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7월 7일, 노구교 사건으로 중일전쟁 (中日戰爭, 1937 ~ 1945) 발발
중일 전쟁 (中日戰爭)은 1937년 7월 7일 일본의 중국 대륙 침략으로 시작되어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계속된 중화민국과 일본 제국 사이의 대규모 전쟁이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중국 항일 전쟁 (中國抗日戰爭), 일본에서는 일중 전쟁 (일: 日中戦争) 혹은 지나 사변, 서구권에서는 제2차 중일 전쟁 (Second Sino-Japanese War)이라고 부른다.
중일 전쟁은 20세기 아시아 최대 규모의 전쟁이었다.

– 중일 전쟁 (中日戰爭)
.제2차 세계 대전의 태평양 전쟁의 일부
.날짜: 1937년 7월 7일 ~ 1945년 9월 2일
.소규모 충돌: 1931년 9월 18일 ~ 1937년 7월 7일
.장소: 중국 본토, 버마,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결과: 연합국의 승리, 일본 제국의 무조건 항복, 일본은 타이완과 펑후 제도를 중화민국에 반환, 중화민국의 연합국 지위 인정, 중화민국이 유엔 상임 이사국이 됨,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
1931년 이후로 두 나라 사이에 간헐적으로 교전이 있었으나, 전면전은 1937년 이후로 시작되었으며, 일본의 연합국에 대한 항복과 함께 1945년 9월 2일 종료되었다.
전쟁은 수십 년간 계속되어 온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의 결과였으며, 원료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을 정치·군사적으로 지배하려는 속셈에서 비롯되었다. 중국의 민족주의와 민족자결주의는 전쟁을 중국의 승리로 이끌었다.
1937년 이전에는 양쪽이 다양한 이유로 소규모, 국지적 전투를 벌였다.
1931년 9월 18일 일본은 주 사변을 일으켰고, 그 연장에서 일어난 1937년의 루거우차오 사건 (중: 盧溝橋事件, 노구교 사건)으로 두 나라 간의 전면전이 시작되었다.
루거우차오 사건 (노구교 사건)은 1937년 7월 7일에 베이핑 (현 베이징 시) 서남쪽 방향 루거우차오 (루거우 다리, 盧溝橋)에서 일본군의 자작극으로 벌어진 발포 사건으로, 중일 전쟁의 발단이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 제국과 중화민국은 전쟁 상태로 돌입, 그 후 전선을 확대하게 되었다.
1937년부터 1941년까지의 기간에는 중국이 단독으로 일본에 맞섰으며 진주만 공격 후 중일 전쟁은 더 큰 규모의 제2차 세계 대전에 포함되었다.
이후 일본군의 전력은 급속히 쇠퇴했고 1944년 즈음에 일본은 이른바 ‘대륙타통작전’을 개시하면서 반격을 꾀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고, 1945년 8월 15일 천황 히로히토가 연합군에게 발표한 차라리 무조건 투항 및 전면 항복 선언과 아울러 같은 해 9월 2일 연합국에 대한 일본의 항복 문서 조인식을 끝으로 중일전쟁 역시 종결되었다.
사상자는 2,000만명이 넘었다.

– 종전과 영향
.종전
1945년이 들어서면서 일본의 패색이 더욱 짙어졌다. 미국이 8월 6일에는 히로시마에, 9일에는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고, 곧이어 소련도 일본 제국에 선전포고를 하며 ‘만주 전략공세작전’을 감행했다.
결국 8월 15일 일왕 히로히토는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고 9월 2일 미국 군함 미주리호에서 정식 항복문서가 조인됨으로써 태평양 전쟁과 함께 중일 전쟁도 막을 내렸다. 참고로 중국 주재 일본군은 9월 9일에 난징에서 정식 항복 문서가 조인됨에 따라 그때 정식으로 중화민국에 항복하였다.
.종전 후와 전쟁의 영향
중일 전쟁 기간 중, 중국 대륙의 주요 도시들은 일본군에 의해 점령당하였고 수많은 중국인들이 희생되었다.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여 전쟁이 끝나자, 평화를 바라던 중국인들의 열망에 따라 내전을 피하기 위해 중국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 간의 회담이 열렸는데, 여기서 ‘쌍십협정’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은 이 협정을 무시하고 국민정부에게 계속 군사적 도발을 감행하여 장제스는 공산당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개시하였고, 국공 내전이 재발발하게 되었다. 국민당은 내전에서 공산당에 패하여 1949년 12월 타이완으로 정부를 옮겼다. 한편, 공산당은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하면서 중국은 분단되었다.
중일전쟁은 비슷한 시기에 유럽에서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과 1941년 발발한 태평양 전쟁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고 있으나, 일본 제국이 중국 대륙을 침략하지 않았다면 태평양 전쟁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동아시아 역사에서 매우 큰 전환점이 된 중요한 전쟁 중 하나이다.
이 때문에 오늘날에는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을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으로 보는 유럽 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 1937년 7월 7일 발발한 중일 전쟁을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가 대두되고 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