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투데이
어느 교사의 아내 살인
1965년에 16세 동갑이였던 Chris Dawson과 Lynettee Joy Sims양은 시드니 부촌인 동부 지역에 살면서 명문 ‘시드니보이스와 시드니 걸스’에 다니다가 학교 행사 (Fuction)에서 만나 사랑을 나누다 21세가 되는 1970년에 3월 26일 결혼식을 했다. 이 당시 Chris는 잘나가던 “럭비 리그” 선수로 시드니 Northern Beach Cromer High School (남녀 공학)의 체육선생이 되었고 Lynettee는 간호사가 되어 이 지역의 Childcare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부부는 6년만인 1977년에 첫딸을 해산하였고 1978년에는 2번째 딸을 낳았다. 아이를 돌보아 줄 사람을 구하고 있을 때 Chris Dawson는 마침 학교 학생 중 엄마와 같이 사는 의붓 아버지 (Stepfather)가 엄마를 때리고 자기도 맞고 지내서 10학년을 졸업하고 일을 한다는 학생이 있다고 해서 1981년 10월 J.C를 “Babysitter”로 하기로 두 부부는 결정하고 집에 들어와 같이 살기로 하였다.
다정했던 두 부부는 새로운 Babysitter가 들어온 후에 싸움이 자자 졌다. 두 부부는 젊은 부부가 사는데 다 자란 “Babysitter”와 동거를 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해서 새로운 방을 얻어 주었다. 남편 Chris는 점점 부부간의 간격이 멀어졌다. Lynette의 친구 Anna Grathan는 근래 남편이 자기를 때렸다고 말하였다고 하며 오랫동안 이웃으로 있는 Julie Arden은 자주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Chris가 운동을 하다 코를 다쳐 코 수술을 하고 병원에 입원 했으나 Lynette는 병원에도 가지 않고 대신 장모가 병원을 가 보니 J.C가 와서 간호를 해 주고 있었다고 말했다.
1981년 10월경, Chris는 Lynette와 별거 하면서 Manly 지역에 Unit을 500불 주고 계약한 후 이사 하였고 1981년 12월 23일에는 Chris와 J.C가 시드니를 떠나 퀸스랜드와 NSW 국경 도시로 이사를 했다. 정식적으로 1981년 12월 23일 처음으로 Chris 와 J.C의 동거가 시작 되었다. 이때 아무것도 모르는 Lyn.은 남편이 자기을 Pick Up 해 줄 것이라고 6시 까지 직장에서 기다리다 집에 와보니 “Good bye”라는 메모를 발견했다. 그러나 J.C 동거는 거의 이야기가 없었다. J.C는 어린 나이로 몹시 불안해서 다시 크리스마스 아침에 시드니에 도착하고 Chris는 Baywater 자기 집으로 하고 J,C 역시 자기집으로 갔다. 12월 31일 Newyears Eve 요트경기에 Chris가 참석 한다고 해서 Lyn.이 아이들과 같이 가자고 하자 Chirs는 “No” 했다. 사실은 그날 J.C 자동차 안에서 같이 지냈다고 한다.
1982년 1월 1일 정월 초 하루라 Lyn이 2명의 딸들을 데리고 자기 엄마가 사는 Clovally 친정에 있다가 1월 3일 집으로 돌아 왔다. 1982년 1월 9일 토요일 Chris 말에 의하면 애들 때문에 잠을 설친 Lyn.이 아침에 일찍 깨어 세탁기도 돌리고 애들 먹을 샌드위치도 만든 후에 자기가 12시 넘어 Northbrige에 있는 수영장에 엄마하고 만나기로 하였다고 말하고 7시 까지 Bus 정류장 까지 대려다 달라고 해서 애들을 태우고 버스 정류장 까지 데려다 주고 나서 자기도 애들과 같이 North Bridge에 가서 수영을 하고 있었다. 그때 장모 Helena 가 와서 같이 있었다고 했다. 이날 장모가 Chris을 보니 몹시 흥분된 상태였다고 한다. 이후에 Lyn은 영원히 사라졌다.
2월 18일 Chris가 정식으로 실종신고를 Monavale 경찰서에 제출하여 본격적 수사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경찰 당국은 살인근거를 찾지 못했다. 1990년 J.C 도 딸 하나를 낳고 이혼을 했다. 그리고 그의 부인 실종 사건에 적극적으로 경찰에 협조하기로 하였다.
경찰 당국은 근거 부족으로 인해 범인 색출이 어려워지자 2010년에 NSW 정부가 10만불 현상금을 걸었고 2014년에는 20만불로 올렸다. 수십 년 동안 경찰이 노력하고 살던 집 Bayview House를 몇 년간 걸쳐 조사 했으나 Lyn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2018년 12월 5일 J.C와의 관계 등 Lyn과의 관계가 크게 악화되어 필연코 Chris가 살해한 것으로 인정하여 재판부는 그가 Lyn을 살해 한 것으로 추정하여 2018년 12월 5일 퀸스랜드에서 살인죄로 체포 했으나 그해 시드니 실버워터 형무소에서 12월 24일 보석으로 풀러났다. 보석금으로 그의 쌍둥이 형 Peter의 Porsche 자동차와 그의 퀸스랜드 재산 150만 불로 계산되면서 허가 되었고 다만 Chris가 현주소인 Coolum 지역을 떠나지 말라는 것이다. 그후에 재판부에서 그의 살인 제는 무효화 하고 다만 그의 아동 성폭행을 저지른 죄만 허용 되었다. 학교 학생인 J.C를 17세 전에 성폭행을 했다는 죄이다. 그러나 2022년 5월 9일 40여년이나 미해결된 이 사건이 판명되었다. NSW주 대법원이 검사장 Craig Everson Sc와 Chris의 베리시터 Pauline David 와 솔리시터 Greg Walsh와의 회동을 통해 대법원 판사 Ian Harrison 판사가 최종 판결을 내렸다. 아내 살해죄 24년 형에 18년은 어떤 보석도 허용치 않도록 한다는 판정으로 인해 Dawson의 아내 살해는 확정되었다. 먼 길을 떠나는 여자가 옷과 돈 역시 준비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그가 살해 되었음이 40년 넘게 조사에서 판정되었다는 것이다.
10년 안에 전쟁을 대비하는 호주군 이야기
호주군 이 처음 Anzac 부대를 창설하여 모국인 영국을 위해 싸웠던 제 1차 대전 당시는 인구 4백 40만 명에서 군인 수는 416,000명으로 거의 인구의 14%가 군인이였다. 호주 20대 젊은이들이 그 당시 “해가 지지 않는 식민지”을 가지고 있던 모국의 전쟁을 돕기 위해 군대를 많이 지원해서 그 당시 수도였던 멜본에는 지원자들로 잠을 잘 곳을 찾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이 당시 영국과 군사동맹을 맺었던 일본이 호주군을 서부 호주 Perth 항구 Fremantle 항구로부터 카이로 가는 중간 지역까지 수송했는데 중국인 하급 노동자들만 보고 아세아를 생각 했던 호주 군들이 큰 배를 운전하는 일본군을 보고 놀랐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들 20대의 젊은 호주 군인들은 “칼리폴리” 전투와 서부 유럽전투를 통해 6만 명이 사망했다. 독일이 먼저 발명한 기관총 때문에 피해자가 많았고 연합군 중에 참전인원을 비례해서 보면 호주는 많은 전사자를 냈다.
참전자 일기장에는 “나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호주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라는 글귀가 있다. 그 대가로 미국과 영국 등이 그간 인구가 부족한 호주 대륙을 지켜 주었다. 그러나 근래 세계에서 2번째 군사대국 중국 (상비군만 425만 명)이 호주가 인접하고 있는 태평양 일부를 차지 하겠다고 필리핀 옆에 조그마한 남중국해 기지를 만들고 호시탐탐 태평양 소국을 매수해서 호주 근접에 위협을 주고 있어 당면한 호주는 심각한 위협을 느끼고 있다. 늘 지켜주던 미국은 이제 더 이상의 도움을 바라기 어려운 실정이라 호주가 자체 국방에 힘을 써야 할 판이다.
금년 5월 1일 부로 호주군 병력이 58,284명이라고 한다. 당장 4,400명의 비행사와 핵잠수함 상주 군인이 필요하다. 매년 350명의 충원이 필요 하지만 지원자가 없어 심각한 지경이다. 과거 1차 대전 때를 비교하면 현재 호주 시민 2,200만 명의 14%이면 250만 명의 군대가 나올 법 한대 그렇지 않다. 호주는 앞으로 2040년에는 군인 수가 10만 명이 필요하다. 호주군 관계자들은 적어도 10년 안에 큰 전쟁이 발발한다고 생각하고 준비하나 국민들은 전혀 관심이 없다. 이민자가 많은 호주 젊은이들의 국가 방위책임이 크게 하락되고 있다. “군대는 살인자” “호주 국기는 인종차별” 또한 군대를 제대한 재향군인들이 사회 적응을 못하고 자살하는 경우가 크게 늘어나 군대 입대를 원하는 젊은이 수가 크게 하락 되었다.
호주군은 직업군이 제도라 연봉이 5만 불에서 계급 및 직급에 따라 10만 불까지 되며 주택 구입 보조, 자동차구입 보조 등 많은 해택이 있다. 시민권자이면 “On Line”으로도 지원할 수 있으며 “간단한 신체검사”를 통해 “합격, 불합격”이 결정된다.
영주권자중에 Five eye nations (영어하는 형제국 나라)는 호주군의 지망할 수 있다. 내년부터는 파프아 뉴기니아, 피지 등 태평양 지역 국가들에서도 호주군에 입대가 가능하며 시민권도 수여한다. 더욱이 5년을 근무하면 보너스 5만 불도 주고 있다.
호주에는 뉴질랜드 사람들이 50만 명이 국적을 버리지 않고 살고 있다. 이들의 지원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가 연합해서 Anzac 부대가 만들어져 좋은 성과가 있었다. 만약 법적으로 영주권자들이 입대가 허락된다면 중국이민자 중에 영주권자도 지원이 가능할 수 있다. 호주 국방예산은 2034년 까지 1,000억 불이 필요하다. 500억 불은 그전에 필요하며 핵 잠수함 대금지불, 기타 관계 시설 설정에 630억 불이 필요하다. 예산중 38%는 해안경비에 필요하며, 16%는 육군, 14%는 공군에 투자된다. 공군기를 F-35 최신형 100대를 마련하기로 하였으나 70대로 줄였다. 중국은 핵잠수함만 21대이고, 전함만 300척이나 호주는 핵잠수함 6척에 전함 10척에 불과하다. 연합된 힘이 없으면 중국과의 전쟁을 이길 수 없다.
한 호주 병사를 소개한다. 뉴질랜드 국적인 46세의 무인기 담당 군인으로 호주군인 생활을 했던 Kerin Joyce는 입대 후 24년 군인생활 중 4년은 공군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그는 East- Timore, Afganistan, Iraq 등지에서 전투에 참여했고 Five Eye nation의 영주권자들이 호주군에서 복무하는 것은 좋다고 했다. 현재 호주군에 4,400명의 보충이 어렵다고 하는데 특히 공군 조정사와 핵잠수함 탑승인원에 충원이 힘들다고 한다. 2002년도에 연봉 77,000불을 받을 때는 호주내 평균 집값이 320,000불이였다. 그러나 근래는 950,000불이 되니 봉급을 더 올려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과 합작으로 2025년부터 호주 내에서 미사일과 로켓을 조립할 군수공장이 마련되도록 체결 되었다. 이로 인해 호주 제조업도 흥행을 보게 되고 호주의 철광석이 Aukus 조약으로 6척의 핵잠수함을 소유하게 되는데 핵잠수함 제조 원료로서 가장 우세하기 때문에 핵잠수함을 호주에서 구조를 마련하게 된다. 이것은 2025년 무려 4,500가지 시험을 통해야만 결정된다고 한다. 호주의 정부 및 군 관계 고위층이 이미 방문해서 미국 알라바마 주에 있는 Lockheed Martin missile plant을 방문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큰 성과를 보인 HIMAR missile 제조 한다.
하명호 (SBS 방송인,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