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1년 12월 19일, 영국의 화가 윌리엄 터너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 ~ 1851) 별세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년 4월 23일 ~ 1851년 12월 19일)는 영국의 화가이다.
– 윌리엄 터너 (Turner)
.본명: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출생: 1775년 4월 23일, 코번트가든, Maiden Lane, 런던
.사망 1851년 12월 19일, Cheyne Walk, 첼시, 켄징턴 첼시 구
.직업: 화가, 풍경화가, 데생화가, 판화가, 제도사, 시각 예술가, 삽화가
.스승: 조슈아 레이놀즈, Thomas Malton
.사조: 낭만주의
.주요 작품들: The Fighting Temeraire tugged to her last Berth to be broken up, Fishermen at Sea, The Battle of Trafalgar, Rain, Steam and Speed – The Great Western Railway, The Slave Ship, Snow Storm: Hannibal and his Army Crossing the Alps, Crossing the Brook, Chichester Canal, Sunrise with Sea Monsters, Light and Colour (Goethe’s Theory) – The Morning after the Deluge – Moses Writing the Book of Genesis, The Burning of the Houses of Lords and Commons, Calais Pier
18세기 영국의 화가로 당대 영국의 몇 안되는 유명 화가이다. 낭만주의에 속하는 화가지만 빛을 중심으로 그림을 전개해 나가다 보니 빛의 대비가 강렬하며, 배경과 인물이나 사물의 경계가 흐리다. 때문에 추상화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매우 독특한 화풍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화풍을 이어받은 후계자도 없었다. 오히려 그의 작업들은 프랑스에서 이어받아 인상주의로 재탄생하게 된다. 여러 국가를 돌아다닌 경험을 바탕으로 풍경화를 그렸으며 젊어서부터 크게 성공하여 부와 명성을 누렸다.
윌리엄 터너의 대표작 중 하나인 <전함 테메레르의 마지막 항해>는 영국의 범선인 HMS 테메레르가 해체를 위해 증기선에 이끌려가는 모습을 그린 것인데, 산업혁명 시대에 사라지는 전통을 그린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영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명화로 꼽힌다.
○ 생애 및 활동
터너는 1775년 4월 23일, 런던에서 이발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부터 회화에 손을 대어 왕립 미술원에서 그림 수업을 한 뒤, 잠깐 사이에 준회원에서 27세 되던 1802년에 정회원으로 올라갔다.
여러 곳의 풍습과 풍경을 주로 그렸으며, 특히 빛의 묘사에서 획기적인 표현을 남긴 화가이다.
후에 문학가 러스킨이 격찬하여 명성이 높아졌으며, 일생 동안 풍경화를 계속 그린 화가로서 17세기 프랑스의 화가 클로드 로랭을 능가하는 것이 일생의 염원이었다.
그런만큼 중기 (中期)에는 로랭의 영향이 보이나 후반에는 여기에서 벗어나 한층 더 빛의 묘사로 들어간다.
터너는 1819년부터 약 10년마다, 세 번 이탈리아로 여행을 갔는데, 물과 하늘, 그리고 빛나는 남국의 태양은 터너의 꿈이요 시였다.
터너는 풍경의 일체를 빛의 묘사에 집중시켜 빛 속에 용해시켜 갔는데, 그것은 균정(均整)이 잡힌 윤곽에서 정중하게 그린, 당시로서는 대담한 창작이었다.
더욱이 그는 다시 창작을 계속하여, 《항구 앞바다의 눈보라》(1843)에서 배의 그림자까지 거칠게 불어대는 태풍 속으로 꺼지는 듯 눈보라의 심한 상태를 주제로 잡고, 과거의 회화에 전례없는 동적인 표현을 그려내고 있다.
작품에는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 (1832), 《전함 테메레이르호 (號)》 (1839), 《안개 속의 해돋이》, 《비·증기·속력》, 《황금가지》 등이 있는데, 원숙한 빛의 표현이 아름답다.
이상하게도 제자나 후계자가 없는 화가로서 고독한 성격이었으며, 본가 외에 체르시에 은거하면서 이름을 바꾸어 생활을 했기 때문에 아는 사람도 없이 그 곳에서 1851년 12월 19일에 숨을 거두었다.
- 일화
1842년에 그린 ‘눈보라’ (Snow Storm – Steam-Boat off a Harbour’s Mouth)를 그릴 때의 일화가 있다. 터너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아리엘 (Ariel)이란 증기선을 타고 항해하다가 눈폭풍을 만났는데, 이 때 영감을 얻은 터너는 폭풍우의 모습을 눈에 담기 위해 선장에게 자신을 돛대에 단단히 묶어 달라고 요청했단다. 그러고는 약 4시간 동안 맨몸으로 폭풍우를 겪었다고 한다. 이게 젊은 시절도 아니고 노년인 60대 후반에 행한 일이다.
성격이 괴팍했다고 하며, 그 때문인지 제자나 후계자도 없는 화가로서 고독한 삶을 살았다. 본가 외에 체르시에 은거하면서 이름을 바꾸어 생활을 했기 때문에 아는 사람도 없이 그 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반면 이발사였던 아버지와 사이가 좋았는지 아버지가 화실 조수로 터너의 작업을 도와주기도 했다. 아버지가 죽고 크게 상심했다고 하며 그 영향으로 후기작은 대체로 분위기가 우울한 편이다.
공식적으로는 결혼 생활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사귄 여인이 두 명 정도 있는데, 한 명은 터너의 딸을 낳았다고 추정되고 있으며 나머지 한 명은 미스터 부스라는 가명으로 말년을 함께 보냈다.
- 기타
전기 영화로는 마이크 리의 미스터 터너가 있다. 이 영화에서 윌리엄 터너는 티모시 스폴이 맡았으며 2014년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전기 연극도 만들어졌는데 토비 존스가 윌리엄 터너를 맡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티모시 스폴과 토비 존스 모두 해리 포터 시리즈에 출연한 적이 있다.
“태양은 신이다”라는 유언이 상당히 유명하다.
새 파운드 스털링 20파운드 폴리머 지폐의 주인공으로 선정되었다. 본인의 초상과 함께 대표작인 전함 테메레르의 그림이 들어가게 되었다.
○ 주요 작품
The Fighting Temeraire tugged to her last Berth to be broken up
Fishermen at Sea
The Battle of Trafalgar
Rain, Steam and Speed – The Great Western Railway
The Slave Ship
Snow Storm: Hannibal and his Army Crossing the Alps
Crossing the Brook
Chichester Canal
Sunrise with Sea Monsters
Light and Colour (Goethe’s Theory) – The Morning after the Deluge – Moses Writing the Book of Genesis
The Burning of the Houses of Lords and Commons
Calais Pier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