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소개
프랑스 화가 장바티스트카미유 코로 (Jean-Baptiste Camille Corot, 1796 ~ 1875)의 ‘모르트퐁텐의 추억’ (Souvenir de Mortefontaine)
장 바티스트 카미유 코로, 캔버스에 유채, 89 x 65.5cm, 1864년, 루브르 박물관
장바티스트카미유 코로 (Jean-Baptiste-Camille Corot, 1796년 7월 17일 ~ 1875년 2월 22일)는 프랑스의 화가이다.
《모르트퐁텐의 추억》 (Souvenir de Mortefontaine)은 1864년에 장바티스트 카미유 코로가 제작한 그림이다. 이탈리아를 여행한 시대의 코로는 남방의 햇빛에 감동되어, 조용한 가운데서도 밝은 작품을 남겼는데, 코로가 가장 코로답다고 논평되는 연못가의 작품에서, 코로는 융합되는 듯한 부드러운 묘사를 보이고 있다.
모르트퐁텐은 파리보다 북쪽에 있어 넓은 정원으로 유명한데, 이 작품에서도 연못 주위의 황혼녘의 빛은 사람의 마음을 가라앉혀서 나뭇잎의 끝은 대기 속에 용해되는 듯 생각되고, 나무의 그림자는 조용하고도 짙으며, 연못의 물이 빛날 때에 한 가닥 낮은 자연의 소리에 마을 아가씨와 어린이가 왼편에서 놀고 있다. 그것은 현실적인 정경이지만 동시에 이야기인 듯도 하며, 마을 아가씨를 코로가 물가에 반복하여 묘사하는 님프 (물의 요정)의 자태로 대입 (代入) 시켜도 하등 이상할 것 없을 정도로 이 작품은 몽환적 (夢幻的) 온화함으로 둘러싸여 있다.
– 모르트퐁텐의 추억 (Souvenir de Mortefontaine)
.작가: 장바티스트 카미유 코로
.연도: 1864년
.매체: 캔버스에 유화
.크기: 89 x 65.5 cm
.소장: 루브르 박물관
우리가 실제로 있는 현실의 풍경을 그렸을 것으로 생각하는 풍경화들은 실제 풍경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실 인상파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현실 풍경을 이상적으로 연출한 ‘비현실적인’ 풍경화가 오랜 사랑을 받아왔다.
카미유 코로가 그린 위 작품도 마찬가지이다. 있는 그대로의 경치를 그린 후 상상을 덧입히는 데 능했던 코로는 야외에서 스케치한 풍경 위에 본인의 환상 세계를 뒤덮었다. 이후 인상주의가 등장하고 나서야 프랑스에서도 실물을 묘사한 현실 풍경화가 인정받기 시작했다.

○ 작품 설명
코로의 걸작 중 하나로 인정받는 이 작품은 그의 말년에 그려졌으며, 코로의 시적인 작품 중 가장 성공적인 작품 중 하나이다.
작품 오른쪽에 보이는 연못가의 커다란 나무는 자연스럽게 희미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반면 작품 왼쪽은 비어있는 하늘과 연못이 차지하고 있어 작품의 무게중심이 오른쪽으로 쏠려 있다.
그림의 배경은 진주빛 물안개가 자욱한 봄날 아침의 숲 속. 화면 오른편에 커다란 나무는 무성한 이파리를 펼치면서 병풍처럼 허공을 감싸고, 화면 왼편에는 물오르는 어린나무가 싱그러운 아침 공기를 가르면서 하늘로 가지를 뻗치고 있다. 작은 나무에서 피어나는 고운 꽃송이가 동심을 유혹한 것일까? 한 아이가 두 팔을 벌리면서 언니에게 꽃을 따달라고 조르고, 또 다른 아이는 발치에 핀 꽃에 넋을 빼앗긴 채 철퍼덕 무릎을 꿇었다.
까치발을 하고 꽃을 따는 봄 처녀와 꽃을 따고 싶어 조바심을 내는 아이들의 천진스런 모습은 하루하루가 축복이며 희망이던 어린 시절의 그리운 초상이기도 하다. 화가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에 매혹당한 동심을 강조하기 위해 처녀의 치마와 아이들의 머리에 쓴 두건을 붉게 색칠했다.
이곳은 모르트퐁텐이다. 모르트퐁텐은 18세기 프랑스 상리스Senlis 근처에 조성된 광대한 공원을 가리킨다. 태곳적 자연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한 공원의 숲과 호수는 예술가들의 영감을 자극했다. 특히 코로는 하늘과 물, 숲과 대기가 어우러진 이곳 풍경에 매료되어 모르트퐁텐을 자주 찾아와 그림을 그리곤 했다.
코로에게 추억이란 이 그림에서처럼 부드럽고 따뜻하며 편안한 것이었다. 그는 추억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화면 한쪽은 닫고 다른 한쪽은 열어두는 독특한 구도를 선택했다. 화면 오른쪽에서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가 사람들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차단하고, 화면 왼쪽은 하늘과 물을 향해 아늑하게 열려 있다. 한쪽은 가리고 다른 한쪽은 열어두는 구도로 인해 감상자의 눈길은 물안개가 번지는 흐릿한 호수 저 편 추억속으로 물처럼 젖어들게 되는 것이다.
색채도 추억을 상기시킨다. 화가는 어릴 적 추억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화면을 녹색과 회색빛이 감도는 은은한 색조로 통일했다. 파스텔 톤의 부드러운 색채가 애틋하면서도 그리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도록 말이다. 끝으로 화가는 솜털처럼 섬세한 붓 터치로 동이 트는 아침의 몽롱한 대기를 그림에 생생하게 재현했다. 그 덕분에 감상자는 물안개의 비릿한 냄새까지도 맡을 수 있게 되었다.
삶에 지친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삼림욕 시켜주는 이 그림은 코로가 예순다섯 살 때 어릴 적 추억을 회상하면서 그린 것이다. 인생의 종착역에선 노화가는 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어 했다. 코로가 옛날을 그토록 그리워한 것은 다정하고 온화한 성품을 지닌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기 때문이다.
시적이면서 서정적인 코로의 추억 연작은 삶에 지친 도시민들의 향수를 자극했고, 그의 풍경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났다. 19세기 프랑스 시인이며 비평가였던 고티에도 코로의 그림에 매혹당한 사람 중 하나였다. 시인은 추억이라는 느낌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해준 그림에 감탄하며 찬사를 보냈다.

○ 장바티스트카미유 코로 (Jean-Baptiste-Camille Corot, 1796 ~ 1875) 개관
장바티스트카미유 코로 (Jean-Baptiste-Camille Corot, 1796년 7월 17일 ~ 1875년 2월 22일)는 프랑스의 화가이다.
– 장바티스트 카미유 코로 (Jean-Baptiste-Camille Corot)
.출생: 1796년 7월 16일, 파리 rue du Bac
.사망: 1875년 2월 22일, 파리 rue du Faubourg-Poissonnière
.직업: 화가, 사진가, 판화가, 데생화가, 제도사
.부모: 루이스 자크 코롯, Marie Françoise Oberson Corot
.학력: 피에르코르네유 고등학교 (1807 ~ 1812), Académie Suisse
.스승: Achille Etna Michallon, Jean-Victor Bertin
.제자: 베르트 모리조, Charles Le Roux, Victor Vignon, Auguste Anastasi, Louis-Augustin Auguin, Louis Aimé Japy, Marcellin de Groiseilliez, Léopold Desbrosses, Antoine Chintreuil
.사조: 사실주의, 바르비종파
.수상: 레지옹 도뇌르 슈발리에 (1846), Officer of the Legion of Honour (1867)
.주요 작품: Nymphs and Fawns
파리의 유복한 포목상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1815년부터 7년동안 포목상의 도제로 있었으며, 평생 독신으로 산 코로가 그림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은 50세가 넘어서였고 그때까지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했다.
기본적인 교육은 루앙 (College de Rouen)에서 받았는데 이때 장-자크 루소의 영향을 받은 범신론적인 자연 사랑을 키우게 된다. 포목상의 도제로 있을 때 저녁에는 아카데미 스위스에 나가 그림을 배우며 화가로서의 꿈을 키운다.
26세가 되는 1822년에야 부모로부터 그림에 전념할 수 있는 허락을 얻어서 이때부터 전업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코로에게 영향을 준 스승은 아실 에트나 미샬롱 (Achille Etna Michallon)과 장-빅토르 베르탱 (Jean-Victor Bertin)이며 이들에게 풍경화를 배우며, 이탈리아 여행을 권고 받게된다. 평생 세차례어 걸쳐 이탈리아 여행을 하면서 사실성을 바탕으로한 독자적인 서정적아름다운을 지닌 풍경화를 제작한다.
살롱에 출품한 것은 1827년부터이며, 이후에는 오래도록 계속 출품하지만, 시종 풍경화가로서 그렸다.
작품은 엄정한 데생을 주장하는 측으로부터는 공격을 받으나 그 겸허한 진실에서 코로는 점차 조용한 존경을 모으고 있었다. 삽화도 적지 않다.

– 생애 및 활동
장 바티스트 카미유 코로 (Jean-Baptiste-Camille Corot, 1796년 7월 17일 ~ 1875년 2월 22일)는 파리의 유복한 가발 제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처음 한동안은 양복점의 점원으로 있었다.
1821년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던 동갑내기 풍경화가 아실 에트나 미 샬롱에게 첫 정규 미술 교육을 받았으며 고전주의 방식으로 풍경을 담아내는 미 샬롱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스승인 미 샬롱은 1822년 젊은 나이에 폐렴으로 사망하게 되었다. 이후 코로는 미 샬롱의 스승인 장 빅토르 베르텡의 화실로 옮겨 1825년까지 미술 교육을 받았다.
회화에 마음이 이끌려 다소는 스승을 따라 배우기도 했으나 역시 자연이 그의 스승이었다.
이어 동경하던 이탈리아의 정다운 풍경에 감동했다.
그 이탈리아에서의 제작은 아름다웠으며 그는 모두 세번 이탈리아를 찾았다.
부모님의 지원으로 이탈리아를 여행하게 된 코로는 1825년부터 1828년까지 이탈리아에 머물며 르네상스 시대의 대가들에 대해 공부했다. 또한 많은 시간 이탈리아의 뜨거운 햇빛아래서 그림을 그리며 빛의 변화를 캔버스에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살롱에 출품한 것은 1827년부터이며, 이후에는 오래도록 계속 출품하지만, 시종 풍경화가로서 그렸다.
작품은 엄정한 데생을 주장하는 측으로부터는 공격을 받으나 그 겸허한 진실에서 코로는 점차 조용한 존경을 모으고 있었다.
그 생활은 담담하여 화단의 대립에도 관계 없이 자연의 깊이와 벗하는 조용한 생활을 계속하고, 또한 도미에와의 우정 등 아름다운 삽화도 적지 않다.
1827년부터는 살롱전에 자신의 작품을 출품하기 시작했으며, 평생 살롱전에 출품했던 작품이 100점이 넘는다고 한다. 짧고 힘 있는 붓터치로 빠르게 그려내는 그의 풍경화는 많은 인상파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종종 바르비종에서 그림을 그리며 바르비종의 예술가들과 교류하기도 했다.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며 살롱전에 출품했지만 비평가들의 평은 그리 좋지 않았다. 가끔 그림이 판매되기도 했지만 그림으로만 생계를 이어갈 수는 없었으며 여전히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야 했다. 1840년대 그가 쉰이 다 되어갈 무렵이 되어서야 비평가들에게 호의적인 평가를 받게 되었으며 프랑스 정부로부터 뢰종 드뇌르 훈장을 받았다.
1851년 살롱에 출품한 ‘아침, 님프들의 춤’으로 그의 위상은 높아지게 되었으며, 그의 작품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가끔은 주문이 너무 밀려 제자들이 그린 작품에 자신의 이름을 서명해 판매하기도 했다고 한다. ‘코로는 3천 점의 그림을 그렸는데 미국에만 10만 점의 코로 작품이 있다’ 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생전부터 그의 작품은 복제되고 모사되었다.
부모님의 재산과 자신의 작품을 판 돈까지 어마어마한 부를 가지게 된 코로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여러 도움을 주기도 했다. 전쟁이 일어나자 파리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거금을 기부하였으며 친한 친구인 화가 오노로 도미에가 시력을 잃고 빈털터리가 되자 그를 위해 집을 사주었다. 밀레가 죽고 밀레의 부인이 아이들의 양육비에 허덕이자 10,000 프랑을 그녀에게 주기도 했다.

노년이 되어서도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며 어려운 사람들의 친구가 되었던 코로는 1875년 일흔여덜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작품으로는 《이탈리아의 풍경》도 볼만하지만 또 《두에의 종각 (鐘閣)》(1871)과 그 밖의 것도 미묘한 정적 (靜寂)을 나타내는 외에, 연못가의 온화한 매력에 넘친 《모르트퐁텐의 추억》 등 다수의 작품이 그려졌다.
코로는 생애에 수많은 풍경화를 남기고 있으나, 그 제작은 언제나 겸양하면서도, 다른 어떤 제작에도 못지 않는 높은 인식으로 풍경화를 드높였다.
더구나 만년엔 즐겨 인물을 그리고 있는데, 만년의 인물은 더욱더 맑아져 조용한 감동을 주는《푸른 옷을 입은 여인》(1874) 외에 《진주의 여인》(1868 ~ 1870)의 모나리자와 같은 포즈는 그 품격과 묘사의 적확 (的確)으로 19세기를 대표하는 작품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코로의 풍경에는 시와 진실이 이상하리만큼 조용히 용해되어 있다.
코로는 빌 다브리에도 집을 가지고 있어 못가를 되풀이하여 그렸는데 코로의 화필에 그 수목은 현실과 꿈의 아름다움을 융합시킨 듯하다.
코로는 겸허하고 타인에 대한 따뜻한 인품 때문에 그 생애는 회화에만 전념하는 진실로 평화로운 것이어서 인생의 풍파도 이 사람을 피하고 있는 것 같다.
– 평가
위대한 많은 예술가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으며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의 풍경화 대부분은 그의 영향안에 있다고도 본다. 따듯한 마음만큼이나 따듯하고 서정적인 그의 작품은 현재까지도 여전히 우리를 위로해 주고 있다.

– 작품
작품으로는 《이탈리아의 풍경》도 볼만하지만 또 《두에의 종각 (鐘閣)》(1871)과 그 밖의 것도 미묘한 정적 (靜寂)을 나타내는 외에, 연못가의 온화한 매력에 넘친 《모르트퐁텐의 추억》 등 다수의 작품이 그려졌다. 코로는 생애에 수많은 풍경화를 남기고 있으나, 그 제작은 언제나 겸양하면서도, 다른 어떤 제작에도 못지 않는 높은 인식으로 풍경화를 드높였다. 더구나 만년엔 즐겨 인물을 그리고 있는데, 만년의 인물은 더욱더 맑아져 조용한 감동을 주는 《푸른 옷을 입은 여인》(1874) 외에 《진주의 여인》(1868 ~ 1870)의 모나리자와 같은 포즈는 그 품격과 묘사의 적확 (的確)으로 19세기를 대표하는 작품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코로의 풍경에는 시와 진실이 이상하리만큼 조용히 용해되어 있다. 코로는 빌 다브리에도 집을 가지고 있어 못가를 되풀이하여 그렸는데 코로의 화필에 그 수목은 현실과 꿈의 아름다움을 융합시킨 듯하다. 코로는 겸허하고 타인에 대한 따뜻한 인품 때문에 그 생애는 회화에만 전념하는 진실로 평화로운 것이어서 인생의 풍파도 이 사람을 피하고 있는 것 같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