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의 ‘대기만성'(大器晚成)과 공자의 ‘군자불기'(君子不器)

○ 대기만성(大器晚成)
겉 뜻은 “큰 그릇을 만들려면 오랜시간이 걸린다.” 속 뜻은 “큰 인물이 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비슷한 서양 속담으로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Rome wasn’t built in a day)”가 있다.
최초의 출전은 ‘노자’ 제41장이다. 원문을 보면 “大方無隅, 大器晚成, 大音希聲, 大象無形”으로 연달아 나오는데,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큰 사각은 각이 없으며,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지며(혹은 이루어짐이 없으며), 큰 소리는 소리가 희미하며, 큰 모습은 모습이 없다.”
이를 인용한 표현은 중국에서도 오래 전부터 흔히 사용되어 왔는데, 가장 유명한 고사가 후한서와 삼국지 위지에 나오는 다음의 이야기다.
.후한을 세운 광무제 때 마원(馬援)이란 명장이 있었다. 그는 변방의 관리로 출발하여 복파장군(伏波將軍)까지 된 인물이데, 마원이 생전 처음 지방관리가 되어 부임을 앞두고 최황(崔況)을 찾아가자 그는 이렇게 충고했다. “너는 이른바 ‘대기만성’형이다. 솜씨 좋은 목수가 산에서 막 베어 낸 거친 원목을 시간과 노력을 들여 좋은 제목으로 다듬어 내듯 너도 네 재능을 살려 꾸준히 노력하면 큰 인물이 될 것이다. 부디 자중하라.”
.삼국시대 위나라의 최염(崔琰)은 조조가 신임하는 장수로 있으면서 목소리나 용모가 훌륭해 대인의 풍모를 가지고 있다고 칭송받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최염의 사촌동생인 최림(崔林)은 용모가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고, 명성도 최염에 한참 미치지 못해 집안에서도 그다지 기대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최염은 사촌을 높게 평가하며 “큰 종이나 솥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듯이 큰 재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쉽게 그 재능을 보여주지 않는다. 완성하는 데까지는 그만큼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니, 림도 그와 같이 대기만성하는 부류이다. 잘 보게, 나중에 반드시 큰 인물이 될 것이니.” 과연 그 말대로 최림은 나중에 위나라 조정에서 황제를 보필하는 삼공의 자리까지 오른 훌륭한 인물이 되었다고 한다.
– ‘대기만성’은, 실패자를 격려하는 말이 아니다 _ 이상국
.’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진다’가 아니라, ‘큰 그릇은 테두리가 없다’는, 노자의 철학
.대기만성(大器晩成)은 노자 도덕경 41장에 나오는 말이다. 이 말은 유명해져서 이 땅에서도 일상어처럼 쓰인다.
한자말대로 풀면 ‘큰 그릇은 늦게 이뤄진다’이다. 지금 비록 실패를 거듭하거나 성과가 지지부진하더라도 인내와 용기를 잃지 않고 나아가면 늦게라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격언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노자는 후대의 수많은 루저들을 격려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한 게 아니다. 말하자면, 뒷사람들이 스스로 듣고싶은 말로 바꿔 들어왔을 뿐이다.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大方無隅 大器晩成 大音希聲 大象無形 道隱無名
(대방무우 대기만성 대음희성 대상무형 도은무명).
세상의 끝모퉁이에는 사실상 모퉁이가 없고,
세상의 큰 그릇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며,
세상의 큰 소리는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며,
세상의 큰 형상은 형태를 지닌 것이 아니다.
세상의 진실은 이름 없음 속에 감춰져 있다.
저게 무슨 얘기냐 하면, 우리가 논의하는 수준의 큰 땅, 큰 그릇, 큰 소리, 큰 형상은 모서리와 둘레와 소리와 모양을 지니지만, 노자께서 말씀하시는 ‘큰 것’들은 무한대의 무엇이라는 것을 라임을 맞춰 강조한 것이다.
그중에 있는 말인 대기만성은, 큰 그릇은 테두리가 없어서 형상이 없다는 뜻일 뿐이다. 이것은 공자의 말인 ‘군자불기(君子不器)’와 비슷한 뜻이다. 그릇의 크기를 따지는 것은 인간의 감관과 분별의 저울 안에서나 생겨나는 잣대일 뿐이며, 도(道)와 같은 본질적인 차원에서는 ‘둘레가 없는 그릇’이 가능하다. 우주는 둘레가 없는 그릇이다.
과연 ‘늦을 만(晩)’자를 그렇게 해석할 수 있을까. 도덕경 문장의 전후를 따진다면 무(無)와 만(晩)과 희(希)는 모두 부정어 용법으로 쓰였다는 걸 알 수 있다. 논어에 연말연시의 추위를 겪은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 것을 안다(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也)는 말이 있다. 여기서 후조(後凋)는 뒤에 시드는 것이 아니라, 시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후(後)와 만(晩)이 ‘늦게’라는 의미를 지니기에 부정어로 쓰인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대기만성형의 인간은, 진짜 대기만성형이 아니다. 노자는 그런 뜻으로 말한 적이 없다. 거듭되는 실패와 좌절로 무릎이 꺾인 이 시대의 청년백수들을 치어럽하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 유감스럽지만 사실인 걸 어떡해.
‘진짜 큰 그릇의 인간은 아예 테두리를 치지 않는다.’
이게 더 호쾌한 말이 아닌가. 대기만성형의 인간은, 자신의 자아와 삶과 비전을 우주까지 확장한 ‘자연아(自然兒)이다. 조물주를 닮은 우주인(우리도 이 우주에 살고 있으니 틀림없는 우주인이다)에게 붙여줌직한 형용어이다. _ 이상국
– 대기면성?
현대에 알려진 ‘대기만성’은 필사 과정에서 잘못 옮겨진 것으로, 원래는 대기면성(大器免成)이 맞는다는 주장도 있다.
‘노자’제41장에서, 大方无隅, 大器晚成, 大音稀聲, 大象无形를 통해 “대기만성(大器晚成)”으로 알려진 이 사자성어 자체도 사실은 “대기면성(大器免成)”이 맞는다는 말이 제기되고 있다.
“大器晚成”의 해석에서 논점이 되는것은 晚자인데, 왕필본을 비롯한 대부분의 현존 판본에 그대로 존재한다. 이를 그대로 읽으면 큰 그릇은 늦게 이뤄진다고 해석되는 게 맞는다. 그러나 해당 글자를 면(免)으로 읽어야한다는 주장이 있었고 한묘에서 발굴된 이른바 백서본에서 실제로 免자로 표기되어있음이 확인되어 “큰 그릇은 완성되지 않는다”는 뜻의 해석이 신빙성을 얻었다. 또 곽점초묘에서 발굴된 전국시대의 죽간에서는 해당 글자가 만(曼)으로 표기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는데, 중국어언학회 이사장 둥롄츠(董莲池) 화동사범대학 교수는 曼이 선진 시기에 ‘없다’라는 뜻으로 쓰였음을 들어 ‘大器免成’ 쪽에 힘을 실었다.

○ 군자불기(君子不器)
– 군자불기(君子不器) :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 / 참된 인물은 편협하지 않다.
공자가 한 말로 군자란 그 크기가 물건을 담는 데 불과한 그런 그릇이 아니라는 말이다. 지식이 좀 있다고 해서 누구나 군자는 아니다.
지식과 아울러서 인격도 동시에 갖추고 덕을 실천하는 참된 인물이 군자인다. 오기와 아집, 편경과 독선을 부리는 그런 편협한 사람은 결코 군자가 아니다.
융통성이 풍부하고 포용력이 많은 인물이 참된 인물인 것이다. 성인군자라고 할 때 성인이나 군자나 모두 참된 인물을 말한다. _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 –
– 군자는 그릇이 되어서는 안된다(군자불기 ; 君子不器)
자왈, 군자불기子曰. 君子不器
공자는 말했다. “군자는 (쓰임새가 한정되어 있는) 그릇 같은 존재가 아니다.” _ 논어 위정편
군자는 일정한 용도로 쓰이는 그릇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군자(君子)는 한 가지 재능에만 얽매이지 않고 두루 살피고 원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공자가 언급한 그릇은 제기(祭器) 또는 예기(禮器)를 일컫는다.
사가(私家)나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예기나 제기는 엄격히 각기 용도에 따른 구분이 있어 모든 곡식이나 음식이 담기는 그릇이 달라 그 생김새나 모양이 각양각색이었다.
군자는 그러한 예기나 제기의 제한된 소용처럼 자신이 하는 일의 전문에만 제한되는 꼭 막힌 인간형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그릇은 각기 다양한 음식이 담기기에 꼭 맞게 소용대로 만들어지게 마련인데, 사람이 그리 된다면 그 사람은 곧 한 가지 전문적 기능만 가진 인재에 불과하게 되는바, 이는 군자라 이를 수 없다는 의미다.
공자는 군자야 말로 學則不固(학즉불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_ 논어 학이편
바르게 배우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좁은 생각에 사로잡혀 완고해지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
사람은 한 가지 자기 재주나 전문에만 고루하게 갇혀 있을 것이 아니라 자기의 전문이 아닌 다른 다양함을 용납하고 다양한 분야의 식견을 받아들이는 인간형이어야 함을 강조한 말이다.
지금은 바야흐로 통섭(統攝)의 시대다. 철학과 IT가 만나고, 과학과 인문학이 만나며, 동양학과 서양학이 만나는 시대다.
공자가 이상적 인간형으로 주장한 군자의 모습이 바로 이러한 통섭의 인간형이라 할 수 있다.
피터 드러커는 평소 제너럴리스트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그는 여러 책에서 전문가는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지만 이것을 강조하다 보면 전체적인 밸런스를 놓치게 된다고 했다, 경영은 경영상의 문제를 다루는 업무이지, 개발, 재무, 인사의 한 부분을 다루는 일이 아니라고 했다. 즉 경영자는 종합적인 지식과 식견이 있을 때만이 이들을 한꺼번에 파악해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효율적 경영자론’이라는 책에서 리더는 ‘전문성(Speacilaty)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전문(專門) 자체는 하나의 단편에 불과하여 아무런 성과도 생산하지 못한다. 한 전문가의 산출물이 다른 전문가의 산출물과 결합될 때 비로소 전체로서의 일정한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전문가를 일반가로 교육하는가에 있지 않다. 오히려 전문가로 하여금 그 자신과 그 전문을 정녕 효과적으로 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가 문제이다.”
결국 리더는 전체적인 관리자로서 악단의 지휘자에 비유할 수 있다. 그의 조정활동은 서로 다른 전문가, 연주가들 간에 조화성 있는 일체적 관계를 수립하는 데 있다.
쓰임새가 없는 것은 큰 문제다.
하지만 제한된 쓰임새로 나 자신이 한정되어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 군자불기(君子不器) _ 爲政第二(위정제이)
子曰: “君子不器.” (자왈 군자불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그릇처럼 국한되지 않는다.”
.해설 : ‘군자불기’의 불기(不器)의 뜻은 그 능력이 두루 통한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군자는 근원적으로 器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 즉 군자는 본질적으로 器로 규정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한다. ‘군자불기’는 器의 부정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器에 의하여 한정적으로 규정될 수 없는 어떤 본질적 위상을 말하는 것이며, 이는 器가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器가 이로 인하여 드러나게 되는 자리라는 것이다. 즉 불기(不器)는 器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器를 포괄하는 자리이다. 군자는 단순히 도덕적인 인격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의 우두머리가 되는 리더를 말하며, 그는 器가 아닌 器를 부리는 자이다. 그러므로 器는 수많은 신하를 말하는 것이요, 군자란 임금을 말하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신영복 교수의 글에서 : 공자가 말한 군자불기(君子不器)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하여는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 그것이 보편주의적 가치이든 그렇지 않든 일단은 귀족들만의 특권적 품성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점만은 분명합니다.
공자에게 있어서 군자와 소인의 구별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라는 계급적 신분적 구분이 아닙니다. 군자-소인의 구분은 윤리적 기준으로 나누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군자불기(君子不器)의 명제는 공자의 인간학과 관계되는 것이며 나아가 동양학의 인간학과도 직결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올과 베버의 대화
도올은, “군자불기(君子不器)란 기(器)를 부정하는 언급이 아니라, ‘무본'(務本)의 뜻을 표방하는 것이다. 소라이(荻生조徠, 1666-1728)의 비판에 의하면 막스 베버의 ‘군자불기'(君子不器) 비판은 근본적으로 과녁이 빗나간 것이다. 근원적으로 해당사항이 없는 것이다. 불기(不器)는 기(器)의 부정이 아니기 때문이다.”라 하며 소라이의 ‘大低學以成器'(대저학이 성기)를 인용하며, 모든 배움은 기(器)를 이루고(成器), 이 성기(成器)를 통하여 기(器)를 부리는 대도(大道不器)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이다.[도올논어(2), p.155]
도올은 이런 불기(不器)의 논리에 의하여, ‘공자의 군자불기(君子不器)로 인하여 동양사상이 얻어 먹어야 했던 베버의 욕지거리를 독자들은 실컷 얻어 먹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도올논어(2), p.149]라고 하며, 베버의 판단을 불쾌히 여겼고, 나아가서 베버의 군자불기(君子不器) 비판을, ‘근본적으로 과녁이 빗나갔고, 근원적으로 해당사항이 없다’고 일축했다.[도올논어(2), p.155]
.막스 베버의 텍스트
유생들의 방심치 않는 자기제어, 즉 수신의 목적은 외면적 제스츄어나 고상한 매너의 품위를 유지하는데 있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체면”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의 수신은 기본적으로 심미적인 것이었으며 본질적으로 부정적 성격의 것이었다. 그 자체로서 위엄있는 품행, 아무런 실질적 내용이 없는 공허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품행만이 존중되고 욕망되었다.(The watchful self-control of the confucian was to maintain the dignity of external gesture and manner, to keep “face.” The self-control was of an aesthetic and essentially negative nature. Dignified deportment, in itself devoid of definite content, was esteemed and desired.)
유자들에게는, 세분화된 전문직종은 그것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유용한 것인가를 불문하고, 진정으로 긍정적인 권위를 갖는 위치로서 인식될 길이 없었다.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공자가 “논어”에서 한 말, 문화적으로 교양을 쌓은 인간들 즉 군자는 하나의 기(器)로 국한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군자불기(君子不器)의 사상과 관련되어 있다. 즉 군자는 이 세계에 대한 적응 즉 처세나 자신의 완성을 지향하는 수신의 방식에 있어서, 그는 그 자신이 최종적 목적이라고 생각할 뿐, 어떠한 기능적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유교윤리의 이러한 핵심은 전문직종의 분업을 거부했으며, 근대적 전문직의 뷰로크라시를 거부했으며, 전문직종을 위한 특수훈련을 거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군자불기(君子不器)의 사상은 이윤의 추구를 위한 경제학의 훈련을 거부했던 것이다.[For the confucian, the specialistic expert could not be raised to truly posetive dignity, no matter what his social usefulness. The decisive factor was that the “cultured man”(gentleman) was “not a tool”; that is, in his adjustment to the world and in his self-perfection he was an end unto himself not a means for any functional end. This core of confucian ethics rejected professional specializaton, modern expert bureaucracy, and special training; above all, it rejected training in economics for the pursuit of profit.(RC, p.246)]
.기본개념의 이해문제
(ㄱ) 군자(君子)와 전문직(Professional Specialization)
도올은 TV강의에서 군자(君子)를 공자 시대에서는 사(射), 서(書), 예(禮), 악(樂)등을 갖춘 도덕적 지도적 인격자로 지칭했다. 이것은 고대희랍(Greece)의 프라톤(Plato, B.C.427-347)의 이상국(The Republic)에서 말하는 지배자계급(gold class)인 엘리트(Elite, 주로 도덕적 철학자)와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공자의 군자(君子, cultured man, gentleman)와 근대 서구의 전문직(Professional)과는 그 개념이 같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도올 자신도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공자언명의 맥락이 과연 근대사회적 특징을 이루는 전문직종에 대한 종사의 거부가 군자(君子)됨의 특징이라고 하는 의미의 맥락으로 사용된 것인지는 지극히 불투명하다.’고 말했다.[도올논어(2), p.p.150-151] 공자는 다만 자기시대의 이상적 인간상을 말한 것이지 2000여년 후인 오늘의 군자상(君子像)을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ㄴ) 불기(不器)와 제네랄리스트(generalist)
도올은, ‘기(器)는 분명 한 그릇의 국한된 기능’이나, 불기(不器)는 무본(務本)과 대도(大道)의 경지라 설명했다.[도올논어(2), p.151, p.155]
즉 불기(不器)는 기(器)의 세계의 부정이 아니다. 기(器)를 포용하는 대도(大道)이며, 제네랄리스트(generalist)라는 의미를 암시했다.[도올논어(2), p.156]
즉 소라이와 도올은, ‘대저 배움이란 기(器)를 이루지 않음이 없다.(大低學以成器)라고 하여 인간의 모든 배움이 기(器)를 이루고(成器), 이 성기(成器)를 초극하여 대도(大道)에 이르는 것이 불기(不器)의 경지요, 제네랄리스트(generalist)라 했다.[도올논어(2), p.155]
이런 뜻이라면, 공자의 기(器)는 지행적 실용인(知行的實用人)이 아니라 다만 현학적(衒學的) 지식인에 불과한 것같다. 그러나 근대자본주의 사회의 스페시알리스트(Specialist)는 근대 분업사회의 직업(Beruf, Vocation)인이다. 그리고 도올이 말하는 제네랄리스트(generalist)는 무엇인다? 도올은, ‘인간과 우주에 대한 근원적 통찰력과 전체적 조망’을 갖는 사람이라고 강조하면서, ‘우리 당대의 모든 스페시알리스트는 불기(不器)의 스페시알리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도올논어(2), p.156]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공자의 언명의 맥락이 과연, 근대사회적 특징을 이루는 전문직종에 대한 종사의 거부가 군자(君子)됨의 특징이라고 하는 의미의 맥락으로 사용된 것인지는 지극히 불투명하다. “기”(器)는 분명 한 그릇의 국한된 기능이라는 뜻이다. 황간(皇侃)의 소(疏)에: (p.150)
此章明君子之人, 不係守一業也. 器者, 給用之物也. 猶如舟可汎於海, 不可登山; 車可陸行, 不可濟海. 君子當才業周普, 不得如器之守一也.
이 장은 군자된 사람은 모름지기 하나의 업을 지키는데 매달리지 말아야 함을 밝힌 것이다.그릇이란 인간에게 한 쓰임을 제공하는 물건이다. 예를 들자면 배는 바다에서는 두둥실 떠 갈 수 있지만 산을 오를 수는 없는 것이다. 수레는 육지를 다닐 수는 있어도 바다를 건널 수는 없는 것이다. 군자는 당연히 그 재능과 업적이 두루 넓게 통하는 것이어야 하며 그릇이 한 기능을 지키는 것과 같아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오규우 소라이(荻生조徠, 1666-1728)는 이러한 류의 논의에 대하여 재미있는 제도사적 반론을 제기한다. 공자의,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언명도 반드시 소인기(小人器), 군자불기(君子不器)식의 이원론적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주(古注)에서 포씨(苞氏)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p.151)
器者, 各周其用. 至於君子, 無所不施也.
그릇이라는 것은 하나의 쓰임에 국한되는 것이다. 군자에 이르게 되면 베풀지 아니하는 바가 없다.
.주자(朱子)가 “기자(器者), 각적기용(各適其用), 이불능상통(而不能相通). 성덕지사(成德之士), 체무불구(體無不具). 고용무부주(故用無不周), 비특위일재일예이이(非特爲一才一藝而已).” (그릇이란 각기 쓰임이 있는 것이요, 서로 통할 수 없는 것이다. 덕을 이루는 선비는 그 몸이 갖추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그 기능이 통달하지 아니함이 없다. 특별히 한 재능, 한 기예에 국한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한 것도 결국 고주(古注)를 베낀 것인데 이러한 주석은 근원적 제도사적 맥락을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소라이는 “예기” “학기”의 마지막에 나오는 재미있는 구절을 인용한다.
鼓無當於五聲. 五聲弗得不和; 水無當於五色, 五色弗得不章.
북 그 자체는 궁.상.각.치.우 다섯가지 소리에 해당되는 바가 없다. 그러나 다섯가지 소리는 북이 없이는 조화로운 소리를 낼 길이 없다. 물 그 자체는 청.적.황.백.흑의 다섯가지 색깔에 해당되는 바가 없다. 그러나 다섯가지 색깔은 물이 없이는 그 찬란한 색깔을 드러낼 길이 없다.(p.152)

○ 군자불기와 대기만성 _ 조윤재
.흔히 사람의 도량이나 능력 비유적으로 그릇에 빗대 표현
.군자불기는 ‘모양이 고정된 그릇과 달리 다양한 군자의 재주’
.대기만성은 ‘오래 갈고닦아야 큰 인물이 될 수 있음’을 의미
그릇은 음식이나 물건을 담는 도구를 이르는 말이다. 그 종류와 만드는 재료도 다양해서 접시·도자기·유기·뚝배기 등 부르는 이름도 상당히 많다. 흔히 사람의 도량이나 능력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도량이 넓은 사람을 ‘그릇이 큰 사람’이라고 하고, 능력이 안되는 사람을 ‘그릇이 못된다’라고 표현한다. 정도가 심하게 속이 좁은 사람을 ‘간장종지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처럼 그릇이 사람을 비유하게 된 이유는 아마 오래전부터 우리 생활과 가장 밀접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그 종류와 크기가 다양해서 사람을 표현하기에 적합해서일 수도 있고,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람을 그릇에 비유한 것은 고전에도 많이 실려 있는데, <논어> ‘공야장(公冶長)’에 실려 있는 구절이다.
자공이 물었다. “저는 어떤 사람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너는 그릇이다.”
“무슨 그릇입니까?”
“제사에서 오곡을 담는 옥그릇이다.”
자공은 공자의 제자 중에서 말을 잘했을뿐더러 상업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던 제자였다. 자공은 돈을 소중히 했던 점에서 공자의 다른 제자들과는 달랐고 장사 능력 또한 탁월했다. 그는 공자의 제자가 된 이후에도 재산을 늘리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아 공자에게 재정적으로 도움을 주기도 했다. 국가간의 외교문제를 뛰어난 언변과 외교술로 해결하기도 했던 타고난 외교관이기도 했다. 이런 자공을 공자는 세상에서 귀하게 쓰임을 받는 옥그릇으로 비유했다.
하지만 자공은 공자로부터 군자(君子)로 인정받지는 못했던 제자였다. 공자는 제자 자공이 부와 명예 등 세속적인 능력은 뛰어났지만, 군자로서 갖춰야 할 학문과 수양의 경지에서는 부족하다고 봤다. ‘공야장’에서 자공이 “저는 남이 저에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을 남에게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자, 공자는 “자공아, 그것은 네가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못을 박기도 했다. 자공이 말했던, ‘자신이 바라지 않는 일을 남에게 하지 않는다’는 ‘서(恕)’의 정신이다. 공자의 학문과 철학을 한마디로 집약했던 단어인 것이다. ‘서’를 실천할 수 없다는 것은 군자로서 부족함이 있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위정’에 실려 있는 ‘군자불기(君子不器)’, 즉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라는 성어는 자공이 군자가 되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제사에 쓰이는 귀한 옥그릇이라고 해도, 그릇인 만큼 공자에 따르면 군자가 될 수 없다. 군자불기는 그 해석만으로는 명확한 의미를 알기 힘든데, 공자는 ‘군자는 하나의 틀로 정해져 있는 사람이 아니라 다양한 능력과 재주를 갖춘 사람’이라는 뜻으로 말했다. 그릇은 그 모양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한가지밖에는 나타내지 못한다. 공자는 그릇과 같이 고정된 사람이 아니라 다양하고 폭넓은 관점과 능력을 갖춘 통합의 인재가 최고의 인재라고 말했던 것이다.
고전에서 사람을 그릇에 빗대어 말했던 것 중에 잘 알려진 것은 노자의 대기만성(大器晩成)이 있다. ‘큰 그릇은 늦게 이뤄진다’는 뜻으로, 군자불기가 폭넓은 다양성을 뜻한다면 대기만성은 사람들이 지향하는 그릇의 크기를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큰 그릇이 이뤄지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듯이 사람도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을 갈고닦아야 큰 인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굳이 사람을 그릇에 비유하자면 군자불기와 대기만성의 자질과 능력을 모두 갖추고 있으면 좋겠다. 흔히 따지듯이 그릇의 용도가 무엇인지, 무슨 재질로 만들었는지, 얼마나 비싼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 그릇에 무엇이 채워져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아무리 예술적이고 아름다운 그릇이라도 추하고 더러운 것이 가득 차 있다면 더러운 그릇일 뿐이다.
우리 민족은 오래전부터 그릇을 만드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뛰어난 장인(匠人)들이 있었고 그들이 만든 명품 그릇들이 있었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뿐 아니라 서민이 사용했던 막사발도 세계적인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런 그릇들을 만들었던 지혜와 능력으로, 사람도 군자불기와 대기만성의 명품들로 키우면 좋겠다. _ 조윤제(인문고전연구가, 저서 <천년의 내공> <말공부> <인문으로 통찰하고 감성으로 통합하라> <내가 고전을 공부하는 이유> 등 다수)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