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두 노인
톨스토이 / 뿌리깊은문학 / 2017.12.15
– 두 노인 [톨스토이] 100년, 뿌리 깊은 고전문학 시리즈! 어른들을 위한 동화! ‘두 노인’ [톨스토이] 작가의 우화 (한글 번역판) 아주 짧지만 긴 여운 남은 동화같은 단편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물음에 대한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동화적 우화로 풀어가는 톨스토이의 기독교적이며 세상 보편적인 현답을 들을 수 있다.
두 노인은 약속한 성지 순례를 떠나는데 예기치 못할 사건이 발생한다.
두 노인은 어떻게 참회와 기독교 정신을 체험하고 승화시킬 수 있을까?
<100년, 뿌리 깊은 문학 시리즈>는 죽기 전에 꼭 읽어 봐야할 작품을 선정하여 한글로 번역하는 시리즈다. (원작을 최대한 유지하려고 노력했으며, 우리 정서와 환경 상황에 따라 이름, 배경 및 환경을 달리 적용할 수 있음 밝힌다).
– 목차
머리말
[두 노인] -한글 번역판
부록 <톨스토이> 작가와 작품세계
– 저자소개 : 레프 톨스토이 (Leo Tolstoy / Lev Nikolayevich Tolstoy, 1828 ~ 1910)
레프 톨스토이 (Leo Tolstoy / Lev Nikolayevich Tolstoy, 1828년 9월 9일 ~ 1910년 11월 20일)는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 개혁가, 사상가이다.
사실주의 문학의 대가였으며 세계에서 제일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전쟁과 평화》(1869년), 《안나 카레니나》(1877년)가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러시아 문학과 정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 역자 : 한지민
유년시절 동경하며 꿈을 꾸던 러시아와 영미권 문학을 접하고서 세계 무대를 진출하고자 유학의 길을 떠났다. 삶의 위로가 되어준 세계 고전문학은 철학과 사상을 구축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 등장인물
예리세이: 노인, 가난하고 술과 담배를 가까이하면 약속을 잘 못 지키는 노인
예필: 노인, 부자이고 건축업에 종사하고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은 신사같은 노인
일가족
다른 순례자
– 줄거리
‘두 노인이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떠났다. 한 노인은 예핌 타라스이치 쉐베료프라는 부자 농부였고, 다른 노인은 그다지 많은 돈을 가지고 있지 않은 예리세이 보드료프라는 사나이였다.’
예핌은 태어난 이후 남에게 욕을 한 적이 없고 술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는 고지식한 사람으로, 매사에 엄격하고 야무진 성미를 가졌다. 그는 두 번이나 마을의 반장을 지낸 적이 있고, 대가족을 거느리고 산다. 게다가 그는 일흔이 되어서도 등이 구부러지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다. 같은 마을에 사는 예리세이이는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노인으로 젊어서는 목수 일을 하러 다녔고, 나이를 먹은 뒤로는 집에 있으면서 꿀벌을 치는 일을 한다. 예핌보다 나이가 많은 예리세이는 가끔씩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면서 마을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씨 좋은 명랑한 사나이다.
두 노인은 벌써 오래 전부터 함께 성지 순례를 떠나기로 약속했지만 예핌이 자신의 집안일에 대한 걱정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어진다. 결국 예리세이는 “우리는 어차피 언젠가는 죽을 몸인데 남은 자식들은 우리가 없어도 다 잘해 나갈 거네. 자네 아들도 지금부터 일을 배워 익히도록 하게.” “영혼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네. 그 어느 것보다 영혼의 일이 먼저 질서가 잡혀야 편치 않겠나?”라는 말로 집안일을 걱정하는 예핌을 설득하는 것에 성공하여 순례 길에 오르게 된다.
두 노인은 여행경비로 100루블씩을 마련했다. 부자인 예핌 노인이야 돈을 마련하느라 힘들 게 없었지만, 예리세이 노인은 아내와 자식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마련한 돈이었다.드디어 성지순례를 떠나고 5주일이 지난 어느 더운 날 오후, 예리세이 노인은 목이 말라서 물을 마시러 한 농가로 갔다가 그곳에서 전염병과 굶주림으로 일가족이 죽어가는 것을 보게 된다.
바싹 여읜 남편은 더 이상 움직일 힘이 없는 지경으로 해가 쨍쨍 내리쬐는 담장 아래 누워 있었고, 아내는 페치카 옆에서 신음하고 있었으며, 아이들은 빵을 달라고 힘없이 울어대고 있었다. 그나마 성한 사람은 할머니뿐이었는데, 나이가 많아서 어떻게 해볼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예리세이 노인은 부랴부랴 우물을 찾아 그 가족에게 물을 떠다 주고 위장이 약해진 그들에게 빵을 조금씩 찢어서 먹여주었다. 그리고 가게에서 음식을 사오고, 페치카에도 불을 지펴주고, 저녁 때는 수프도 만들어 먹였다.
앞서 간 예핌 노인이 기다릴 것을 생각하니 신경이 쓰였지만,그렇다고 죽어가는 그 집 가족들을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들을 돌보는 사이에 사흘이 훌쩍 지나고, 간신히 움직일 만큼 기운을 차린 농부는 예리세이 노인에게 자기 집의 절망스러운 형편을 털어놓는다.
그 이야기를 들은 예리세이 노인은 저당잡힌 땅을 그 가족에게 찾아 돌려주고, 젖소와 짐수레와 밀가루도 사주었다.
그러고 나니 여비를 다 써버려서 남은 돈이 채 20루블도 안 됐다.
별수없이 그는 성지순례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왜 돌아왔는지 궁금해하는 가족들에게 “길이 어긋나서 예핌도 놓쳐버리고 돈도 모두 잃어버렸다. 순전히 내 탓이니 걱정하지 말거라“라고 말한다.
한편 예핌 노인은 예리세이 노인이 뒤따라오지 않는 것이 걱정스러워 연방 뒤를 돌아보면서도 예루살렘에 도착해 순례자들과 함께 마리아가 머물렀던 방에 가서 기도도 드리고 야곱의 교회도 둘러보았다.
그러던 중 성당 구석에서 기도를 드리다가 문득 고개를 드니 예리세이 노인이 머리에 후광을 받으며 제단 앞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사람들을 헤치고 달려가봤지만 그새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도 예핌 노인은 예리세이가 제단 아래에서 빛을 받으며 서 있는 것을 보고 뛰어가봤지만 이번에도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어쨌든 예핌 노인은 예루살렘에서 6주를 머무르면서 가져간 돈을 다 쓰고 집을 향해 가던 중 밝고 유쾌한 분위기가 감도는 집에서 식사를 대접받게 된다. 그 집이 바로 예리세이 노인이 나흘 동안 머무르면서 도움을 주었던 그 가족들 집이었다.
예핌 노인은 그 가족들에게서 예리세이 노인이 그들에게 베풀어준 일들을 듣고예루살렘에 가서 신에게 기도를 올린 자신보다 예리세이 노인이 더 신의 말씀을 따르는 데 충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예루살렘에서 후광을 받으며 서 있던 예리세이 노인의 모습은 절대로 잘못 본 게 아니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예핌 노인은 잘 다녀왔느냐면 반갑게 자신을 맞는 예리세이 노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몸만 갔다 왔지. 돌아오다가 자네가 물 마시러 들어갔던 그 집에 들러자네 얘길 들었네. 자네는 몸은 안 갔지만 영혼은 예루살렘까지 갔다왔더군.”
톨스토이는 이 짧은 단편을 통해 그 어느 말보다 강렬한 메시지를 보낸다.
“영혼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네. 그 어느 것보다 영혼의 일이 먼저 질서가 잡혀야 편치 않겠나?”
“몸만 갔다 왔지. 돌아오다가 자네가 물 마시러 들어갔던 그 집에 들러자네 얘길 들었네. 자네는 몸은 안 갔지만 영혼은 예루살렘까지 갔다왔더군.”
– 출판사 서평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잘 사는 것일까?
삶의 의미, 인간의 진정한 가치를 끊임없이 탐구했던 대문호 톨스토이가 전하는 인생의 지혜!
성지 예루살렘으로 순례여행을 떠난 두 노인의 서로 다른 여정을 통해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풍요, 현실적 문제와 영혼의 문제를 따뜻하고 편안하고 간결하게 보여준다.
위대한 작가가 구현하는 단순함의 극치, 복잡한 머릿속이 깨끗해진다.
– 독자의 평
예필은 친절한 가족이고 성지 순례자를 존경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미안함을 앉고서 일가족의 호의에 감사하며 하룻밤을 보냈다.
그의 집은 허름했지만 밝고 깨끗했고 더구나 가족의 유쾌한 화목이 좋았다. 이런 저런 성지 순례 얘기와 그 가족이 어려웠던 대화를 나누며 이야기 꽃을 피우다가 친구 예리세이가 이곳에 머물면서 선행한 일을 알게 되었다. 이 집은 4일동안 온 정성을 다해 예리세이가 베풀었던 집이었던 것이다.
예필 노인은 망치로 머리를 맞는 듯 번쩍이며 깨달았다. 자기는 몸이 먼저 성지 예루살렘에 갔을 뿐이고 예리세이는 몸은 가지 못했어도 영혼은 먼저 간 것이다. 물론 예루살렘에 가서 참회와 회개의 기도를 드렸지만 예리세이는 하나님이 원하는 일을 실천을 했다.
그 때 보았던 예리세이의 친구의 후광은 헛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님이 보여준 증거였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