아보기가 쉽질 않았습니다. 어떤 집들은 지금도 관광객들을 위해 문설주에 붉은 색 페인트를 칠해놓고 이것이 3천년전 출에굽때 발랐던 어린양의 피라고 말하지만 그져 웃음이 나올 뿐이었습니다.
고센, 라암셋, 그리고 텔 에드 다바를 떠난 우리는 나일강의 지류를 옆에 끼고 계속 카이로를 향하여 달렸습니다. 카이로는 아프리카 내륙에서 발원하여 흘러온 나일강이 여러 개의 지류로 갈라져 지중해로 들어가는 삼각형의 꼭지점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꿈에 나일강가에 서서 보니 살찌고 아름다운 일곱 암소가 나일강에서 올라 오더라>(창 41:17-18)
<너는 나일강 물을 조금 떠다가 땅에 부으라 네가 떠온 나일강 물이 땅에서 피가 되리라>(출 4:9)
<모세와 아론이 바로와 그 신하의 목전에서 지팡이를 들어 나일강을 치니, 그 물이 다 피로 변하고, 나일강의 고기가 죽고, 악취가 나서 애굽사람들이 나일강 물을 마시지 못하더라>(출 7:20-21)
나일강을 모르면 이집트를 알수 없습니다. 나일강은 이집트의 생명수이고 젖줄입니다. 나일강이 없었으면 이집트도 없었을 것입니다. 나일강은 세계에서 제일 긴 강입니다. 그 길이는 무려 6,700킬로미터나 됩니다. 아프리카 내륙에 있는 <빅토리아 호수>에서 발원하여 <이디오피아>의 산악지대를 통과하여 <수단>의 남쪽에 이르러, 다른 지류들과 합쳐져서 지중해로 빠져가는 강이 나일입니다. 나일강은 수천 킬로를 흐른 후 카이로 북방에 이르러 여러개의 지류들로 갈라지면서 광대한 <나일강 델타, Nile Delta>를 마듭니다. 여기서 형성된 삼각주는 아주 비옥했습니다. 해마다 7월 부터 10월 까지 계속되는 홍수는 이 지역에 수해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류로 부터 여러가지 토사들을 흘러 보내어, 강 주변의 땅을 기름지게하고 비옥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나일강의 홍수는 자연퇴비를 보내어 농사가 잘 되고 수목들이 잘 자라게 해 주었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연중 행사 처럼 나일강의 범람 이후 물이 빠져 나가면 나일이 만들어 준 <그린벨트>를 이용하여 농사를 짖고 생활을 영위해 왔습니다. 검고 기름진 이 <흑토의 나일>은 이집트 전 국토에 비하면 그리 큰 면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자연의 순환이 만들어 준 나일이 이집트의 경제와 국방, 사상과 문화, 철학과 종교를 만드는데는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대로 대부분의 인류문명들은 크고 긴 강을 끼고 발전되어 왔습니다. 나일강은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한곳입니다. 나일강은 이집트에 천문학과 농업 뿐만 아니라, 각종 토목공사와 건축기술을 발전케 해 주었으며, 밤과 낮과 사계를 주장하는 태양신을 중심한 종교와 그에 따른 미술과 조각과 음악을 만들어가게 해 주었습니다. <피라밋>과 <스핑크스>를 위시한 <룩소르, Luxor>의 <카르낙, Karnak> 신전 등은 모두 나일강이 만들어 낸 <나일의 작품들>이라 할수 있습니다. 수년전 우리 딸 지은이가 이곳 나일강에서 작은 조각배를 타고 3일 동안이나 상류로 여행을 했던 것도 인류학을 공부한 한 젊은이의 호기심과 기개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차창으로 내다 보이는 나일강 주변은 정말 풍성하고 살찐 암소 일곱마리의 나라 처럼 보였습니다. 석류, 포도, 무화과, 대추야자, 사탕수수, 종려나무, 파피러스, 밀, 보리, 무우, 파, 마늘이 무진장으로 널려 있습니다. 세계 최대의 맹고 농장도 여기에 있습니다. 먹고 사는 것 만큼은 부족함이 없고 넉넉했던 이런 땅에서 430년 동안이나 살아왔던 이스라엘백성들이 이 풍요의 땅을 떠나 메마른 광야로 나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엑서더스, Exodus> – 이는 분명 물질적 풍요를 포기한 정신의 자유, 노예의 신분을 벗어나 자유인이 되는 행진, 육체적 세계를 벗어나는 영혼의 순례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풍성한 강 나일을 조금씩 뒤로하니 가난한 사람, 이집트인들이 눈 앞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은 풍성한데 왜. 어째서 이렇듯 풍성한 자연 속에서사는 사람들은 이렇게도 가난할까? 자연과 인간은 왜 이렇게 꺼꾸로 가는 것일까? 순리를 벗어나 억지로 만들어내는 인간사를 바라 보면서 <자연은 공평하지만 인간은 불공평하다>는 베두인들의 이야기를 곱씹어 봅니다.(계속)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