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103)
노마 루스 브라운 목사 (본명: 비어, 1935. 4. 19)
한국명: 노미연 선생, 마산 1960-69, 서울 1969-72
노마 비어는 멜번의 근교지역에서 자랐고, 유니버시티 고등학교와 멜번 대학에서 공부했다. 그녀는 중등학교의 교사로서 번스데일(Bairnsdale) 고등학교에서 영어, 불어, 지리를 가르쳤다. 1957년 8월 31일 그녀는 멜번대학 복음주의 연합(Evangelical Union)에서 만난 존 브라운과 결혼하였다. 그들의 첫 아들 마이클은 번스데일에서 태어났고 그들은 1960년 5월까지 그곳에 살았다. 그들은 올 세인트 칼리지에서 단기간 훈련을 마친 후 1960년 9월 25일에 한국에 도착했고, 곧 바로 연세대학교 어학당에서 공부했다. 그들은 두 학기 동안 미 연합장로회의 포만 목사(Rev K. J. Foreman)와 그 부인 프란시스와 함께 살았다.
브라운의 딸 엘리슨 루스(Alison Ruth)는 1961년 5월 4일 일신병원에서 태어났다. 마산에서 수년간 사는 동안 이명자 양(훗날 지태영 목사의 아내)은 친구이며, 한국어 선생이며, 조수로서 함께 살았다.
마산에서 노마는 주로 가정을 보살폈다. 자녀들이 진해의 미 해군자녀 학교에 다니기 전까지 노마는 자녀들의 통신 수업을 지도했다. 노마와 이명자는 또한 마산에서 경제적으로 불우한 여자들과 소녀들의 자급을 위해 중요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그들은 식탁보에 장식하는 기술을 배웠고, 상품은 시드니, 멜번, 브리즈번, 애들레이드에서 PWMU를 통해 판매되었고 그 일꾼들에게 그 대가가 지급되었다.
1969년 브라운 목사의 가족은 서울로 이사했고 자녀들은 서울 외국인 학교에 등록했다. 노마는 선교사 친구들과 협력하여 팔려오거나 속아서 매춘을 했던 아가씨들을 재활시키는 은혜의 집을 지원하고 여성구제 프로그램(sister programs)을 지원했다. 노마와 존은 1970년에 로슬린 진 순자(Roslyn Jean Soonja)를 두 번째 딸로 입양했다.
호주로 돌아와 시드니에 정착을 하면서 노마는 교사직을 회복하고 크로이돈(Croydon)의 장로교여학교(PLC)에서 가르쳤고, 버우드(Burwood)의 감리교여학교(MLC)에서 교목으로 임명되어 3년을 일했다.
노마는 교목보다는 더 넓은 사역에 소명이 있다고 생각했고, 시드니 연합신학대학(UTC)에서 3년 동안 공부했다. 그녀는 졸업 후 1987년 10월 30일에 안수를 받고 시드니의 근교의 라켐바(Lakemba) 연합교회에서 10년간 목회를 했다. 그곳에서 3명의 한국인 목회자 후보생들의 현장교육을 지도했고 여러 사람에게 멘토가 되었다. 1997년 노마는 캔버라의 시티교회로부터 청빙을 받고 2001년 말 그곳에서 은퇴할 때까지 섬겼다.
정병준 교수
(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