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투데이
파리 올림픽에 호주대표 460명 보내다
2024년 7월 26일부터 8월 11일까지 실시하는 파리 올림픽대회에 호주는 460명 선수를 보냈다. 이중에 여자선수가 남자보다 55.6%로 높다. 호주 선수들은 329개 메달에 도전하게 되는데 다만 전체 경기 중에 Fencing, Handball, Valleyball (배구)은 호주 선수가 출전치 않았다. 벌써 7월 27에 실시한 “여자 자전거 경기“에서 Grace Brown (32세, 빅토리아 출신) 선수가 금메달을 처음 달았다. 그러나 2020년 도쿄 대회에서는 메달을 못 달았다. 이여 여자 400m 수영 릴레이 (Relay) 경기에서 금메달을 얻었고, 타스미니아 출신 23세 Ariane Titmus가 400m 여자 수영에서 금메달을 탔다. 이 선수는 수영에서 만능 선수로 기대가 된다. 또 여자 카약 (Kayak) 경기에서 프랑스 출신 30세 Jessica Fox가 여자 Single Kayak 경기에서 금메달을 탔다.
남자 팀은 은메달은 나왔으나 아직 (7월 29일 현재) 금메달 소식은 없다. 호주는 제 1회 “아테네” 대회부터 참석해 왔다. 근대 올림픽이 처음이 “그리스 아데네”에서 실시되었던 1896년 경기에도 영국의 유학중이던 빅토리아 출신 21세 Edwin Flack이 개인 돈으로 호주 선수로 출전해서 800m와 1500m에 우승하여 처음으로 금메달을 얻었고, 여자는 1912년 스웨덴 “스톡홀름” 경기에서 자유형 100m 수영에서 우승해서 처음 우승을 했다. 수영 분야에서 호주 선수들은 두각을 나타냈다. 호주는 이제껏 금메달 221개중에 71개가 수영에서 얻은 금메달이다.
7월 28일 현재까지 올림픽 현황을 보면 1등 일본 (금은동 메달수, 4.2.1), 2등 호주 (4.2.0), 3등 미국 (3.6.3), 4등 프랑스 (3.3.2), 5등 한국 (3.2.1), 6등 중국 (3.1.2) 순위다.
호주의 2020 도쿄 올림픽성적을 보면 금메달 17개, 은메달 7개, 동메달 22개의 성적으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영국에 이어 6위를 차지했다. 일본 도코 올림픽은 Covid-19로 인해 1년간 연장 후에 실시된바 있다.
올림픽 순위를 예측하는 권위있는 전문 회사에 의하면 이번 호주의 메달수가 54개로서 5위가 될 것이라고 했다. 24년 전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 호주는 58개 메달을 탔으며 이번이 다음이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 근대 올림픽이 개최된 것은 1900년 제2회 대회와 1924년 8회 대회에 이어 올해가 세 번째이자 100년 만이다. 그러나 예전 올림픽에는 성화 봉송이란 예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파리에서 올림픽 성화가 타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근대 올림픽에서 처음 성화가 도입된 것이 192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회였기 때문이다. 8회가 개최되었던 1924년을 계산하면 100년 만에 개최하는 올림픽이 된다. 8월 11일까지 보름 동안 열리는 이번 올림픽에는 206개국 1만500명의 선수들이 참가해 32개 종목에서 최고의 실력을 겨룬다,
이번에 입장식은 프랑스 파리의 식물원 근처 오스테를리츠 다리를 출발해 에펠탑 인근 트로카데로 사상 최초로 강 위에서 개회식을 열었다. 센강 위에서 배를 이용해 진행되면서 이를 관람하고자 약 6㎞에 이르는 행진 구간에 30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모였다. 예전 올림픽과 비교해 확연히 다른 구성으로 ‘올림픽의 프랑스 혁명’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평을 들었다.
제33회 파리 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관심만 뜨거운 게 아니라 날씨도 너무 뜨거워서 역대 가장 더운 올림픽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00년 전 1924년 파리올림픽 때보다 기온이 섭씨 3.1도 상승했다니, 지구온난화의 결과를 현실적으로 체감하는 대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기후변화 정책으로 에어컨을 사용치 않는다고 하는데 선수들이 얼마나 어려울지 걱정이다.
현대 올림픽 시작은 700년간이나 오스만 터키에 지배를 받아왔던 그리스가 오스만 터키가 국세가 약화되자 1821년 독립운동을 전개해서 올림픽 부활을 시키자는 국민들의 각성이 일어났다. 유명한 시인 “파나요티스 수초스”라는 시인은 “올림픽 부활”를 원하면서 국민들을 코취 했다. 그러나 정작 독립된 정부에서는 이를 반대하고 나섰다. 유럽이웃들은 산업혁명으로 새로운 기술을 이여 가는데 우리가 왜 예전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차라리 “산업 박람회”을 개최 해서 프랑스처럼 국익을 도모 하자고 하였다. 그러나 “예방 겔리스 자파스” 라는 그리스 부호가 모든 자산을 기여 하면서 올림픽 부활을 서둘러 1859년에 그리스 아테네에서 현대 올림픽 제 1회가 개최 되었다. 그러나 그리스 사람들은 올림픽을 매 4년씩 그리스 안에서만 개최 하자고 그 당시 그리스 왕에게 청원했다.
한편 프랑스 역사학자였던 “쿠베르탱”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1870–1871)에서 프랑스의 패배 원인을 분석하면서 군사들이 체계적인 체력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에서 패배했다고 해서 국민들의 체력을 향상 시키기 위해서는 올림픽과 같은 세계적 대회를 통해 힘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해 그리스 아테네 경기와 영국 자체의 경기. 프랑스 경기들을 연구해서 새로운 근대 올림픽을 발전시켜왔다. 그는 우선 그리스 자체 내에서만 올림픽을 열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올림픽 총회 (IOC)를 만들어 각국이 올림픽을 하도록 했다.
Metro 개통과 시드니 지역 직업군
시드니는 원래 북부, 동부에 해안이 있어서 처음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지만 시드니 서부 지역은 바다가 없어 그리 번영을 이루지 못하고 대부분 수입이 낮은 근로자들이 모여 살게 되어 차별을 많이 받아 왔다. 그러나 남은 “브루마운틴” 동쪽은 “자연공원”에 막혀서 서부 발전 없이는 시드니 개발을 말할 수 없게 되자 서부 개척이 우선 되었다. 이민자 출신 NSW 여 주지사 Glady Berjiklian은 북부와 서부를 연결하는데 몰두하여 7년간 총공사비 216억 불을 들여서 시드니 바다 밑을 뚫고 서부 중심 Sydenham까지 연결하는 공사에 성공하여 내달 8월 4일 개통식을 가지게 되었다.
Metro-Train은 운전자 없이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전철을 말하는데 2019년에는 Chatswood부터 서북쪽 전철 종점인 Rouse Hill (Tallowang) 까지 완성되었다. 원래 이 계획은 16년간 집권했던 노동당 정권이 이태리에서 수입하여 실행하려 했으나 이루지 못하고 2011년에 집권한 자유당 정권이 이를 수행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많은 예산에 더욱이 바다 밑을 뚫는 난공사를 극복하고 이어 시드니 소원인 북부 시드니와 서부 시드니가 개통이 되었다. 이제 내년부터 착공하여 Bankstown까지 연결이 되면 서부와 연결이 완성된다.
Chatswood에서 Sydenham까지 15.5Km가 바다를 뚫고 완성된 것이다. 시간당 3만 7천 명의 승객을 운반할 수 있다. 6개의 지하 주차장이 마련되었다. 시드니 CBD, North Sydney, Barangaroo, Martin Place, Central, Sydenham이다. 그간 이 공사를 위해 1년간이나 Bankstown 전철이 Stop 되었고 8월 4일을 기해 다시 개통하게 된다. Chatswood부터 Town Hall근처의 Metro역인 Gadigal역까지 13분이 걸리고 sydenham까지는 22분 걸린다. 이번 개통식에는 Metro 전철 사업에 공로가 컸던 전 Gradys Berejiklian 주지사가 개통식 리본을 끊기로 하였다. 출퇴근 시간에는 4분마다 한 대씩 운영되며 주말에는 7분 간격으로 운영된다. 역마다 100개의 CCTv가 설치되어 있고 차내에도 38개 CCTV가 있어 모든 것을 감시 한다.
Business 하는 사람들은 Metro 운항이 24시간 운영토록 Chris Minns 주지사에게 건의하고 있다고 한다. 시내 이외 다른 지역에서 식당이나 커피점 등이 끝나면 밤 10시가 되는데 집에 가려면 전철을 밤 1시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Metro가 24시간 운영되면 빨리 귀가할 수 있어 좋다고 말하고 있다. 더욱이 Metro 전철역을 중심으로 400미터까지 6층 아파트를 지을 수가 있어 매년 시드니만 인구 2.5명 증가에 한 채당 아파트가 필요하게 되기 때문에 이를 위해 매년 7만 4천 채의 아파트가 필요하다. 이민자들의 증가는 13만 명씩 매해 증가되기 때문이다.
이어 시드니 지역 직업군을 알아보자. 시드니 시민 중에 근로자는 보통 300만 명으로 추산한다. 시드니 CBD 거주자들의 대부분 직업은 상업이나 소매업에 종사한다. 89,000명이 소매업에 종사자들이다. 그러나 제일 많은 소매업에 종사자는 Blacktown으로 시내보다 932명이 많다고 한다. Blacktown의 다음으로 많은 직업이 일반 서기직 4,.000명이고, 셋째는 계리사 44,000명이나 된다. 다음은 트럭기사, 버스 기사, 간호사, 노인 돌봄이 있다. Epping 지역은 계리사가 제일 많이 살고, 교회 목사 가족이 많다. Bondi Beach는 Model 직업과 성형외과 의사들이 많다고 한다. 수영 하려오는 많은 삶들 중에서 모텔을 구하기 쉽기 때문이다. 스트라트필드는 의사들의 동네이다. GP들은 물론 심장 전문의, 마취 전문의, 치과의사들이 다른 지역보다 많이 살고 있다. 스트라스필드는 교통요세로서 늘 집이 부족한 지역이다. Mosman 지역은 인구가 적은데도 변호사 471명에 판사 만 12명에, 재정분야 매니저만 371명이 거주하고 있다. Paddington은 Barrister만 83명이나 된다. 그 외에 증권 브로커, 매니저, TV 아나운서, 기자들이 많다. 파라마타 지역은 인도인 기술자들이 많이 거주해서 정보 통신 소프트 웨어 앤진니어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특히 인디안 식당과 아세안 식당들이 많다고 한다. Marrickville은 작가, 도서관 관리자, 음악가, 그라픽 디자인 등이 살고 있다. 또한 정치적으로 정치 분석과 선거 도움이 들이 많다. Surry Hills은 건축, Fashion 디자인 관계자들이 많이 산다. 특히 Bankstown는 미용관계 업종, 피부 미용에 종사자들이 많다. Lakemba 지역은 택시 운전자들이 많이 살고 있다. Penrith 가까이 있는 Glenmore Park에는 경찰이나 형사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특히 목수나 프럼버 (배관공) 등이 어느 지역보다 많다. Campsie 지역에는 가정 청소업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Castle Hill은 스포츠 관계 인사들이 많이 살고 있다. 또한 학교 선생들이 많이 살고 있다. 학교 교장만 74명이고, 인근 Baulkam Hill도 학교 근무자가 많고 특히 꽃판매자가 많다. Mascot에는 커피 만드는 바리스타만 161명이 된다.
셀렉티브 스쿨과 이민자
1970년대 초기 시드니에 한국인들은 200명 정도로 인구조사에 발표되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1983년 9월 1일 소련 전투기에 의해 Kal기 747기가 격추돼 무모한 생명 269명이 살해된 사건에 항의하기 위해 9월 3일 (일요일 2시)에 한인회와 재향군인회 주최로 시드니 Hyde Park에 모인 한인수는 3,000명이나 되었다. 당시 3개월에 한번 발행하는 “향군호주”에 의하면 1만 명 교민들이라고 기재하고 있다.
급작스럽게 아세아인들이 늘어난 것은 계기가 있다. 1973년부터 백호주의를 버리고 아세아 이민을 받으려고 했으나 유럽 각국들은 이미 인구에 따라 “이민 쿼터”가 정해 졌지만 아세아지역은 이민 쿼터와 관계없어 “사면령”을 몇 번해서 아세아 이민자을 늘려왔다. 지금은 시드니에만 13만 명의 교민들이 상주한다고 한다.
초창기 아세아 이민자들은 “자녀 교육”을 위한 이민자가 많았다. 그러나 NSW 주는 노동당이 장기 집권하고 있어서 “경쟁은 살인이다.” 라는 목표를 세워 학교 내에서 머리로 우위를 결정하는 방법은 환영받지 못했다.
그 당시는 10학년 (한국 고등학교 1학년)만 마치고 학교를 떠나는 학생이 70%가 되었다. 공립학교는 10학년을 마치고 TAFE (직업학교)에 가서 기술을 배우는 학생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처럼 12학년을 마치는 사람들은 돈 많이 내고 앞으로 의사. 변호사, 정치인이 되는 사립하교 학생이 주 였다. 그 당시 아세아 학부모들은 시드니가 지역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리가 없었다. 대부분 집값이 싼 내륙에 정착하게 되었다. 자녀들은 그 지역 공립학교에 다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국에서 공부를 잘했던 아이들이다. 학교에 가니 생각보다 엉망이다. “1미터는 100센치 미터인데 100미터는 몇센치 미터인가?”라는 문제도 못하는 호주 학생들 속에서 그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대학을 진학하겠다고 “HSC”를 신청했으나 그 학교는 전부 10학년 졸업자가 많아 다른 곳에서 물리, 화학, 생물, 수학 선생을 불러와야 만 했다. 그 어려운 곳에서 아세아 이민자 자녀들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지금은 의사, 변호사, 엔진이어 등이 되었다.
그러나 1988년 3월 25일 선거에서 자유당 Nick Greiner 주지사가 당선되면서 교육의 혁신을 했다. 그는 헝가리 이민자로서 미국에서 하버드 대학 MBA를 공부했던 엘리트다. 그는 우선 교육쇄신부터 했다. 몇 개 안 되었던 Selective School을 21개로 늘렸으며, 일반 학교 50%, Selective 학생 50%를 입학시키는 학교 26개를 후에 추가 했다.
지난 5월중에 Selective H.S 시험이 있었다. NSW 주 전체 6학년 학생중 20%인 18,544명이 NSW Selective School 4,200자리에 입학하기 위해 시험을 치뤘다. 4,200개 자리 중에 20%는 불구아동이나 경제적으로 열악한 학생을 시험없이 뽑는다. 10년 전보다 지원자가 42%가 증가된 상태이다. 이민자들의 증가로 일반공립학교는 새로운 학교를 건축하고 있는데 5년간 인구가 5.4% 늘었는데도 Selective School 자리는 늘리지 않느냐고 질문하지만 당국은 더 이상 자리를 증가할 계획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반 학교와 Selective School 간의 격차가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에 이를 평준화하기 위해서다.
빅토리아 주는 3개의 셀렉티브가 있고 퀸즈랜드와 서부 호주는 하나 밖에 없어서 고등교육의 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과거 Selective School이 없을 때는 돈 많은 사립학교에서 머리 좋은 학생을 장학생으로 선정하여 무료로 입학시켜 학교의 명예를 빛내고 있었다. 그러나Selective H.S가 생겨나서 James Ruse Argriculture H.S.은 27년이나 HSC 성적을 1등을 독점하여서 일부 사립학교 학부모들에게 질시를 하고 있기도 한다. 대학입시에서 1등을 지속해온 James Russ Agriculture H.S은 금년 5월 지원자가 120명 뽑는데 961명이 지원을 했고 Baulkhm Hill H.S은 최고로 지원자가 많아 180명 모집에 1,645명이 지원을 했고 가장 Selective School로 역사가 있는 Fort ST. H.S은 150명 모집에 934명이 지원했다.
칼링포드 웨스트에 다니는 11세 Veyaan 아버지 Rav Singh은 생각 같아서는 근처 James Ruse에 입학을 원하지만 워낙 경쟁이 심하여 1차 지망에는 Baulkham Hills에 지망했고, 2차는 Normanhurst Boy를 지망했다고 한다. Australian Tutoring Association (호주 과외공부 협회) Mohan Dhall 회장은 Selective School에 자녀를 입학시키기 위해 보통 2만 불 이상 지불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어 Selective School학교 학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비슷한 학생들과 늘 경쟁을 하기 때문에 일반 고등학교 졸업자 보다 자기가 원하는 대학 학과에 입학할 수 있는 확률이 높기 때문에 학부모들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서도 Selective School에 보내기를 원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Selective School 학생들은 경쟁이 심하기 때문에 중간이하가 된다면 차라리 일반 고등학교에 가서 공부를 잘하는 것이 하는 것이 학생들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하명호 (SBS 방송인,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