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3대 비극작가 –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그리스 비극’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기반으로 하여 주로 기원전 5세기경에 그리스에서 상연된 비극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일리아스, 오디세이아로 대표되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그 이후의 서정시에 이은 3번째 문학 체계로,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에서 크게 발달하였다.
비극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비극의 어원인 ‘트라고디아’가 ‘염소의 노래’라는 뜻이기 때문에 디오니소스를 기리는 축제에서 행해진 노래 경연대회의 우승자에게 숫염소를 상으로 준 것에서 유래했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그렇기에 비극의 경연 대회 중에는 대 디오니시아 제전이 가장 큰 권위를 지녔다.
축제에서의 노래는 일반적으로 한 사람이 창을 하면 군중이 받아내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여기에서 창을 하는 한 사람이 배우가 되어 특정한 사람을 연기하고, 군중이 코러스가 되어 그에 답하는 형식이 점점 극으로 발전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스 비극은 아테네가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그리스의 맹주로 자리를 굳히기 시작한 시점에서 크게 발전하여 아테네가 스파르타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고 몰락하는 시점까지 유지되었다. 그 기간은 그리 긴 편이 아니었지만, 그리스 3대 비극 작가로 불리는 걸출한 시인들에 의하여 그 체계가 정립되었고 이후 서양의 공연문학 형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기록에 따르면 거의 전부가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해 건립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소장되었었다고 하나, 도서관이 불에 타면서 상당수가 소실되어 현재 전해지는건 몇 편 되지 않는다. 국내에는 천병희 교수가 희랍어 원전을 번역한 번역서가 있다. 그 외에는 거의 대부분 영어나 일어 등을 거친 중역.
플라톤은 실재(=이데아)를 왜곡한다며 비극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비판되는데, 비극이 개인적 면에서 개인의 감정을 해소하면서 사회를 안정화시키는 기능적 장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게 그 유명한 카타르시스적 기능이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유품들 중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와 함께 이것과, 호메로스의 영웅 서사시, 플루타르코스의 열전인 플루타크 영웅전과 안경이 있다.
그리스 비극의 등장 인물은 배우와 코러스로 양분된다. 처음엔 한 명이었던 배우는 아이스킬로스에 의하여 두 명, 그리고 세 명까지 늘어나 주된 이야기를 진행한다. 대략 15명 정도가 되는 코러스는 시대에 따라 역할이 다른데, 초기 작품에서는 거의 하나의 배역과 같이 배우들과 대담을 주고받지만 후기로 갈수록 배우의 수와 비중이 높아지면서 그 비중이 줄어들어 점차 극과는 상관이 없는 노래나 극히 간접적인 암시만을 주는 역할로 변경되었다. 극장 또한 이에 따라 변화하여 코러스의 자리는 점점 축소된다. 그런 관계로 극의 구성도 주로 배우와 코러스를 기준으로 나누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프롤로고스(prologos)
코러스가 등장하기 이전 배우가 사건의 개괄과 배경을 소개하는 부분. ‘프롤로그’의 어원이다.
.파로도스(parodos)
코러스들이 무대 양측에서 등장하면서 부르는 노래. 등장가라고도 한다.
.에페이소디온(epeisodion)
코러스의 노래들 사이에 끼워진 부분으로 배우들에 의하여 실제적인 줄거리가 진행된다. 영단어 에피소드의 어원이긴 하지만 그 의미는 에피소드보단 ‘막’에 가깝다. 예외적으로 에페이소디온에서 코러스가 배우와 직접적으로 노래나 대사를 교환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는 콤모스(kommos)라고 부른다.
.스타시몬(stasimon)
에페이소디온이 끝난 후 코러스들이 부르는 노래. 보통 에페이소디온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코멘트가 주가 된다. 대략 3~4번 정도 에페이소디온과 스타시몬이 반복되면서 극이 진행된다. 다만 이 반복이 에페이소디온과 스타시몬 둘 중 무엇으로 끝나야 한다는 것까지는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엑소도스(exodos)
이야기가 끝난 후 코러스가 퇴장하면서 부르는 노래. 개념적으로는 파로도스에 대응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에필로그에 더 가깝다.
이러한 형태로 한 비극이 완성되며, 디오니시아 제전에서는 3개의 비극 연작+다소 가벼운 분위기의 사튀로스 극의 4가지 극으로 이루어진 것이 한 작품으로 평가되었다. 3명이 출전해 1등/2등/3등으로 구분되는데, 이때 심사위원들의 투표 전부를 개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순위는 어느 정도 운에 맡긴다고 볼 수 있다.
덧붙여서, 비극의 배우와 코러스는 배역에 상관없이 전원 남성으로만 이루어졌다.
극의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는 가장 비극적인 부분은 극에서 보여주지 않는다.
한 극에 직접 오르는 배우의 수는 1~3명으로 지금 기준으로 보면 매우 적으나 일인 다역이 기본이었기 때문에 등장인물 수는 그보다 많은 것이 많았다. 가면을 쓰고 인물을 연기하다 다른 인물을 연기해야 할 때가 되면 다른 가면을 쓰고 재등장 하는 식이다.
그리스 비극의 주요 등장 인물로 메데이아, 아가멤논, 아이아스, 안티고네, 엘렉트라, 오디세우스, 오레스테스, 오이디푸스, 이피게네이아, 카산드라, 클리타임네스트라, 헤라클레스, 헬레네 등이다.
그리스 3대 비극작가로는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가 있다.

○ 아이스킬로스 (Aeschylus)
아이스킬로스 (고 그: Αἰσχύλος, Aiskhúlos, Aischylos, 영: Aeschylus, 기원전 525년/524년 – 기원전 456년/455년)는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비극 작가이다. 비극예술의 창조에 기본적인 형태를 부여한 80여편의 작품을 만들었다. 현존하는 것으로는 7편의 작품과 다수의 단편 등이 있다.
– 생애
기원전 525년/524년 아테나이에서 서쪽으로 떨어진 엘레우시스 (오늘날의 엘레프시나)에서 귀족인 에우포리온 (고 그: Εὐφορίων, Euphoríōn)의 아들로 태어났다. 페르시아 전쟁에서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에 참가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기원전 471년에서 기원전 469년 사이에 히에론 왕의 초청으로 시켈리아 섬의 쉬라쿠사이로 여행하여 그 곳에서 비극 ‘페르시아인들’을 상연하였다. 아이스킬로스는 기원전 456년 겔라에서 사망하기전 또 한 차례 (기원전 458년?) 쉬라쿠사이로 건너간 것으로 추측된다. 사튀로스극을 포함 약 90편의 비극을 쓴 것으로 전해지나 현존하는 비극은 학교의 교재로 사용되었던 일곱 편 뿐이다. 아이스킬로스는 기원전 499년 24세의 나이로 비극 경연 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하나, 나이 40세가 되던 기원전 484년에야 비로소 첫 승을 이룬다. 그는 평생 13회 우승하였다. 그는 아테나이를 떠나 시켈리아의 겔라에서 살다가 그 곳에서 70세로 기원전 456년/455년 세상을 떠났다. 그가 아테나이를 떠난 까닭은 전해지지 않는다.
– 업적
그는 비극 배우의 수를 1명에서 2명으로 늘렸으며, 장식 회화와 도구를 무대장치로 사용하였다. 또한 가면·가발·신 등을 창안하였고, 비극의 3부작 제도를 완성하였다.
그의 주요 공헌을 보면, 비극에서의 합창시의 형식이나 배열을 정비하여 극의 악곡적 구성과 극적 리듬의 통합에 성공했다는 점과, 운율적인 극대화의 기본적 격조를 낳았다는 점, 그리고 비극의 테마로서 제신이나 기괴한 신령에 얽힌 얘기를 즐겨 다루어, 테마에 어울리는 장대하고 화려한 연출방법을 만들어냈다는 점 등일 것이다.
아이스킬로스 비극의 합창대는 어떤 작품에서나, 중대한 위기나 불안에 떠는 군중으로서 극적으로 위치가 주어지고 있으며 합창가는 신을 부르거나 혹은 신을 칭송하는 종래의 제사적인 형태와 기능을 지니면서 동시에 극의 참가자로서의 합창대의 집단적 표현이 되고 있다. 그리고 배우는 그러한 집단을 대표하는 경우도 있고, 또한 그와 반대로 그 적대자가 되는 수도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랜 비극 ‘페르시아인들’은 배우의 대화에서 운율형식이 일정하지 않아, 장면에 따라서는 이암보스 형식이거나 토로카이오스 형식으로 변하기도 한다. 이것은 작품이 작가의 실험단계에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또한, 극 구성의 그 자체에도 서로 모순되는 세 가지 면이 은연 중에 병존한다. ‘페르시아인들’은 말하자면 보고극, 즉 어느 정도 사실적으로 조건이 갖춰진 페르시아 왕궁이란 곳에 중대사건이 보고되고, 그 보고의 서사성에 극적 긴박감이 주어진다는 구성과 망령극, 즉 망령 출현이라는 형태로 사실성을 버리고 초시간적인 수준으로 상상력을 비약시키는 구성이 1편 가운데에서 동시에 사용되고, 또한 마지막으로는 극이란 사건의 당사자가 패배의 슬픔을 서정적으로 노래한다는 취향으로 끝나고 있다. 하나의 극적 사건을 몇 개의 다른 시점 (視点)의 수준에서 다뤄 입체적인 깊이를 주고 각각의 시점 사이에 긴장감을 자아내는 그리스 비극 특유의 드라마투르기는 아이스킬로스의 이와 같은 대담한 몇몇 실험이 모태가 되어 서서히 완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그가 비극예술에 대해 품었던 원대한 포부는 3부작 형식으로서 나타난다. 그에게 있어 드라마란 우주의 신비에 대한 시인의 의미 부여이며 또한 인간사회를 움직이는 이상의 탐구이기도 하여, 이 시야를 포괄할 수 있는 것은 하나의 연속 테마에 바탕을 둔 3편의 극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그 구상을 훌륭히 구현시킨 ‘오레스테이아’ 3부작 (아가멤논 · 코이포로이 · 에우메니데스)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 작품들
.현전 (現傳)하는 작품들
아이스킬로스
《페르시아인들》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
《탄원하는 여인들》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 사티로스극
《오레스테이아》 3부작
《아가멤논》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또는 코이포로이)
《자비로운 여신들》(또는 에우메니데스)
.실전 (失傳)한 작품들
피네우스(Phineus)
포트니아이의 글라우코스(Glaukos Potnieus)
라이오스(Laios)
오이디푸스(Oidipus)
스핑크스(Sphinx): 사튀로스극
아이귑토스의 아들들(Aigyptioi)
다나오스의 딸들(Danaides)
아뮈모네(Amymone)
불을 붙이는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Pyrkaieus)
프로테우스(Proteus): 사튀로스극

○ 소포클레스 (Sophocles)
소포클레스(고 그: Σοφοκλῆς, Sophoklē̃s; 기원전 497년 – 기원전 406년)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비극 시인이다. 아이스킬로스·에우리피데스와 함께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으로 꼽힌다.
– 소포클레스
.출생: 기원전 497/496년, 아티카 콜로노스
.사망: 기원전 406/405년 (90–92세) 아테네
.직업: 비극 시인
.장르: 비극
– 주요 작품
아이아스
안티고네
오이디푸스왕
엘렉트라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 생애
소포클레스의 생애에 관해서는 기원전 3세기 이후에 쓰여진 그의 전기가 오늘날까지 남아 전해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잘 알려져 있다. 기원전 497년 아테네의 행정 구역 콜로노스에서 부유한 기사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로부터 음악 교육을 받았다. 16살 되던 해에 살라미스 해전을 기리는 연회에서 선창 소년으로 뽑혀 노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원전 468년 29세에 디오니소스제의 비극 경연에서 선배인 아이스킬로스를 물리쳐 명성을 떨쳤다. 펠로포네스전쟁을 전후로 하여 소포클레스는 정치 생활에 들어가 요직을 여러 번 지냈다. 페리클레스의 정치 노선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443년 델로스 동맹의 10명으로 구성된 통솔자에 선출되었으며, 펠로포네스전쟁 초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해군 제독으로 활약한 바도 있어, 그의 뛰어난 재질과 미모로써 아테네의 우상이 되고 시민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사망 후에는 아테네 시민은 그에게 덱시온이라는 영웅 칭호를 주었다.
– 작품
그는 특히 비극예술의 완성자로서 유명하다. 비극 경연에서의 1등 우승은 24회나 되었다고 한다. 극·송가·비가·잠언 등 123편의 작품을 썼다고 하나 현존하는 것은 7편 뿐이다. 그 밖에 다수의 단편 (斷片)이 있다.
그는 극에 있어서 3부극을 폐지하고 합창 대원을 늘리는 등 극의 단순성을 극복하였으며, 치밀한 구성, 완벽한 기교 등으로 비극을 완성시켰다.
그가 연극에서 추구한 것은 아이스킬로스와 같은 무한무궁의 확대가 아니라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에 깃들인 무한한 깊이였다. 그는 세 배우를 등용시켜 동시에 대화를 갖게 함으로써 극을 진행시키는 기법을 비롯해서 소도구의 연구나 배경화 등을 채용했다고도 전한다. 당시 정치가 페리클레스의 극장 개축 (改築)이나 관람요금의 지급 등 문화진흥정책으로 아테네의 연극 활동은 황금시대를 맞이하였다.
소포클레스의 작품의 특색은 장대 화려한 것이 아니라, 정교하고 치밀한 대화를 통하여 모든 인물을 대조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이다. 인간을 단순한 입장의 노예로서가 아니라, 설사 입장을 같이하는 몇 사람의 인간 사이에도 개개의 인간 안에는 제거할 수도 없고 서로 나누어 가질 수도 없는 중핵적인 힘이 깃들어 있음을 객관적인 대화의 기법으로 지적한다. 그리고 드라마는 (해야 할 행위에의 결의로 시작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한 영웅적 책임감으로 결정 (結晶)되는 과정을 드라마라고 부른다면) 그 중핵적인 힘에 의해 지탱되고 있음을 나타냈던 것이다. ‘안티고네’나 ‘오이디푸스왕’과 같은 극작이 운명극이나 성격극으로도 해석되는 연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또한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처럼 일단은 운명의 굴레에 사로잡혔던 인간이 자기의 의욕적인 성격을 일관시킴으로써 암흑의 세계로부터 새로운 광명을 획득하는 것도 드라마의 근원을 성격 안에서 발견하고 대화의 묘로써 사건의 세계로 이끌어내는 소포클레스의 작품이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라 하겠다.
– 현존 작품
《트라키스 여인들》
《아이아스》
《안티고네》
《오이디푸스 왕》(또는 오이디푸스 튀라노스)
《엘렉트라》
《필록테테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또는 오이디푸스 콜로노스)
– 읽어 보기
.원전
Sophoclis Fabulae, H. Lloyd-Jones et N. G. Wilson (편집), 1990 Oxford.
Sophocles, 3권, H. Lloyd-Jones (고대 그리스어-영어 대역), 1994-1996 Cambridge(Mass.)
.번역본
소포클레스, 《소포클레스 비극》, 천병희 역, 단국대학교 출판부, 서울, 2005
소포클레스,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천병희 역, 도서출판 숲, 서울, 2008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천병희 역, 양운덕 해설, 도서출판 숲, 서울, 2017

○ 에우리피데스 (Euripides)
에우리피데스 (그: Ευριπίδης, 영: Euripides, 기원전 약 480년 이전 ~ 기원전 406년)는 고대 아테네에서 활동한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와 더불어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되는 고대 그리스 비극 시인으로서 오늘날 그가 쓴 18편의 비극이 남아 전해지고 있다. 합리적인 예지 · 자유주의적 · 인도주의적 사상을 내포하고 있는 그의 극은 근세 유럽의 비극 문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 생애
살라미스 출생으로 아테네로 옮겨 활동했으며, 아르켈라오스 1세의 초청을 받아 마케도니아 왕국으로 이동해 그곳에서 죽었다. 아낙사고라스에게서 배우고 프로타고라스, 소크라테스와 사귀었고 영향을 주었다.
– 작품세계
92편의 극작품을 쓰고 5회의 우승을 했다고 한다. 현존하는 작품 18편외 다수의 단편 (斷片)이 있다.
인간의 고뇌에 깊은 이해와 동정을 품고 또한 인간을 괴롭히는 모든 악업에 격노하며 운명이나 신의 뜻에 따르기보다 인간의 주지적 (主知的) 합리성으로 이 세상의 복잡미묘함을 폭로하려는 에우리피데스는 근본적으로 ‘비극’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입장에 있었다고 평해진다. 그러나 그런대로 아테네 연극계에서 총아로 등장해 멀리 그리스 세계의 곳곳에까지 그 작품이 번져나간 것은 오로지 그의 교묘한 작극술 (作劇術)과 그것으로 묘사되는 극히 일반적인 인간의 비애가 강력한 설득력으로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라 하겠다.
연출기법에서는 소포클레스와 달리 별다른 신기축 (新機軸)을 만들어 내지 못했으며, 또한 소포클레스의 정묘한 작품구조의 균형과 박진감에 비하면 에우리피데스의 여러 작품에서는 야릇한 현실성 내지는 사실성의 무시와 강렬한 리얼리즘이 등을 맞대고 있어 독자나 관객을 불안한 긴장으로 감싸버린다. 허구다운 프롤로그에 역시 허구다운 신이 등장하는가 하면, 연애 · 질투 · 복수 · 간계 · 광기 · 비애와 같이 순수하고 인간적인 표정으로 감싸버린다.
그러나 그 사이에도, 있을 수 없는 장면에서 있을 수 없는 논쟁이나 비판이 사건의 흐름을 중단시키고, 보는 자와 보이고 있는 자와의 사이에 의식의 벽을 만드는 듯하나, 다시 격정으로 넘쳐흐르는 사건이 그 벽을 잊게 해버린다. ‘메데이아’이건, ‘히폴리토스’이건, 또는 ‘엘렉트라’나 ‘이피게네이아’ ‘바카이’ 등의 여러 작품에서도 이와 같은 격정적인 사건과 의식의 벽이 서로 부딪치는 충돌로 들볶여, 마지막엔 고즙 (苦汁)처럼 남는 것이 모든 인간에게 있어 피할 수 없는 비애와 제신에 대한 분노이다.
이러한 작품의 상연은 작가 스스로 만든 것 이외에는 몹시 어려웠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 대사 (臺辭)의 간명함과 인간성에 대한 깊은 통찰이 후세에 많은 독자를 매혹시키고 아리스토텔레스로 하여금 ‘가장 비극적인 시인 (‘시학’ 1953 a 30)’이라고까지 평하게 한 까닭이 되었을 것이다.
– 에우리피데스의 작품들
《안드로마케 (비극)》
《알케스티스 (비극)》
《헬레네 (비극)》
《박코스 여신도들》(또는 박코이)
《엘렉트라 (에우리피데스)》
《헤라클레스 (에우리피데스)》
《헤라클레스의 자녀들》
《메데이아 (에우리피데스)》
《이온 (비극)》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또는 타우로이족 사이에서의 이피게네이아)
《헤카베 (비극)》
《오레스테스 (비극)》
《트로이아 여인들》
《탄원하는 여인들 (에우리피데스)》
《포이니케 여인들》(또는 페니키아의 여인들)
《힙폴뤼토스 (비극)》
《레소스 (비극)》- 진위 불확실
《키클롭스 (사티로스극)》- 사튀르 극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