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퇴계선집 : 자성록, 논사단칠정서, 성학십도
퇴계 이황 / 현암사 / 1999.3.31
성리학의 최고봉인 퇴계의 인간과 사상의 전모를 밝히는 국학서이다.
오늘날 새롭게 재평가되는 自省錄, 論四端七情書, 聖學十圖 세 편을 이해하기 쉽게 평이한 우리말로 번역하고 자세한 주를 달았다.
우리 나라 성리학사의 거봉인 퇴계 이황의 대표적인 저서인「자성록」,「논사단칠정서」,「성학십도」를 한데 엮은 본서는 퇴계 철학 연구의 권위자인 윤사순 교수가 번역하고 주석을 달았다.
윤사순 교수는 퇴계의 인간상과 핵심 사상을 요약해서 보여주는 「퇴계의 생애와 사상」을 책 앞머리에 실었다. 또한 세 편의 퇴계서 앞에는 각각 해제를 달아 각 편이 담고 있는 내용을 요약하고 그 편들이 씌어진 계기와 시기 등을 정리하였다.
「자성록」은 퇴계의 고민, 사색, 학덕, 인격 등의 흐름을 보여주는 서한집으로, 그가 평소에 남들과 나눈 편지를 모아 자성의 자료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이 편지의 내용은 천리와 인성에 관한 형이상학적 문제, 의리지행으로서의 진퇴 및 거취에 관한 문제들이 주조를 이룬다.
「논사단칠정서」는 퇴계 철학의 진수가 담긴 서한집으로, 고봉 기대승과 ‘사단 칠정’의 발현 문제를 둘러싸고 논쟁을 벌인 퇴계의 대표적 걸작이다.
「성학십도」는 당시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선조에게 차문과 함께 바친 것으로, 도해를 통해 성리학적 우주관, 심성설, 수양론을 집약한 퇴계 만년의 역작이다.
○ 목차
– 자성록
– 논사단칠정서
– 성학십도
○ 저자소개 :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
퇴계 이황은 도산 서당에서 성리학의 심성론을 크게 발전시킨 한국철학의 대표적인 학자이다. 그의 자는 경호이며, 호는 지산 ·퇴계이다. 연산군 7년 11월 25일 경상북도 안동 도산에서 진사 이식의 여섯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퇴계의 아버지는 서당을 지어 교육을 해 보려던 뜻을 펴지 못한 채, 퇴계가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퇴계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났다. 비교적 늦은 나이인 34세에 대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부정자로 벼슬을 시작하여 끊임없이 학문을 연마하며 순탄한 관료 생활을 보내던 그는 종 3품인 성균관 대사성에 이른 43세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갈 뜻을 품게 된다.
이후 세 차례나 귀향과 소환을 반복하면서 고향에서 연구, 강의, 저술에 전념한 퇴계는 50세 이후에는 고향의 한적한 시냇가에 한서암과 계상서당 및 도산서당을 세우고, 그의 학덕을 사모하여 모여드는 문인들을 가르치며 성리학의 연구와 저술에 집중하였다. 권력에서 멀어진 후에도 조정에서는 계속하여 높은 관직을 제수하였으나, 거듭 사직 상소를 올려 받지 않았으며 마지못해 잠시 나갔다가도 곧 사퇴하여 귀향하기를 반복하며 학자의 길을 걸었다. 연구에 몰두하던 그의 나이 70세, 1570년 12월 8일 운명을 달리하게 되었다. 고봉 기대승과의 4단 7정에 관한 논쟁을 통하여 학문적 논쟁의 모범을 보여주고, 성리학의 심성론을 크게 발전시켰다. 저서로는 『계몽전의』, 『송계원명이학통론』, 『퇴계집』 등이 있다.
– 역자 : 윤사순
1936년 출생/고려대학교 철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철학박사)/고려대학교 철학과 교수/한국공자학회장, 한국동양철학회장, 한국철학회장, 국제유교연합회(북경 소재) 부회장 역임/2018년 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중국사회과학원 명예교수, 중국 곡부사범대학 객원교수,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율곡연구원 이사장
[저서]
《퇴계철학의 연구》(국문, 영문판),《한국유학논구》(국문, 중문판),《한국유학사》(국문, 중문판),《한국의 유학사상》(국문, 영문판),《한국의 성리학과 실학》,《한국유학사상론》,《신실학 사상론》,《조선시대 성리학의 연구》,《조선, 도덕의 성찰》,《동양사상과 한국사상》,《유학의 현대적 가용성 탐구》,《실학의 철학적 특성》,《유학자의 성찰》,《우리사상 100년》(공저) 등.
[역서]
《퇴계선집》,《석담일기》.
[편서]
《자료와 해설, 한국의 철학사상》(국문, 영문판), 《한국의 사상》,《사단칠정론》,《인성물성론》, 《도설로 보는 한국유학》,《실학의 철학》,《조선유학의 자연철학》,《신실학의 탐구》등.
[논문]
“퇴계의 가치관에 관한 연구”(박사학위논문)를 비롯하여 약 2백편.
○ 독자의 평
– 유학자의 삶
퇴계는 율곡과 더불어 조선을 대표하는 성리학자이다. 과거 국가와 사회의 운영에 특정 종교나 사상이 영향을 주는 것이 흔하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의 유교만큼 국가와 사회에 대한 실제적 영향력을 가진 적은 없었다. 조선에서는 오랜 기간 유교의 영향력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었고 우리가 사는 현대에 근접한 시기에 있었던 일이므로 유교는 지금 우리의 삶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많이 주고 있다.
조선의 유교사상의 확립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이가 퇴계이므로 우리의 삶은 퇴계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퇴계의 삶과 사상에 대해 알고 싶어 찾던 중 읽게 된 책이 퇴계선집이다.
퇴계선집은 자성록, 논사단칠정서, 성학십도 등이 실려 있고 그 앞에 퇴계의 생애와 사상에 관한 해설이 들어가 있다. 자성록은 평소 남들과 주고받은 진지한 내용의 편지를 모아 놓은 것이고, 논사단칠정서는 유학의 쟁점에 관한 논변적 토론을 고봉 기대승과 주고받은 것이다. 성학십도는 성군이 되기를 바라면서 어린 선조에게 올린 군왕의 도에 관한 도해와 해설이다.
퇴계는 과거에 합격하여 관리의 삶을 시작했으나 이에 큰 뜻이 있지 아니하였고 한적하고 은거하는 삶을 원하여 벼슬에서 물러날 뜻을 거듭 밝혔다. 그러나 임금과 주위의 만류로 이를 이루지 못하다가 50세가 넘어서야 퇴직을 하여 자신의 뜻대로 학문과 교육에 전념할 수 있었다. 이후 그가 본격적으로 활동한 기간은 20년 정도이고 노년기에 해당하는데도 새로운 일을 시작하여 길이 남을 족적을 남긴 것은 놀라울 따름이다.
현재의 우리의 사는 모습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자주 비판의 대상이 되는 조선의 유교와 대표자 퇴계에 대해 제대로 알고자 하는 분들에게 퇴계선집은 큰 만족을 줄 수 있다.
– 공부하는 자세의 모범
퇴계의 학문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다. 성심으로 성인들의 말씀을 익히고, 의문나는 것을 충실히 숙고하고, 다른 사람과 사심없이 의견을 교환한다. 일을 대할 때는 세밀하게 살피고, 성현들의 말씀에 비추어보고, 모르는 부분은 모르는 것으로 두며, 신중히 숙고하여 결정한다.
자성록, 논사단칠정서, 성학십도가 들어 있고 초입부에 역자의 퇴계에 관한 글이 있다.
퇴계는 양반가문 출신이지만 가정환경은 빈한하였다. 학구열은 높았으나 출사는 34세로 늦은 편이었다. 40대부터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에 전념할 뜻을 세웠다. 이후, 임금의 부름에 다시 벼슬에 나아가기도 하지만, 학문에 전념하는 자세를 견지하여 만년에 높은 학문적 경지에 이르렀다. 居敬窮理를 몸소 실천하여 해동 최고의 유학자가 되었다.
자성록은 본인 스스로 경계하기 위해 자신의 글을 모은 것인데, 성심을 다하는 삶의 자세가 나타난다. ‘옛 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은 것은 실천이 따르지 못함을 부끄러워해서였다. (古者言之不出 恥躬之不逮也)”로 시작한다. 빨리 배우고자하는 욕심을 경계하고, 일을 정할 때는 세밀히 살피고, 학문을 대함에 私心이 없어야 하고, 집안 일이라 낮추어 보지 말고, 일용평상에 명백한 것부터 시행하고, 성인의 글을 보면서 확대해석하지 말고, 명쾌한 변론은 내실이 깊지 못할 수 있으므로 경계하고, 조급하게 드러내면 결과가 좋지 않고, 겸손해야 한다.
논사단칠정서는 기명언에게 보낸 편지들이다. 성실하게 논쟁하는 자세가 돋보이며, 특히 자신의 생각을 고치는데 주저하지 않는 것이 인상적이다. 사단은 선한 마음의 단초인 반면, 칠정은 절제하여 선함을 유지해야 한다. 사단과 칠정을 비교하여 논하는 것은 각기 취하고자 하는 바가 다른 것을 함께 논하는 것으로 적절하지 않다.
성학십도는 임금에게 올린 10개의 그림과 해제이다. 첫 다섯 그림은 천도에 근본한 것인데 그 공은 인륜을 밝히고 덕업을 힘쓰는데 있다. 태극도는 태극∙음양∙오행으로 하늘의 도이다. 서명도는 인륜을 밝히고 理를 설명한다. 소학도은 배움의 기본인 立敎, 明倫, 敬身이다. 대학도은 세상을 이끌어가는 원리인 明明德, 新民, 止至善이다. 백녹동규도는 오륜를 실행하는 궁리와 독해이다. 후반부의 다섯 그림은 心性에 근원을 둔 것인데, 요점은 일상생활에 힘쓰고 경외의 태도를 높이는데 있다. 심통성정도는 마음, 性과 情, 오행과 仁義禮智信, 칠정에 대한 것이다. 인설도는 마음의 근본인 인을 설명한다. 심학도는 바른 마음과 이에 따른 敬의 실천이다. 경재잠도는 靜動表裏에 늘 지키고자 하는 敬이다. 숙흥야매잠도는 일순간도 떼어놓을 수 없는 敬의 실천이다.
퇴계의 글 속에는 따라 실천하고 싶은 삶의 자세가 가득하다. 천천히 편지를 하나씩 읽으며 자신을 돌아보니 일상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 책을 읽는 도중, 다른 책을 읽은 후 생각을 정리 중이었는데 책의 내용이 미흡한 부분을 탓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명언에게 보낸 다음 문구를 읽고 자신의 잘못을 깨달으니, 그 책의 풍부한 소리에 귀가 열렸다.
– ‘참된 인간’ 퇴계가 유난히 그립다
퇴계, 연암, 다산.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영원한 사표다. 세 분 모두 우리에게 인간의 길을 밝혀준 스승이 아닐 수 없다. 시중에 연암의 글과 다산의 글은 소장할 만한 정선집이 꽤 있는 편이다. 그러나 퇴계의 정선집으로 추천할 만한 책은 금방 떠오르지 않는다. 만약 퇴계의 글을 처음 접해보는 분들이라면 윤사순 선생이 역주한 『퇴계선집』(현암사, 2011)을 추천하고 싶다. 『퇴계선집』은 퇴계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소개글과 더불어 『자성록』, 『논사단칠정서』, 『성학십도』와 같은 주요 저서의 글을 수록하고 있다. 이 책과 더불어 성호 이익과 순암 안정복이 정리한 퇴계의 어록집인 『이자수어』(예문서원, 2010)도 소장가치가 있다.
조선 유학의 집대성자 퇴계 이황(1501-1570)은 다산이 평생 사숙한 정신적 모델이었다. 다산은 금정찰방으로 있으면서 매일 『퇴계집』에 실린 편지글을 읽고, 그에 대한 자신의 사유와 성찰을 「도산사숙록」(陶山私淑錄)으로 남겼다. 다산은 퇴계의 따스하고 너그러운 인간적 품격을 흠모한 것이다. 한말 개화기의 유학자인 위암 장지연(1864-1921)과 호암 문일평(1888-1939) 등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퇴계를 공맹정주의 도를 천명한 ‘조선의 주자’로 숭상한다. 퇴계의 제자인 문봉 정유일은 『언행통술』에서 퇴계의 학덕을 기려 “동방의 일인”이라 칭송했다. 정유일은 선생의 학문이 정자와 주자를 한결같이 표준으로 삼아서 경의(敬義)를 협지하고 지행(知行)을 병진했다고 밝힌다.
북송의 도학자 장재는 성인이란 천지를 위하여 마음을 확립하고, 인민을 위하여 도를 확립하고, 과거의 성인을 위하여 끊어진 학문의 계통을 잇고, 미래의 세대를 위하여 태평을 여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퇴계가 바로 그런 성인에 가까운 군자였다. 퇴계는 학문 연구와 교육을 통해 인간의 올바른 삶의 도리를 밝혀 후세를 위해 참다운 표준을 제시했다. 퇴계는 성리설의 철학 이론을 가장 정밀하게 해석하였으며, 수양론의 인격형성 방법을 가장 깊이 심화시킴으로써 조선도학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퇴계의 문하에서 서애 유성룡, 학봉 김성일, 한강 정구, 월천 조목, 간재 이덕홍, 문봉 정유일, 금계 황준량, 사암 박순 등 당대를 주름잡던 기라성 같은 제자들이 배출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퇴계의 성은 이(李), 이름은 황(滉),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 혹은 도유(陶臾), 퇴도(退陶), 청량산인(清涼山人) 등이며, 관향은 진보(眞寶)이다. 퇴계의 생애는 초년의 수학기, 중년의 사환기, 만년의 강학기라는 세 시기로 구분된다. 초년의 수학기는 출생에서 33세 때까지 유교 경전과 주자학 연구에 열중하였던 시기다. 중년의 사환기는 34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가면서 49세 때 풍기군수를 사직하고 귀향할 때까지를 말한다. 그리고 만년의 강학기는 50세 때부터 70세로 생애를 마칠 때까지로 고향의 한적한 시냇가에 한서암과 계상서당을 짓고, 그후 도산서당을 세워 제자들을 가르치며 연구와 저술에 몰두한 시기를 말한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