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1년 11월 26일, 이탈리아의 종교인•정치가 루이지 스투르초 (Don Luigi Sturzo, 1871 ~ 1959) 별세
루이지 스투르초 (Don Luigi Sturzo, 1871년 11월 26일, 이탈리아 카타니아 광역시 칼타지로네 ~ 1959년 8월 8일, 이탈리아 로마)는 이탈리아의 기독교 성직자이자 정치가이다.
– 루이지 스투르초 (Don Luigi Sturzo)
.출생: 1871년 11월 26일, 이탈리아 Caltagirone
.사망: 1959년 8월 8일, 이탈리아 로마
.국적: 이탈리아
.학력: 그레고리오 대학교
.정당: 이탈리아 기독교민주당
.설립 조직: 이탈리아 인민당, Luigi Sturzo Institute
.저서: Inner laws of society, a new sociology, The Catholic Church and Christian Democracy 들
‘사회주의적 성향의 성직자’로 알려진 그는 일반적으로 “기독교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언급된다.
1919년 창립된 이탈리아 인민당을 조직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나 이탈리아 파시즘의 발흥으로 1924년 국외 추방을 당했다.
런던에 갔다가 뉴욕으로 거처를 옮긴 그는 파시즘을 비판하는 400여개의 출판물을 냈다.
○ 루이지 스투르초와 기독교민주당 (이탈리아)
루이지 스투르초 (Don Luigi Sturzo)는 1871년 11월 26일, 이탈리아 Caltagirone에서 출생했다.
1919년 창립된 이탈리아 인민당을 조직한 인물중 한명이었으나 이탈리아 파시즘의 발흥으로 1924년 국외 추방을 당했다.
기독교민주당 (이탈리아)은 1943년부터 1994년까지 반세기동안 이탈리아의 정계를 좌지우지했던 가톨릭계 정당이다.
1919년 기독교 사회주의 계열의 루이지 스트루초가 인민당 (PPI)을 창당하면서 생겨났다.
1919년 선거에서 농촌지역의 지지를 기반으로 100석을 확보했다.
이후 파시스트와 손을 잡으라는 무솔리니의 요구에 머뭇거렸고, 결국 1926년 다를 야당들과 함께 강제로 해체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후 기독교민주당으로 부활, 반파시스트 운동에 가담하다가 1948년 이탈리아가 공화정으로 전환하자 총선에서 48%의 득표를 얻어 압승을 거두어 헤게모니를 장악한 뒤에 이탈리아 공산당 외의 야당들과 연정을 꾸리면서 알치데 데 가스페리가 수상으로 재임하던 시절부터 해체될 때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이때 기민당은 이탈리아 자유당이나 이탈리아 공화당 등의 우파 정당들은 물론이고 이탈리아 사회당이나 이탈리아 민주사회당 등의 온건 좌파들이 공산당과 껄끄러운 상대라는 점을 이용해서 연정을 구성하면서까지 장기집권을 유지해왔다.
종교정당이라는 점과 공산당과 대립하는 특성상 반공주의적, 보수적 가치를 추구했으며 거대 집권정당이 흔히들 그렇듯 여러 파벌이 존재했고 이는 1990년대에 당이 해체되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기독민주당은 서유럽의 다른 보수정당들과는 다르게 뚜렷한 이념을 가지지 못했다.
이탈리아에서 기민당이 오랫동안 집권할 수 있던 이유 중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 가톨릭교도들이라면 무조건 이 정당을 지지하고 투표해야 한다는 의무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가톨릭 신자가 다른 정당에 투표하는 것은 파문 대상까지는 아니라도 상당히 불순분자 비슷하게 간주되곤 했었다.
○ 저서
파시즘을 비판하는 400여개의 출판물을 냈다.
- 주요저서
Church and State (1939)
The True Life (1943)
The Inner Laws of Society (1944)
Spiritual Problems of Our Times (1945)
Italy and the Coming World (1945)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