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것인가?(롬 11:26)
(로마서 9-11 장 이해를 위한 연구)
김곤주 목사(시드니새언약교회 담임)

1. 서 론
사도 바울은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놀라운 선언을 로마서 11장 26절에서 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로마서 9-11장을 이해하는 열쇠와 같습니다. 로마서 9-11장의 흐름을 보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있어서 이스라엘(유대인)이 중심으로 이방인의 입장을 다루고 있는 반면에, 11:25-27 절은 종말론적 구원에 있어서 이스라엘(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말하는 로마서 9-11장의 주요 주제들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별히, 로마서 9-11장의 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남은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으며, 이 부분에 있어서 11:25-27의 ‘온 이스라엘’과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로마서 9-11장 안에서 이스라엘과 이방인(이스라엘과 교회)의 관계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신앙적 주제입니다. 이점에 있어서 대체신학(supersessionism)과 세대주의 신학(dispensationalism)은 로마서 9-11장을 다루어 나가는데 있어서 관련되는 주제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안에 있는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관계’라는 주제안에서 로마서 9-11장의 중심 주제들을 간략히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이스라엘의 남은자’에 대한 주제와 로마서 11:25-27 본문의 주석을 통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의미를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2. 로마서 9-11장의 문학적 구성
1) 로마서 9-11장의 주제(The theme of Romans 9-11)
로마서 9-11장에서 바울은 이방인의 구원에 대한 문제에 관해서 보다는 이스라엘의 구원에 관하여 더 깊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9:1-5; 10:1; 11:13-14). 그래서, 조병수 교수는 9장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임을 말하고, 10장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거절한 백성임을 말하며, 11장은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회복하실 백성임을 말하고 있다’고 간결하게 설명했습니다. 동시에, 로마서 9-11장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안에 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자비하심을 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후에 이방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자비하심이 중심 주제를 이루고 있습니다.
특별히, 로마서 9-11장은 로마서 1-4장의 중심 주제인 ‘믿음에 의한 칭의’ 교리를 기초로 하고 있고, 또한 로마서 1-8장 전체의 내용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9장 8절에서 말하는 아브라함의 진정한 후손(참 이스라엘)은 인간의 노력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의한 믿음의 행위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데이비스(Davis)는 ‘구원의 은혜를 위한 하나님의 자비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이방인들 모두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것은 믿음의 참여(행위)를 통하여 주어진다(9:30-10:21)는 점에서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더글라스 무(Douglas J. Moo)는 이스라엘에 대한 아브라함이 언약은 이제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모든 신자들에게 속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사실은 아브라함이 율법이 주어지기 전 믿음에 의해서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을 받고 약속을 받았음을 상기시켜 줄 뿐만 아니라(Rom. 4:13-15), 하나님이 할례받은 자와 할례받지 못한 자 모두 믿음에 근거하여 그들을 의롭다고 하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3:29; cf. Rom 1:17; 3.21-26; Rom 2:28- 29). 그리고, 이러한 구원의 섭리 안에서 하나님은 이방인들의 충만한 수가 차는 것(the fullness of the Gentiles) 과 유대인들의 부분적인 완악함(the partial hardening of Jews)이라는 방식으로 이스라엘의 구원을 성취시키고 있습니다(11:25-27).
따라서, 로마서 9-11장은 이스라엘(유대인)과 이방들은 하나님의 자비와 하나님의 주권안에 있는 구원의 은혜을 받는 데 있어서 같은 동등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사도 바울의 근본적인 관심은 이방인들의 구원과 관련해서, 특별히 이스라엘(유대인들)의 구원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2) 이스라엘의 남은자(A remnant of Israel)
이스라엘의 남은자 개념은 로마서 9-11장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하나의 주제입니다. 로마서 9-11장에 의하면,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약속은 이스라엘인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믿는 “신실한 남은자”(9:6)에게만 주어지도록 의도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의 결과로서 이스라엘 민족내에서도 일부 유대인들에게 존재합니다. 이점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9:6)이라는 표현은 9:4-5안에 기록된 과거의 모든 약속들뿐만 아니라 9-11장 안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포함합니다.
특별히, 로마서 9장 6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여기서 말하는 “이스라엘”(9:6)이라는 의미는 혈통에 의한 이스라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의한 이스라엘을 의미한기 때문에 단순히 모압이나 암몬과 같은 혈통에 의한 민족개념과 같지 않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바울은 9장 7절에서 아브라함의 자손들 안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도 차이가 있음을 설명합니다. 그 하나는, 이스마엘이 아닌 이삭의 선택이고, 다른 하나는 같은 아버지와 어머니 아래서 동시에 임신한 쌍동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에서가 아닌 야곱이 선택되어 이스라엘의 후손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사람들 모두가 참 이스라엘이 아니라고 9장 6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9:6). 그러므로 모든 이스라엘인이 참 이스라엘인이 아니라 오직 이스라엘인 중에서도 남은 자가 참이스라엘이라는 이러한 개념은 9장 27절과 11장에서 발전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로마서 9장 27절에서 바울은 구약의 이사야 10장 22절을 인용하면서 구원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남은 자들과 연결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롬 9:27). 뿐만 아니라, 바울은 로마서 11장 2-4절에서 엘리야 선지자 시대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실한 칠천명의 남은 자들(the remnants)을 남겨 두셨다(왕상 19장)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고 11장 5절에 말씀합니다.
이점에 있어서 로마서 11장1-6 절은 ‘대부분의 이스라엘(유대인들)이 강팍해져서 복음에 반응하지 않은 반면에(11:7-10), 하나님이 선택하신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바울의 결론을 재진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날에는 이방인들의 충만한 수가 찬 후에 강팍해졌던 이스라엘인들(꺾인 돌감람나무: 버림받은 유대인들)가 다시 그들의 올리브나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나무)에 접붙여지게 될 것입니다(11:17-24).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안에 있는 참이스라엘이요, 이러한 가정은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11:26)는 구절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3. 이스라엘(유대인들)과 이방인들(Israel and Gentiles)
로마서 9-11장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과 이방인들 사이의 관계(혹은 이스라엘과 교회의 관계)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으며, 이것은 곧 대체신학(Supersessionism)이라는 주제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이점에 있어서 블라쉬(Vlach)는 대체신학(Supersessionism)이라는 용어를 ‘신약교회가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는 이스라엘의 정체성(identity)과 역할을 대체하거나 완성하다’는 의미로 사용한다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서, 대체신학에 의하면, ‘유대인들(ethnic Israel)이 메시야를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스라엘(ethnic Israel)을 끝내고, 대신에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replaced/ or superseded)하여 새이스라엘이 되게 했다’(행 13: 46)는 것입니다.
특별히 로마서 11장 1-5절은 유대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는 계속되고 이스라엘은 거절당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바울은 불신앙 가운데 있는 충만한 유대인들이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을 11장 12절과 26절에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이스라엘(true Israel)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을 의미하는 것이지, 유대인 크리스찬들과 이방인 크리스찬들을 포함한 영적 이스라엘(spiritual Israel)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점에 대하여 로빈슨(Robinson)은 참이스라엘은 당시 교회의 핵심 구성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유대인 크리스찬들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로마서 9-11장에서 말하는 참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안에서 교회의 구성원이 된 유대인 크리스찬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체신학(supersessionism) 이 말하는 ‘참이스라엘’은 로마서 9-11장의 내용에서 말하는 참이스라엘(롬 9:6)과 일관성을 갖지 못하는 부분이 있고, 여기서 ‘참이스라엘’(true Israel)이라는 용어에 대한 혼란이 있습니다. 즉 대체신학은 참이스라엘(true Israel)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을 가르킨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서 9장 6절에서 말한 참이스라엘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는 선택받은 유대인들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의미로 ‘영적 이스라엘’, ‘새이스라엘’, 혹은 ‘교회’라는 용어를 혼용해서 사용하기도합니다.
예를 들어서, 쉬레이너Schreiner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참이스라엘(true Israel)이라고 말하지만, 로마서 11장 25-26절의 온이스라엘은 선택받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언급합니다. 특별히, 사도 바울이 말한 의미의 ‘이스라엘 중의 이스라엘’ 즉 ‘참 이스라엘’(9:6)에 대해서 교회로 해석하는 것이 별 무리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받은 유대인(ethnic Jews)을 의미한다고 이해하는 것이 더 옳다고 다소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즉 이러한 부분이 의미상의 혼동이 아닌 용어상의 혼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체신학은 신약 전체를 하나의 큰 신학적 틀로 정리해 주는 장점이 있지만, 로마서 9-11장에서 바울이 말하는 ‘참이스라엘’(9:6: ‘이스라엘 중의 이스라엘’)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혼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이와 정반대로, 11장 26절의 “온 이스라엘”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일부 세대주의자들은 현재 중동 지방에 있는 이스라엘 국가를 참이스라엘(true)로 하지만, 이것도 로마서 9-11장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 또 다른 오류입니다.
다음으로, 로마서 9-11장에서 말하는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는 또 다른 차원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로마 교회는 유대인 크리스찬들이 소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반면에, 이방인 크리스찬들이 다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다시말해서, AD 49년에 로마정부에 의해서 행해진 유대인 추방령은 로마 교회들에게 하나의 심각한 영향을 미쳤고, 유대인들이 떠나간 로마교회는 주로 이방인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자신이 곧 이스라엘(유대인)의 ‘남은 자’라는 하나의 모범을 제시하면서(Rom 11:1-2), 11장 18-21절에서 이방인 크리스찬들을 훈계하는 이유는 로마 교회안에 있는 유대인 크리스찬들과 이방인 크리스찬들의 연합을 깨뜨리는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바울이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고 11장 13절에서 시작하면서 11장 32절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로마의 이방인 신자들을 향하여 이 내용을 말하고 있는 문맥의 흐름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바울은 로마 교회안에 있는 다수의 이방인 신자들이 이스라엘 (소수의 유대인 신자들)에 대하여 영적 자만심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이방인의 구원과 관련해서 이스라엘의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점을 충분히 짐작해 볼수 있습니다 (11:13, 18, 20, 24). 그래서, 바울은 11장 17-24절에서 ‘감람나무 가지의 꺾임과 접붙임’이라는 비유를 들어 설명하면서, 이스라엘이 영구적으로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 한정적으로 버림받았으며 이것은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섭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로마서 9-11장에서 말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the remnant of Israel)는 믿음에 의해서 아브라함의 언약에 참여한 참이스라엘로 말하고 있으며, 그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유대인들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일시적 버림받음(rejection)은 종말론적 구원이 이방인들과 이스라엘 모두에게 이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안에 있는 것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택받은 유대인과 이방인은 동일하게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마지막 날에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4. 로마서 11장 25-27절의 본문해석
“25)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26)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27)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롬 11:25-27).
로마서 11장 11-32절에 이르는 문맥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서 유대인들이 배제(exclusion)되었다고 생각하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에 반대해서,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안에 있는 하나의 신비에 속하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찬 후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ethnic Israel: 유대인들)을 다시 선택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25a Οὐ γὰρ θέλ ὑµᾶς ἀγνο ν, δελφ , ὸ µυστήριον τοῦ το, ἵνα µὴ ἦτε [ἐν] ἑαυτοῖς φρόνιµοι,
25b ὅτι πώρωσις ἀπὸ µέρους τῷ Ἰσραὴλ γέγονεν ἄχρις οὗ τὸ πλήρωµα τῶν ἐθνῶν εἰσέλθῃ,
먼저 25절 상반절을 보면, 바울은 그의 독자들에게 특별한 점을 강조할 때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Οὐ γὰρ θέλω ὑµᾶς ἀγνοεῖν, ἀδελφοί)라는 어구를 사용하곤 합니다(cf. Rom.1:13; 1 Cor. 10:1; 12:1; 2 Cor. 1:8; 1 Thess. 4:13). 특별히, 바울은 앞에서 주장한 내용들을 반영하는 11장 11절에서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임을 보여주면서, 11장 24절에 나오는 “자기 감람나무에 다시 접붙임”(the regrafting of the natural branches)과 25절에서 말하는 구원의 신비(mystery)를 계속 설명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 26절은 접속사 γὰρ(“갈”)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나서, 25절 상반절에 나오는 헬라어 “미스테리온”(“µυστήριον”: 신비)이라는 단어는 유대적 배경에서 나온 것으로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완성하고자 하나님에 의해서 계시된 신적 비밀들을 의미하며, 이 단어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활동을 가리킵니다. 이점에 있어서, 본문에 나오는 ‘신비’(µυστήριον)는 세 가지 면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이스라엘의 부분적인 완악함이요, 두 번째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는 것이요, 세 번째는 모든 이스라엘의 구원입니다. 그래서 미스테리온(µυστήριον)은 ‘이스라엘의 강팍해짐’(hardening of Israel)과 ‘모든 이스라엘의 구원’(the salvation of all Israel)이라는 면에서 11장 25b-32절의 전체 메세지와 관계가 있으며, 그러면서 로마서 9-11장의 정점으로 이끌어갑니다.
그리고나서,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라는 구절은 “너희가 너희 자신의 자만심으로 현명해지지 않도록”(ἵνα µὴ ἦτε [ἐν] ἑαυτοῖς φρόνιµοι)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 구절에 대하여, NIV 성경은 “너희가 자만해 지지 않도록”이라고 번역하고 있으며, NKJV은 “너희 자신의 생각(opinion)안에서 현명해 지지 않도록”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25절 하반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 구절은 “부분적으로 강팍하게 되는 일이 이스라엘에게 일어났다”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NIV성경은 “이스라엘은 부분적으로 강팍해 짐을 경험하고 있다”(Israel has experienced a hardening in part)라고 번역했으며, NKJV은 “부분적인 어두워짐이 이스라엘에게 일어났다”(that blindness in part has happened to Israel)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더러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 메로스”(ἀπὸ µέρους: in part)는 11장 7절에 나오는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는 내용과 관련해서 이해되어질 수 있으며, “우둔하게 된 것”에 해당하는 “포로시스”(πώρωσις)는 이스라엘의 ‘강팍함’(hardening)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11장 25절에서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hardening in part)는 말은 11장 1-6절의 문맥적 상황안에서 남은 자에 속하지 않았던 이스라엘(유대인들)을 언급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ἄχρις οὗ τὸ πλήρωµα τῶν ἐθνῶν εἰσέλθῃ)라는 구절에서 ‘충만한 수’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플레로마”(πλήρωµα)이며, 이 문맥에서 “충만함”(KJV; ESV) 또는 “충만한 숫자”(NIV; RSV)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25절에 나오는 “이방인의 충만함”(또는 충만한 숫자)는 12절에 나오는 “그들의 충만함” (이스라엘의 충만함)과 대조되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11장 25절은 종말의 때가 가까워질 때에 많은 무리들의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들어온 후에, 마찬 가지로 많은 유대인들이 구원의 자리로 나오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26a καὶ οὕ τως πᾶς Ἰσραὴλ σωθήσεται· καθὼς γέγραπται, Ἥξει ἐκ Σιὼν ὁ ῥυόµενoς, ἀποστρέψει ἀσεβείας ἀπὸ Ἰακώβ.
27 καὶ αὕτη αὐτοῖς ἡ παρ ἐµοῦ διαθήκη, ὅταν ἀφέλωµαι τὰς ἁµαρτίας αὐτῶν.
11장 26절에서, 바울은 이스라엘(ethnic Israel)의 미래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리고 이러한 방식으로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καὶ οὕτως πᾶς Ἰσραὴλ σωθήσεται)고 말합니다. 여기서 개역개정 성경은 헬라어 “후토스”(οὕτως)라는 지시대명사(‘이것, 이사람, 이것과 같은 것)를 번역하지 않았으나, 이 문장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헬라어 후토스(οὕτως)는 ‘이런 방식으로’ 혹은 ‘이렇게’(“in this manner” 또는 “so”)라는 의미로 사용되어 앞에 나오는 17-25절에 해당하는 신비에 속한 이스라엘의 구원방식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가지(the natural branches)에서 꺾이었고(“broken off”) 하나님은 그들의 불신앙을 이방들의 유익에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불신앙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그들이 다시 원가지에 접붙여지게 될 것이라고 11장 23-24절은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유대인들이 불신앙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다시 원가지에 접붙여지게 될 것이고(11: 23), 그리고나서, ‘네가(이방인들이) 돌감람나무에서 좋은 감람나무로 접붙임을 받았다면, 이 사람들(유대인들)이야 얼마나 더 접붙임을 잘받겠느냐’고 바울은 이방인 신자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방식으로”(οὕτως: in this way)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25-26절에 나오는 “이스라엘”(Ἰσραὴλ)이라는 용어는 그들의 불신앙으로 인하여 강팍케 된 이스라엘 인종(ethnic Israel) 즉 유대인들을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25-26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스라엘이라는 용어는 이방인들과 대조를 이루는 이스라엘 인종(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11장 26절에 나오는 온이스라엘(πᾶς Ἰσραὴλ)은 이스라엘 개개인 모두(민족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영적 이스라엘(교회/새이스라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에게 한 하나님은 약속은 결코 아브라함의 모든 육적 자손들에게 적용되지 않으며(9:6-8), 동시에 하나님은 그들 모두를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11:1-5).
그래서 크리스토퍼 주칼리(Christopher Zoccali)는 ‘온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구절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 가운데 대표적인 다섯 가지 견해들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그 주제들을 보면, 1) ‘종말론적 기적’(eschatological miracle)을 의미한다는 해석, 2) ‘교회론적’(ecclesiological)으로 영적 이스라엘을 의미한다는 해석, 3) ‘로마선교’(Roman mission)를 말한다는 해석, 4) 구원에 있어서 두 다른 길을 제시한다는 ‘두 언약 해석’(‘two-covenant’ interpretation), 5) ‘전체 이스라엘 민족의 선택’(total national elect)이라는 해석입니다.
이 부분에서 있어서, 오늘날 많은 성경신학자들은 ‘온 이스라엘’(all Israel)이 ‘예수를 믿는 선택받은 유대인들을 의미한다’는 견해에 일치를 보이고 있으며, 이것은 본문의 의미에 가장 합당합니다. 그러므로, 크리스토퍼 조칼리(Christopher Zoccali)가 말한바와 같이 “온 이스라엘”은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선택받은 유대인 전체’(total national elect)를 의미합니다.
다음으로,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라는 구절은 이사야 59장 20절과 27장 9절에 나오는 두 구절을 함께 인용한 구절입니다. 위 이사야 본문의 배경을 보면, 시온(Σιων: Zion)은 예루살렘 도시에 있는 한 언덕의 이름이며, 하나님이 택한 백성의 도성으로 묘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는 이 시온(Zion)에 사는 백성들의 죄를 제거하시기 위해서 구원자(하나님)가 시온에 임한다고 말씀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바울은 본문에서 인용한 시온(Zion)이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하늘의 처소로 적용하여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사야 59장 안에 있는 “시온을 위해서”(ἕνεκεν Σιων in LXX)라는 구절을 사용하지 않고, “시온으로부터”(ἐκ Σιὼν)라는 구절을 사용했습니다.
또한 바울은 “그 구원자”(ὁ ῥυόµενoς: the Redeemer)가 시온(ἐκ Σιὼν)으로부터 와서 야곱의 불경건(ἀσεβείας)을 돌이키게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의 배경이 되는 이사야 59장 15-21절에 의하면, 여호와는 경건한자들(남은 자들)을 구원하시고 악한 자들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오시는 용사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이사야 59장 20절에서 구원자는 하나님을 가리키지만, 바울은 그 구원자를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해서, 역사의 종말에 있게 될 이스라엘(야곱)의 구원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6절 하반절에 이어지는 27절에서 “그리고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특별히 죄의 용서와 관계된 언약이라는 점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cf. 렘 31:34). 즉, 바울은 죄용서의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십자가의 죽음으로 완성(cf 3:21-26)되었고,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되도록 하는 언약(Rom.4; Gal.3)이라는 점을 말하고자 이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11장 26b-27절에서 바울이 말하는 언약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죄의 용서에 관계가 있으며,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이루어 질 구원의 완성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은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이 이방인 신자들이 가졌던 것만큼 이스라엘의 소망의 한 부분임을 피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1장 25-27절에 의하면, 바울은 예수를 믿는 이방인들에 대한 구원의 방식과 똑같이 이스라엘(유대인들)이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임으로서 구원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신실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한, 종말론적 구원시기에 이방인들의 충만한 수가 차기까지 이스라엘인(유대인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섭리안에서 부분적으로 강팍해져 있을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모든 유대인들은 영광스러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에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5. 결 론
로마서 9-11장에서 바울은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하여 깊은 관심과 염려를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안에 있는 참이스라엘(이스라엘의 남은자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그 참 이스라엘이 바로 유대인 신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들(ethnic Jews)로 구성된 ‘온 이스라엘’(all Israel)이 마지막 날에 구원을 받을 때까지 이스라엘은 한시적으로 버림당했으나(rejection), 이것은 이스라엘과 이방인들 모두에게 종말론적 구원을 얻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안에 있는 것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것인가’(롬 11:26)?”라는 물음에 대해서, 종말의 때에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기까지 부분적인 완악함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셨으며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방식안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언약안에 들어온 모든 이스라엘의 구원은 마지막 날에 성취될 것이며, 이러한 모든 이스라엘의 구원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한 이방인신자들의 구원을 가져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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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곤주 목사(시드니새언약교회 담임)
김곤주 목사는 안양대 신과 및 신대원을 졸업하고, 호주 몰링(Morling College)신대원 및 무어(Moore College)신대원을 졸업했다. 지금은 새언약교회를 섬기며 신학교 강의와 함께 공부와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저서로 ‘원문 중심의 이야기 로마서'(세움북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