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2년 4월 18일, 영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 (David Ricardo, 1772 ~ 1823) 출생
데이비드 리카도 (David Ricardo, 1772년 4월 18일 ~ 1823년 9월 11일)는 영국의 경제학자이다. 영국 고전파의 이론 체계를 완성, 애덤 스미스와 함께 그 대표자이다.

– 데이비드 리카도 (David Ricardo)
.출생: 1772년 4월 18일, 영국 런던
.사망: 1823년 9월 11일, Gatcombe Park
.배우자: 프리실라 앤 윌킨슨 (1793년–)
.자녀: 데이빗 리카르도, 오스만 리카르도, 모티머 리카르도, 사라 리카르도 포터
.영향을 준 인물: 애덤 스미스, 제러미벤담, 제임스 밀, 이븐 할둔
.영향을 받은 사람들: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 존 메이너드 케인스, 피에로 스라파, 헨리 조지
영국 잉글랜드 출신의 고전학파 경제학자이다. 애덤 스미스를 이어서 고전학파 경제학을 확립시켰다. 절대우위론을 주장한 것은 스미스이고, 그에 대항하여 비교우위론을 주장한 것이 리카도이다.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데에 비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인류는 멸망할 것이라는 그 유명한 인구론을 주장한 맬서스와는 서로 논쟁을 주고 받는 친구 관계였다고 한다.
리카도가 후대에 남긴 유명한 주장으로는 비교우위론 (Comparative advantage), 노동가치설 (Labor theory of value), 차액지대론 (Differential rent theory)이 있다.
그의 비교우위론은 각국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산업에 집중하고 다른 국가와 무역하는 것이 양국 모두에게 유리하다는 국제 분업 이론이다.
그의 노동가치설은 애덤 스미스의 노동가치설을 이론적으로 다듬은 것으로 이후 마르크스의잉여가치론으로 비판, 계승된다.
그의 차액지대론은 인구가 늘어나면 자본가, 노동자, 지주 중에서 지주가 제일 돈을 많이 번다는 이론으로 지주가 차액지대라는 불로소득을 취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 생애 및 활동
데이비드 리카도는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유대인 가족의 셋째로 런던에서 태어낫으며, 14세 때까지만 정규 교육을 받고 이후에는 부친의 사업인 중권업에 종사했다.
21세 때 퀘이커교도 여성과 결혼하면서 가족과 결별한 후 그는 독립적인 사업을 영위해 30세가 되기 전에 이미 많은 재산을 모았다.
그는 1799년 휴양지에서 우연히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읽고 경제학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스파라드 유대인으로 스미스의 <국부론>을 읽고 경제학 연구에 뜻을 두어 경제학과 자연 과학 연구에 전념하였다.
데이비드의 아버지는 런던 증권거래소의 중개인이어서 리카도는 아버지로부터 증권거래에 대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21세에 그는 퀘이커교도인 프리실라 윌킨슨과 결혼하기 위해 아버지와 결별하고 결국 유니테리언주의로 종교를 전향하였다.
그의 부모는 그 이후로 그와 절교하였다.
1809년 통화 문제에 관한 <금의 가격>과 <떨어진 곡물값이 자본 이윤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1817년 <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를 발표함으로써 그의 방법론을 체계화하고 이론 경제학자로서의 지위를 굳혔다.
이어 지대론을 기초로 하여 노동 가치설, 차액 지대론 등 분배의 여러 법칙을 밝혔으며, 그 밖에도 잉여 가치론, 이윤율 저하 이론, 국제 무역 이론 체계를 완성함으로써 후세의 경제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스미스의 절대 우위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비교 우위론을 발표했다.
1819년 이후 종신 하원 의원이 되었다. 참고로 그는 맬서스와 친한 친구였으며 유서에 있던 3인의 재산 상속인에도 포함시켰다.
또한 그는 노예 폐지론자로 동인도 회사의 회의에서 노예제도가 영국의 국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였다.
1823년 급성뇌질환으로 사망할 때까지 경제학 연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 업적
- 노동가치이론 / 노동가치설 (labor theory of value)
노동가치이론은 훗날 한계효용학파가 나타나기 전 초창기 경제학의 특징인 객관적 가치론의 대표적인 학설이다. 간단히 말해 모든 물건을 가치 있게 만든 것은 노동이란 주장이다. 이 노동가치설은 마르크스에게 영향을 주었다.
현대 주류 경제학 관점에서 노동가치설은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이론이다. 한계효용 (marginal utility)학파가 등장하면서 노동가치설은 빛을 잃었다. 한계효용학파는 가격은 공급자 (노동자)가 아니라 수요자 (소비자) 입장에서 결정된다고 본다.한계 효용 학파에 따르면, 합리적인 경제주체는 한계 효용이 한계 비용과 같아지는 지점을 선택한다. 한계효용학파에 따르면 노동자가 얼마나 힘들게 노동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고객이 얼마나 만족했느냐에 따라서 가격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리카도의 노동가치설은 우리의 주관적 요인, 우리의 기호나 우리가 느끼는 효용에 의해서 상품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실질적으로 대상에 투여한 객관적 대상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주장인데, 애덤 스미스와 리카도는 그 객관적 대상을 노동이라고 본 것이다. 이 노동을 시간이라는 단위로 측정하여 그 구체성을 사상 (버림)하면 추상적이고 계측 가능한 대상으로서의 노동이 도출되고 이를 얼마나 투입했느냐가 곧 상품의 가치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가치에 의해서 사람들은 교환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훗날 마르크스는 리카도의 분석에는 사회적 차원에서의 경쟁과 가치 이전의 동학이 배제되어 있어 충분한 설명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비판하면서 자신의 노동가치이론을 발전시키게 된다.
- 비교우위론 (comparative advantage)
비교우위론은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리카도가 처음 주장할 때만 하더라도 낯설고 반직관적이어서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리카도가 죽고 난 뒤 20여년이 더 지나서야 영국은 리카도의 주장처럼 식량 수입을 제한하는 곡물법을 폐지했다.
- 차액지대론 (differential rent theory)
토지를 임대하는 지주계층, 토지를 임차하여 수익을 얻는 자본가계층, 토지에 노동력을 공급하는 노동자계층이 있다고 하자. 이럴 경우 자본가는 지주에게서 토지를 임차하고, 생산된 수확물로 이익을 얻는다. 그런데 토지의 질은 천차만별이며, 따라서 수확물의 양도 천차만별일 것이다. 그렇기에 토지의 질에 따라 지대가 달라질 것이고, 자본가는 최대의 이익을 얻기위해 가장 투자 지대대비 수확물이 많은 토지를 임차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자본가들은 가장 이익이 높은 토지를 임차하려 할 것이고, 이것은 이익을 평준화시키는 과정을 가져오기에 결국 어떤 토지를 임차하더라도 이익은 동일할 것이다. 즉, 질이 높은 토지나 질이 낮은 토지나 수확량은 다르더라도, 임차시 수익은 동일해진다. 그렇기에 자본가들은 이익을 추구하더라도 모두 같은 이익을 얻을 수밖에 없으며, 결국 토지를 임대하는 지주계층의 이익만 커진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이익추구를 경제의 가장 큰 발전요소로 본 리카도는 자본가의 이익을 더 키워야 된다고 보았으며, 결국 자본가의 이익을 키우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소득(의식주의 최저욕구만을 충족시키는)을 얻을 수밖에 없다고 본 이론이다.
리카도가 살던 당시 영국은 밀의 수요가 급증하여 밀을 수입해 오고자 했으나 지주들이 반대하였다. 값싼 밀이 수입되면 영국 내 밀 가격이 급락할 것이고, 그러면 밀 경작지인 땅값도 급락하니 반대하는게 당연했다.리카도는 밀을 수입하지 않아 밀값이 올라가는 상황에서는 자본가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닌 땅 주인만 부자가 된다 (차액지대론)고 주장하며 영국 국회의원들을 설득하고자 했었다.
그 이유는 당시에 나폴레옹 전쟁 전후으로 밀값이 폭등으로 경제가 파탄날 지경이 되자 리카도와 많은 정치인들이 곡물법을 폐지하고자 했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리카도가 죽고나서 몇 십년 후인1846년 아일랜드 대기근 계기로 폐지된다.
다만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며 전체적으로 폭등했던 (밀 포함) 물가가 내려가고 있었는데, 지주들이 곡물가격만은 유지하기 위해 로비를 한 결과였다. 보통 산업화 테크트리가 식량가를 억제해 도시 노동자들을 싸게 부려먹는 것이었음을 고려하면 영국은 반대로 돌아간 셈이다.
○ 평가
리카도는 고전파 경제학자 가운데 가장 엄격한 논리적 능력을 갖춘 이론가로 인정 받는다.
그는 복잡한 현실을 추상화한 단순한 모델을 구축해 실천적 결론을 이끌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 경제학에서 지배적인 연구 방법으로 사용되는 연역적 분석 방법을 확립했다.
또한 그는 애덤 스미스의 노동 가치론을 발전시켜 고전학파의 한계 내에서 완성했으며, 차액 지대 이론과 비교 생산비 이론을 정립했다.
리카도의 이론은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신고전학파와 마르크스학파 등 경제학의 거의 모든 학파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 저서
주요저서로 곡물법에 반대하기 위해 리카도가 쓴 소책자 『곡물의 높은 가격이 자본의 이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시론』(1815)을 발전시켜 주저인 『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1817)를 간행했다.
그 외의 저작으로서는 『경제적이고 안정된 통화를 위한 제안』(1816)이나 『농업보호론』(1822) 등이 있다.
- Works
The High Price of Bullion, a Proof of the Depreciation of Bank Notes (1810), which advocated the adoption of a metallic currency.
Essay on the Influence of a Low Price of Corn on the Profits of Stock (1815), which argued that repealing the Corn Laws would distribute more wealth to the productive members of society.
On the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and Taxation (1817), an analysis that concluded that land rent grows as population increases. It also clearly laid out the theory of comparative advantage, which argued that all nations could benefit from free trade, even if a nation was less efficient at producing all kinds of goods than its trading partners.
His works and writings were collected in Ricardo, David (1981). The works and correspondence of David Ricardo (1st paperback ed.).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교보문고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