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사회정의론
존 롤스 / 서광사 / 2001.2.28
지은이는 사회정의와 관련하여 자유냐 평등이냐의 양자택일보다는 현대사회가 평등에 보다 큰 관심을 갖는 이유를 밝히고, 그러한 관심이 개인적 자유에의 관심과 상보적인 관계에 있다는 전제 아래 평등주의적 자유주의를 기초로 하는 정의관의 철학적 기초를 제시하고자 한다.
– 목차
1. 원리론
2. 공정으로서의 정의
3. 정의의 원칙
4. 원초적 입장
5. 제도론
6. 평등한 자유
7. 분배의 몫
8. 의무와 책무
9. 목적론
10. 합리성으로서의 선
11. 정의감
12. 정의는 선인가
– 저자소개 : 존 롤스 (John Rawls)
1921년에 볼티모어에서 태어나 프린스턴 대학을 다녔다. 세계대전의 기간에는 태평양에서 복무하였고, 종전 후 장교제의를 거절하고 프린스턴으로 돌아와 정치철학을 계속 공부하였다. 풀브라이트 장학금으로 옥스포드에서 공부하면서 이사야 벌린과 하트의 영향을 받았다. 1962년 코넬대 교수, MIT 교수를 거쳐, 하버드 교수로 정식 임용이 되었다. 하버드 대학에서 정치철학을 40년 동안 가르치면서 ‘정의’라는 한 주제에 대한 깊은 탐구를 한 학자로 정평이 나 있다. 그 공로로 1999년 쇼크상(Schock Prize)을 수상하였다.
그는 분석철학이 풍미하던 20세기 영미 철학계에서 사회철학과 윤리학을 되살린 거장이다. 현대 윤리학, 정치철학, 경제학을 비롯한 인문사회과학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현대의 고전으로 꼽히는 『정의론』을 통해 독창적 이론을 제시함으로써 정치철학과 윤리학에서 존 로크, 토머스 홉스 등에 버금가는 입지를 확보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는 1958년 「공정으로서의 정의」라는 논문을 발표한 뒤 사회 정의에 대한 현대적 해석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분배적 정의」, 「시민불복종」, 「정의감」 등의 논문을 연이어 발표하면서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오랜 탐구의 결실로 나타난 것이 바로 그의 필생의 대작인 『정의론』(1971, 1991)인데, 이 책은 출간과 동시에 20세기를 대표하는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주요 저작으로는 이 책과 함께 그의 3대 명저로 꼽히는 『정치적 자유주의』(1993), 『만민법』(1999) 외에도 『근대도덕철학사 강의』(2000), 『공정으로서의 정의』(2001) 등이 있다.
– 독자의 평
롤스의 사회정의론
분배적 정의 (distributive justice)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 논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Etica Nicomachea)이다. 분배가 윤리학에서 처음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어떠한 분배 상태가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판단의 기준으로서 정의(justice)개념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이후 분배적 정의는 철학뿐만 아니라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 등 사회과학분야에서 중요하게 논의되고 있는데, 존 롤스의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은 이 분야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롤스는 철학적 입장에서 정의의 문제에 접근하였으며 정의원칙을 실현시킬 수 있는 제도적 구성으로서 정부부문과 공공정책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러한 롤스의 논의를 사회과학 전반에 걸쳐 적용해 보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특히 정책분야에서 그의 정의론의 핵심인 최소극대화(maxmin principle) 원칙이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도시정책적 측면에서 그의 이론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 될 수 있다. 롤스의 이론은 철학과 경제학1)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고 있으나 최근에는 재개발정책 및 주택정책분야에 그의 이론을 적용해 보려는 연구도 나타나고 있다.2) 어느 사회에서나 소득수준이 향상되고 경제성장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면 공평과 분배적 정의의 문제가 관심의 초점이 된다. 복지정책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선진자본주의 국가임을 봐도 이 점은 명백하다. 우리 사회 역시 최근 들어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구조조정의 과정 속에서 패러다임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고, 이 과정 속에서 분배적 정의 문제의 중요성은 희석되고 있다. 이러한 때 롤스의 정의론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라고 생각된다.
.정의론 연구의 흐름
분배 및 정의와 관련된 연구분야는 분배이론의 정립, 분배적 정의, 불평등의 원인 규명, 분배모형의 정립, 불평등도 지수의 측정, 재분배정책, 성장과 분배의 관계 등 여러 분야로 나뉠 수 있다. 이 중에서 분배적 정의는 경제문제에 대한 철학적 접근이 이루어지는 부분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분배적 정의를 다루고 있는 대표적 저서로는 아더와 쇼(J. Arther and W. Shaw)의 『정의와 경제적 분배』(Justice and Economic Distribution), 노직(R. Nozick)의 『무정부주의,국가와 유토피아』(Anarchy, State and Utopia) 그리고 롤스(J. Rawls)의 『정의론』 (A Theory and Justice) 등이 꼽힌다. 아더와 쇼의 저서는 분배적 정의에 대한 여러 사조를 대표하는 논문을 편집한 것으로 입문서로서의 성격을 갖는 반면 노직의 책은 자유주의적 정의관을 집중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논의를 이어 정의론의 체계를 완성한 사람이 롤스이며 그의 저작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은 이 분야의 고전으로서 현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저서로 인정받고 있고, 그가 주장한 최소 극대화의 원칙은 현실 정책수립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분배적 정의에 대한 전통적인 접근 가운데 중요한 사조로는 평등주의, 자유주의, 공리주의를 들 수 있다.3) 평등주의는 평등의 가치관에서는 물질적 가치도 평등하게 분배되는 것이 정의롭다는 견해로 연결된다. 그러나 평등주의는 평등을 강조한 나머지 정의의 다른 중요한 요소인 개인의 정당한 권리가 경시된다는 점과 자유라는 도덕적 가치와도 상충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에 대해서는 평등주의가 보다 탄력적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최소한의 생활수준에 대한 동등한 권리로서, 또는 모든 사람이 동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자유주의는 록크, 몽테스키외, 칸트 등에 뿌리를 두고 있는 흐름이다. 초기의 자유주의는 정치적 자유에 초점을 둔 것으로 사회계약론으로 대표된다. 루소에 이르면 자유는 전반적인 자유의 문제로 확대되고 불평등의 기원과 해결에 관심이 두어지며 문제해결의 시발점으로 사회계약이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현대에 자유주의적 입장을 대변하는 학자로는 노직이 있다. 그는 사람이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되고 목적 그 자체여야 한다는 칸트적 원칙으로부터 출발한다. 분배적 정의를 달성한다는 명목으로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으며 분배적 정의라는 용어 자체가 중립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배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직의 정의론은 ‘정당한 권리의 원칙’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이 원칙은 ‘취득, 이전, 부정의의 시정’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며 정당한 권리가 자유의 핵심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의 문제점은 절차상의 정의만을 중시한 나머지 실질적 결과의 측면을 간과한다는 점이다. 자유주의자들이 문제삼는 것은 정당한 방법에 의해 물건을 소유하게 되었느냐 하는 것으로, 이 정당성만 보장된다면 누가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4) 이런 점에서 노직의 정의개념은 롤스와 비교될 수 있다.5)
공리주의적 정의관은 벤담의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에 집약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바람직한 분배란 사회의 총체적 후생을 극대화할 수 있는 분배여야 한다는 것이다. 공리주의에서는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이 그것으로 인해 받는 영향에 의해서 판단된다. 공리주의자들의 이런 견해는 부의 이전이 사회전체의 후생을 증대시킨다면 그것이 정당한 방법에 의한 것이 아니더라도 사회 전체적으로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선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공리주의는 개인간의 효용비교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비판되고 있다. 공리주의자들이 말하는 사회전체의 후생이라는 것은 개인간의 효용비교를 전제하지 않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6)
.롤스의 정의론 : 평등의 원칙과 차등의 원칙
롤스는 1921년 미국에서 태어나 1950년 프린스턴 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은 후 코넬대학과 메사추세츠대학 공과대학을 거쳐 1962년 이후부터 하바드대학 철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1958년 ‘공정으로서의 정의’ 라는 논문을 발표한 이후 “분배적 정의” “시민불복종” “정의감” 등의 논문을 발표하였고 20여년에 걸친 연구의 결과로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을 1971년 출간하였다.
롤스의 정의론의 핵심은 ‘공정성으로서의 정의(justice as fairness)’이다.7) 롤스는 사회의 기본구조에 대해 아무 원칙도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들이 기본원칙에 합의해 가는 과정에서 이 원칙을 도출하고 있다. 그는 이 가상적 상황을 ‘원초적 상황(original position)’이라고 부른다. 이 상황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신이 장래에 사회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게 될지 모른다. 심지어 자신의 지능이나 능력이 어느 정도일지도 모르는, 철저히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뒤에 감추어진 사회적 상황을 전제한다.
롤스는 이 원초적 상황에서 사람들이 선택하리라고 기대되는 정의의 원칙으로 다음의 두 가지를 제시한다.
제1원칙 :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유와 양립할 수 있는 한에서 가장 광범한 자유에 대해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제2원칙 :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은 다음 두 조건을 만족시키도록 배정되어야 한다.
(a) 최소수혜자에게 최대의 이득이 되고
(b) 공정한 기회균등의 조건에서 모두에게 개방된 직위와 직책이 결부되도록 하여야 한다.
제1원칙은 평등한 ‘자유의 원칙’(liberty principle)이다. 제2원칙의 첫부분인 차등의 원칙(difference principal)8)은 불평등이 최소수혜자에게 최대이득이 돌아가도록 배치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 부분은 공정한 기회균등원칙아래 직책과 직위가 모든 이에게 개방되어야 한다(공정한 기회균등의 원칙)는 것이다. 차등의 원칙 하에서는 불평등이 모든 이에게 이득이 될 수 있을 때만 정당화될 수 있다. 차등의 원칙의 논리적 연장이 최소극대화의 원칙(maxmin)으로서 최소수혜자에게 최대의 이득이 될 때만 불평등이 정의로운 것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
롤스는 이 세 가지 원칙 사이에 축차적 우선성이 있어서 제1원칙이 제2원칙보다 우선시되고(lexically prior) 제2원칙 안에서는 기회균등의 원칙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본다. 즉 부와 소득의 불평등한 분배와 권력의 계층화는 반드시 시민권과 기회균등을 보장하는 기회균등의 원칙 하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롤스는 자연적으로 타고 나는 능력이나 소질, 사회적 우연성에 의한 유리한 여건들도 개인이 차지해야 할 도덕적 이유가 없으며 따라서 사회전체의 공유(pooling)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롤스는 정의의 원칙이 어떤 심리적 법칙이나 확률에 의해 추측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또한 경험적·실증적 자료에 의해 분석될 수도 없으며 이성론적 인식에 기초하여 확립되는 것이고 가설적 원리에 의해 연역적으로 도출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롤스는 이러한 원칙의 실현을 게임이론의 틀을 가지고 설명한다. 이 원칙이 관철된다면 그 사회에서 가장 못사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의 물질적 안락이 보장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위험부담을 기피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면 이에 대해 동의할 것이라는 것이다. 즉 앞으로 생활수준이 어떻게 될지를 전혀 알 수 없는 원초적 상황에서 위험기피적인 사람이라면 이 안전망을 환영할 것이라는 것이다. 위험기피적 태도가 강하고 불확실성이 강한 상황에서는 안전망이 있는 사회 쪽으로 기우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라는 것이 롤스의 설명이다. 이러한 원칙이 바로 최소극대화원칙이다. 그러나 이는 계층간 불평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배분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롤스에 의하면 정의는 불평등의 크기에
상관없이 절차적 정의가 보장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롤스의 설명틀은 분석철학적 방법과 게임의 이론을 이용하여 사회계약론을 일반화하고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평가된다.
롤스의 정의원칙을 정책규범화하기 위해서는 제2원칙인 차등의 원칙이 중요하다. 롤스 정의론이 제1주제로 다루는 것이 사회기본구조이므로 우선은 사회체제 비교가 이뤄지고 다음 사회체제 안에서 어떤 정책대안이 정의원칙의 이행방향에 더 적합한지를 밝히게 된다. 최소극대화의 원칙은 진보주의의 이념적 기초가 되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회복지제도를 설계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롤스의 정의는 정의로운 사회를 규정하는 원칙이지 정의로운 사회 자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공정한 절차를 통해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가 되지만 정의사회는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이상사회는 아니고 다만 이상사회가 갖추어야 할 필요조건일 뿐이다. 즉 자유와 평등이 양립 가능한 균형점으로서의 불평등만이 정의로운 불평등으로서 수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분배구조의 재조정은 그것이 사회구성원들의 의견수렴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든 체제유지를 위한 불가피한 대가이든지 간에 역사적 당위로서 인정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분배를 둘러싼 극단론을 벗어나 최소수혜자의 최우선 배려를 원칙으로 하고, 자유시장원리를 배제하지 않으면서 절차적 과정을 중시하는 롤스의 논의는 시사점이 크다고 하겠다.
롤스의 이론에 대해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신성함을 주장하는 자유주의자들은 이러한 원칙들이 사람들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비판한다. 또 다른 비판은 분배적 정의가 사회의 유일한 가치가 아니고 많은 도덕적 가치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정의라는 가치가 다른 종류의 도덕적 가치와 상충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 모든 도덕적 가치 중에서 유독 정의에만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분배적 정의는 롤스에서 시작해서 롤스에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공정한 절차로서의 자유경쟁시장
롤스는 수요-공급에 의거한 시장체제를 중심적 경제제도로 상정하고 있다. 자유롭고 경쟁적인 시장이 자원을 배분하고 자격을 형성하며9) 수요와 소비의 수준을 조정하고 임금수준과 투자를 조정하는 기본체제로 작동한다. 부와 소득의 분배에 있어서 결과를 산출하는 절차로서 자유경쟁시장체제는 매우 유력한 방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시장도 그러한 조건을 완벽하게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경쟁시장체제는 두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는데, 하나는 자유경쟁시장 자체에 내재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정의의 관점에서 본 시장결과의 난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해 몇 가지 대책들이 도입되게 된다.
현실적으로 시장이 완전 경쟁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기회균등의 조건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또한 시장체제는 불안정성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불안정을 조정할 필요성이 있다. 이 점이 롤스가 자유시장체제를 규제해야 한다고 보는 이유이다. 이에 대한 롤스의 해결책은 시장을 경제제도의 기반으로 삼고 시장과 연합될 수 있는 배경적 제도(background institution)를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로는 완전고용, 복지수당, 임대주택제도, 독과점금지규제, 누진적 조세제도 등이 포함된다.
.최소극대화 선택전략과 도시정책적 의미
합당한 계량적 척도가 없거나 또는 자료가 불충분하여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기 어려울 때 정책입안자나 계획가는 주관적 판단에 따라 결정을 하게 된다. 각 집단에 얼마나 이익이 돌아가는지 측정할 수 없을 경우에는 최소수혜집단에 많은 이익을 주는 것이 가장 위험부담이 적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계량적 척도가 없는 경우뿐만 아니라 계량적으로 결과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경우에도 도시정책분야에서 차등의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 개인이 향유할 도덕적 이유가 없는 자산은 사회전체의 것으로 공유해야 한다는 롤스의 주장이 그 근거이다. 어떤 정책으로 인해 이익을 누리고 있는 경우 이런 자산은 개인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공동의 자산으로 파악되며 따라서 최소수혜자에게 이익을 줄 수 있도록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정당하다. 도시정책에서 재분배기능은 자원의 불공평한 분배에 의한 부정적 여건을 완화시켜 공평성을 찾자는 것이다.10) 도시에서 임금과 부의 불평등은 없어지지 않고 계속되기 때문에 이러한 불평등이 있는 한 재분배정책도 계속 필요하다.
롤스의 이론을 도시재개발정책에 적용하여 분석을 시도한 논의에서는 롤스의 원칙 중 차등의 원칙을 특히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다(윤혜정, 1994).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이익집단은 지방정부, 건설업체, 가옥주, 세입자로 구분될 수 있다. 사업의 진행과정을 둘러싼 이들의 관계 속에서 영세한 가옥주와 세입자가 가장 피해를 보게 되는 재개발과정을 분석하여 도시재개발사업이 사회적으로 부정의한 정책임을 밝히고 있다. 건설업체와 일부 가옥주에게 개발이익이 귀속되고 영세가옥주와 세입자는 이익분배과정에서 배제되고 강요된 비자발적 이주를 함으로써 피해를 입게 되는데, 이것은 롤스의 제2원칙 중 공정한 기회균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의를 실현할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재개발사업에 민간자본의 이용을 차단하고 공공이 직접 투자하는 방식을 통해 재개발사업의 최소수혜자인 영세가옥주 및 세입자에게 개발이익을 분배해 주는 방식으로 정책적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공공정책에 있어서는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에 대한 검토가 선행된 후에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최저수준의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배제하고는 복지국가의 이념은 허구에 불과한 것이 될 수 있다. 롤스의 논의를 도시계획적 측면에서 받아들인다는 것이 민간의 자율성을 침해하거나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최소수혜자에게 이익이 돌아갈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공공에 의해 제도적으로 지원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이러한 절차적 과정이 효율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비춰질지 모르지만 사회구성원 전체의 합의를 도출해내지 못한 상태에서 추구되는 효율성은 정의롭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주택정책에 있어서 불공평성을 지적하면서 정책에 있어서의 시각적 전환을 모색할 것을 주장하는 또 다른 논의는 그러한 논의의 출발점을 다음의 두 가지로 들고 있다. 첫째는 지금까지의 공공주택정책이 가져온 계층적 편향성을 지적하고 형평한 분배로의 시각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보편적 가치가 되는 자아실현의 수단으로서 또 사회적 기본가치로서의 주택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변영진, 1994).
주거는 삶의 기본적 수단이며 자아실현의 장이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소유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최저한의 주거수준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인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주택의 기원을 인성학적 측면에서 보면 혈연관계의 사회적, 공간적 맥락과 본능이 누리려는 영역확보의 정서 (territoriality) 또는 소유감 (Possessiveness)에서 비롯된다(Saunders, P. 1988). 주거과밀이나 주거빈곤이 거주자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주거과밀은 정서적 불안감, 도피적 행동을 초래하고 결혼만족도, 아동의 성장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따라서 건전하고 보편적인 사고와 행동양식을 가질 수 있기 위해서는 바람직한 주거상황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점들이 주택에 있어서 분배적 규범이 적실성을 갖는 이유이다. 따라서 정당한 불평등은 사회의 최소수혜층에 이익이 되는 한도에서 그친다는 롤스의 차등원칙이 우리 나라 주택정책의 불공평성을 치유할 수 있는 준거가 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사회적 주거권의 보장이 중요한 것은 공정한 기회균등의 보장과 자존심의 기반을 유지하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주거복지를 최소수혜계층에게 보장하는 것이 호혜로운 사회에서의 협동을 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거권을 보장하는 공공정책은 과거 서민의 근대적 시민화를 촉진하는 중요수단이 되었다(권태준, 1988).
롤스의 정의론에 입각하여 우리 나라 주택정책을 살펴본 연구(변영진, 1994)에서는 ‘주택시장의 효율성, 소득 분배의 적정성, 정책의 계층편향성’의 관점에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연구 결과 우리 나라 주택정책은 직접적인 가격통제 방법으로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저해하고 장기적으로는 저소득층의 주거빈곤을 더욱 심화시킴으로써 롤스의 제1원칙을 위반하고 간접적으로는 제2원칙을 위반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대안으로서 토지자원의 사회적 관리강화와 주택금융제도의 대폭 정비를 제안하고 있다.
롤스의 이론은 불평등이 정당화될 수 있는 조건으로서 차등의 원칙을 들고 있는데, 이것은 권리의 평등이 아니라 실질적인 평등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은 평등이 자유를 제한하거나 규정함으로써 자유의 영역을 축소시킬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또한 차등의 원칙은 불평등을 전적으로 부정하지 않고 조건부적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이는 인간이 평등해야 한다는 시민적 자각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근대 이후의 가치에서는 인간이 평등해야 할 근거와는 상관없이 ‘인간은 평등하다.’는 가치가 보편적이고 가치로운 것으로 인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_ 출처: 월간국토 1998년 8월호. 56-62쪽 / 필자: 천현숙, 국토연구원 책임연구원
*주
1) 철학과 경제학의 접근차이: 정의에 대한 철학과 경제학의 접근은 차이가 있다. 철학은 정의 (just)로운 배분을 강조하는 데 비해서 경제학은 공평한 (equitable) 배분을 강조한다. 그러나 표현상의 차이일 뿐 양자의 본질적 내용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이준구, 1992, p82).
2) 재개발·주택정책에서의 정의론 적용 연구: 롤스의 정의론을 도시계획에 적용하려는 시도로 변영진 (1994)과 윤혜정 (1994)의 연구가 있다.
3) 분배적 정의 연구의 시원 (始原): 초기 그리스의 자연철학에서도 정의는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다. 솔론이나 파르메니데스 등의 정의론은 플라톤에 이르러 덕론의 형식으로 다루어진다. 그는 국가의 구성원을 3계급으로 나누고 이들에게 각각 지혜, 용기, 절제의 덕을 부여하는데, 정의는 바로 이들 덕 위에 있는 것으로서 이상의 세 가지 덕이 정의 안에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분배적 정의와 시장적 정의는 정의론에 있어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되지만 덕론의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스토아학파에서는 자연과 인간이성의 통합을 통해 로고스를 인식할 수 있는 이성을 가지고 있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정의론으로 연결된다. 스토아학파는 자연법사상을 주장하는데, 이는 세속적 권력에 대한 교회권력의 우위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한다.
4) 노직 (Nozick)의 정의론: 노직은 분배적 정의라는 명분의 정부개입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토지나 주택 등 사회의 하부구조적 토대를 이루는 부분에 대해서 많은 경우 공적 제약이 가해지고 있고, 이로 인한 개인의 자유와 사유재산의 침해가 어느 정도는 수용되어야 하는 것으로 인정되고 있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5) 노직과 롤스의 일치점: 노직과 롤스의 분배적 정의는 대조를 보이고 있지만 공리주의적 정의의 실천과정에서 개인의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하며 공리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점에서는 일치하고 있다.
6) 공리주의적 분배정책의 문제점: 현실적으로 많은 분배정책이 사회전체의 후생을 증대시킨다는 공리주의적 이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분배정책의 기본지침을 평등이나 개인의 권리 혹은 자유 같은 추상적인 구호에서 찾는 것보다는 사회전체의 후생을 증진시킨다는 것이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목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러너 (A. Lerner)의 이론인 러너의 정리 (Lerner theorem)는 이러한 공리주의적 관점을 토대로 한 것으로서 최선의 분배는 균등한 분배라는 결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리주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개인간 효용비교’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준구, pp.68-69).
7) 공정성으로서의 정의: 롤스는 정의의 원칙이 공정한 원초적 상황에서 합의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공정성과 정의는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이에 대해 롤스는 ‘은유로서의 시’라는 구절이 시와 은유가 동일한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한다 (롤스, p34).
8) 차등의 원칙: 이를 보다 쉽게 풀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가령 어떤 사회에 A와 B가 있고 B는 A보다 불리한 여건에 놓여있다고 가정한다. 이때 차등의 원칙을 적용하면 A의 이익은 B의 전망을 향상시키는 방식으로 얻어지는 것이므로 B는 A가 더 나은 혜택을 받는 것을 허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A나 B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여건이 만족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차등의 원칙은 불평등이 상호에게 이익이 되는 한에서만 용인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9) 자격의 형성: 자격의 형성이란 받을 만한 자격(desert)에 따라 편익과 부담이 분배되어야 한다는 것으로서 권리, 공평성, 평등성과 함께 정의의 요소 중 하나로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이준구, p.46).
10) 도시정책의 재분배기능: 이러한 재분배기능은 AIP의 계획가 윤리강령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 강령에 의하면 “ 계획가는 모든 사람에게 기회균등한 선택의 폭을 확대하는 데 노력하여야 할 책임을 인식하고 이러한 목적에 위배되는 정책, 제도, 결정이 있을 때는 이들의 변경을 촉구한다.”고 정하고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