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6년 1월 23일, 아라곤 왕국의 국왕 페르난도 2세 (Fernando II, 1452 ~ 1516) 타계
페르난도 2세 (Fernando II, 1452년 3월 10일 ~ 1516년 1월 23일)는 1479년 아라곤 왕국의 국왕으로 즉위했다.
1474년 카스티야 연합 왕국의 여왕이 된 아내 이사벨 여왕과 함께 양국의 공동왕이 되면서 카스티야-아라곤 동군연합이 시작되어 스페인을 형성시켰다.
그는 이사벨 여왕과 명목상 동등한 위치에 있었고, 둘의 상의 하에 왕국은 지배되었지만, 카스티야-레온 왕국과 아라곤 왕국이 영토, 인구 등 국력에서 거의 네 배 차이가 났던 만큼, 이사벨 여왕의 입김이 더 셌으며, 페르난도 2세의 영향력은 제한적이었다.
결혼 당시 이사벨은 나중에 왕위에 오르고 나서도 페르난도가 카스티야 왕국의 정치에는 일체 간섭하지 않을 것임을 서약하도록 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또 페르난도 2세는 이사벨 1세에게 다소 눌려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사벨 여왕은 자신이 왕비가 아닌 여왕이며, 페르난도보다 연상 (1살)임을 자주 남편에게 주지시켰다고 한다.
이사벨 1세와 페르난도 2세는 1492년 나스르 왕조를 무너뜨리면서 레콩키스타를 완수했다. 그들은 스페인에 남아 있던 대부분의 유대인과 이슬람교도를 추방하고 스페인의 종교 재판을 결정하였다. 같은 해 ‘카스티야-아라곤 연합 스페인 왕국’을 선포했다.
이어 프랑스와의 전쟁을 통해 1504년에는 나폴리 왕국을, 몇 년 후에는 나바라 왕국을 차지하였다.
○ 부록 : 아라곤 왕국과 나폴리 왕국
*아라곤 왕국 (Regnum Aragonum, 1035 ~ 1706)
아라곤 왕국 (아: Reino de Aragón, 바: Aragoiko Erresuma, 라: Regnum Aragonum, 스: Reino de Aragón)은 오늘날 스페인의 아라곤 자치 지방에 해당하는 이베리아 반도에 있었던 중세와 근세 시대의 왕국이다. 똑같이 아라곤의 군주의 통치하에 있었고 다른 지역들인 카탈루냐 공작령 (바르셀로나 백작령과 카탈루냐계 백작령들을 포함했던), 발렌시아 왕국, 마요르카 왕국, 오늘날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일부 지역들을 포함한 아라곤 연합왕국과의 혼동을 하지말아야 하며, 아라곤 연합왕국은 아라곤 왕국과 분리되어 관리되었다.
원래 로마령 (領)의 일부였으나, 이슬람교도의 지배에 굴복하고, 레콩키스타의 과정에서 카스티야와 함께 주도적 역할을 했다. 아라곤은 9세기 반 프랑크 왕국에서 독립하고 곧이어 나바라의 지배 아래 들어가는 등 혼란 상태에 있었는데, 1035년 라미로 1세에 의해 완전 독립을 이룩하였다. 12세기 초에는 최대 판도를 형성, 비슷한 사정이던 카탈루냐 (현재의 바르셀로나)와 병합 (1137년)해서 영토는 피레네 남반부로부터 지중해안에 이르고, 서남 프랑스의 일각까지 미쳤으나 프랑스와의 전쟁에 패하여 (1213년) 피레네 이북으로의 진출을 저지당하였다. 그러나 바르셀로나를 기지로 하여 지중해에도 진출하고, 발레아레스 제도 (諸島)에서 이탈리아 방면에까지 두터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1469년 아라곤 왕 페르난도와 카스티야 여왕 이사벨과의 결혼으로 에스파냐 통일국가의 기초를 세우게 되었다. 생산은 약간의 광물자원을 제외하고는, 고래의 조방 (粗放)농업을 주로 하였다.
– 역사
프랑크 왕국이 피레네 산맥을 무슬림들에게서 탈환한 이후 이베리아 반도 북부에 설치한 변경백령이 시초다. 프랑크 왕국의 세력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쇠락한 이후에는 나바라 왕국의 통치 아래에 있었다. 그러나 1035년 나바라의 막내 왕자 레미로 1세 (Remiro I, 라미로 1세)가 국왕을 자처하면서 백국에서 왕국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이처럼 시작은 나바라에서 갈라져 나온 자칭 왕국이었지만 1076년 나바라 국왕 안초 4세 (Antso IV)가 동생들에게 암살당한 틈을 타 옆 국가 카스티야 국왕과 함께 나바라 왕국의 영토를 분할해 이베리아 반도 북부의 강국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후 적극적인 레콩키스타를 통해 1118년 사라고사를 함락시켰고 1151년에는 바르셀로나 백국과 혼인을 통한 국가 통합을 이뤄내며 카탈루냐 지방을 통한 해양 출구를 확보했다.
아키텐 공작, 푸아 백작, 툴루즈 백작과 아라곤은 오시타니아의 여러 지역들을 획득하기 위해 경쟁을 벌였다. 한때는 프랑스와 전쟁을 벌여 프로방스 지방을 획득하기도 하고 피레네 산맥 이북으로 진출하려고 했지만, 알비 파의 반란으로 남부 프랑스의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고, 그후 필리프 2세가 알비십자군을 일으켜 오시타니아 지역을 점령하였다.
그후 페드로 2세가 1212년 이슬람군과의 전투에서 돌아오던중 레스터 백작 시몽 드 몽포르가 페드로 2세의 매형인 툴루즈 후작 라몬 6세를 추방하자, 페드로 2세는 피레네를 넘어 라몬 6세의 군대와 합류하여 시몽과 맞섰지만, 페드로 2세는 만용으로 인해 1213년 9월에 벌어진 뮤헤 전투에서 전사하고, 아라곤군은 완패했다. 결국 뮤헤 전투로 인해 아라곤은 오시타니아 지역의 영유권이 프랑스에 있음을 완전히 인정해야했다.
정복왕으로 불리는 차이메 (Chaime) 1세 시기에는 바르셀로나 상업 계층의 요구에 따라 본격적인 해양 진출을 단행해 1235년에 발레아레스 제도를 확보하고, 발렌시아 왕국의 대부분을 점령했다. 1258년 프랑스와 아라곤은 협정을 맺어 프랑스는 카탈루냐의 영유권을, 차이메 1세는 피레네 이북에서의 영향력을 포기하기로 하였다. 1266년 아라곤은 계속해서 레콩키스타를 벌여 무르시아까지 점령하고, 카졸라 협약에 따라 카스티야 왕국에 넘겼다.
1282년에는 시칠리아인들이 앙주 왕가에 반란을 일으켜 주둔군을 격파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아라곤의 왕이였던 페드로 3세는 시칠리아인들의 요청을 받아 성대한 환영을 받으며 시칠리아에 상륙했다. 이에 분노한 교황 마르티노 4세는 시칠리아에 성무금지 조치를 내리고, 페드로 3세를 파문했다.
차이메 2세는 발렌시아 왕국을 완전히 정복하여 아라곤을 강대국으로 끌어올렸다. 1297년 교황 보나파시오 8세는 사르데냐-코르시카 왕국을 아라곤 연합 왕국에 추가시켰으나, 이는 1세기도 가지못했다. 프랑스와 또 다시 전쟁을 벌여 이번에는 승리해 시칠리아 섬의 지배권을 확보했다. 프랑스, 나폴리, 교황은 서로 동맹을 맺고 아라곤 왕 페드로 3세 (Pedro III)를 파문한 뒤 맞서 싸웠지만 아라곤 왕국의 군대는 그들을 모조리 격파하면서 위엄을 떨쳤다. 이후 그리스까지 진출해 아테네 공국 (1311)과 네오파트라이 공국 (1318)을 지배했다. 한때는 몰타와 사르데냐 섬도 잠깐이나마 지배했고 1442년에는 남부 이탈리아를 모두 관할하는 나폴리 왕국의 왕위 계승권까지 차지하면서 지중해 해상 제국을 건설했다.
그렇지만 오스만 제국에 의해 동로마 제국이 멸망당하고 그 직후 아테네-네오파트라이 두 공국이 오스만의 공격을 받아 무너졌다. 이후 아라곤은 중부 지중해에서 오스만 세력의 서진을 막느라 허덕이고 아라곤의 핵심 계층인 해양 상업 계층 역시 레반트 무역권의 상실로 큰 타격을 입었다.
결국 아라곤은 이러한 위기를 타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베리아 반도의 중부에 있던 다른 가톨릭 국가인 카스티야 연합 왕국의 여왕과 페르난도 2세가 결혼해 국가 통합을 이루고 스페인을 형성했다. 이후 아라곤의 해양 상업 계층들은 대항해시대에 적극 참여하게 된다.
– 주요 국왕
차이메 1세(1213~1276)
페로 3세(1276~1285)
알리폰소 5세(1416~1458)
추안 2세(1458~1479)
페란도 2세(1479~1516)
*나폴리 왕국 (Regno di Napoli, 1282 ~ 1816)
나폴리 왕국 (이: Regno di Napoli, 나: Regno ‘e Napule)은 13세기부터 19세기까지 나폴리를 거점으로 이탈리아 반도 남부에 존재하였던 왕국이다. 1282년 시칠리아인들에게 저항하여 옛 시칠리아 왕국의 시칠리아섬부터 탈퇴한 후 정식 나라로 인정받지 못한 채 한동안 비공식 국가 취급을 받기도 하였다. 1816년 동군연합이던 시칠리아 왕국과 통합, 양시칠리아 왕국이 되었다.
– 역사
1282년 시칠리아인들이 저항하여 (시칠리아 만종 사건) 옛 시칠리아 왕국의 시칠리아섬부터 탈퇴한 후 성립되었다. 1381년–1435년까지 두라초 가와 발루아-앙주 가와의 내전으로 혼란스러웠다. 1435년 나폴리의 레나토 1세가 왕국을 점령했으나 1442년 아라곤에 정복되었다.
그러나 레나토 1세는 아라곤 왕 알폰소 5세와 싸워 지고 나서 알폰소 5세가 나폴리 왕위를 빼앗았다. 알폰소 5세가 죽자 아라곤과 나폴리 왕위는 분리되어 계승되었으나, 레나토 1세의 친척인 샤를 8세가 이탈리아 전쟁으로 이탈리아에 간섭하고 있던 차에 나폴리 왕위를 주장하며 쳐들어왔다. 전쟁의 결과 프랑스는 발루아 앙주 왕가의 계승권을 포기하고 아라곤 왕이 나폴리 왕을 겸하게 되었다. 아라곤 왕의 나폴리 지배권은 아라곤과 카스티야-레온이 동군연합으로 통합 스페인 왕국을 만들면서 스페인에게 넘어 갔고, 이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 끝날 때까지 스페인이 나폴리를 다스렸다.
1501년 – 1504년의 프랑스 직접점령기를 거쳐 1713년까지 스페인과 동군연합이었다. 이후 부르봉-나폴리 왕가가 왕위를 얻어, 보나파르트 왕가가 점령한 때 (1806 ~ 1815)를 제외하고 나폴리 왕위를 차지하였다. 1816년 동군연합이던 시칠리아 왕국과 통합, 양시칠리아 왕국이 되었다.
– 나폴리 왕국의 강역
프랑스 왕국의 동군연합국(1501~1504)
아라곤 왕국의 동군연합국(1504~1516)
스페인 왕국의 동군연합국(1516~1713)
합스부르크 제국의 동군연합국(1713~1735)
프랑스 제1제국의 종속국(1806~1808)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