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1월 31일, 제2차 세계대전 동부전선의 스탈린그라드 전투 (Battle of Stalingrad, 1942년 8월 21일 ~ 1943년 2월 2일)에서 독일군을 지휘한 프리드리히 파울루스가 소련군에 항복
1943년 1월 31일, 제2차 세계대전 동부전선의 스탈린그라드 전투 (Battle of Stalingrad, 1942년 8월 21일 ~ 1943년 2월 2일)에서 독일군을 지휘한 프리드리히 파울루스가 소련군에게 항복했다.
이 전투는 제2차 세계 대전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Battle of Stalingrad, 러: Сталинградская битва, 독: Schlacht von Stalingrad)는 1942년 8월 21일부터 1943년 2월 2일까지 스탈린그라드 (현재 이름은 볼고그라드) 시내와 근방에서 소련군과 추축군 간에 벌어진 전투를 말한다.
이 전투에서 약 200만 명이 죽거나 다쳤으며, 인간사에서 가장 참혹한 전투로 기록되고 있다. 독일 제6군과 다른 추축국 군대의 스탈린그라드 포위와 이후의 소련군의 반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전투를 기점으로 소련군의 전투력은 대폭 향상되어 독일군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1942년 8월부터 1943년 2월 2일까지 소비에트 연방의 스탈린그라드 (現 러시아 연방 볼고그라드) 일대에서 벌어진 소련군과 추축군의 대격전이다.
제1차 세계 대전에 베르됭 전투가 있었다면 제2차 세계 대전에는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있었다. 독일 (각각 독일 제국과 나치 독일)의 공세로 시작되어 독일이 거의 목표 달성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역습을 받고 패퇴했다는 점과 방어국이 더 많은 병력을 잃었지만 결국 승리했다는 점에서 매우 흡사하다.
쿠르스크 전투가 세계 최대의 전투라면,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최대 규모의 사상자를 낸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추축국은 80만명, 그 중 독일군은 40만명 정도가 죽었는데, 이는 독일군이 서부전선에서 미국, 영국 등과 싸우며 잃은 총 군인의 수와 비슷하다. 소련군 사상자는 1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된다.
전투가 상당히 치열했는데, T-34전차 승무원이 부족해지자, 공장 노동자들이 직접 탱크를 타고 싸우기도 했고, 초등학생정도만 되어도 전선에 투입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같은 해에 벌어진 과달카날 전역과 더불어 제2차 세계 대전의 전환점이었다고 평가받는 전투 중 하나로서 제2차 세계 대전의 무수한 전투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공방전이다. 민간인 희생자들을 포함해서 무려 200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나온 것으로 추측된다.
바르바로사 작전 이후 상대적으로 우세를 점하고 있던 독일군의 소련 정복 계획, 더 나아가 나치 독일의 세계정복 계획을 백지로 만들어버린 전투이며, 여러 전역을 통틀어서도 제2차 세계 대전의 전환점이라고 할 만하다. 냉전 때문에 소련군의 분투를 폄하하던 서방에서조차 스탈린그라드가 전환점이라는 것은 부인하지 않는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