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이준 열사 그 멀고 외로운 여정 : 검사의 길 특사의 길 국민 계몽의 길
(사)일성이준열사기념사업회 / 나무발전소 / 2014.9.24
- 헤이그 특사 이준 평전『이준 열사 그 멀고 외로운 여정』
우리 역사에서 손꼽힐 만큼 청백리의 삶은 산 그는 당시 국민들에게 호법신 (護法神)으로 불렸을 정도로 국민들의 신망이 높았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법의 잣대를 들이대어 부패와 관리와 친일을 단죄한 검사의 사표였다. 그런가 하면 나라의 정세를 판단하는 뛰어난 식견과 혜안을 갖춘 국책 전문가였다. 이준 열사의 연설이나 글들을 살펴보면, 민중을 각성시키려는 선각자의 면모와 구국운동가로서의 생사관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국내외 정세가 연동하는 혼돈의 시대에 이준의 정신이 민족의 좌표가 되고, 그의 혼이 후대들에게 이어진다면 우리나라는 이준 열사가 말하는 ‘위대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 목차
머리말
1장 구국운동에 바친 이준의 삶
충신의 혈통을 이어받은 이준
무작정 상경하여 대원군을 만나다
인생의 은인 김병시의 문객이 되다
뒤늦게 출발한 인생행로
미관말직에서 벗어나 구국의 길로 향하다
만민공동회의 중심 역할을 담당하다
개혁당 조직에 참여하다
황지문권을 탈환하다
공진회를 조직해 친일 매국단체 일진회에 맞서다
국민교육운동을 실행하다
헌정연구회를 조직하다
나라를 구하려고 몸부림치다
결국 나라를 빼앗기다
민영환이 자결하다
상동교회 청년회장으로 활동하다
교육운동과 법치주의 운동의 중심이 되다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다
2장 우리나라 최초 검사 이준
황제의 인척에게 징역 10년을 구형하다
법부대신을 고소하다
검사 이준에 대한 평가
3장 이준 열사가 남긴 글과 연설
한국혼 부활론
생존의 경쟁
4장 헤이그 특사 이준
대한제국 말의 역사
구국의 장도에서 남긴 최후의 시
헤이그에서의 활동
돌아올 수 없는 길
이준의 자결을 말해 주는 서류들
돌아온 이준 열사
부록
이준 열사 연보
이준 열사 어록
이준 열사의 유품과 유묵
(사)일성이준열사기념사업회 연혁
(사)일성이준열사기념…머리말
1장 구국운동에 바친 이준의 삶
충신의 혈통을 이어받은 이준
무작정 상경하여 대원군을 만나다
인생의 은인 김병시의 문객이 되다
뒤늦게 출발한 인생행로
미관말직에서 벗어나 구국의 길로 향하다
만민공동회의 중심 역할을 담당하다
개혁당 조직에 참여하다
황지문권을 탈환하다
공진회를 조직해 친일 매국단체 일진회에 맞서다
국민교육운동을 실행하다
헌정연구회를 조직하다
나라를 구하려고 몸부림치다
결국 나라를 빼앗기다
민영환이 자결하다
상동교회 청년회장으로 활동하다
교육운동과 법치주의 운동의 중심이 되다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다
2장 우리나라 최초 검사 이준
황제의 인척에게 징역 10년을 구형하다
법부대신을 고소하다
검사 이준에 대한 평가
3장 이준 열사가 남긴 글과 연설
한국혼 부활론
생존의 경쟁
4장 헤이그 특사 이준
대한제국 말의 역사
구국의 장도에서 남긴 최후의 시
헤이그에서의 활동
돌아올 수 없는 길
이준의 자결을 말해 주는 서류들
돌아온 이준 열사
부록
이준 열사 연보
이준 열사 어록
이준 열사의 유품과 유묵
(사)일성이준열사기념사업회 연혁
(사)일성이준열사기념사업회 역대 대표
1946년 7월 〈동아일보〉 및 〈대동일보〉기사
본회 주요 추진사업
화보
○ 저자소개 : (사)일성이준열사기념사업회
(사)일성이준열사기념사업회는 이준열사의 진충보국 (盡忠報國)정신을 선양 보급하며, 이준열사의 선각자적 활동을 보편 문화화하여 국가발전과 조국통일의 정신적 토양이 될 수 있도록 키워 나감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본회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다음의 사업을 한다.
- 일성 이준열사 추모사업과 유업계승을 위한 제 사업
- 한국혼 부활론을 역설한 이준열사의 겨레 혼 되살리기 사업
- 문화재로 선정된 이준열사의 묘역관리, 분묘, 동상, 유품 및 재실관리
- 일성 이준열사 기념관 건립
- 일성 이준열사 사당 건립
- 순국선열, 애국지사 충혼탑 건립
- 일성 이준열사의 애국정신을 연구하여 새 세대의 사표로 삼을 수 있도록 연구활동, 문헌발간, 영화제작 등 시행
- 이준열사의 애국정신을 연구하여 새 세대의 사 표로 삼을 수 있도록 연구활동, 문헌발간, 영화제작 등 시행
- 일성 이준열사와 나라를 빛낸 위인들의 업적을 숭모하는 교육문화사업
- 남과 북이 공히 인정하고 있는 애국자 이준의 넋이 민족 재결합에 기여할 수 있도록 통일정신의 지주로 삼음
- 위 사업시행을 위한 출판 및 방송사업
- 기타 본회 목적달성에 필요한 사업
○ 출판사 서평
독립운동가 이준 열사의 전기. 이준 열사는 1907년 7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서 일제의 침략 야욕을 규탄하는 할복 자결로 생을 마감하며 세계에 독립의 정신을 강렬하게 심어주었다. 교육문화운동의 선구자였던 그는 우리 역사 최초로 민권과 자유, 법치와 준법을 설파하고 실행한 민주시민운동가였다. 이 책은 이준 열사의 숭고한 결단과 희생, 애국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계기가 될 것이다.
1907년 7월 14일, 헤이그의 만국평화회의에서 일제의 침략 야욕을 규탄하는 애국의 변을 토하고 장렬하게 생을 마감한 일성 이준 열사, 그는 대한제국 말 명문가 출신도 아니고, 고관대작의 아들도 아닌 처지에 홀로 서울에 와서 대쪽 같은 삶을 살았다. 우국지사였으며, 교육문화운동의 선구자였던 그는 우리 역사 최초로 민권과 자유 그리고 법치와 준법을 설파하고 실행한 민주시민운동가였다.
우리 역사에서 손꼽힐 만큼 청백리의 삶은 산 그는 당시 국민들에게 호법신 (護法神)으로 불렸을 정도로 국민들의 신망이 높았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법의 잣대를 들이대어 부패와 관리와 친일을 단죄한 검사의 사표였다. 그런가 하면 나라의 정세를 판단하는 뛰어난 식견과 혜안을 갖춘 국책 전문가였다.
이준 열사의 연설이나 글들을 살펴보면, 민중을 각성시키려는 선각자의 면모와 구국운동가로서의 생사관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국내외 정세가 연동하는 혼돈의 시대에 이준의 정신이 민족의 좌표가 되고, 그의 혼이 후대들에게 이어진다면 우리나라는 이준 열사가 말하는 ‘위대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 이준 열사 어록
“땅이 크고 사람이 많은 나라가 큰 나라가 아니고, 땅이 작고 사람이 적어도 위대한 인물이 많은 나라가 위대한 나라가 된다. 위대한 인물은 반드시 조국을 위하여 조국의 생명의 피가 되어야 한다.”
“인생을 죽는다는 것이 무엇이며 인생을 산다는 건 무엇이냐? 죽어도 죽지 않은 것이 있고, 살아도 살지 아니함이 있나니. 그릇 살면 차라리 죽음만도 못하고, 제대로 죽으면 도리어 영생하느니. 살고 죽는 게 모두 제게 달렸다면 모름지기 죽고 삶을 바르게 힘쓰라.”
“만좌부절 (만 번 꺾이지 않는 것)하는 자주 독립심은 천만의 강병으로도 깨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억만세 억만인에게 큰 힘과 큰 빛을 주는 것이다.”
“국가는 한 사람의 국가가 아니요, 전 민족의 국가이다.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요 천하 사람의 천하이다.”
“천하에 제일 위험한 것은 무식(無識)이요, 천하에 제일 위험한 것은 불학(不學)이다.”
“사람의 자신 있는 마음은 천만 개의 대포보다 강하다. 자신 있는 마음은 위대한 인물이 되는 일대 조건이라 하겠다.”
“가고 나면 억만리라도 달하고야 말 것이요, 하고 나며 천만사 (千萬事)라도 통하고야 마는 것이다. 옛 사람도 가고 하고, 지금 사람도 가고 하고, 후세 사람도 가고 하면 못 갈 길이 없고, 못 할 일이 없는 것이다.”
○ 부록 : (사)일성이준열사기념사업회 연혁
(사)일성이준열사기념사업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애국자기념사업회로서 1946년에 발기했고, 1955년 정부로부터 사단법인 인가를 받아 이준열사에 대한 기념사업을 해오는 국가보훈처 등록 단체입니다.
이준열사의 죽음은 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되었고, 이준열사의 순국 정신은 일파만파로 민족사회에 퍼져나갔습니다.
- 1945년 (사후 38년) 조국광복
12월 23일, 이준열사 순국 후 처음으로 개최된 ‘순국선열추모제’에 민영환 등과 함께 배향되다. 이날 개회선언을 한 함태영 선생이 본회의 초대 총재, 김창숙 선생이 2대 총재를 맡았다. - 1946년 (사후 39년) 5월 7일 당시의 각계 인사 52인이 ‘이준열사추념준비회’를 발기하다. 52인 가운데는 이승만, 김구, 홍명희, 여운형, 안재홍 등 좌우의 중요 인사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이 준비회가 현재의 ‘사단법인 일성이준열사기념사업회’의 전신이다.
<동아일보>, 1946년 5월 7일자 기사
“만국평화회의에서 독립절규, 해아밀사 이준열사 추념을 준비”
해아(海牙) 만국평화회의에 한국의 밀사(密使)로 파견되어 조선독립을 웨치는 나머지 만국사진들의 눈아페서 배를 갈라 의혈을 뿌린 고 이준(李儁)선생의 기일인 七월 十四일을 기하여 열사의 뜻을 다 같이 기념하고저 이준(李儁)열사 추념 준비회(追念 準備會)에서는 여러 가지 행사를 준비중인데 동회발기인은 다음과 같다.
– 發起人(無順)
권동진, 원세훈, 명제세, 임영신, 오세창, 이규채, 이강국, 김기림, 이승만, 조완구, 장건상,
이종성, 김 구, 김원봉, 김법린, 최익한, 여운형, 정인보, 설의식, 이 인, 허 헌, 백남운,
강기덕, 정홍석, 이종태, 이극로, 조병옥, 유억겸, 김관식, 김여식, 이여성, 이주하, 이시영,
이태준, 조소앙, 장도빈, 홍명희, 이돈화, 이 영, 정 백, 최규동, 김성수, 장 면, 고병남,
방응모, 안재홍, 홍남표, 유태련, 한시대, 권승하, 유영준, 전호엽
- 6월 22일, ‘이준열사추념준비회’는 배재중학 강당에서 발기인 대회를 개최하고, 부서를 조직하다.
- 고문 : 이승만, 김구, 여운형, 허헌
- 위원장 : 홍명희
- 부위원장 : 한시대, 이영
- 7월 9일, ‘이준열사추념준비회’ 주최로 제2회 강연회를 서울 용산국민학교 강당에서 개최하다.
- 연사 : 유자후, 고병남, 박용화, 황기성, 김선, 이광호
- 7월 11일, <해아밀사> 연극(4막)이 광화문 네거리에 있는 국제극장(지금의 감리회관 자리)에서 14일까지 공연되다.
- 김아부 각색, 이백수 연출.
- 7월 14일 오후2시, ‘이준열사추념준비회’ 주최로 순국 후 첫 추모기일 행사를 종로구 경운동 소재의 천도교 교당에서 거행하다.
- 사회 : 김법린/ 식사 : 홍명희/ 역사보고 : 유자후/ 추념문 낭독 : 이영/ 해아사건전말보고 : 정백/ 추념사 : 이승만, 김구, 장건상, 성주식/ 위문품 증정 : 홍명희/ 답사: 이용
- 9월, 이준열사추념준비회는 해산하고 남은 사무처리를 준비회를 계승하여 발족한 일성회에 인계하다.
- 1947년 (사후 40년) 7월 14일 오후 2시 30분, 순국40주년 추념강연회를 종로 기독쳥년회관(YMCA)에서 개최하다.
- 10월 15일, 유자후가 저술한 <이준선생전>을 동방문화사에서 발행하다.
⦁1948년 (사후 41년) 7월 14일 오후 1시 30분, 순국41주년 추념식을 시공관에서 거행하다. - 8월 15일, 김관식씨가 이준열사의 묘지를 헤이그에서 발견하고, 이 사실을 일성이준선생기념사업협회에 편지로 알려오다.
- 9월 25일, 유자후가 저술한 <해아밀사>를 일성이준선생기념사업회에서 발행하다.
- 1949년 (사후 42년) 7월 14일 오후 2시, 순국42주년 추념식을 기독청년회관에서 개최하다.
- 7월 25일, 홍효민이 유자후의 저술을 참고하여 지은 위인전 <일성 이준-영생의 밀사>를 치형협회에서 발행하다.
- 1950년 (사후 43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 1951년 (사후 44년) (50년, 51년에는 추모회 없었음)
- 1952년 (사후 45년) 7월 14일 오전 10시, 순국45주년 추념식을 부민관에서 개최하다.
- 1953년 (사후 46년) 7월 14일, 이준열사 제46주기 추념식 거행하다.
- 1954년 (사후 47년) 5월 31일, 대한불교종군교포사회총본부 주최로 부산 소재의 불교경남교무원에서 이준열사 추도식을 거행하다.
- 7월 14일, 이준열사 제47주기 추념식 거행하다.
- 12월 29일, 헤이그 열사묘역에 새로운 비석을 건립하다.
- 1955년 (사후 48년) 일성이준선생기념사업협회를 사단법인 일성이준열사기념사업회로 등록하다.
- 7월 14일 오전10시, 순국48주년 추념식을 시공관에서 거행하다.
- 1956년 (사후 49년) 7월 14일 오전10시, 순국49주년 추념식을 시공관에서 거행하다.
- 1957년 (사후 50년) 3월 15일, 전국애국단체연합회에서 ‘순국선열기념사업전국위원회’를 구성하여 이준열사의 묘지를 국내로 이장하는 사업을 하기로 결의하다.
- 7월 14일 오전 10시, 순국50주년 추념식을 시립극장에서 거행하다.
- 1958년 (사후 51년), ⦁1959년 (사후 52년),
- 1960년(사후 53년) 7월 14일 오전 10시, 추념식을 시공관에서 거행하다.
- 1961년 (사후 54년) 7월 14일, 이준열사 제54주기 추념식 거행하다. 이 시기로 부터 이준열사의 유해 국내봉환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다.
- 1962년 (사후 55년) 7월 14일 오전 10시, 순국55주년 추념식을 국민회당에서 거행하다.
- 1963년 (사후 56년) 7월 14일 오전10시, 순국56주년 추념식을 거행하다.
- 1963년 (사후 56년) 9월 30일, 헤이그에서 출발한 열사의 유해가 일본을 경유하여 김포공항에 도착한 후, 종로구 낙원동 건국대학교에 설치된 빈소에 임시 안치되다.
- 10월 4일, 서울운동장(동대문운동장)에서 국민장(國民葬)을 거행하고, 서울 강북구 수유동 묘역에 안장하다.
- 1964년 (사후 57년) 7월, 본회에서 소책자 <일성 이준열사소전>을 발행하다.
- 7월 14일, 장충단공원에 열사의 동상을 건립하다.
- 7월 14일, 이날 처음으로 이준열사 추념식(제58주기)을 수유리 묘소에서 거행하다.
(1964년 이후 매년 7월 14일 묘소에서 개최한 추념식은 기재를 생략함.) - 1972년 (사후 65년) 5월 9일, 이준열사 기념비를 헤이그 묘적터에 제막하다.
- 1973년 (사후 66년) 이일정(李一貞) 여사의 묘비를 수유리 열사묘역(烈士墓域)에 세우다.
- 12월 15일, 본회의 임원인 이선준(후에 회장 역임)이 저술한 <일성이준열사>를 세운문화사에서 발행하다.
- 1977년 (사후 70년) 대한민국 외무부 주관 헤이그 묘적지 확장 정화하다. 1. 오석묘비 『일성 이준열사의 묘적』(박정희 전 대통령 친필) 건립. 2. 돌병풍 건립. 3.청동상(흉상) 건립. 4. 애석(艾石)으로 된 상석(床石)과 화병 · 향로 설치.
- 1988년 (사후 81년) 네델란드 헤이그의 이준열사 묘적지에서 자란 “루소니아 화백나무” 세 그루를 식목일인 4월 5일 오전 11시 천안 독립기념관 경내 광복동산에 옮겨 심었다. 내무부가 1987년도부터 추진해온 독립유공자에 연유한 나무 옮겨심기 사업의 일환으로 외무부를 통해 헤이그 시에 요청, 네델란드 국영항공사 KLM편으로 공수돼 왔으며, 헤이그 시장을 대리해 주한 네델란드 대사 뎀베르헨씨와 본회 김형목(金炯穆) 이사장과 이사진, 그리고 독립기념관 안춘생(安椿生) 관장, 천안 군수, 현지 주민 등 여러분의 지원으로 심어졌다.
- 1991년 (사후 84년) 네델란드에서 일성이준열사추념식준비위원회 (회장 李基桓)가 4월에 조직되고, 7월 27일에 헤이그 현지에서 처음으로 추념식을 거행하다.
- 이 행사를 위하여 본회 이선준(李善俊)회장과 회원, 서울 상동교회 이동학(李東鶴) 담임목사와 교우들, 주 네델란드 최상섭 대사와 임직원, 서울의 불꽃 중창단원 및 오현명, 주성희 두 교수, 6·25당시 한국전에 참전한 네델란드 장병과 유럽 교민 등 많은 인사들이 참석하였다. – 12월 3일 수유리 묘전에 홍전문(紅箭門) 재건하다.
- 1992년 (사후 85년) 3월 25일 묘원에「자유평화수호의 상」을 북청군민회 부회장 차동수여사의 성금으로 보수재건하다.
- 1993년 (사후 86년) 2월 9일 순국 현지 헤이그에서 사단법인 이준 아카데미 설립하다.
- 5월 6일 독립기념관 경내에 어록비(語錄碑) 건립하다.(차동수 여사와 정덕일 사장의 헌성으로 본회에서 건립) – 7월 31일 이준열사 제86주기추념식을 헤이그 현지에서 두 번째로 거행하다.
- 1995년 (사후 88년) 8월 5일 네델란드에서 이준열사 순국 88주기, 조국광복 50주년기념 유럽 한민족 제전을 개최하고, 이준열사기념관을 개관하다.
- 1996년 (사후 89년) 7월 묘역에 위훈비(偉勳碑)를 건립하다.(현대건설주식회사의 헌성과 서울북부보훈지청의 지원으로 본회에서 건립).
- 1997년 (사후 90년) 8월 30일 헤이그에서 이준열사순국 90주기, 제2차 만국평화회의 90주년 기념 한민족 평화제전을 거행하다.
- 12월 25일, 탄신 138주년ㆍ순국 90주년 특별기획도록 <이준과 만국평화회의>를 본회 일성사상연구소에서 발행하다.
- 2006년 (사후 99년) 10월, 본회 이사회에서 2007년 순국 100주년을 각계 참여하에 범국민적으로 전개코자 “이준열사 순국백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결성을 의결하다.
- 학술위원장 이태진 교수
- 공동추진위원장 이재오, 장영달(이상 국회의원), 신경하(대한기독교감리회 감독회장)
- 집행위원장 김재윤(국회의원)
- 간사 이양재(본회 부회장)
- 12월 26일, 이준열사의 순국백주년기념사업을 위하여 국회 예결위에서 보훈처의 민간이전 사업예산을 증액하다.
- 2007년 (사후 100년) 2월 27일, “이준열사순국백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발대식을 개최하고, 역사연구 작업과 함께 이준열사순국100주년 학술세미나를 시행하다.
- 5월-11월, 본회에서 <이준열사순국100주년기념만국평화기원예술제>(시청광장), <순국100주년 추념제전>(수유리 묘역)을 개최하였고, 전재혁 이사장이 국정 TV 초청으로 ‘세계를 향한 평화의 외침’제하의 강연을 하였으며, KBS에서는 <이준열사순국100주년기념 KBS열린음악회>를 개최하였다.
- 또한 일성여자중고등학교와 공동으로 <백일장 개최>(일성여고 강당), 역사음악연구소와 공동으로 <이준열사순국100주년기념음악회>, 모던포엠과 공동으로 <이준문학상 수여> 등을 시행하였다.
- 본회에서는 이태진, 이계형, 문용준 교수와 본회 이선준, 이양재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호법영웅일성이준열사>(단행본)를 발행하였다.
- 또한 사단법인 체험학습연구개발협회(이사장 이경자)의 헤이그 특사 사진전, 정소영 국악인(전주)의 <열사가 완창>, 염정모 서예작가협회장의 <헤이그 특사 서예전>, <월간 생각쟁이> 9월호의 역사인물로 채택된 이준열사 만화 등 다른 단체와 사업체에서 행하는 일을 지원하다.
- 대검찰청에서는 이준열사 검사 임명장을 동판으로 뜨고, 흉상을 만들었으며, DVD를 제작한바 본회에서는 DVD제작에서 자료협조를 하였다.
- 2008년 (사후 101년)
- 7월 14일 <일성 이준열사 순국101주년 추념제전>을 수유리 묘역에서 거행하며, <제1회 일성이준열사추모글쓰기대회> 시상식을 개최하였다.
- 2009년 (사후 102년)
- 7월 14일 <일성 이준열사 순국102주년 추념제전>을 수유리 묘역에서 거행하며, <제2회 일성이준열사추모글쓰기대회> 시상식을 개최하였다.
- 2010년 (사후 103년)
- 7월 14일 <일성 이준열사 순국103주년 추념제전>을 수유리 묘역에서 거행하며, <제3회 일성이준열사추모글쓰기대회> 시상식을 개최하였다.
- 2011년 (사후 104년)
- 7월 14일 <일성 이준열사 순국104주년 추념제전>을 강북문화예술회관에서 거행하며, <제4회 일성이준열사추모글쓰기대회> 시상식을 개최하였다.
- 2012년 (사후 105년)
- 7월 14일 <일성 이준열사 순국105주년 추념제전>을 강북문화예술회관에서 거행하며, <제5회 일성이준열사추모글쓰기대회> 시상식을 개최하였다.
- 11월 17일(토요일) 오후1시 “순국선열의 날”을 즈음하여 <일성 이준열사와 애국지사 31인 삼각산 순국선열 합동 진혼제>를 봉행하였다.
- 삼각산 선열묘역에 잠드신 애국선열
- 이 준, 손병희, 이시영, 신익희, 김창숙, 이명룡,
- 여운형, 조병옥, 유 림, 김병로, 신 숙, 김도연,
- 신하균, 서상일, 양일동, 김성률, 김순근, 김운백,
- 김유신, 김찬원, 동방석, 문학준, 백정현, 안일용,
- 이도순, 이한기, 이해순, 전일묵, 정상섭, 조대균,
- 현이평, 한 휘
- 2013년 (사후 106년)
- 7월 14일 <일성 이준열사 순국106주년 추념제전>을 강북문화예술회관에서 거행하며, <제6회 일성이준열사추모글쓰기대회> 시상식을 개최하였다.
- 2014년 (사후 107년)
- 7월 14일 <일성 이준열사 순국107주년 추념제전>을 강북문화예술회관에서 거행하며, <제7회 일성이준열사추모글쓰기대회> 시상식을 개최하였다.
- 2015년 (사후 108년)
- 7월 14일 <일성 이준열사 순국108주년 추념제전>을 강북문화예술회관에서 거행하며, <제8회 일성이준열사추모글쓰기대회> 시상식을 개최하였다.
- 8월 15일(토)~9월 6일(일) 본회의 후원으로 극단 관악극회에서 한국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극적인 사건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공연예술로 제작된 적이 없었던 세 명의 헤이그 특사 이준, 이상설, 이위종을 소재로 한 창작극 <헤이그 1907>을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의 무대에 올렸다.
특히, 우리나라 근대법제도 시행의 원년인 1895년에 설립된 법관양성소(서울대 법대의 전신) 1회 졸업생인 ‘이준열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헤이그 1907>은 국제법에 정통했던 한 법률가의 정의와 법치를 향한 처절한 몸부림을 통해 시대를 앞서갔던 이준열사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뜻 깊은 작품으로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헤이그 특사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국내 유일의 공연이었다. - 2016년 (사후 109년)
- 7월 14일 <일성 이준열사 순국109주년 추념제전>을 강북문화예술회관에서 거행하며, <제9회 일성이준열사추모글쓰기대회> 시상식을 개최하였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