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제2차 인문학여행 (14)
단테를 비롯한 이탈리아 문인들
이탈리아어는 라틴어에서 유래하며 신라틴어, 즉 로망스어가 이탈리아 반도에서 변천하여 그 당시 이탈리아 각 지방의 방언이 수 세기의 부화기를 거친 뒤에 문학어로서의 이탈리아어로 발전해 나왔다.
12세기 후반에서 13세기 초기까지 피렌체의 경제적, 정치적 생활을 지배하게 된 칼리말라 (Arte di Calimala; 조합)의 영향으로 인문주의의 요람기가 싹트기 시작하여 교회와 봉건 영주의 정권을 벗어난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 등 자유 도시 국가들은 실천적 학문인 법률과 의학에 흥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철학, 예술 등에도 관심을 가져 고유한 문학을 찾기 시작했고 이탈리아 국민 문학의 형성에 있어 전통적인 라틴 문학은 물론이요, 프랑스 문학의 영향도 크게 입었다.
남부 이탈리아 반도와 여러 섬의 방언이 혼연일치 되어 시칠리아어를 이루어 이탈리아어로서의 최초의 시어 (詩語)를 구성했다. 즉 13세기 전반 프랑스 남쪽의 서정시가 시칠리아섬에 있는 페데리코 2세의 궁전에 전파되어 이탈리아 문학어로 된 연애시가 각 지방으로 유행되어갔다.
1250년 페데리코 2세가 사망하자 그 당시 상공업의 융성으로 정치, 경제적으로 민주적 자유 도시를 이루고 있던 토스카나 지방에 문화가 재흥되어 시칠리아에서 시작된 이 문학어는 점차적으로 북상하여 토스카나 지방인 볼로냐로 옮겨갔다. 그 당시 토스카나 방언은 라틴어의 전통을 가장 잘 보존 유지하고 있었기에 시칠리아의 연애시가 이 지방에 번지자 시칠리아어 내부의 라틴어적 요소, 즉 토스카나어에 가장 가까운 요소가 확장 강화되고 다른 요소를 제거하여 그 후부터는 토스카나 어가 문학어로서 계승되게 되었다.
그 당시 볼로냐에는 유럽 학문의 중심의 하나인 대학이 있었고 이 도시에서 구이도 구이니첼리 (Guido Guinizelli, 1230 ~ 1276)가 청신체 (淸新體)로 시칠리아어의 서정시보다 훨씬 순수하고 숭고한 시를 쓰기 시작하여 단테 (Dante Alighieri, 1265 ~ 1321)에 이르러 그 청신체를 모방하여 서정 시집 <신생 (新生)>을 출현시켰고, 그의 걸작 <신곡 (新曲)>을 완성하여 신곡에 의해 단테는 문학, 예술뿐만 아니라 종교, 정치면에까지 널리 인류 문화 전반에 걸쳐 하나의 계시를 던져 주었고, 토스카나어의 문학어로서의 지위를 부동하게 만들었다.
14 세기에는 단테의 뒤를 이은 거장 페트라르카 (Francesco Petrarca, 1304 ~ 1374)와 조반니 보카치오 (Giovanni Boccaccio, 1313 ~ 1375)의 등장으로 위대한 창조력이 발휘된 시기였다.
페트라르카는 라틴 산문과 시를 연구했을 뿐만 아니라 문학, 철학, 천문학에도 조예가 깊었고 이탈리아어로 <서정시집 (Canzoniere)>을 썼다. 또한 각 지방을 여행하면서 고전서를 수집하며 그 가치를 재발견하여 15 세기에 배출하는 인문주의자들의 선구자가 되었다. 보카치오는 설화 문학을 통해서 이탈리아어의 지위를 굳건히 했고 그의 걸작품인 <데카메론>은 시민의 승리를 높이 찬양 하는 소리이며 건전한 현세 향락의 문학이었다.
또한 13, 14세기경에 이탈리아 각 지방에 일어났던 인문주의 운동은 그리스, 로마의 고전 연구를 북돋았고 그리스어, 라틴어가 존중시 되어 여태까지 쌓아올렸던 이탈리아 문학어는 저급한 소설, 연가, 통속문에만 사용되어 경멸시 되는 경향이 일어났다. 이리하여 15세기에는 참된 의미의 이탈리아어 문학은 지지부진하는 감이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경향이 오래 계속되지는 않았다.
16세기에 와서 폴리치아노, 로렌초 (Lorenzo il Magnifico), 보이아르도 (Matteo Maria Boiardo), 그리고 산나차로 (Jacopo Sannazaro)의 노력으로, 특히 1520년에 간행된 피에트로 벰보 (Pietro Bembo, 1470 ~ 1547)의 속어 <산문 (Prose della volgar lingua)> 3권은 이탈리아어 연혁사에 매우 중요했고 크루스카 학회 (Accademia della Crusca)가 1612년에 간행한 사전을 중심으로 활발한 이탈리아어를 더욱 발전시켜 이탈리아 문학을 라틴 문학의 지위에까지 끌어올리려고 했다.
이리하여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여 마키아벨리 (Niccolò Machiavelli, 1469 ~ 1527)는 <군주론>으로 등장했고 아리오스토 (Ludovico Ariosto, 1474 ~ 1533)는 보이아르도보다 더욱 예술의 조화를 보여준 <광란의 오를란도>를 저술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문학은 아리오스토의 사망 후 쇠퇴해 갔다. 즉 르네상스가 스스로 무너져 교회가 인간의 양심을 지배하게 되어 창작 활동을 억압하게 된 것이다.
김마리아 회원 (시드니인문학교실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