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무령왕릉 : 고대 동아시아 문명 교류사의 빛
권오영 / 돌베개 / 2005.6.24
이 책은 무령왕릉이 도굴되기 쉬운 구조에도 불구하고, 도굴의 위기를 넘기고 살아남은 기적에 가까운 이야기를 소개한다. 뿐만 아니라 무령왕릉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당시의 장례 풍습과 고대의 장례 제도를 살피고, 무령왕릉의 구조와 건축 원리를 분석함으로써 백제 건축술의 국제성과 독창성을 조명한다. 이와 함께 저자는 5~6세기 고대 동아시아 문명 교류를 다각적, 입체적으로 제시하여 한-중-일 고대사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 웅진기 백제사 연구의 키워드 무령왕릉의 발굴과 조사의 전모를 기록하고, 이를 통해 드러난 백제 문화를 따라 고대 동아시아의 문명 교류 관계를 조명하는 책이다
무령왕릉을 통해 5~6세기 고대 동아시아 문명 교류에 대한 신선하고 다각적인 시각을 제시하며, 한-중-일 고대사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열어준다.
1, 2부에는 도굴로부터 살아남은 무령왕릉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3~5부에는 무령왕릉을 통해 백제의 풍습과 문화를 추적한다. 마지막 6~7부에서는 무령왕릉 출토 유물을 통해 중국, 고구려, 신라, 가야, 일본 등과의 문화 교류 관계를 조명한다.

○ 목차
‘테마한국문화사’를 펴내며
Discovery of Korean Cultures
The Tomb of King Muryoeng
저자의 말
제1부 | 무령왕릉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1. 무령왕릉을 보면 백제가 보인다
2. 고분을 통한 역사와 문화의 복원
제2부 | 무령왕릉 발굴 이야기
1. 필생의 숙제로 다가온 무령왕릉
2. 도굴의 피해를 비껴간 무령왕릉의 행운
3. 무령왕릉 발굴조사의 숨 가쁜 일지
제3부 | 무령왕의 생애와 웅진기 백제의 역사
1. 격동의 5세기
2. 무령왕 출생의 수수께끼
3. 망국의 한을 품고 웅진으로
4. 왕족들의 피로 얼룩진 웅진
5. 비로소 재기하는 백제
제4부 | 무령왕릉을 통해 본 백제의 사회 풍습
1. 묘지와 매지권
2. 무령왕 부부의 장례 과정
제5부 | 무령왕릉을 통해 본 백제의 건축술
1. 백제 왕릉의 변천
2. 무령왕릉의 구조와 건축 원리
3. 목관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제6부 | 백제 장식 미술의 아름다움
1. 무령왕 부부를 치장한 물건들
2. 베개와 발받침
3. 환두대도와 장식 도자
4. 다양한 청동 유물
5. 수입된 중국 도자기
6. 무덤을 지킨 돌짐승, 진묘수
7. 백제 금속공예의 진수
제7부 | 주변 국가와 전개한 문화 교류
1. 중국과의 문화 교류
2. 신라와의 관계
3. 가야와의 관계
4. 일본과의 문화 교류
부록
발굴 현장으로 보는 무령왕릉의 유물 배치도
왕의 시신 주변의 유물 배치도
왕비의 시신 주변의 유물 배치도
또 하나의 걸작 금동대향로
이 책을 만드는 데 도움을 받은 문헌들
도판 목록
찾아보기
○ 저자소개 : 권오영
현장을 지휘하며 진실을 발굴하는 역사학자.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로,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고대 국가의 형성과 사회 구조, 외부와의 교류사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역사학과 고고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풍납토성 경당지구 발굴 현장을 지휘하면서 한성 백제 시대의 숨겨진 역사를 밝혀냈으며, 천안 청당동 유적, 순천 대곡리 유적 등 중요 유적을 발굴했다.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몽골, 러시아, 베트남 등 해외 유적의 발굴 조사에도 힘쓰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동아대학교 사학과 교수, 한신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를 거쳤으며, 중부고고학회 회장, 백제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서울시 기념물분과 문화재위원과 문화재청 동산문화재, 매장문화재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이 책에서는 유물과 유적의 발굴로 고대사의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들을 소개하며, 한반도를 넘어 세계로 나아갈 한국사의 방향을 안내하고 있다.
[차이나는 클라스](JTBC)에서 고대 국가 백제를 주제로 강연했으며, 저서로는 『해상 실크로드와 동아시아 고대국가』, 『고대 동아시아 문명 교류사의 빛, 무령왕릉』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이런 점에서 무령왕릉이 가루베에 의해 발견되지 않고 수십 년 후에 발견된 것은 너무도 다행스런 일이다. 그렇다면 송산리 6호분을 조사한 가루베는 왜 바로 뒤에 있는 무령왕릉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그가 풍수지리설을 신봉하였기 때문이란 견해가 유력하다. 6호분은 그 규모로 보아 왕릉으로 단정할 만한데 가루베는 이 무덤을 무령왕릉이라고 믿었다. 왕릉에 바짝 붙어 또 다른 왕릉이 자리잡을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기에 뒤로 이어지는 구릉은 무덤이 아니라 6호분을 감싸는 북쪽의 주산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가루베의 이 오판 덕분에 무령왕릉은 일제강점기에 파헤쳐지지 않고 수십 년이 지난 1971년에야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렇듯 무령왕릉이 1,4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고이 보존되다가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은 매우 극적이며 기적에 가깝다. 하지만 1971년이란 시점도 무령왕릉이 세상에 모습을 보이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였다. 그 당시 우리 학계의 연구 여건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하였기 때문이다.
현재의 발굴 기술과 분석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여 발굴했다면 무령왕릉이 간직했던 엄청난 정보를 고스란히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보다 미래에 발견된다면 더더욱 그렇겠지만. — p.45
무령왕릉과 남조 묘의 비교
이렇듯 무령왕 부부가 묻힌 왕릉의 축조에는 중국 기술자의 조력이 많았을 것이 분명하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 백제와 중국 남조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따라서 무령왕릉의 구조는 당연히 남조 무덤과 비교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무령왕릉 자체에만 매몰된다면 나무는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꼴이다.— p.128

○ 출판사 서평
– 무령왕릉을 보면 고대 동아시아가 보인다!
무령왕릉의 발굴과 조사의 전모를 밝히고, 이를 통해 드러난 백제 문화를 따라 고대 동아시아의 문명 교류 관계를 조명한다. 사라질 뻔한 우리 고대사의 장면들을 생생하게 되살리는 한편, 한발 더 나아가 5~6세기 한중일 교류사에 대한 신선하고 다양한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고대사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연다.
– 백제사 연구의 키워드 무령왕릉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고대 유적 가운데 하나인 무령왕릉. 잘 알려져 있다시피 백제 무령왕과 왕비의 능이다. 1971년 우연히 발견, 발굴조사됨으로써 1,400년의 기나긴 잠에서 깨어나 세상에 그 위대한 존재를 알렸다. 함께 매장된 묘지의 기록을 통해 주인공이 확실히 밝혀진 고대 무덤이기에, 무령왕릉의 존재는 더욱 극적이고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또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2,900여 점의 유물은 백제 문화의 정수로서, 5~6세기 고대 한반도의 역사를 가름하는 데 결정적인 자료로 평가되어 왔다.
– 우리는 ‘무령왕릉’을 정말 알고 있을까?
하지만 과연, 왕릉이 발견된 지 30년이 훌쩍 지난 오늘날까지, 무령왕릉에 대해 제대로 밝혀진 사실은 얼마나 될까? 또한 무령왕릉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는 연구나 저작은 얼마나 될까? 17시간 만에 끝났다는 졸속 발굴의 오명 속에 무령왕릉의 발굴일지가 간간히 매체에 등장하고, 백제사를 다룬 책들 속에 무령왕릉의 이야기가 단편적으로 끼어 등장하며, 엄청난 양의 화려한 유물이 특별전을 통해 선보이기도 했지만, 무령왕릉과 부장품에 대해 정작 우리가 제대로 아는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 무령왕릉에 관한 책, 왜 이제껏 한 권도 없었는가
우리의 문화유산 가운데 무령왕릉만큼 국제적인 것은 드물다. 이는 역으로, 무령왕과 그 왕릉에 대한 연구가 어렵고 복잡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학제적으로는 고고학과 역사학, 미술사학에 걸쳐 있고, 연구 영역으로는 한중일 삼국을 포괄한다. 한국 내에서도 신라와 가야, 나아가 고구려와 영산강 유역 등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넓은 시각과 다양한 연구 방법론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무령왕릉이 발견된 지 3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연구 성과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무령왕릉을 통해 5~6세기 동아시아 문명 교류의 현장으로!
이 책은 무령왕릉과 무령왕릉 부장품에 대한 그간의 다양한 연구 성과를 오늘의 시점에서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무령왕릉을 중심축으로 한중일을 포괄하는 고대 동아시아 문화 교류에 대한 다각적인 시각과 문제의식을 제시한다. 저자는 그간 한국 고대의 국가 형성과 대외교류 연구에 주력해 왔으며, 최근에는 주로 백제시대를 연구하고 있다. 다수의 고대 국가 유적의 발굴과 연구를 주도해왔으며, 2001년 남조 양나라의 유적?유물을 답사한 후 백제와 중국 남조, 일본의 고분시대를 연결하는 고대 동아시아 문명 교류사에 관심을 지니게 되었고, 이것을 푸는 열쇄가 무령왕릉임을 절감하여 이에 대한 연구에 몰두해 왔다. 무령왕릉을 제대로 볼 수만 있다면, 우리는 백제라는 한 고대국가의 역사가 아니라, 5~6세기 동아시아 문명 교류의 숨 가쁜 역사를 생생히 그려낼 수 있는 것이다.
– 무덤에서 깨어난 백제 문화의 신비, 웅진기 백제의 살아남은 역사 무령왕릉!
.1-2부 도굴의 위험으로부터 살아남은, 기적에 가까운 무령왕릉의 풀 스토리
책의 초반부는 무령왕릉 탐험기의 형식을 취한다. 저자가 한성기 백제 연구와 풍납토성의 기억에서 웅진기 무령왕릉 연구로 옮겨가, 운명과도 같이 필생의 숙제로 삼게 되는 과정, 2001년 무령왕릉 발굴 30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접한 발굴 담당자들의 생생하고 충격적인 그날(무령왕릉 발굴)의 술회, 남조 문화 특히 ‘양나라’의 문화를 접하고는 결코 떨칠 수 없었던 무령왕릉에 대한 갖가지 의혹들, 도굴되기 쉬운 구조에도 불구하고 몇 번의 위기를 넘기고 도굴로부터 살아남은 기적에 가까운 무령왕릉의 풀 스토리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3-5부 ‘무령왕을 보면 백제가 보이고, 무령왕릉을 보면 동아시아가 보인다!’
무령왕의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웅진기를 사이에 둔 한성과 사비기의 백제 역사를 알아야 한다. 3부에서는 이를 위한 기초적인 백제사를 다루고 있다. 종교와 사상, 정치와 문화 면에서 부흥기를 마련한 무령왕대를 중심으로 전후 파란만장한 백제사가 무령왕의 탄생에 얽힌 미스터리와 함께 전개된다. 4부에서는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무령왕의 지석을 중심으로 당시의 장례 풍습과 고대의 장례 제도를 살핀다. 여기서는 27개월에 걸친 무령왕의 장례 과정과 무령왕비의 추가 매장 과정이 필자의 독특한 내레이션 형식으로 재현된다. 5부에서는 한반도 고대 국가의 무덤 양식들에 비해 ‘벽돌무덤’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띠고 있는 무령왕릉의 구조와 건축 원리를 살핌으로써, 백제 건축술의 국제성과 독창성을 조명한다.
.6-7부 중국-한반도-일본을 잇는 문화의 고속도로를 달리다!
6부에서는 무령왕릉 출토 유물 일체를 다루고 있다. 관식, 금동 신발, 환두대도, 귀걸이, 허리띠, 그리고 수입된 중국의 자기들과 청동 유물 등을 통해서 시차 없이 받아들여지고 새로이 창조된 백제 문화의 국제성과 독창성에 다시 한번 주목하게 된다. 이들 무령왕릉 출토 유물을 중심으로 7부에서는 백제와 중국, 고구려, 신라, 가야, 일본 등과의 문화 교류 관계를 각국에 남아 있는 유물과 유적을 통해 다각적, 입체적으로 살피고 있다.
특히 무령왕릉과 깊은 관계를 보여주는 중국 남조, 그중에서도 양나라의 무덤들과 그 주변 문화를 치밀하게 실사하였으며, 일본 고분시대 유적인 후지노키 고분, 다카이다야마 고분, 간논야마, 긴레즈카 고분 등에 대한 조사연구를 통해 일본과 백제와의 문화 영향 관계를 하나하나 풀어가고 있다. 그밖에 대벽건물지, 전방후원분, 횡혈묘 등 한일 고대사의 다양한 논쟁거리를 실질적인 자료 제시를 통해 분석하고 있다. 무령왕대 전후의 한반도와 중국 남조 양나라, 일본 고분시대를 관통하는 역사의 삼각관계를 한눈에 꿰어볼 수 있는 부분이며, 이를 통해 5~6세기 동아시아 문물 교류의 역사를 다시 한번 재인식할 수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