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역사속의 이성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 지식산업사 / 1997.11.1
헤겔 사후 간행된 그의 역사철학 강의 노트. 헤겔의 저설 중 일반 독자들이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저서다.
○ 목차
1. 역사서술의 여러 양식
2. 철학적 세계사
3. 세계사의 일반적 개념
4. 역사속에서 정신의 실현
5. 세계사의 도정
6. 자연 연관성 혹은 세계사의 지리적 기초
7. 세계사의 구분
○ 저자소개 :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 ~ 1831)
독일의 철학자이자 독일 이상주의 (理想主義, Idealismus) 철학의 이론을 완성한 거장. 1770년 독일 남부 슈투트가르트에서 궁정관리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튀빙겐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1793년에 스위스로 가서 당시 베른의 영향력 있는 정치가인 폰 슈타이거 (von Steiger) 집안의 가정교사로 일하며 이 가문이 소장한 방대한 양의 서적을 읽는 기회를 가졌다. 여기서 얻은 폭넓고 심오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활용하여 훗날 그는 자신의 철학체계를 세울 수 있었다.
1801년 독일 동부 예나 (Jena) 대학교의 강사직에 임명된 후 불후의 명저 ‘정신현상학’ (Phänomenologie des Geiste, 1807년)을 썼고, 이어서 두 번째 저서인 ‘논리학’ (Wissenschaft der Logik, 1812년)을 출간하였다. 1816년에 하이델베르크대학교 교수로, 1818년에는 당대의 유명한 철학자 피히테의 뒤를 이어 베를린대학교 교수로 임명되었고, 세 번째 명저인 ‘법철학 강요’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1821년)를 출간하였다. 대학 강사 시절인 1802년에 당시 독일문화의 중심지였던 드레스덴을 비롯해, 1822년 브뤼셀, 1824년 빈, 1827년 파리와 프라하, 칼스바트로 여행하면서 수많은 전시, 공연, 오페라 등을 관람하였고, 특유의 독창적이고 진지한 예술 감각을 익혔다. 이를 바탕으로 하이델베르크대학교와 베를린대학교에서 ‘미학 또는 예술철학’ (Ästhetik oder Philosophie der Kunst) 강의를 하였으며, 이 내용을 제자인 하인리히 구스타프 호토 (Heinrich Gustav Hotho)가 정리하여 그의 사후 출간한 것이 바로 ‘미학강의’ (Vorlesungen über die Ästhetik) 이다.
일찍이 스피노자와 칸트, 루소 그리고 괴테의 영향을 받았으며, 열아홉 살에 직접 겪은 프랑스 혁명은 그가 이성과 자유에 바탕을 둔 철학을 과제로 삼는 데 하나의 단초가 되었다. 또한 루소의 사상,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예술 나아가 칸트, 피히테 등 당대의 주요 철학들을 깊이 탐구하면서 근대의 온갖 분열된 상황에 맞서 삶의 근원적인 총체성을 되살리려는 이상을 세웠다.
근대철학과 문화, 사회 안에서 주체와 지식의 대상인 객체, 정신과 자연, 자아와 타자, 권위와 자유, 지식과 신념,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사이의 긴장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 현상을 헤겔은 ‘절대정신’을 중심으로 하는 자신의 철학체계 안에서 합리적으로 규명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당대 최고의 철학자로 인정받던 헤겔은 1831년 병으로 사망했지만, 1820년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헤겔학파’를 통해 독일은 물론 세계적으로 그의 철학이 널리 전파되면서 후세에 큰 영향을 끼쳤다.
– 역자 : 임석진
1956년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졸업 후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에 유학하여 동대학에서 아도르노 교수의 지도를 받음. 1961년「헤겔에 있어서 노동의 개념」으로 철학박사 학위취득. 명지대학교 철학교수 및 동대학원 사회교육대학원장 역임. 국제 헤겔연맹 정회원. 2008년 서우철학상 수상.
○ 책 속으로
체계는 경탄할 만한 인물들을 통해 구현된다. 그러나 이들의 실제 모습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이들은 최소한의 개인적 삶의 진실을 은폐하면서 위인이 된다. — p.58
결국 세계사는 자유의 의식 속에서의 진보이며-바로 이 진보를 우리는 그의 필연성 속에서 인식해야만 한다. 지금가지 내가 일반적으로 자유에 관한 앎의 구별에 대해 언급하면서 무엇보다도 동양인은 한 사람만이 자유롭다는 것을, 그리고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는 소수만이 자유롭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반하여, 우리는 모든 인간 자체가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또한 인간이 인간으로서 자유로운 존재임을 알고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이것이 곧 우리가 세계사에서 이루어내면서 또한 이 세계사를 고구해 나가는데 필요한 구분이다. — p.96-97
○ 독자의 평 1
1810년 슈타인의 뒤를 이어 프로이센의 근대화 개혁 정책을 계승한 총리 하르덴베르크에 의해 설립된 베를린 대학에서 헤겔은 1818년부터 강의를 시작한다. 이 책은 그의 역사철학 강의 1822년에서 1828년까지의 첫번째 초안과 1830년의 두번째 초안을 싣고 있다. 1831년 사망하기 직전까지의 그의 강의록이란 점에서 그의 역사철학의 대강을 이해하기에 충분하면서도, 그가 직접 쓴 책에 비해 읽기가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 강의의 전반적 줄기는 그의 [정신현상학]에 있다. 세계사에서 나타나는 모든 사태는 이성적으로 진행되어욌다는 이성에 대한 확신이다. 역사가 어떤 이성적 의지에 의해 섭리되어진다는 믿음이다. 이것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이야기하는 그리스도교적 역사관을 닮았다. 하지만 헤겔에게는 신적 의지는 일반화된다. 선택이 아닌 일반계시가 전적 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인류전체는 이미 이 [신의 백성]으로서 역사를 자신의 것으로 해석하고 그 긍정에 힘입어 세계를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유럽적 가치에 있어 죄가 더 이상 문제되지 않고 모든 유럽인은 혹은 독일인은 이미 선택받은 신의 백성이라는 그들의 정체감과 물려있다. 이런 섭리의 궁극목적, 혹은 운동의 방향은 자유이다. 더 많은 자유. 역사는 그렇게 움직여왔다는 것이다. 해방. 그래서 고찰의 대상은 인간적인 자유의 이념 The idea of human freedom이다. 이념은 세계사 속에서 가장 구체적 현실성을 나타낸다. 현실로 나타나는 정신은 결국 개별자(개인)로 환원될 수는 없다. 헤겔은 이 정신의 현실적 구현, 현상을 국민정신으로 본다. 국가를 통해 이성의 진정한 자유가 실현된다는거다. 인간은 이런 국가안에서만 자신의 본질을 지니며 자유를 얻는다. 국가는 목적,시민은 도구라면 너무 심한 표현인가? 하지만 이건 헤겔이 직접한 표현이다. 이런 이해는 자연스레 나로 하여금 우리민족의 사명과 나의 사명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끈다. 헤겔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규정성 안에 놓인 자유에 관한 정신의 의식과 그 발전의 단계를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1) 동양의 감각적 동기의 포기의 단계와 2) 그리스의 국부적 특수성을 소멸하는 보편성의 발견의 단계 3) 규정한계의 인식과 새로운 규정의 창출이 이런 역사의 발전 단계이다. 이 단계를 이해하고 그 안에 놓인 현재적 세계정신을 파악하는 것은 정신이 세계사의 노동을 통하여 이루어낸 정신 자신의 행적을 아는 것이다. 여기에서 자기 역할을 감당할 우리 민족의 사명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국가에 속한 나의 사명은 무엇인가? 첫째는 정신의 이해이다. 개인은 교양을 쌓아 정신에 관한 자기의 개념을 확립하여야 한다. 개인은 스스로 앞선 시대의 각기 다른 영역을 경과하여야만 이런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 정신이 지금 현재 속에서 그 단계들을 거쳐야 한다면 [우리나라의 단계는, 나의 단계는?] 이라는 질문과 함께 당연히 그 이해의 틀로서 [정신현상학]을 사용하도록 이끈다. 이는 신학(정신의 포착)을 벗어나 각 개인도 철학과 정치로 가라는 권유이기도 하다. 둘째는 세계사적 개인이 되고자, 정당하고 필연적인 것을 의욕하고 완수하려는 열정과 의지이다. 실현의 능력이며 열정으로 집중하여 정신이 현상하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 이들은 보편적 실체에 대한 통찰력으로 또한 이 정신의 현실적 실현으로 말미암아 이 역사의 결과물에 대한 권리를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민족이 역사속에 실현하고, 봉사하여야 할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뜻으로 본 한국역사)의 관점이 우리 역사이해의, 나아가 [인간의 사명] 이해의 단초인가? 즉 역사발전 혹은 신적 의지에 의한 인간자유의 지상적 실현에 있어 이 민족이 어떻게 타오르 횃불이 되고 또 사그러져야 하는지(타고르)를 아는 것이 우리의 존재와 의미를 규정지을 수 있는가? 진정 그러한가 그리고 그것이 인간존재 목적의 모두다인가? 헤겔이 말한 집단적 의미(大我) 이외에 개인실존의 의미를 중요하게 여긴 진정한 신의 모습이 그리스도가 아니던가? 헤겔은 혹시 그가 원하는 모습만을 그리스도에게서 보는 것은 아닌가? 국민교육헌장적인 인간이해와 개인의 존엄성은 과연 같은 것인가? 결론부에서 헤겔은 신의 자기귀착적 목적성(웨스터민스터 교리문답1번, 인간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을 전용(轉用)하여 정신의, 또 그 현재형으로서의 국가의 합목적적 자기정당성을 획득하게 한다… [개인은 정신 혹 국가를 위하여 존재한다] …필요한 생각이며 그리스적 이기주의의 파행을 극복하는 길임에는 틀림없으나, 나는 나 자신을 이런 목적보다 더 귀하게 여긴다.
○ 독자의 평 2
이 책 이전에 헤겔이 쓴 몇 가지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의 {정신현상학}과 {대논리학}을 읽고서 느낀 점은 오직 하나, “모르겠다”였다. 그 후 군대에서 말년병장 생활을 하면서 {정신현상학}을 다시 읽었을 때, 알 듯 말 듯한 느낌이 들었고, 얼마 전 읽은 것이 바로 이 {역사 속의 이성}이었다. 아무튼 이 책도 어렵기는 매 한가지다. 그어나 헤겔을 처음 접하려는 사람이라면, 저질의 일본식 헤겔 해설서보다 이 책을 읽기를 권하고 싶다. 그나마 역사적인 구체적 예들이 자주 삽입되어 읽는데 별 무리가 없고, 무엇보다 <역사>,<이성>,<진보>, 그리고 <자유>라는 19세기 서유럽의 화두(話頭)에 대한 헤겔의 생각을 잘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헤겔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헤겔을 처음 접하는 분들이 {역사 속의 이성}을 읽는다면, 몇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첫째, 맑스와의 연관 속에서 책을 읽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나는 헤겔의 책을 읽으면서 어설프게나마(?) 읽었던 맑스가 종종 떠올랐고, 실제로 헤겔을 접하게 된 것 역시 맑스를 읽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헤겔 사상의 일부분이 맑스주의와 교집합을 이룰 뿐, 헤겔사상이 맑스주의의 부분집합인 것은 결코 아니다. 애초의 의도가 어떻든지, 책을 읽는 순간 만이라도 헤겔만 생각하는 것이 난해한 헤겔을 읽는 그나마(?) 쉬운 방법일 것이다. 둘째, 자신이 동양인이라는 사실을 생각하지 말고 읽을 것을 권한다. 동양을 ‘역사의 미개단계’정도로 폄하하는 헤겔 사상은 책의 곳곳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헤겔의 논리 속에서 그런 편견이 충분히 수용 가능한 방식으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헤겔 사상의 일부분에 한정된 부분에 너무 집중하다 보면 글의 전체적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끝으로, 책을 다 읽고 난 후, 꼭 반추해 본다. 헤겔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또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등등으로 말이다. 아마 상당히 얻는 바가 많을 것으로 본다. 나 역시도 헤겔을 읽음으로 현재의 서구우월주의, 그리고 사이드(E. W. Said)의 오리엔탈리즘, 탈근대론자들의 논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 무렵에서야 비로소 날개를 편다”라고 헤겔이 말하지 않았던가? 헤겔 보다 250년 후에 살고 있는 우리는 헤겔보다 ‘황혼’ 속에서 살고 있고, 그런 만큼 그에 관해 입체적으로 알 수 있다. “역사의 최종 목적지는 자유의 완성”이라는 헤겔의 주장은 더 이상 우리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지 모른다. ‘거대담론’의 대표적 예로, ‘냉혹한 근대성의 대표자’로, ‘국가주의 철학의 대표자’로 몰리면서 ‘죽은 개’가 되어 버린 헤겔의 사상은 단순히 ‘철학적 박물관 속의 유물’이 아니다. 오늘을 알고자 한다면, 또 지금의 사상가들이 지고 있는 빚이 무엇인가를 알고자 한다면, 헤겔은 반드시 거쳐야 할 거산(巨山)이다.
[인상깊은 구절]
결국 세계사는 자유의 의식 속에서의 진보이며-바로 이 진보를 우리는 그의 필연성 속에서 인식해야만 한다. 지금가지 내가 일반적으로 자유에 관한 앎의 구별에 대해 언급하면서 무엇보다도 동양인은 한 사람만이 자유롭다는 것을, 그리고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는 소수만이 자유롭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반하여, 우리는 모든 인간 자체가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또한 인간이 인간으로서 자유로운 존재임을 알고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이것이 곧 우리가 세계사에서 이루어내면서 또한 이 세계사를 고구해 나가는데 필요한 구분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