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1월 5일, 미국의 무용가 이사도라 던컨 / 덩컨 (Angela Isadora Duncan, 1878 ~ 1927)이 러시아 노동자 장례행렬에서 춤추다
안젤라 이사도라 던컨 / 덩컨 (Angela Isadora Duncan, 1878년 5월 26일 ~ 1927년 9월 14일)은 미국의 무용수이다.
1905년 1월 5일, 그녀는 러시아 노동자 장례행렬에서 춤춰 러시아에 깊은 인상을 주었다.
– 안젤라 이사도라 던컨 / 덩컨 (Angela Isadora Duncan)
.본명: 안젤라 이사도라 덩컨 (Angela Isadora Duncan)
.출생: 1878년 5월 2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사망: 1927년 9월 14일(50세), 프랑스 니스
.국적: 미국
.직업: 무용가
.분야: 현대 무용
.배우자: 세르게이 예세닌 (1922년 결혼 ~ 1923년 이혼)
‘자유 무용’을 창시하여 현대 무용 (모던 댄스)의 어머니 (개척자)로 불리기도 한다. ‘덩커니즘 (Duncanism)’이란 신조어도 생겼다.
그녀가 춤을 출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춤이라고 하면 으레 발레를 연상했으나 그녀는 틀에 박힌 발레 동작으로는 인간의 희노애락을 담아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토슈즈와 튀튀를 벗어던지고 좀 더 편한 옷차림과 맨발로 자유로운 몸짓을 보여줬다. 단, 그녀가 준비 없이 무대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되려 음악에 걸맞은 몸짓과 옷, 무대장치 같은 세세한 부분을 미리 꼼꼼하게 준비했고, 몸짓을 종이에 그려 가면서 춤에 대해 연구했다.
그 결과 그녀는 단순히 우아하게 팔을 들어올리는 것만으로도 꽃봉오리가 피어나는 모습을 연출할 수 있었다. 이사도라에서 시작된 현대무용은 무용 세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고 오늘날까지 대중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 생애 및 활동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출생하여 거의 독학으로 무용을 시작하여, 뒤에 ‘자유 무용’이라는 독특한 무용을 창시하였다.
그리스 식의 긴 옷을 입고 맨발로 무용하여 전통적인 무용에 도전하였으나, 한동안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1895년 오거스터 데일리 극단에 들어갔고, 1898년 카네기 홀에서 에설버트 네빈의 음악인 『수선화』를 공연해 성공한 후 이듬해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이사도라는 박물관을 드나들며 그리스 문화에 심취하게 되었다. 그리스 석상들을 보며 영감을 얻은 그녀는 그리스 의상과 같이 줄 몇 개로 고정된 천으로 만든 의상을 입고 맨발로 춤을 췄다.
1900년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 주목된 이후부터 유럽 각지를 순회 공연하게 되었다.
1902년 유럽에서 선보인 공연이 큰 성공을 거둔 후 그녀는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1904년 독일 베를린에 무용 학교를 세웠으며, 무용단을 조직하여 폭넓은 활동을 하였다. 러시아를 방문하여 러시아의 무용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기도 하였다.
1914년 프랑스에 무용학교를 세웠고,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무용학교를 야전병원으로 쓰게 하는 한편 1915년에는 『라 마르세예즈』에 맞춰 춤을 춰 반향을 얻었다.
1922년에는 러시아의 시인인 세르게이 예세닌과 결혼했으나 1923년에 이혼했다.
1922년에는 소련 정부의 초청을 받고 소련에서 무용학교를 운영했는데, 이때 25살의 젊은 천재시인 세르게이 예세닌을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당시 덩컨은 44세여서 예세닌과의 나이 차이가 많이 났는데, 예세닌은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을 앓았고,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곧바로 구입하는 기벽이 있어 결혼 전부터 자주 다퉜다.
결혼 후 덩컨이 미국에서 순회공연을 했을 때 예세닌도 따라갔는데, 예세닌의 기행 및 덩컨의 공연 복장 문제, 코멘트 문제 때문에 공산주의자라고 비난받았고 미국에서 돌아온 뒤에는 프랑스를 거쳐 소련으로 돌아갔다.
그 동안 부부싸움이 심해진 끝에 결국 덩컨과 예세닌은 별거했다.
예세닌과 사별한 후 덩컨은 프랑스에서 여생을 보내며 자서전을 구술했다.
말년을 파리에서 보내다가 1927년 프랑스 니스에서 목에 매던 스카프가 자동차 뒷바퀴에 걸쳐 질식사로 숨졌다. 향년 50세.
이게 자살인지 사고사인지 지금도 확실한 게 없다.
그녀가 마지막 유언으로 프랑스어로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안녕, 여러분. 전 영광을 향해 갑니다.(Adieu, mes amis, Je vais à la gloire!)”
- 덩컨의 발레
덩컨이 제창하고 실천한 현대 무용의 새로운 무용 정신은 발레의 전통이 빚어내는 속박이 적은 미국에서 태어났다. 그녀도 젊은 시절에는 당시 하나 밖에 방법이 없었던 발레를 습득하였으나, 태어나서부터 자연을 사랑하는 반항아였던 덩컨은 이윽고 고도로 세련되기는 했으나 제약이 많은 고전 발레의 인공적인 기법 본위의 무용에 의문을 품고, 더욱 더 자연과 자유에의 동경이 강렬해졌다. 덩컨은 처음으로 시카고의 무대에 올랐을 때 토우 슈즈 (발레 슈즈)도 던지고 타이즈도 입지 않은 채, 맨발에 거의 반나체의 모습으로 발레를 했고, 기교 본위의 발레 밖에 보지 못했던 관객의 조소를 받았다. 그녀는 못 이 조국에 실망하여 1900년에 유럽으로 건너갔다.
덩컨은 그 해 파리에서 그녀 나름의 독특한 새로운 무용을 발표, 그곳에서 처음으로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녀는 유럽의 각 도시를 순회공연하고, 각지에서 그녀가 주장하는 ‘자유댄스’를 발표·선전했으며, 독일에서는 가장 강력한 지지를 획득했다. 독일은 ‘발레가 없는 나라’로 불려 육체 문화 운동이 활발했는데, 덩컨은 그 운동에 큰 영향을 주고 독일 신무용의 탄생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덩컨은 1904년 베를린에 무용학교를 설립하였고, 그 뒤 프랑스, 미국, 소련 등에도 학교를 만들었다. 덩컨은 1905년 러시아를 처음으로 방문하여 세르게이 디아길레프나 미하일 포킨에게 강한 자극을 주었으며, 그러한 원동력으로 디아길레프의 발레 뤼스가 결성되었다.
이리하여 덩컨은 현대 무용의 융성을 촉구하고, 특히 독일의 현대 무용에 힘찬 목표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현대 무용을 탄생시키는 계기를 만드는 등 무용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68년, 이사도라 덩컨의 일생을 다룬 《맨발의 이사도라 (Isadora)》가 제작·개봉되었다.
○ 평가
덩컨에 의한 ‘자유댄스’는 현대 무용의 선구가 되었다.
그녀의 예술은 첫째로 자연스럽다는 것, 둘째로 고대 그리스의 정신을 부활시켰다는 것, 셋째로 음악을 무용에 종속시켰다는 것 등 세 가지로 요약된다.
그녀의 무용에서의 자연주의란 인공적인 기교 제1주의의 고전 발레에 대한 반발이며, 자유 정신의 찬가 (讚歌)였다. 그 결과는 그녀의 로맨틱한 정신과 함께 고대 그리스의 건강미에 대한 강렬한 사모 (思慕)로서 나타났다.
그녀는 또한 기성의 음악곡을, 악보를 분석하거나 음표를 더듬거나 하는 일 없이 그 음악으로부터 받은 인상을 감정적으로 정서깊게 무용으로 표현했다.
그러기 위해서 그녀는 쇼팽이나 브람스, 베토벤의 교향곡조차 자기 멋대로 표현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기성적인 표현 기교를 답습하지 않았으며, 기법 (技法) 그 자체, 표현 그 자체에도 창의를 주장하여, 그 결과로 무용예술을 개방하여 한정된 소수의 전문가로부터 대중의 손으로 옮기는 길을 개척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후에 일어난 신무용 운동의 전부에 영향을 미치어 ‘현대 무용의 어머니’라고까지 불렸다.
○ 대중매체
- 영화 ‘맨발의 이사도라’ (Isadora, The Loves Of Isadora)
‘맨발의 이사도라’ (Isadora, The Loves Of Isadora)는 영국에서 제작된 카렐 라이츠 감독의 1968년 드라마 영화이다.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등이 주연으로 출연하였고 레이몬드 하킴 등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 저서
주요저서로 자서전 《나의 생애》 (My Life, 1927년)와 《무용 예술》 등이 있다.
- Works
Duncan, Isadora (1927) “My Life” New York City: Boni & Liveright
Project Gutenberg Canada
My Life at Faded Page (Canada)
Duncan, Isadora; Cheney, Sheldon (ed.) The Art of the Dance. New York: Theater Arts, 1928.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