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필리핀, 필리핀사
권오신, 양두영, 박준병 / 신아사 / 2023.4.20
본서는 동남아시아를 다룬 역사문화서이다. 필리핀, 필리핀사의 기초적이고 전반적인 내용이 담겨있다.

○ 목차
1부. 프롤로그: 필리핀 알아보기
2부. 필리핀의 역사
1장. 필리핀 원주민의 문화ㆍ문명
2장. 스페인의 도래와 식민지배
3장. 개혁과 혁명
4장. 필리핀ㆍ미국 관계의 성립과 변화
5장. 독립과도정부, 그리고 태평양 전쟁과 필리핀
6장. 제3공화국의 성립과 발전
7장. 필리핀 민주주의의 회국
3부. 필리핀 사회와 한국과의 관계
1장. 필리핀의 사회와 문화
2장. 필-한 관계와 기타 필리핀 정보
○ 저자소개 : 권오신, 양두영, 박준병
– 저자: 권오신
강원대 사학과 교수. 미국의 대외관계를 제3자적 시각과 제국주의 담론에 기초하여 분석하는 연구를 오랫동안 진행 해 왔다. 한국미국사학회 14대 회장과 강원대학교 인문대학장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미국의 제국주의』, 『우드로 윌슨』, 『미국, 미국사』(공저)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아이젠하워 대외정책의 기조: ‘뉴룩 (New Look)’ 정책과 ‘아이젠하워 독트린’, 군사기지협정(MBA)에서 방문군협정 (VFA)으로: 미국-필리핀 군사관계의 변화 (1945-2014), 미국의 필리핀 식민통치의 시기별 특성 등 다수가 있다.
– 저자: 양두영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 (JIKS) 역사 교사. 20여 년 동안 중 ·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쳤고, 강원대, 경희대에서 미국사를 강의했다. 주로 한국, 미국, 그리고 필리핀의 역사를 비교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미국, 미국사』, 『인도 · 아세안 국가 근현대사 교수 · 학습자료 개발』 (공저)이 있고, 논문으로 미국의 필리핀 식민지에 대한 공교육 도입 정책, 1898-1902, 미국식민 체제 정착 과정과 필리핀 초등교육 정책 수행의 정치적 함의, 1902-1907 등이 있다
– 저자: 박준병
강원대 강사. 미국의 필리핀 식민 지배에 관한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미국의 필리핀 식민 지배를 중심으로 미국의 제국주의와 대외관계사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전쟁과 여성 인권』(공저)가 있고, 논문으로는 필리핀 독립운동 (1896-1902)의 성격과 한계, 전후 (1945-1947) 미국-필리핀 관계의 재정립, 동양의 진주 혹은 워싱턴- 마닐라의 미국화 (1898-1916) 등이 있다.

○ 필리핀 역사
- 선사 시대
우라늄 동위원소측정법으로 67,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칼라오 원인의 중족골은 오늘 날까지 이 제도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인류의 유물이다. 이전까지는 탄소동위 원소 측정법으로 약 24,000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팔라완에서 발견된 타본 원인이 가장 오래된 인류였다. 네그리토인들은 또한 이 제도에 정착한 가장 초기의 사람들이었지만, 필리핀 제도에서 그들의 초기 정착은 언제였는 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고대 필리핀인들의 기원에 대해 상반되는 여러 개의 학설이 있다. 가장 널리 수용되는 언어학적, 고고학적 증거는 “타이완 유래설 모델”이며, 이것은 오스트로네시아인들이 량주 문화와 같은 양쯔강의 신석기 문명으로부터 온 후손이라는 타이완에서 왔다고 가정하고 있다. 그들은 필리핀에 기원전 4000년 전에 왔다고 하는 것이다.
기원전 1000년경에, 이 제도에 살던 사람들이 네 개의 사회 집단으로 발전했으며, 사냥-채집을 하는 종족, 전사 사회, 고원 금권정치, 그리고 해양 항구 집단으로 나눠졌다는 것이다.
- 스페인의 식민통치
16세기 초반까지 여러 섬에 각기 다른 부족들이 나뉘어 있어 통일 국가는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1521년에 스페인 카를로스 1세의 후원으로 실시한 서회항로 탐험중에 마젤란이 세부에 도착하면서 필리핀이 유럽에 알려지게 되었다.
1565년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 (Miguel Lopez de Legazpi)에 의해 식민지로 선언되었고, 스페인의 필리핀 식민통치가 시작되었으며, 19세기 말까지 300년 이상 에스파냐의 통치가 지속되었다. 이때 동남아시아 유일의 로마 가톨릭 국가가 된 필리핀은 수도사의 천국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나라이름은 당시 스페인 국왕이었던 펠리페 2세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그러나 에스파냐에서 온 식민통치 권력과 결탁하여, 종교권력을 휘두르는 교회의 압제에 항거하여 필리핀 독립을 쟁취하려는 움직임이 19세기 말 시작되어 각지에서 민중항쟁이 일어났다.
- 미국의 식민통치
.미국-스페인 전쟁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패한 스페인은 파리 강화 조약에 따라 미국에게 2,000만 달러를 받고 필리핀, 괌 등 지배권을 양도했다. 필리핀 혁명과 미국-스페인 전쟁의 결과 필리핀인의 최초의 공화국인 필리핀 제1공화국이 건립되었으나 곧바로 미국의 불인정과 함께 식민화가 시작되어 이에 저항하는 필리핀인과 미국-필리핀 전쟁이 일어났다. 초대 대통령 에밀리오 아기날도의 지휘아래 격렬하게 저항했으나 결국 압도적인 미국의 군사력에 많은 희생자를 낳고 굴복하여 필리핀 제 1공화국은 붕괴하였다.
그러나 이때의 많은 희생으로 인해 미국의 통치는 스페인식 압제보다는 좀 더 자치권을 많이주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1916년 필리핀의 자치법인 존스 법이 통과되었으며 이때의 미국의 필리핀 통치는 다른 서양국가와는 달리 비교적 자율적인면이 있었다. 그리고 필리핀의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필리핀은 식민지였기 자체적인 경제정책을 수립하지못해 바라던 만큼의 이익을 얻을 수 없었다.
미국의 식민통치때는 공중보건 개선과 무료 보건소 혜택으로 평균수명이 연장되었고 이로 인해 인구도 큰폭으로 증가하였다. 그리고 이때부터 남자와 여자가 같이공부할 수 있는 남녀공학제도 도입되면서 남성과 여성 도 똑같은 권리를 누리게되어 처녀도 혼자 외출할 수 있었으며 여러 전문직을 비롯해 어떤직장에서나 평등하게 일할 수 있게되었다. 새 토지 정책, 미국과의 자유무역, 농업성장, 교통 통신의 발달, 새로운 산업, 은행의 등장, 공중보건과 위생의 향상등으로 인해 인구가 약 3배 가까이 늘었으며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반미항쟁
그 후에도 로마 가톨릭 사제와 수녀들이 주동하는 필리핀 민중들의 독립투쟁은 계속되고 혁명 정부도 수립되었으나 미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1934년 미국 의회에서 타이딩스-맥더피 법이 통과되어 10년 후에 필리핀이 독립하기로 예정되었다.
- 필리핀 독립
1935년에는 필리핀 연방이 조직되었고 마누엘 케손이 초대 대통령에 올랐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필리핀은 일본군의 점령하에 있었다.
일본은 1943년에 필리핀 독립을 승인했고 대통령에는 호세 파키아노 라우렐이 선출되었다.
전쟁이 끝난 1946년에 미국은 필리핀의 완전 독립을 승인, 공화제를 채택한 필리핀은 마누엘 로하스를 초대 대통령으로 뽑았다. 그 뒤 필리핀은 아시아권에서 빠른 경제발전을 이룩하였지만, 국민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정치적/경제적 문제는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다. 필리핀은 미국에게 경제적 원조를 받는 대신, 공군/해군기지를 빌려주기로 한다.
1965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대통령이 되었다. 집권 초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민주 공화국’을 내세우고, 효율적 세제운영과 대외차관 유치 등으로 국가를 안정시키는 데 성공해 이슬람세력 등 반정부세력들의 반발에도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독재와 장기집권, 본인과 일가의 부정부패로 인해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내외에서 거센 비난을 받기 시작했다.
1983년 베니그노 아키노 2세의 암살을 계기로 마르코스의 인기는 끝없이 추락했고, 1986년 베니그노의 아내인 코라손 아키노가 야당 단독후보로 대선에 출마하자 숱한 선거부정으로 겨우 재선됐다. 이로 인해 반정부 시위가 전국적으로 번지게 되었고, 결국 마르코스는 하야했다.
1986년 코라손 아키노가 필리핀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임기 초반부터 테러가 일어나, 정치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다.
1992년에는 아키노의 지명을 받은 피델 라모스가 대통령이 되었고, 1998년에는 영화배우 출신의 조지프 에스트라다가 대통령이 되지만, 부패로 국민들의 반감을 사 2001년 중도사임했다.
에스트라다의 사임으로 디오스다도 마카파갈 (Diosdado Macapagal)의 딸인 글로리아 마카파갈아로요가 대통령이 되었다.
2004년 재선에 성공하지만, 부패에 연루되어 결국은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현재는 하원의원으로 재직 중이다.
2010년 코라손 대통령의 아들인 베니그노 아키노 3세 (Benigno Aquino III)가 대통령이 되었다. 한편 아로요는 선거조작 혐의로 기소되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