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소개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루앙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Rouen) 연작
캔버스에 유화, 73.5×107cm, 1894년, 오르세 미술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년 11월 14일-1926년 12월 5일)는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로, 인상파의 개척자이며 지도자다.
파리에서 출생하여 소년 시절을 르아브르에서 보냈다. 그곳에서 부댕의 문하생이 되어 정식 미술 교육을 받게 되었다. 그 후 1859년 파리로 나가 피사로·시슬레·르누아르·바지유 등과 사귀게 되었다. 마네의 밝은 화풍에 끌려 밝은 야외 광선 묘사에 주력하였다. 마네를 중심으로 르누아르 및 피사로·드가·세잔 등과 함께 신예술 창조에 전력하였다. 1871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중에는 런던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터너 등의 작품에 영향을 받아 더욱 밝은 색조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되었다.
귀국 후, 1874년 그의 동료 화가들과 함께 제1회 인상파 전람회를 개최하였다. 그러나 출품된 작품이 물체 본래의 색깔을 쓰지 않고, 신선하고 밝은 색채로만 그려진 데 대해 비난과 공격이 쏟아졌다. 특히 모네의 ‘인상, 해돋이’(1872)가 가장 심한 비난을 받았는데, ‘인상파’라는 말은 이때 모네의 작품을 야유한 데서 나온 말이다.
주요 작품으로 ‘인상, 해돋이’ ‘짚단’ ‘생 타들레스의 테라스’ ‘파라솔을 든 여인’ ‘수련’ ‘루앙 대성당’ ‘일본식 다리’ 등이 있다.
한편 클로드 모네의 1894년작 ‘루앙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은 모네가 제작한 연작 그림으로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모네는 빛의 작용에서, 전적으로 같은 정경을 다른 매력으로 그리려는 것을 되풀이해서 추구했다. 이 ‘루앙 대성당’에서도 모네는 한 작품마다 새로운 매력을 찾아내고 있다.
역사적인 도시 루앙의 중심에 위치한 ‘루앙 대성당’은 고딕 예술의 발전 모습을 축약적으로 보여준다. 몇 세기를 지나며 파괴되기도 했지만 끊임없이 계속 변화하며 살아있는 건축물로 남아 있다.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대주교관이 있는 이곳은 여전히 대주교가 머무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성당의 합창대 쪽에는 노르망디 공작의 묘비가 있으며, 911년에 사망한 노르망디 첫 공작인 롤롱(Rollon) 공작의 묘비, 잉글랜드의 왕이자 노르망디 공작이기도 한 사자왕 리처드 1세의 심장이 있다고 한다.
‘루앙 대성당’은 프랑스의 성당 중에서 많은 수난을 당한 성당이다. 1200년 대화재의 참사를 겪어야 했고 이어지는 잉글랜드와 프랑스 왕권 쟁탈의 목표로 전행된 백년전쟁에서 극심한 손상을 입었다. 16세기 초인 1514년의 또 한번의 큰 화재를 당해야 했고, 이어서 종교전쟁 당시 개신교인 칼빈파에 의한 대단한 파괴와 약탈을 겪어야 했다.
1789년 혁명 당시의 약탈과 파손, 1822년의 첨탑에 일어난 화재, 그리고 마지막으로 2차 대전 당시 투하된 7발의 폭탄에 의한 파괴 등 노르망디 지방의 수난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성당이다. 그러나 초기 고딕 양식에 후기 프랑부아양 양식이 첨가되면서 시련의 역사 안에서 다양성이 어우러진 대성당이 되었다.
특히 ‘루앙 대성당’은 모네(Claude Monet)의 작품 배경이 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모네는 스승의 권유로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당시 풍경화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그림을 실내에서 제작하던 시기였기에 이것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획기적인 제작방법이었다. 모네는 이런 새로운 환경에서 실내 작업에서는 파악하기 어려운 빛의 성질을 이해하였다. 이런 자연 광선에 대한 그의 지식과 화가로서의 탁월한 재능이 어우러진 작품들은 가장 순간적인 효과를 극적으로 연출하여 다른 작품에서는 보기 어려운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이처럼 모네는 빛과 기후 조건을 달리해 같은 주제를 되풀이 묘사하는 연작 제작방법과 화가 자신의 주관적 상상력으로 새로운 작품 세계를 열어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모네는 아름다운 ‘루앙 대성당’을 주제로 야심찬 연작을 그리기 위해 1892년과 1893년 두 차례에 걸쳐 루앙 대성당을 찾았고, 1892년에는 루앙 대성당 건너편 2층에 방을 세 얻고 루앙 대성당을 주제로 연속적으로 그려나갔다. 모네는 이른 아침에서 늦은 저녁에 이르기까지 햇빛의 양과 각도가 달라질 때마다 그에 따라 함께 변하는 성당의 모습을 시간대별로 그리면서 한 장소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성당의 정감을 섬세히 표현했다. 거대한 석회암 덩어리들로 된 대성당은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한숨, 탄원과 감사의 기도를 담고 있는 범상치 않은 공간이다. 작가의 관심은 성당 내부가 아니라 돌덩어리 자체를 향해 있었다. 비바람에 씻기고 손때가 묻고 먼지와 이끼가 쌓인 시간의 두터운 층들이 빛을 받아 어떻게 변하는지 보고 싶었던 것이다. 눈이 보이는 것을 통해 내면 영혼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다. 모네를 매료시킨 빛은 성당 내부를 밝히는 초자연적인 성령의 상징이었다.
‘루앙 대성당’은 고딕에서도 후기에 속한 건축으로서, 이에 그 무렵의 건축은 장식한 위에 장식을 거듭하여, 그 사원도 공중에 레이스를 펼친듯한 화려함을 보이고 있다. 모네는 정면에서, 또한 이와 같이 비스듬히 옆에서 그리는데, 동시에 흐린 날이나 갠 날을 각각 다른 분위기로 그리고 있다. 인상파 이전의 회화가 일반적으로 가장 존중한 것은 물체나 인상(人像)이 입체로 된 완전한 윤곽이었다. 그러나 모네는 빛을 주안(主眼)으로 한만큼, 형태의 일체를 빛에 용해시키고 있다. 사원의 창(窓)이나 조각, 혹은 종탑은 모네의 부드러운 용해에서 일층 레이스처럼 되고, 본래 어두운 회색의 석조건축은 다시 모네의 손에 의해서 하나의 색조로 표현된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한없는 억양을 낳고, 음영(陰影) 속에도 색을 빛내어 몽환 속에 보는듯한 매력까지 창조해 내고 있다.
임운규 목사(본지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