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 이집트 방문기 (17)
시드니인문학교실에서는 지난 2023년 10월 11일~21일 (이집트·이탈리아, 10박 12일), 10월 22일~24일 (강릉 오죽헌·설악산·남양주 다산생가, 2박 3일)에 “아는 만큼 보인다” (“I Can See As Much As I Know”)라는 주제로 제2차 인문학여행을 33인이 동행해 실시했다. 가서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가보니 오히려 더 알 수 없는 신비함에 압도되어 한동안 방문기를 어떻게 써야하나 생각하다가 몇 개월이 지났다. 그러나 희미한 기억보다는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용기내어 기록해 본다. _ 편집자 주.
친퀘테레에서 피렌체 (Florence)로
10월 19일 (목) 우리 일행은 친퀘테레 (Cinque Terre) 다섯 마을 중 ‘리오마조레’ (Riomaggiore)와 ‘마나롤라’ (Manarola)라는 두 마을을 둘러보았다.
두 마을 방문일정을 마치고 다음날 행선지인 피렌체를 향해 가다가 몬테까티니에 위치한 Tuscany Inn에서 묵었다.
10월 20일 (금) 호텔 조식 후 우리 일행은 피렌체로 향했다.
가는 길에 비가 오락가락했다. 2시간 정도 달려 피렌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미켈란젤로 (언덕) 광장’에 도착했다.
미켈란젤로의 대표적인 작품 다비드상을 복제한 조각상이 언덕에 자리해 미켈란젤로 (언덕) 광장이라 불린단다.
피렌체 두오모까지 한눈에 보이는 풍경은 아름다웠다.
피렌체 개관
피렌체 (Florence, 이: Firenze)는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주의 주도이다. 피렌체현의 현청 소재지이며, 2011년 기준 인구는 38만 명이고 근교의 인구까지 합치면 총 약 150만 명이다. 토스카나 주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피렌체는 아르노 강변에 위치해 있으며 역사상 중세, 르네상스 시대에는 건축과 예술로 유명한 곳이었다. 중세 유럽의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였으며 종종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본고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오랜 세월 동안 메디치 가문이 다스렸고, 1865년에서 1870년까지는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였다. 매년 수백만이 넘는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고 있으며, 1982년에는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선정되었다.
피렌체는 로마의 도시로 기원을 하였으며, 번영한 무역업과 중세시대 코무네 금융업의 중심지로서 오랜 세월을 보낸 후,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탄생지가 되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따르면, 피렌체는 14세기에서 16세기 사이 유럽과 전세계의 도시들 중에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가장 핵심 도시 중 하나라고 말한다.
14세기 이 곳에서 통하던 언어는 이탈리아어이다. 이탈리아 문학 황금기의 대부분의 모든 작가들과 시인들은 다른 지역의 방언들을 제치고 피렌체 방언을 문학 언어로서 채택을 결정적으로 이끌어냄으로써 현재 이탈리아어의 체계는 피렌체와 관련이 있다.
중세 시대를 시작으로, 피렌체의 자본 (황금으로 된 플로린)은 영국에서 브뤼허, 리옹, 헝가리에 이르는 유럽 전역의 경제 발전에 자금을 댔다. 피렌체 은행가들은 백년 전쟁 동안에 잉글랜드 왕에게 자본을 대기도 하였고, 마찬가지로 아비뇽 수도 건설과 로마로 귀환 후, 로마의 재건과 사업등 교황청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피렌체는 이탈리아 귀족 역사상 가장 중요한 귀족 가문인 메디치 가문의 고향이기도 하다. 로렌초 데 메디치는 15세기 후반 이탈리아의 정치적 문화적 마스터 마인드로 뽑힌다. 메디치 가문은 두 명의 교황을 배출해내기도 했는데, 이들은 16세기 초의 교황 레오 10세와 교황 클레멘스 7세이다. 카테리나 데 메디치는 프랑스 국왕 앙리 2세와 혼인하였으며, 1559년에 그가 사망한 후, 프랑스의 섭정으로서 군림했다. 메디치 가문은 1569년 코시모 1세 데 메디치를 시작으로 토스카나 대공으로 군림했으며, 1737년 잔 가스토네 데 메디치의 사망으로 막을 내렸다.
메디치 가문의 단절과 1737년에 로렌 공작이자 마리아 테레지아의 남편인 프란츠 1세의 즉위는 토스카나를 일시적으로 오스트리아 왕령지에 포함하게 하였다. 이는 합스부르크로렌 가문의 분가 가문이 되었고, 1801년 부르봉파르마 가에게, 1807년 12월 프랑스가 토스카나를 병합하면서 폐위된다. 피렌체는 1808년부터 나폴레옹이 몰락하는 1814년까지 프랑스 아르노 데파르망의 행정 구역이였다. 합스부르크로렌 가문은 빈 회의를 통해 토스카나 대공 작위를 회복하지만, 1859년 마침내 폐위되었다. 토스카나는 1861년 이탈리아 왕국의 행정 구역이 되었다.
피렌체는 1865년에 토리노를 대신해 이탈리아의 수도 기능을 대신하였으며, 도시를 현대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피아자 델 메르카토 베키오 (Piazza del Mercato Vecchio)에 있는 옛 상가들과 많은 중세 주택들을 허물고 신식 주택과 전체적인 계획 거리로 대체하였다. 피아자(광장, 처음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이름이 붙었으나, 현재는 레푸블리카 광장[공화국]이라고 불림)는 눈에 띄게 넓어졌고 거대한 개선문이 서쪽에 세워졌다.
이탈리아의 두 번째 수도인 피렌체는 6년 뒤 로마를 지키던 프랑스군의 철수로 이탈리아 왕국에 추가될 가능성이 생기며 로마로 대체되었다.
인구가 두 배가 증가한 19세기가 지난 후에 관광업, 상업, 금융업, 산업의 발전으로 인한 결과로 피렌체의 인구는 20세기에 들어 3배 가까이 증가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 피렌체는 오랜 기간 독일군의 점령기 (1943 ~ 1944)를 겪었고 무방비 도시로 선언되었다. 토스카나에서 활동하다 독일군에 사망한 연합군 병사들은 도시 외곽에 있는 묘지들에 묻혀있다 (미군은 도시 남쪽에서 9km 거리, 영국군과 영연방군들은 아르노 오른쪽 제방 중심부의 동쪽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 1944년 퇴각하던 독일군은 영국군이 건너는 것을 어렵게 하기 위해 올트라노 (Oltrarno) 지구와 도시의 나머지 지역을 연결하던 아르노강에 있던 다리들을 무너뜨렸다. 하지만 하를레 슈타인하우슬린 (Charle Steinhauslin)이라는 독일군 장군이 베키오 다리의 역사적 가치를 고려해 부수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에 베키오 다리 남쪽을 따라 바로 있던 바사리 회랑 같은 역사 지구의 거리들은 지뢰밭으로 사용되어 파괴되었다. 그 이후 아르노강을 연결하던 다리들은 가능한 남아있는 재료들을 최대로 이용해 원래의 형태로 복원하였지만, 베키오 다리 주변 건물들은 현대와 옛 스타일을 혼합한 형식으로 재건되었다.
1945년 5월 유럽 전선이 끝나면서, 미군의 정보와 교육 부서들은 이탈리아 피렌체에 제대한 미국 남녀들을 위한 해외 대학교를 세웠다. 전역자를 위한 최초의 미국인 대학교는 1945년 6월 이탈리아 피렌체에 세워진 항공 학교 (School of Aeronautics)였다. 7,500명의 병사-학생들은 한 학기에 4달 간의 교육을 거쳐 대학교를 들어갔다 (G.I. American Universities).
1966년 11월 아르노 홍수의 중심지였던 이곳은 많은 예술품에 피해를 입기도 했다.
르네상스의 요람
피렌체는 피렌체가 지닌 기념물, 교회 시설, 건축물 등으로 ‘르네상스의 요람’ (‘la culla del Rinascimento’)으로 알려져 있다. 피렌체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두오모’ (Duomo)로 알려진 피렌체의 돔모양의 대성당인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로, 이곳의 돔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하였다. 인접한 곳에 있는 종탑 (일부는 조토가 설계)과 예배당도 주요 관광지이다.
완공된 지 600여 년이 지난 피렌체 대성당의 돔은 여전히 벽돌과 모르타르로 지어진 돔 중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돔이다. 1982년에, 피렌체 역사 지구 (이: centro storico di Firenze)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피렌체 역사 지구는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14세기에 지어진 중세시대 성벽 안에 포함되어 있다. 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시뇨리아 광장에는 바르톨로메오 암만나티의 넵투누스 분수 (1563 ~ 1565)가 있으며, 현재까지 작동하는 로마 시대의 용수로로 종점에 있고 대리석 조각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피렌체의 배치와 구조는 여러가지 면에서 주둔지 취락으로 설계되었던 로마 시대의 배치 구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럼에도, 도시의 대부분은 르네상스 시대에 건축된 것이다. 도심 내 르네상스 건축물이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기는 하지만, 중세 시대, 바로크 시대, 신고전주의, 현대 건축 등의 흔적들도 찾아 볼 수 있다. 베키오 궁전은 피렌체 대성당 또는 두오모와 더불어 피렌체의 스카이라인을 책임지는 건축물이다.
피렌체의 구도심을 따라 가로지르는 아르노강은 이곳에 살았던 여러 인물들만큼이나 피렌체 역사에 있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피렌체 사람들은 아르노강과 애증 관계를 갖고 있는데, 이곳의 강은 피렌체에 상업을 활성시켜줌과 동시에 범람으로 파괴시키기도 하였다.
특히 피렌체의 다리 중 하나가 특별한데 바로 베키오 다리 (‘옛 다리’)이며, 이 다리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지주를 통해 떠받친 다리의 가장 자리를 따라 설치된 여러 가게들이다.
또한 우피치와 메디치 가문의 거처 (피티 궁전)를 연결하는 바사리 회랑이 존재하기도 한다.
이 다리가 원래 위치했던 곳의 최초로 지어진 다리는 에트루리아 시대 때 만들어진 것이며, 현재의 다리는 14세기에 재건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나서 피렌체 내 온전하게 남아 있는 유일한 다리이기도 하다.
또한 베키오 다리는 라이즈 스팬 비 (Span-to-rise ratio) 및 하상 내 방해물을 적게 하기 위하여 지주의 숫자를 줄이기 위하여 결원아치를 사용하여 지은 서방 최초의 다리이다 (로마 시대의 알코네타르 다리보다 지주를 줄이는 데 훨씬 성공적이었다).
산 로렌초 성당에는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피렌체의 가장 강력한 가문이었던 메디치 가문의 마우솔레움인 메디치 예배당이 있다.
인접한 곳에 있는 우피치 미술관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미술관 중 하나로,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인물의 유산을 기반으로 지어졌다.
우피치는 수세기 동안 피렌체 사람들의 삶과 정치의 중심지 역할을 하던 장소인 시뇨리아 광장의 모서리에 있다.
시뇨리아 궁전을 마주보고 있는 시뇨리아 광장은 피렌체 지자체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미술사적으로 여러 중요한 사건들 및 정치적 변화들이 이곳에서 벌어졌었다:
.1301년, 단테 알리기에리가 이곳에서 추방을 당함 (우피치의 벽면에 있는 한 명판에 기록).
.1478년 4월 26일, 야코포 데 파치와 그의 무리들이 ‘La congiura dei Pazzi’ (‘파치 음모’)로 알려진 암살 계획을 일으켜 줄리아노 데 메디치를 살해하고 그의 형제인 로렌초를 부상입히며 메디치 정권을 상대로 도시를 차지하려 했다. 이 음모에 가담한 자들은 피렌체 시민들에 의해 붙잡혀 시뇨리아 궁전의 창문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1497년, 도미니코회 소속 수사이자 예언가 지롤라모 사보나롤라에 의해 촉발된 허영의 소각이 일어난 장소이다.
.1498년 5월 23일, 사보나롤라와 그의 추종자들은 교수형 당한 뒤 불태워졌다. (광장에 그가 교수형을 당한 곳이 표시되어 있다)
.1504년,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원본이 1873년에 아카데미아 미술관으로 옮겨지고 난 뒤로 복제품이 대신함)가 시뇨리아 궁전 (베키오 궁전으로도 알려짐) 앞에 설치됨.
시뇨리아 광장의 로자 데이 란치는 도나텔로, 잠볼로냐, 암만나티, 첼리니 같은 조각들의 여러 조각상들이 있는 장소이며, 조각상들의 일부는 보존을 위해 복제품으로 대체되어 있다.
한편 과거 피렌체를 통치했던 메디치 가문의 예술애호사상에 입각하여 배출된 수많은 르네상스 대표 예술가들의 작품이 피렌체 곳곳에 널려있어 마치 도시 전체가 박물관 같은 느낌을 준다. 굵직굵직한 르네상스의 예술가, 철학자, 과학자들이 모두 메디치 가문의 후원 아래 수많은 작품을 피렌체에 남겼다. 이로 인해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대표적인 피렌체 예술가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보티첼리, 도나텔로 등이 있으며 각 분야의 유명인으로 갈릴레오 갈릴레이, 니콜로 마키아벨리, 아메리고 베스푸치, 단테 알리기에리 등이 있다.
피렌체의 기념물, 박물관, 종교 시설물
피렌체에는 여러 시대에 걸친 궁전들과 건물들이 존재한다. 베키오궁은 피렌체시 당국의 관청이자 또한 미술관이기도 하다. 이 거대한 로마네스크풍의 요새화 된 궁전은 시뇨리아 광장과 더불어 광장에 위치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모조품, 인접한 로자 데이 란치를 내려다보고 있다.
피렌체 공화국의 중심인 피렌체의 시뇨리아에서 이름이 붙여져 ‘시뇨리아 광장’이라 붙여진 이곳 광장은 ‘포폴로 광장’, ‘프리오리 광장’, ‘두칼레 광장’ 등 이곳의 긴 시간 동안 광장의 다양한 사용 용도에 따라 여러 이름이 붙여지기도 했다. 베키오 궁전의 현재 이름(베키오는 옛 궁전을 의미)은 메디치 가문의 공작 거처가 아르노강 너머의 피티 궁전으로 옮겨지면서 붙여졌다. 바사리 회랑을 통해 우피치와 피티궁이 연결되어 있다.
메디치 가문의 코시모 일 베키오를 위해 미켈로초 디 바르톨로메오가 설계한 메디치 리카르디 궁전은 또 다른 주요 건물이며, 1445년과 1460년 사이에 지어졌다. 이 건축물의 돌쌓기 작업 중 루스티카와 마름돌이 들어간 것으로 유명하다. 오늘날 피렌체시 당국의 본청 건물로 쓰이며 박물관 및 리카르디 도서관 등도 소재해 있다. 루스티카식 건축법이 도입된 민간 건축물의 예시라고 할 수 있는 스트로치 궁전은 메디치의 궁전에서 영감을 받았으나, 한층 더 조화로운 비율로 이뤄져 있다. 오늘날 이 궁전은 고고학 비엔날레 (Biennale dell’Antiquariato, 1959년 시작), 패션쇼, 그 밖의 문화 예술 행사 같은 국제 전시회 목적으로 사용된다.
이곳은 또한 국제 르네상스 기관 (Istituto Nazionale del Rinascimento) 및 도서관과 열람실로 유명한 가비네토 비쇠가 소재한 곳이기도 하다. 그 외에 유명 장소들이 있으며,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가 1446년과 1451년 사이에 설계하여 취소한 부분적으로는 베르나르도 로셀리노가 시행에 나선 루첼라이 궁전, 오래된 피렌체 가문의 박물관이 위치한 다반차티 궁전, 1871년에 네오르네상스 양식으로 설계된 아시쿠라치오니 제네랄리 궁전, 13세기의 저택으로 1920년대 이래 신발 디자이너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보유하고 있는 산타 트리니타 광장의 스피니 페로니 궁전을 비롯하여 보르게세 궁전, 비앙카 카펠로 궁전, 안티노리 궁전,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왕궁 시설 등을 포함한다.
피렌체는 수많은 박물관과 미술관들을 갖추고 있으며 이 시설들은 전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예술품들을 일부 소장하고 있다. 피렌체는 전세계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미적 그리고 건축적 중심지가 잘 보존된 곳 중 하나이며 예술, 건축, 문화에 깊은 집중을 두고 있다. 가장 많이 방문한 이탈리아 미술관 15곳 순위에, ⅔가 피렌체에 소재한 곳이었다. 우피치는 그 미술관들 중에 하나이며, 피렌체 및 전세계 등의 수많은 예술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우피치는 화파와 연대기 별로 구분된 여러 홀들로 구성되어 있다. 수세기에 걸쳐 메디치 가문이 수집한 미술품 때문에 만들어진 이곳은 다양한 화가들과 예술가들의 작품을 갖추고 있다. 바사리 회랑은 우피치를 통과하여 베키오 다리를 넘어가는, 베키오 궁전과 피티 궁전을 연결하기 위해 지어진 또 다른 갤러리이다. 아카데미아 미술관은 다비드를 포함한 미켈란젤로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 이콘 컬렉션과 여러 예술가 및 화가들의 작품들도 소장되어 있다. 그 밖의 박물관 및 미술관들에는 도나텔로, 잠볼로냐, 미켈란젤로 등을 포함한 예술가들의 조각품에 집중되어 있는 바르젤로 미술관, 메디치 가문의 옛 컬렉션의 일부를 소장하고 있는 피티 궁전 등이 있다. 메디치 컬렉션 외에도 피티 궁전에는 라파엘로, 티치아노 등의 여러 르네상스 미술품, 의상, 의전용 마차, 은제품, 자기류 등이 포함된 거대한 컬렉션, 18세기 때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현대 미술 전시장 등을 포함한다. 궁전 근처에는 공들여 꾸며진 풍경과 여러 조각품들을 갖춘 보볼리 정원이 있다.
피렌체에는 각양각색의 교회 및 종교 시설들이 있다. 피렌체의 대성당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이다. 대성당의 앞에 위치한 산 조반니 세례당은 대표적으로 로렌초 기베르티의 ‘천국의 문’등 여러 예술가들에 의해 장식되었다. 피렌체의 다른 교회들에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 광장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 근처)에 위치했으며 마사초, 파올로 우첼로, 필리피노 리피,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등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두오모에서 남동쪽 대략 800미터 (2,600피트) 지점인 산타 크로체 광장에 위치했고 미켈란젤로, 갈릴레오, 마키아벨리, 포스콜로, 로시니 등 저명한 이탈리아 인물들이 안치된 곳이며 이에 따라 이탈리아 영광의 교회 (Tempio dell’Itale Glorie)로 알려진 피렌체의 프란치스코회 본당 교회인 산타 크로체 성당, 피렌체에서 가장 큰 교회 중 하나이며 피렌체 시장 구역 정중앙에 위치해 있고 코시모 일 베키오부터 코시모 3세에 이르는 메디치 가문의 주요 인사들이 안치된 산 로렌초 성당, 오틀라르노 구역에 위치했고 동명의 광장과 마주하고 있으며 현재는 철거된 산 미켈레 수도원의 채원 터에 지어진 산토 스피리토 성당,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당으로 마리아의 종 수녀회의 모원 (母院)인 산티시마 안눈치아타 성당, 비천 수도파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피렌체에 건설된 바로크 건축의 첫 본보기 중 하나인 오니산티 성당, 피렌체의 오틀라르노 구역에 있으며 마사초, 마솔리노 다 파니칼레, 필리피노 리피 등이 제작한 저명한 르네상스 시대 프레스코화를 소장하고 있는 브란차키 예배당이 위치한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 산 로렌초 성당 내에 있으며 미켈란젤로의 조각들을 갖춘 메디치 예배당 등이 있으며 그 외에도 산타 트리니타 성당, 산타 마르코 성당, 산타 펠리치타 성당, 바디아 피오렌티나, 산 가에타노 성당, 산 미니아토 알 몬테 성당, 피렌체 카르투시오회 수도원,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 등이 있다. 피렌체에는 그 밖에도 예수 탄생 러시아 정교회 성당, 19세기에 지어진 피렌체 대시나고그 등도 존재한다.
피렌체에는 다양한 극장과 영화관들이 위치해 있다. 팔라초 델로 스트로치노의 오데온 영화관 (Odeon Cinema)은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관 중 한 곳이다. 1920년에서 1922년 사이에 팔라초 델로 스트로치노 좌측 건물에 지어진 이곳은 ‘시네마 테아트로 사보이아 (사보이아 영화관)으로 한때 불렸고, 이후에 ‘오데온’이라 불리게 됐다. 도시 중심부의 페르골라 거리에 위치한 페르골라 극장은 17세기에 지어진 오페라 극장이다. 또 다른 극장에는 본래 야외 극장 (Politeama Fiorentino Vittorio Emanuele)으로 건설되어 도니체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로 182년 5월 17일에 개장했으며 6,000명의 규모를 자랑했던 피렌체 시립 극장 (‘Teatro del Maggio Musicale Fiorentino’)이 있다. 그 밖에 살론치노 카스티넬리, 테아트로 푸치니, 테아트로 베르디, 테아트로 골도니, 테아트로 니콜리니 등의 극장이 있다.
피렌체 대성당, 공식 명칭 카테드랄레 디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는 이탈리아 피렌체시의 대성당이다. 1296년에 아르놀포 디 캄비오의 설계에 따라 고딕풍으로 착공되었다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돔이 추가되며 1436년에 완공되었다.
앞서 언급한 기념물들 외에, 피렌체는 여러 주요 광장 (피아차)과 거리가 있다. 레푸블리카 광장은 도시 중심부에 있는 광장으로, 카페와 중산층의 저택들이 위치한 곳이다. 이곳에 있는 카페들 (Caffè Gilli, Paszkowski 또는 the Hard Rock Cafè) 중에, 지우베 로세 카페는 오랜 기간 예술가들과 작가들의 만남의 장소였으며 대표적으로 미래주의 성향의 예술인들이 애용하였다. 그 외에는 산타 크로체 광장이 있다. 산타 크로체 성당이 두드러진 이곳은 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직사각형 광장이며 매년 칼초 피오렌티노가 열린다. 아르노강 근처에 있는 산타 트리니타 광장이 있는데 이곳에서 토르나부오니 거리가 끝이 난다.
다른 광장으로는 산 마르코 광장, 산타 마리아 노벨라 광장, 베카리아 광장, 리베르타 광장이 있다. 피렌체 역사 지구에는 몇몇 거리들이 있다. 이러한 거리에는 피렌체 역사 지구의 북쪽 지역 주요 도로 중 하나인 카밀로 카보우르 도로, 피렌체에서 가장 긴 도로 중 하나인 기벨리나 도로, 두오모 광장과 시뇨리아 광장을 연결하는 역사 지구의 주요 도로 중 하나인 칼차이우올리 거리, 안티노리 광장에서 시작하여 패션 부티크로 유명한 산타 트리니타 광장을 가로질러 산타 트리니타 다리로 이어지는 피렌체 내 럭셔리 거리인 토르나부오니 거리, 피렌체 역사 지구의 북쪽을 둘러싸고 있는 6차선 불바르인 비알리 디 치르콘발라치오네 등이 있으며 그 밖에 로마 거리, 델리 스페찰리 거리, 체르레타니 거리, 비알레 데이 콜리가 있다.
피렌체는 여러 공원과 정원이 있다. 여기에는 보볼리 정원, 카시네 공원, 바르디니 정원, 셈플리치 식물원이 있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임운규 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회원)
호주성산공동체교회 시무,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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