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황폐한 집 1, 2, 3
찰스 디킨스 / 비꽃 / 2020.11.19
유산 분쟁이 일면 대법원에서 유산을 묶여, 판결이 나올 때까지 누구도 손댈 수 없었다. 법관과 서기와 변호사 등, 재판에 관여하는 모든 인력은 그 유산이 유일한 수입원이었다. 유산이 많으면 재판을 최대한 오래 끄는 식으로 돈벌이에 몰두하니, 재판은 수십 년간 계속되고, 소송 당사자는 막대한 유산이라는 신기루에 시달리다 정신병에 걸려서 자살하거나 병들어 죽어가기 일쑤였다. 모든 게 기만이고 사기고 거짓이었다. 기득권은 그렇게 만들어지고, 권력은 그렇게 확대되고, 사회는 그렇게 병들었다.
“거리마다 진창이고, 굴뚝 구멍마다 검댕이 눈송이처럼 떨어지고, 새까맣게 뿌리는 이슬비는 태양이 죽은 걸 애도한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짜증 난 얼굴로 우산을 밀치고, 거리 모퉁이마다 발 디딜 곳은 사라져, 날이 밝은 다음에도(날이 밝은 적이 있다면) 수만 명이 미끄러지고 넘어진다. 사방이 안개다. 도시 쓰레기로 매캐한 안개가 흐른다. 안개는 해군병원에 입원한 노병의 눈과 목구멍으로 흘러들어 병실마다 숨을 헐떡인다. 가스등 불빛은 거리마다 안개에 잠기니, 뿌연 하늘에 떠오른 태양 같다.” – 본문에서
○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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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들어가는 글
I. 대법정 15
II. 상류사회 25
III. 진행 과정 35
IV. 장거리 자선사업가 64
V. 아침에 겪은 모험 83
VI. 편안한 집 104
VII. 유령길 135
VIII. 허다한 죄를 용서하고 150
IX. 신호와 징조 178
X. 법률 서류 대필자 199
XI. 친애하는 우리 형제 213
XII. 경계하기 234
XIII. 에스더 이야기 255
XIV. 탁월한 품행 279
XV. 벨 야드 312
XVI. 톰 올 얼론스 335
XVII. 에스더 이야기 350
XVIII. 데드록 귀부인 371
XIX. 계속 움직여라 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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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XX. 새로 들어온 동료 9
XXI. 스몰위드 가문 29
XXII. 버킷 55
XXIII. 에스더 이야기 75
XXIV. 항소 103
XXV. 스낙스비 부인, 모든 걸 꿰뚫다 130
XXVI. 저격병 144
XXVII. 노병은 혼자가 아니다 165
XXVIII. 기계 제작자 183
XXIX. 젊은 사내 199
XXX. 에스더 이야기 213
XXXI. 환자와 간병인 236
XXXII. 지정된 시간 260
XXXIII. 새로운 인물들 280
XXXIV. 엎친 데 덮친 격 301
XXXV. 에스더 이야기 323
XXXVI. 체스니 대저택 344
XXXVII. 잔다이스 대 잔다이스 366
XXXVIII. 갈등 393
XXXIX. 변호사와 의뢰인 407
XL. 국가와 가정 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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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XLI. 토킹혼이 묵는 꼭대기 방에서 9
XLII. 토킹혼 사무실에서 23
XLIII. 에스더 이야기 35
XLIV. 편지와 답장 59
XLV. 믿음 70
XLVI. 그 아이를 잡아요! 88
XLVII. 조가 한 유언 101
XLVIII. 점차 조여오다 121
XLIX. 충실한 우정 145
L. 에스더 이야기 165
LI. 의문이 풀리다 180
LII. 고집불통 198
LIII. 장례 행렬 214
LIV. 지뢰가 터지다 231
LV. 탈출 260
LVI. 수색 282
LVII. 에스더 이야기 293
LVIII. 겨울 낮과 겨울밤 319
LIX. 에스더 이야기 338
LX. 전망 358
LXI. 새로운 발견 377
LXII. 또 다른 새로운 발견 392
LXIII. 강철과 쇳덩이 405
LXIV. 에스더 이야기 416
LXV. 새로운 세상 432
LXVI. 링컨셔에서 444
LXVII. 마지막 에스더 이야기 451
작가 소개 457
작품해설 및 역자 후기 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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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 찰스 디킨스 (Charles Dickens, 1812 ~1870)
찰스 디킨스 (Charles Dickens)는 1812년 2월 7일 영국 포츠머스에서 존 디킨스와 엘리자베스 디킨스의 여덟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호인이었으나 다소 경제관념이 부족한 아버지 때문에 가족은 이사를 반복해야 했고, 결국 1824년 빚 때문에 채무자 감옥에 수감되기에 이른다. 열두 살의 디킨스는 홀로 하숙을 하며 구두약 공장에서 병에 라벨 붙이는 작업을 했는데, 매일 10시간씩 일하며 주당 6실링을 받았던 이때의 혹독한 경험은 후일 여러 작품의 토대가 되었다. 집안 형편으로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속기술을 배워 의회 기자로 일했으나 문학에 대한 꿈을 접지 않았고, 1833년 《먼슬리 매거진》에 첫 단편 〈포플러 거리의 만찬〉을 발표하면서 작가로서 첫 걸음을 내디뎠다. 이후 어렸을 때 불리던 애칭 ‘보즈’를 필명으로 사용하여 런던의 일상을 그린 단편들을 연재, 1836년 《보즈의 스케치》라는 제목으로 묶어 출간했다. 이듬해 디킨스의 첫 장편소설 《픽윅 클럽 여행기》가 크게 주목받았고, 연이어 《올리버 트위스트》(1838)가 대중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으면서 당대 인기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니컬러스 니클비》(1839), 《오래된 골동품 상점》(1841), 《바너비 러지》(1841) 등 초기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도 사회의 모순과 서민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들을 계속 발표했고, 1843년 12월에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출간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종소리》(1844), 《화롯가의 귀뚜라미》(1845), 《생의 전투》(1846), 《유령의 선물》(1848)까지 네 권의 크리스마스 서적을 더 출간했다. 1850년 발표한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비롯한 《블릭 하우스》(1853), 《어려운 시절》(1854) 등의 후기작에서는 사회의 여러 계층을 폭넓게 다룬 이른바 파노라마적인 사회소설로 접근했다. 잡지사 경영, 자선사업, 공개 낭독회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을 계속하는 사이에도 《두 도시 이야기》(1859), 《위대한 유산》(1861) 등 선이 굵은 작품들을 계속 발표했으며,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도 잊지 않았다. 1870년 열두 권으로 기획된 대작 《에드윈 드루드의 미스터리》 집필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 문인 최고의 영예인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시인 묘역에 안장되었다.
– 역자 : 김옥수
서울에서 태어나 외국어대 영어과를 졸업하고 전문번역가로 활동하며 저작권 중계회사 ‘임프리마 코리아’ 영미권 담당부장, 도서출판 ‘사람과책’ 편집부장 등을 역임했다. 약 300여 종에 달하는 영서를 번역했다. 학계에서 발표한 다양한 「번역방법론」 및 「한글 특징」백여 편을 정리하고 25년에 걸친 번역 경력을 접목해,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번역방법론을 강의하며 검증해서 『한글을 알면 영어가 산다』로 발표했다. ‘비꽃’에서 천민자본주의를 화려하게 풍자한 『찰스 디킨스 선집』을 필두로, 파시즘을 파헤치는 『조지 오웰 삼부작』을 우리말 어법에 맞게 새롭게 번역했다. 고전 작품 전체를 새롭게 번역해서 한국사회의 문화토양을 굳건히 다지는 걸 목표로 오늘도 힘차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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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으로
– 맞아요, 에이다는 잔다이스 선생을 한 번도 못 봤어요. 어릴 적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잔다이스 선생 이야기를 하실 때, 고결하고 관대한 성품이라면서 두 눈에 흘리던 눈물을, 세상에서 누구보다 믿음직한 사람이라고 하신 말씀을 에이다는 똑똑히 기억하고 믿었어요. 잔다이스 선생은 몇 개월 전에 에이다에게 “소박하고 솔직한 편지”를 보내서 우리가 이제 막 새롭게 시작할 생활을 제안하며 “함께 지내다 보면 비참한 대법원 소송으로 받은 상처도 대체로 치유할 수 있을 거”라고 주장했어요. 에이다는 답장을 보내서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이고요. 리처드도 비슷한 편지를 받고 비슷한 답장을 보낸 거예요. 잔다이스 선생을 만나긴 했지만, 5년 전에 윈체스터 학교에서 딱 한 번 만난 게 전부였어요. 그래서 벽난로 앞 차단막에 기댄 두 사람을 제가 처음 봤을 때, 리처드는 에이다에게 잔다이스 선생을 “솔직하고 낙천적인 사람”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는 거예요. 이게 에이다가 저한테 알려줄 수 있는 전부였어요.
“집주인, 크룩. 마을 사람 사이에서는 대법관이라 불린다오. 고물상은 대법정이고. 괴짜거든. 아주 괴팍해. 아, 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저 노인은 정말 괴팍하다오! ” 노파는 고개를 젓고 손가락으로 자기 이마를 톡톡 치면서 우리 모두 노인을 이해해야 한다는 표정으로 “저 노인은 여기가… 약간 돌았거든… 머리가!”라고 엄숙하게 말하니, 노인이 엿듣다 웃고는 등잔을 들어서 우리를 안내하며 말했어요. “마을 사람들이 나를 대법관이라 부르고, 내 가게를 대법정이라고 한다는 말은 정말이라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나를 대법관이라 부르고 내 가게를 대법정이라 부르는 이유를 아시오?”
– “톰 잔다이스가 자살한 날에 바로 저 문으로 들어왔다오. 결국엔 자살할 게 분명하다고 마을 사람 전체가 몇 달 전부터 염려하던 참에, 바로 그날 저 문으로 들어와서 쭉 걸어와, 저기에 있는 벤치에 털썩 앉더니 포도주 한 병만 사다 달라고 했다오. (당시에는 내가 훨씬 젊었다오.) ‘왜냐하면, 크룩, 지금 나는 기운이 하나도 없거든. 소송이 또 잡혔는데 이번에는 판결이 나올 것 같아’라면서 말이오. 나는 톰 잔다이스를 혼자 놔둘 수 없었다오. 그래서 길 건너 (대법정 거리를 말하는 건데) 선술집으로 가도록 설득했다오. 그리곤 뒤쫓아가다 선술집 창문으로 들여다보니, 벽난로 옆 안락의자에 편히 앉은 데다 술친구까지 있더라고. 그래서 여기로 돌아오자마자, 법학원 건물을 울리는 총소리가 일어났다오. 나는 당장 달려가고, 스무 명이나 되는 마을 사람도 동시에 ‘톰 잔다이스!’라고 소리치며 달려왔다오.”
– 하녀장이 목소리를 떨어뜨려서 나지막이 속삭이듯 이어나간다. “원래는 몸매가 좋고 풍채가 당당했거든. 그런데도 불평 한마디 안 했어. 다리를 전다는 말이나 아프다는 얘기 역시 누구한테도 하지 않았어. 그러면서도 테라스를 매일 걸었어, 지팡이를 짚기도 하고 석제 난간을 잡기도 하면서 오르내리고 또 오르내리고 또 오르내렸어, 비가 오나 해가 뜨나, 매일 엄청 힘겹게. 어느 날 오후에 남편은 남쪽 커다란 창문 앞에 서 있다, (그날 밤 이후로 아무리 설득해도 입 한번 안 열던) 부인이 테라스에서 쓰러지는 광경을 봤어. 급히 내려가서 일으키려 했지만, 부인은 자신한테 상체를 숙이는 남편조차 거부하고 차가운 눈으로 뚫어지라 쳐다보며 말했어. ‘나는 매일 걸어 다니던 이 자리에서 죽겠어. 그리고 무덤에 들어가서도 여기를 걸어 다니겠어. 가문의 자부심이 무너질 때까지 걸어 다니겠어. 이 가문에 불행이 달려들 때마다, 불명예가 몰려들 때마다, 내 발소리를 들려주겠어!’ ”
와트가 쳐다보니, 로사는 무섭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숙인다. “귀부인은 그때 그 자리에서 죽었어. 그날 이후로 유령길이란 이름이 내려오는 거야. 발을 내딛는 소리가 메아리라면, 그 메아리는 어둠이 깔린 다음에 비로소 들리는데, 오랫동안 안 들리기도 해. 그러다 다시 나타나. 누가 아프거나 죽을 때면 더더욱 확실히.”
– “우리 아이들은 아침 여섯 시 반에 나랑 교회에 간답니다. 한겨울을 포함해서 일 년 열두 달을 안 빠지고요. 그 뒤로 온종일 나랑 다닌답니다. 나는 학교 위원회 위원이고, 가정방문 위원회 위원이고, 독서 위원회 위원이고, 배급위원회 위원이며, 지역 차원에서는 아마포 상자 위원회를 비롯한 다양한 위원회에 참가하며, 유세하는 지역도 아주 넓답니다. … 나보다 넓은 지역을 유세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요. 하지만 어디를 가든 우리 아이들도 함께 가고, 가난한 사람에 대한 지식과 자선사업 일반에 대한 능력을 – 한마디로, 그런 일에 대한 취향을 – 갖추니, 나중에 이웃에게 봉사하면서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거지요. 우리 아이들은 경솔하지 않아요. 용돈을 전부 기부하거든요, 내 감독 아래. 게다가 다 자란 어른도 힘들 정도로 많은 공공집회에 참석하고 많은 강연과 연설과 토론을 듣거든요. ‘기쁜 유년단’에 자발적으로 입단했다는 다섯 살짜리 알프레드는 의장님이 두 시간이나 열정적으로 연설한 다음까지 정신을 안 잃은 몇 안 되는 아이 가운데 하나랍니다.”
– 교구 관리는 크룩 고물상으로 극빈자를 여러 명 데려와서 ‘친애하는 우리 형제’ 시신을 싣고 좁디좁은 교회 공동묘지로 데려가는데, 이곳이야말로 온갖 병균이 창궐해서 세상에 남은 ‘친애하는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사악한 질병을 옮기는 곳이나, ‘친애하는 우리 형제자매들’은 계단 주변에서 어슬렁댈 뿐, 하늘나라로 가는 건 훨씬 나중 일이라, 하나같이 상냥하고 즐거운 표정이다. 사람들은 ‘친애하는 우리 형제’를 기독교식으로 매장하려고 여기까지 데려와서 더없이 더럽고 좁은 땅뙈기 속에 넣으니, 그 땅은 터키인도 야만적이고 역겹다며 거부하고 아프리카 원주민도 몸서리칠 정도로 더러운 땅이 아닐 수 없구나!
철문에서 오솔길 양쪽으로 쭉 늘어선 묘지가 악취를 풍기고, 살아서 극악한 행위는 죽어서 묻히지만 죽어서 가득한 병균은 살아서 창궐하고, ‘친애하는 우리 형제’는 땅속 3~40㎝ 깊이에 썩을 몸으로 묻혀서 썩을 몸으로 다시 살아나니, 아픈 사람 머리맡에는 죽음의 사신이 가득하고, 오만한 섬나라에는 문명이 야만과 손잡은 부끄러운 증거로 가득하구나. 밤이여 오라, 어둠이여 오라, 너희는 이런 곳에 일찍 와서 아무리 오래 머물러도 괜찮으니! 흔들리는 불빛이여, 추악한 묘지 건물 창문으로 들어가라, 안에는 추악한 짓이 가득해도 밖으로 끔찍하게 흘러나오진 않으니! 가스등이여, 철문 위로 음산하게 타올라라, 감염된 공기가 끈적끈적한 연고처럼 쌓일지니! 그래서 사람이 지날 때마다 “여길 보라”고 소리칠 테니!
– 정말이지, 그것 때문에 얼마나 불편했는지 말로 다할 수 없어요. 머리칼이라도 단정하게 빗고 목깃을 세웠어도 섬뜩할 텐데, 상대가 그토록 멍청한 모습으로 쳐다본다는 사실이, 그것도 언제나 힘이 쭉 빠진 모습으로 쳐다본다는 사실이 더없이 거북해, 연극을 보면서 웃고 싶지도, 울고 싶지도, 움직이고 싶지도, 말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 무엇도 자연스럽지 않았어요. 박스석 뒷좌석으로 가서 거피를 피하는 방법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어요. 리처드와 에이다가 저를 바로 옆에 두어야 안심하고 대화를 즐기는데, 행여나 제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는다면 결코 못 그럴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대로 앉아, 제가 어디를 쳐다보든 거피 역시 제 시선을 쫓아올 게 분명한 터라, 어디를 쳐다볼지도 모른 채, 젊은 사람이 나 때문에 돈을 끔찍하게 많이 쓴다는 생각만 했어요.
거피는 놀라운 인내심을 발휘해, 우리가 들어가는 극장마다 꼭 나타날 뿐 아니라 우리가 나갈 때 인파 사이에서 나타나는 건 물론, 우리 마차 뒤에 올라타기조차 했어요. 사람들이 공짜로 못 올라타도록 섬뜩하게 박아놓은 꼬챙이 사이에서 힘겨워하는 모습을 두세 차례 보았거든요. 그리고 우리가 하숙집에 들어간 다음에는 길 맞은편 기둥에 달라붙었어요. 우리가 묵는 가구점 건물은 두 거리가 만나는 모서리고 제 침실 창문은 기둥 맞은편이라, 행여나 (달빛이 환한 어느 날 밤에 목격한 것처럼) 기둥에 기대서 감기에 걸릴 수밖에 없는 거피랑 마주칠까 두려워서 감히 내 방 창가로 다가갈 수도 없었어요. 낮에는 거피에게 할 일이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스러울 뿐이었어요. 그렇지 않다면 한시도 마음 편히 못 쉴 테니까요.
– “잔다이스 선생, 내 사건을 들어보세요. 하늘이 내려다보니 솔직하게 말하리다. 나는 동생이 하나 있어요. 농사짓던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 어머니가 살아계시는 동안 농장과 가축 모두를 맡으시라고, 그러다 돌아가시면 나한테 물려주고 둘째한테 300파운드를 떼어주라고 유언하셨답니다. 결국 어머니는 돌아가셨어요. 동생은 얼마 뒤에 유산을 요구했고요. 그런데 나를 비롯한 친척들은 동생이 그동안 쓴 비용에 먹고 잔 비용까지 합치면 유산을 이미 받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어요. 잘 들으세요! 바로 이게 문제였어요, 다른 게 아니라. 유언 자체는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어요. 딱 하나, 300파운드를 이미 지급했느냐 아니냐만 문제 삼았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동생은 소송을 걸고, 나는 저주받은 대법정에 출두했어요. 내가 출두한 건 법이 다른 곳으로 못 가게 강제했기 때문이에요. 소송은 간단한데, 피고가 열일곱 명이나 나왔어요!
첫 재판은 2년이 지난 다음에 열렸어요. 그러다 2년 동안 재판을 중단했는데, 그 사이에 법원 주사 놈이 (이놈 머리가 썩어 문드러지길!) 나한테 우리 아버지 아들이냐고 물었어요. 이런 논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에요. 그러더니 피고가 부족하다고 – 열일곱 명이나 되는데도요! – 빠뜨린 사람이 최소한 한 명은 있을 거라고, 그 사람을 찾아서 재판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그즈음에 재판 비용이 –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 유산의 세 배였어요. 동생도 턱없이 큰 비용을 피할 수만 있다면 재판을 기꺼이 포기했을 거예요. 아버지가 유언으로 남긴 재산은 그 비용으로 모두 사라졌어요. 재판은 미해결 상태로 다른 모든 것과 함께 창고로 들어가서 썩어 문드러지고 – 나는 오늘 여기에 이렇게 있답니다! 자, 잔다이스 선생, 귀하 소송에는 수천 명이 관여한 반면, 내 소송에는 수백 명이 관여했어요. 그렇다면 내 소송은 그만큼 견디기 쉽고 선생네 소송은 그만큼 견디기 힘들까요, 내 삶이 여기에 모두 달렸는데, 그래서 모조리 빨려 나갔는데?”
– 스몰위드 할아버지가 그 즉시 방석을 던지며 소리친다. “빌어먹을 것아, 조용해!” 갑자기 내던진 방석은 두 가지 결과로 나타난다. 스몰위드 할머니는 머리가 문지기용 의자 옆면으로 꼬꾸라져서 손녀딸이 제대로 앉혀줄 때까지 이상하게 처박히고, 스몰위드 할아버지 자신은 방석을 던진 반동에 뒤로 벌러덩 나뒹구는 모습이 줄 끊어진 꼭두각시 같다. 이럴 때면 훌륭한 할아버지는 세탁물 주머니에 까만 해골을 올려놓은 형상이니, 손녀딸이 두 손으로 커다란 병처럼 붙잡고 흔들면서 덧베개처럼 손으로 찌르고 때리는 과정을 겪은 다음에 비로소 만화처럼 우스꽝스러운 형상에서 벗어난다. 그러면 목이 제대로 돌아오는 징후가 나타나고, 황혼기를 맞이한 동반자와 함께 문지기용 의자에 앉아서 서로를 마주 보니, 죽음을 알리는 저승사자가 보초 한 쌍을 세워놓고 오래전에 깜빡 잊은 것처럼 보일 뿐이다.
– 주디는 인형을 가져본 적도, 신데렐라를 들어본 적도, 어떤 놀이를 해본 적도 없다. 열 살 즈음에 동네 아이들과 한두 차례 어울렸는데, 아이들은 주디와 가까워질 수 없고 주디는 아이들과 가까워질 수 없었다. 인간과 종이 다른 동물 같아, 양측은 서로를 본능적으로 거부했다. 주디가 웃는 법을 아는지조차 의심스럽다. 누가 웃는 모습을 실제로 본 적이 없으니 모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젊은이처럼 싱그럽게 웃는다는 개념은 생각조차 못 할 게 분명하다. 행여나 웃으려 하다가는 이빨이 묘하게 갈리는 게 전부니, 무의식적으로 다양한 표정을 흉내 낼 때 그런 것처럼 웃는 동작을 흉내 내려 하다가는 얼굴에 추악한 노파 형상만 떠오른다. 바로 이게 주디다.
쌍둥이 남동생 역시 인생의 최고봉을 즐길 순 없었다. ‘거인을 죽인 잭’이나 ‘신드바드의 모험’을 외계인 이야기 이상으로 모른다. 개구리 놀이나 귀뚜라미 놀이 역시 자신이 개구리나 귀뚜라미로 변신한 적이 없는 만큼이나 해본 적이 없다. 쌍둥이 누이보다 다행스러운 점은 좁디좁은 세상에서 훨씬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기회가 생긴 데다 거피에게 인정까지 받는다는 사실이니, 화려한 마법사를 숭배하고 흉내 내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 거피는 친구가 감언이설에 더는 안 넘어간다는 사실을 깨닫고, 흔히 악용하던 수법대로 친구를 나무라기 시작한다. “위블, 울적한 기분은 충분히 이해해, 그 느낌이 어떤지 나보다 많이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 나는 짝사랑하는 상대를 가슴에 새긴 채 애달파 하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아무런 죄도 없이 분풀이 당하는 데도 한계는 있다고. 분명히 말하는데, 위블, 나는 네가 지금 보여주는 자세는 사람을 반기는 자세도 아니고 신사다운 자세도 아니라고 생각해.” “반발이 강하군, 거피.”“그럴지 모르지만, 내가 이렇게 반발할 때는 기분이 안 좋은 거야.” 거피가 반박하자 위블은 잘못을 인정하고, 이제 그 얘기는 그만하자고 사정한다. 하지만 거피로서는 우위를 차지한 김에 조금 더 몰아치지 않을 수 없다.
– “위블, 그 부분은 명예로운 자네 친구한테 맡기라고. 게다가 이번 일은 마음속에 아픔을 – 지금 언급해서 고통스러워할 필요가 전혀 없는 아픔을 – 담고 사는 자네 친구한테 도움이 되는 일이야. 자네 친구는 바보가 아니잖아. 저게 무슨 소리지?”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열한 시를 알리는 소리. 잘 들어보면 런던 전역에서 울리는 종소리가 전부 들릴 거야.” 두 친구는 가만히 앉아, 가까이서 멀리서, 높이가 다양한 종탑에서 다양하게 울리는 금속성 소리를 듣는다. 그러다 마침내 멈추자, 모든 게 훨씬 이상하고 고요한 느낌이다. 조그맣게 속삭이다 보면 유난히 나쁜 것 하나는 분위기가 조용하게 변하면서 – 이상하게 삐걱대는 소리와 똑딱이는 소리, 아무런 형체도 감싸지 않은 의상이 부스럭대는 소리, 모래사장이나 겨울철 하얀 눈에 아무런 흔적도 안 남길 것 같은 섬뜩한 발소리 등 – 유령 소리 같은 게 툭하면 일어난다는 점이다. 두 친구는 너무나 민감한 나머지 공중에 유령이 가득하다 느끼고 동시에 어깨너머로 돌아보아서 문이 닫힌 걸 확인한다. 거피는 엄지손톱을 초조하게 깨물며 벽난로 앞으로 다가가서 묻는다.
– “에스더 아가씨가 잔다이스 선생님께 가기 전에 지내던 마님 집에서 하녀로 일하던 사람을 우연히 만났답니다. 그 마님은 바바리 아씨였고요, 마님.” 귀부인 얼굴이 납빛으로 변한 건 손으로 물끄러미 든 채 까마득히 잊은 녹색 비단 가리개 때문일까, 아니면 갑자기 혈색이 사라졌기 때문일까? “마님께서도 바바리 아씨 이름을 들어보신 적이 있는지요?” “모르겠어요. 들어본 것도 같군요. 그래요, 들어봤어요.” “바바리 아씨는 마님 친정 쪽과 관련이 있나요?” 귀부인이 입술을 움직이지만 아무런 소리도 안 나온다. 그래서 고개를 젓는다. “관련이 없다고요? 아! 마님께서 모르시는 건 아니고요? 아! 하지만 가능성은 있겠지요? 그렇죠?” 거피가 계속 심문하자 귀부인은 고개를 숙인다. “좋습니다! 그런데 바바리 아씨는 입이 극도로 무거웠습니다. 여성은 대체로 수다 떠는 걸 좋아하는 법인데, 여성치고 유난히 무거웠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제가 만난 증인은 바바리 아씨한테 친척이 있는지조차 모르더군요. 하지만 한 번, 딱 한 번, 제 증인을 믿었던 것 같습니다, 여자애는 진짜 이름이 에스더 서머슨이 아니라 에스더 호돈이라는 말을 했으니까요.”
“하느님!” 귀부인이 깜짝 놀라고 거피는 물끄러미 쳐다본다. 데드록 귀부인이 앞에 앉아서 멍하니 쳐다보는데, 얼굴이 납빛이다. 가리개를 든 자세도 똑같고 입술도 살짝 벌리고 이마도 살짝 찡그리지만, 순간적으로 죽었다. 거피는 귀부인이 정신을 차리는 걸 보고, 수면에 이는 잔물결처럼 온몸으로 퍼지는 전율을 보고, 입술이 떨리는 걸 보고, 그런 자신을 가다듬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고, 거피가 앞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려, 거피가 한 말을 떠올리려 애쓰는 모습을 본다. 하지만 모든 과정이 순식간에 지나니, 귀부인의 절규와 죽은 상태 역시 오랫동안 보존한 시신이 무덤을 열어서 공기를 쬐는 순간에 연기처럼 사라지듯 사라지는 것 같다.
– 귀부인 손에 제 손수건이, 죽은 아기를 덮어준 손수건이 있는 걸 보았을 때 제 마음이 어땠는지는 말로 설명할 수 없어요. 저는 귀부인을 쳐다보았지만, 제대로 볼 수도 없고 제대로 들을 수도 없고 숨을 쉴 수도 없었습니다. 심장이 너무 쿵쾅거렸습니다. 생명이 그 자리에서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를 당신 가슴에 꼭 껴안고 뽀뽀하고 흐느껴 울고 불쌍히 여기면서 조그맣게 부를 때, 무릎을 꿇으며 쓰러져서 “아, 우리 아가, 우리 아가, 바로 내가 사악하고 불행한 엄마란다! 아, 제발 나를 용서하렴!”이라고 울부짖을 때, 끝없이 고통스러워하면서 제 발밑 맨땅에 쓰러질 때, 저는 감정이 북받치는 가운데도 얼굴이 변한 게, 얼굴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귀부인을 불명예스럽게 만들 수 없다는 사실에, 저를 보고 귀부인을 보아도 누구도 비슷한 구석을 찾을 수 없게 한 하느님 섭리가 고마웠습니다.
– “나를 받아들이고 축복하다니, 너무 늦었어. 나는 어두운 길을 혼자 걸어야 해, 그 길이 어떤 길이라도. 하루하루, 어떨 때는 매시간, 죄지은 발을 내디딜 길이 안 보이더라도. 그건 내가 이 세상에서 받아야 할 형벌이야. 자업자득. 혼자 견디고, 숨겨야 해.” 자신이 겪을 형벌을 떠올리는 순간조차, 어머니는 주변에 대한 자부심과 냉정한 자세를 습관처럼 드러내다 곧바로 내던졌습니다. “나는 비밀을 지켜야 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는 다른 남자와 결혼한, 비열하고 불명예스러운 존재라고!” 좌절을 억누르며 뱉어내는 소리가 비명을 내지르는 소리보다 끔찍했습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몸을 움츠리는 모습이 제 손길을 피하려는 것 같을 뿐, 아무리 설득하고 사정해도 어머니를 일으켜 세울 순 없었습니다. 어머니 입에서 나온 말은 안 돼, 안 돼, 안 돼가 전부였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자부심과 오만함이 가득할지언정, 모성애라는 자연스러운 감정 앞에서는 죄책감과 부끄러움만 가득했습니다.
어머니는 더없이 불행한 표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서 미칠 것 같았다. 자신이 낳은 아기가 살았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예전에는 네가 그 아기라는 사실을 상상조차 못 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너에게 말하려고 여기까지 일부러 내려왔다. 이 순간 이후로 우리는 서로 만날 수도 편지를 주고받을 수도 말을 주고받을 수도 없다. 그러면서 당신 손으로 쓴 편지를 건네셨습니다. 다 읽고 태워라 – 자신은 바라는 게 없으니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편과 너를 위해서 – 앞으로 자신을 죽은 사람으로 여겨라. 딸 앞에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어머니가 딸을 사랑하는 증거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자신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이해하고 동정할 수 있다면, 제발 그렇게 해달라. 희망도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다. 죽을 때까지 비밀을 지키든, 도중에 드러나서 자신이 결혼한 가문에 굴욕과 치욕이 되든 혼자 싸워나가야 한다. 누구도 자신을 사랑할 수 없고, 누구도 자신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 수 없다.
– 바로 옆은 금방 무너질 것 같은 담벼락인데, ‘익사자 안치소’라는 글씨가 벽보에 또렷했어요. 끔찍한 예감이 온몸을 휘감았어요. 제가 감정에 휩싸여서 수색을 어렵게 하거나 희망을 줄이거나 시간을 질질 끌려고 따라온 건 아니라고 굳이 다짐할 필요는 없었어요. 그래서 조용히 있었지만, 끔찍한 장소에서 겪은 고통은 영원히 못 잊을 거예요. 악몽에 시달리는 느낌이었어요. 보트에 있던 사내가 물에 젖어서 잔뜩 부풀어 오른 신발과 모자 차림으로 불려 나와 버킷 수사관과 속닥이더니, 물기가 축축한 계단을 나란히 내려가는 게… 무언가 은밀한 대상을 살피려는 것 같았어요. 무언가 축축한 물체를 뒤지더니, 두 사람이 손을 외투에 닦으며 돌아오는데, 다행히도 제가 두려워하던 사태는 아니었어요!
버킷 수사관은 다시 상의하다, 저만 마차에 남겨둔 채, 문가에 있던 (하나같이 버킷 수사관을 알고 존중하는 것 같은) 사람들과 안으로 들어가고, 마부는 몸을 데우려고 마차 주변을 걸어 다녔어요. 물살이 이는 소리로 판단하건대, 밀물이 들어오는 중으로, 강물이 골목 끝에 부닥치면서 잔물결이 마차로 달려드는 소리까지 들렸어요. 수백 시간이 지난 것 같지만 실제로는 15분이 채 안 되는 시간 내내, 저는 어머니가 마차 옆으로 쓸려오는 공포에 끊임없이 시달렸어요.
– 저는 이 말 역시 속으로 되풀이했지만, 아무런 의미도 떠올릴 수 없었어요. 죽은 아이 어머니가 바로 앞에, 계단에 쓰러진 모습만 보였어요. 팔 하나로 철문 쇠창살을 휘감고 껴안듯 쓰러진 모습이었어요. 저를 낳은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만난 여인이 그렇게 쓰러져 있었어요. 지칠 대로 지친 모습으로 덮은 것 하나 없이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어요. 어머니가 쓴 편지를 가져온 여인이, 어머니가 있는 곳을 알려줄 유일한 여인이, 우리가 그토록 간절하게 찾는 어머니를 구하도록 도와주어야 할 여인이, 어머니와 관련된 일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로 여기까지 온 여인이, 제가 더는 다가가서 도울 수 없는 곳으로 떠난 것 같은 여인이, 그런 여인이 눈앞에 쓰러져 있는데, 두 사람이 저를 막았어요!
저는 우드코트 선생 얼굴에 엄숙하면서도 슬픈 표정이 어린 걸 두 눈으로 보았지만, 이해할 수 없었어요. 우드코트 선생이 한 손을 버킷 수사관 가슴에 대고서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았지만, 이해할 수 없었어요. 우드코트 선생이 가만히 서서 무언가를 슬퍼하며 괴로워하는 표정을 두 눈으로 보았지만, 이해할 수 없었어요. 저는 모든 걸 이해할 능력이 완전히 사라졌어요. 두 사람 사이를 오가는 소리마저 들렸어요. “아가씨를 보내줄까요?” “그러는 게 좋겠어요. 그 손이 제일 먼저 닿는 게 마땅해요. 그 손이 그럴 권리가 우리 손보다 크니까요.” 저는 철문으로 다가가서 웅크리고 앉았어요. 무거운 머리를 들어서 축축하고 기다란 머리칼을 젖히고 얼굴을 돌렸어요. 어머니였어요, 죽어서 차가운.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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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 찰스 디킨스 개요
찰스 디킨스는 캐릭터 묘사가 극히 뛰어나며 풍자가 대단하고 문장이 화려하나, 지금까지 한국에서 번역물로 제대로 소개했다고 볼 수 없다. 『올리버 트위스트』와 『크리스마스 캐럴』, 『두 도시 이야기』, 『위대한 유산』, 『데이비드 코퍼필드』, 『어려운 시절』, 『골동품 상점』, 『황폐한 집』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킨스 문학의 별미를 이미지만 소개하거나 난수표로 소개한 수준이라서 독자들이 디킨스 문학을 맛보기엔 부족했다. 찰스 디킨스(Charles John Huffam Dickens)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풍미한 소설가다. 이백 년도 넘은 1812년 2월 7일, 나폴레옹 전쟁이 한창일 때에 영국 남부 포츠머스 외곽에서 팔 남매 가운데 둘째로 태어나 장남으로 살아간다. 형제 두 명이 어려서 죽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저택에서 집사로 일하고 할머니는 하녀장으로 일했는데, 찰스 디킨스는 할머니가 “즉석에서 이야기를 지어내 모두를 즐겁게 하는” 능력이 탁월했다고 기억한다. 아버지는 해군 경리국 하급관리로 사교적이고 유머가 풍부하나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어머니는 선량하고 밝은 성격이나 자녀에게 무정했다. 경제적인 이유로 어려서 계속 이사 다녔다. 외할아버지 역시 해군 경리국에서 일했으나, 자금을 횡령하고 외국으로 도망쳤다.
디킨스가 다섯 살 때 아버지는 전근명령을 받아 온 가족이 채텀으로 이사해서 5년을 사는데, 도시 남쪽으로는 밀밭이 풍요롭고 북쪽으로는 바닷물이 들어오는 습지대가 황량하고, 서쪽 2㎞ 거리에는 조용한 대성당도시 로체스터가 있어, 채텀은 어린 디킨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나중에 다양한 작품에 등장한다. 디킨스에게는 이때가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어머니를 통해서 지식욕과 독서욕에 처음 눈떴다. 어머니는 매일 규칙적으로 오랫동안 공부를 가르쳤다.” 집에는 유모가 있어, 살인마 대위가 아내를 여럿 죽여서 파이로 만들었다든가 무서운 고양이가 밤마다 눈을 번뜩이면서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며 어린애를 먹어치운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악마처럼 즐거워”하니, 어린 디킨스는 다양한 악몽과 공포에 시달렸다. 나중에 디킨스 자신이 “우리가 어른이 된 다음에도 황당한 공포에 가끔 빠져드는 건 어린 시절에 유모 같은 사람이 무섭게 만들어낸 이야기가 마음속에 깊숙이 틀어박혔기 때문”이라고 정의할 정도였다.
이 시절에 디킨스는 흉내를 잘 내, 유모 앞에서 즉흥 연기도 하고 누나가 연주하는 피아노 가락에 맞춰서 노래도 하니, 아버지는 장녀와 장남을 채텀에서 유명한 여인숙으로 데려가 이중창을 부르게 해서 박수갈채와 함께 다양한 음식을 얻어먹었다. 이 무렵에 굴을 처음 먹고서 어린 디킨스는 “마음이 지극히 설렜다.” 2㎞ 떨어진 로체스터 로열 극장에 가서 다양한 연극도 관람해, 30년이 지난 다음에 디킨스는 “멋진 소극장에 처음 들어선 황홀한 느낌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면서 말한다. 녹색 장막이 뚫린 구멍에서 눈빛 하나가 반짝이며 우리를 쳐다본다. … 파란 옷차림에 머리를 뒤로 길게 늘어뜨린 여주인공이 빛을 내뿜자, 모두 무서워서 마른침을 꿀꺽 삼키다 환호한다. … 코미디언이 빨간 가발을 쓰고 지하감옥에 갇혀서 재미있게 노래하는데, 나는 그렇게 우스꽝스러운 사람을 처음 봤다. … 녹색 장막이 내려올 때는 등잔 기름 냄새와 오렌지 껍질 냄새가 향긋했다.
어린 디킨스는 아버지를 따라 해군 공창에 가서 노동자가 일하는 모습도 신나게 구경한다. 톱밥과 뱃밥과 돛 냄새가 진동하는 곳에서 노동자들이 불러대는 노래도 듣고, 죄수들이 묵묵히 끌려가는 장면도 목격하니, 이런 장면은 『위대한 유산』에 실감 나게 등장하고, 아버지랑 주변 시골을 산책하던 경험은 『위대한 유산』에서 매형과 산책하는 장면으로 나타난다. 얼마 뒤에는 염색가게 위층에 있는 학원에 다니면서 “무시무시한 노부인이 회초리로 지배하는 세상”을 체험하니, 디킨스는 『위대한 유산』에서 어린 핍이 다니던 엉터리 학교로 그 분위기를 묘사한다. 아홉 살 때는 정식학교에 잠시 다니며 공부도 열심히 하고 크리켓 게임 같은 스포츠도 즐겼다. ‘데이비드 코퍼필드’가 그런 것처럼 “아버지가 이 층 조그만 방에 모아둔 책을 읽으며 ‘로더릭 랜덤’, ‘페레그린 피클’, ‘험프리 클링커’, ‘톰 존스’, ‘웨이크필드에 사는 성직자’, ‘돈키호테’, ‘질 블라스’, ‘로빈슨 크루소’ 같은 훌륭한 주인공을 친구로 사귄” 것도 이즈음이니, 디킨스는 이후로도 평생에 걸쳐서 책을 읽는 즐거움에 빠져든다.
하지만 아버지는 빚이 늘면서 위기에 처하고, 어린 디킨스는 따로 살다 혼자서 역마차를 타고 가족을 찾아가는데, 이 경험은 디킨스 뇌리에 평생 틀어박혀 『올리버 트위스트』와 자전적 소설 『데이비드 코퍼필드』에서 주인공이 어린 나이에 혼자 먼 길을 떠나는 고통으로 나타난다. 어린 디킨스가 찾아간 가족은 런던 빈민가에 살았다. 디킨스는 아버지를 “정이 많고 상냥한” 사람으로 여겼는데, “생활이 어려운 데다 성격까지 물러서 아들을 제대로 공부시킬 생각을 전혀 안 하는 것 같았다. 아들에게 제대로 성장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어린 디킨스는 다양한 책을 읽고, 채텀에서 배운 통속적인 노래를 불러서 박수갈채를 받고, 활기찬 런던 거리를 돌아다니는 걸 낙으로 삼았다.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뒷골목이, 싸구려 술집과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누추한 건물과 헐벗은 아이로 득시글거리는 거리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기가 막힐 정도로 가난한 분위기, 음식을 구걸하는 장면, 음습한 분위기 등이 터무니없이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와” 나중에 『올리버 트위스트』에 담긴다.
결국엔 아버지가 파산하자, 어머니는 없는 돈을 탈탈 털고 집을 빌리고 학교를 열어서 먹고살 방편을 모색한다. 입구에는 놋쇠로 명패를 걸고 이웃에는 안내장을 보냈다. 하지만 “학생을 받을 준비도 안 되고 누가 입학할 기미도 없었다.” 채권자들이 툭하면 찾아와서 고래고래 소리치며 독기를 내뿜을 뿐이었다. 이윽고 가구를 하나씩 내다 팔고, 어린 디킨스는 운반 가능한 물품을 전당포로 가져가는 역할을 맡았다. 디킨스가 애독하던 책까지 중고서점으로 한 권씩 팔려나가, 온 가족은 텅 빈 방 두 칸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았다. 구두약 공장 지배인을 하던 친척이 어린 디킨스에게 공장에서 일할 걸 제안하고 부모가 받아들이니, 디킨스는 열세 살 생일이 이틀 지난 뒤에 구두약 공장에 노동자로 취업한다. 공장은 강기슭이고 쥐는 우글거렸다. 거칠고 무식한 아이들이 함께 일하는데, 디킨스를 “꼬마 신사”라고 부르며 친절하게 대했다. 하지만 디킨스는 “이들과 일하면서 정신적으로 심한 갈등에 휩싸였다.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보낼 때 만나던 친구들과 비교했다. 많이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희망이 산산이 부서지는 걸 느꼈다.”
디킨스는 공장에서 일하는 현실에 깊은 충격을 받는다. “나는 어리벙벙했다. 그토록 어린 나이에 그토록 가볍게 버림받다니 … 아무도 동정하지 않았다. 재능은 뛰어나고 머리는 팍팍 돌고 의욕은 넘치고 감성은 섬세한데, 부모는 나를 학교에 보낼 고민은커녕 동정하는 마음조차 없었다.” 디킨스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커다란 상처를 받았다. 공장에서 일한 기간을 기억조차 못 할 정도니, 그 심정은 ‘데이비드 코퍼필드’가 주류 공장에서 일하며 느끼던 좌절감에 그대로 묻어나온다. 아버지는 ‘채무자 감옥’에 갇히고 생활비를 절약하려고 가족도 함께 들어가, 감옥 생활에 적응하다 못해 단조롭고 평온 무사한 분위기를 나름대로 즐기며 지낸다. 하지만 어린 디킨스는 혼자 공장에 다니며 무서운 노부인 집에서 하숙했다. 생활비를 하루 단위로 쪼개서 싸구려 빵과 치즈로 살았다. “돈이 조금 있을 때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이랑 버터 바른 빵을 먹고, 돈이 없을 때는 청과시장에서 파인애플 따위를 구경했다.” 일요일에 10㎞를 걸어서 부모 및 형제자매와 하루를 보내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아버지는 할머니 유산으로 빚을 일부 청산한 덕분에 ‘지급불능 채무자 조례’를 적용받고 풀려나니, 조그만 셋집을 전전하며 불안하게 살면서도 가계를 조금씩 일으켜 세웠다. 어머니는 어린 디킨스가 구두약 공장에 계속 다니길 바랐으나, 아버지는 장남이 힘들게 살아가는 게 마음 아팠는지, 구두약 공장 지배인 친척과 심하게 다투고 아들을 빼내서 웰링턴 하우스 아카데미 (Wellington House Academy)에 2년 동안 보낸다. 하지만 어머니는 “공장에서 돈이나 벌라”며 끊임없이 반대하고 디킨스는 어머니와 서먹한 관계를 평생 유지하니, 나중에 “나는 원한과 분노를 담아서 글을 쓰지 않는다. 모든 환경과 경험이 하나로 모여서 현재의 나로 완성되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니가 나를 공장으로 돌려보내려고 애쓴 기억만큼은 지금도 못 잊고 앞으로도 못 잊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디킨스는 어린 시절에 구두약 공장에 다니며 고생한 경험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이십 년이 지난 다음에 비로소 처음 언급할 정도였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겪은 고통은 다양한 작품에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다. 어린아이를 소중하게 여기는 묘사가 모든 작품에 나오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비판에 민감하며, 한 번 꺼낸 말은 거두지 않는 완고한 성격도 여기에서 나왔다.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던 어린애가 노동자로 전락하면서 겪는 좌절과 고통 역시 자전적 소설 『데이비드 코퍼필드』에 잘 나타나며 아버지는 ‘미코버’, 어머니는 법률사무소 대표의 딸로 허영심 많은 ‘도라’를 대변한다. 2년 동안 다닌 ‘웰링턴 하우스 아카데미’는 인근에서 평이 좋았으나 찰스 디킨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교장은 내가 만난 누구보다도 특별나게 무식한 사람으로 전제군주처럼 선생과 학생을 지배”했다. 그래도 어린 디킨스는 학교생활에 적응하려 노력하고, 당시에 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들은 찰스 디킨스가 잘생기고, 옷은 낡아도 세련된 느낌이고, 자신감이 넘치고, 머리가 빨리 돌고, 책을 많이 읽고, 아마추어 연극에 몰두하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고, 책상 서랍에다 흰쥐를 몰래 키우고, 장난도 잘 치고, 스포츠를 열심히 하였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또다시 빈곤에 빠져들고 디킨스는 생활 전선에 다시 뛰어든다.
열여섯 살 나이에 변호사 사무실에 들어가서 이 년간 심부름꾼으로 일하는데, 법조인 거리 중심부에 있는 사무실은 “정말 좁은 세계, 정말 따분한 세계”였다. 서류를 베끼거나 잔심부름하다 시간이 나면 “세속적인 냄새와 곰팡내 솔솔 풍기는” 법정이나 주변을 탐색했다. 한가한 오후에는 장난도 치고 흉내 내는 실력을 발휘하며 동료들과 즐겁게 지냈다. 그런 동료 가운데 하나는 “디킨스는 거리를 오가는 서민들 모습을 그대로 흉내 냈다. 과일 장수든 채소 장수든 건달이든 정말 그럴싸했다”고 기억한다. 디킨스는 동료들과 즐겁게 지내면서도 좀 더 바람직한 일을 끊임없이 모색한다. 대영박물관 도서 열람증을 손에 넣어서 독학으로 다양한 지식을 쌓고 속기도 배운다. 신문기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인데, 야심만만한 청년들이 선호하던 직업으로 수입도 좋았다. 속기를 일 년 정도 혼자서 공부한 디킨스는 결국 ‘민법 박사회관’에서 진술을 기록하는 속기사로 새롭게 출발한다. 하지만 너무나 따분하고 지루한 분위기에, 연극배우로 직업을 바꾸는 고민에 몰두한다. 그래서 밤마다 극장을 찾아가 좋은 연기를 연구하다, 스무 살에는 연극 오디션까지 신청한다. 하지만 감기에 걸려서 불참하고, 다시 신청할 용기를 못 낸다. (디킨스는 소설을 쓸 때마다 등장인물을 혼자 연기해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살려낸 거로 유명하다.)
디킨스는 결국 스물한 살에 의회 출입기자가 된다. 신속하고 정확한 기사로 이름을 얻는다. 열악한 노동환경은 문제가 안 됐다. “낡은 하원 건물 뒷좌석에서 책상 삼아 필기하느라 무릎이 다 닳고, 낡고 비좁은 울타리에서 양 떼처럼 바싹 달라붙은 기자들과 함께 선 채로 기록하느라 신발 밑창이 다 닳았다.” 선거법 개정안과 공장법과 구빈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쟁을 지켜볼 때는 “광대 노릇이 돋보이는 정치 연극”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디킨스는 여기에서 의회와 정치에 대한 불신과 부정부패, 빈부 격차 등 다양한 사회현상에 눈을 뜬다. 하지만 말년에 고백한 바에 의하면 “젊은 시절에 신문사에서 혹독한 훈련을 잘 견딘 게 내가 성공한 첫 번째 원인”이기도 하다. 이즈음에 은행가 딸과 첫사랑에 빠진다. 상대는 까만 머리칼에 몸집은 자그마한 미인, 마리아였다. 디킨스는 4년 동안 마리아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다른 생각은 조금도 못했다.” 마리아 역시 처음에는 디킨스를 좋아했으나 경쟁자는 사방에 가득하고, 마리아 부모는 경제적으로 무능한 디킨스 집안을 인정할 수 없고, 마리아 역시 싸늘하게 변했다. 디킨스는 “박정하고 무관심한 취급을 여러 차례 당하며” 괴로워하고 실의에 빠진 채 밤에는 잠을 못 이루고 그 집 주변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디킨스는 한층 더 열심히 일하는 식으로 상처를 치유한다. 성공하고 싶다는 결의도 강하게 다진다. 그해 여름 의회 휴회 기간에는 저술활동을 시작하고, 그해 말에는 ‘A Dinner at Poplar Walk’를 월간지 ‘Monthly Magazine’에 발표한다. 자신이 쓴 글이 활자로 나온 걸 보고, 디킨스는 “국회의사당까지 걸어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30분 정도를 보냈다. 너무 기쁘고 자랑스러워 두 눈에 가득 맺힌 눈물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어서 비슷한 단편을 익명으로 몇 번 발표하다 34년 8월에 ‘보즈 : Boz’라는 필명을 처음 사용한다. 가족이 막냇동생 오거스터스를 부르는 별명이었다.
스물세 살에는 “글솜씨도 훌륭하고 보도기자로도 탁월하다”는 이유로 ‘모닝 크로니클’ 기자에 발탁되어 풍속 전문 스케치를 기고한다. 중요한 모임이나 선거운동 등을 전국 규모로 취재할 권한도 생기니, 디킨스는 마차를 타고 밤새도록 달리는 쾌감을 마음껏 즐겼다. 흔들리는 등불에 의지하며 원고를 갈겨쓸 때는 열린 창문에서 진흙이 튀어들었다. 그래서 파란 천에 까만 벨벳을 테두리에 둘러친 망토를 사서 스페인식으로 한쪽 어깨에 걸치는 멋도 냈다. 머리도 기르고, 조끼도 멋있게 차려입었다. 아버지가 심각한 위기에 빠질 때는 빚도 일부 갚아주었다. 스물네 살에는 경제적으로 완전히 자립한 건 물론 유능한 기자로 이름도 높였다. ‘피크위크 페이퍼스’를 20회 연재하자고 제안받아, 전문작가로 나아가는 길도 열렸다.
‘모닝 크로니클’ 편집자 호가스는 젊은 기대주를 호가스 자택으로 초대하니, 결국 디킨스는 파티와 음악회가 열릴 때마다 참여해서 재미있는 노래와 익살로 모든 사람을 즐겁게 했다. 호가스는 세 딸이 있는데, 맏딸 캐서린은 열아홉 살, 메리는 열네 살, 조지나는 일곱 살이었다. 캐서린은 약간 통통하면서도 예쁜 얼굴에 표정이나 성격이 온화하고 상냥하며 조용한 성품이면서도 유머 감각이 있어, 디킨스와 연인으로 발전하고 몇 개월 뒤에는 결혼을 약속한다. 디킨스는 캐서린과 사귀면서도 업무에 끊임없이 쫓기느라 편지로 방문 약속을 취소하거나 늦출 때가 많았다. 하지만 화내거나 토라지거나 풀이 죽지 않도록 간청하며 “우리가 만난 순간부터 그대를 단 한 순간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강조한다.
이듬해 2월에는 그동안 발표한 풍속 스케치를 모아서 첫 번째 단행본 『보즈 스케치Sketches by Boz』를 출간하고, 판매성적이 좋아서 8월에는 2판을 간행하고, 12월에는 단편소설과 스케치 20편을 모아서 속편을 출간한다. 디킨스 자신은 “생각이 짧고 미숙한” 작품으로 규정하지만, 나중에 디킨스 전기를 집필한 포스터는 『보즈 스케치』를 “런던 일상을 꼭대기부터 밑바닥까지 즐거움과 기쁨, 괴로움과 죄악까지 또렷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독자는 “시대 상황을 비롯해 거리 풍경과 풍속을 정교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평가하고, 풍속학자는 당시 풍속을 연구하는 자료로 활용한다. 이즈음에 ‘Chapman & Hall’에서 화가 시모어가 그린 삽화를 곁들인 단편소설을 연재하자고 제안한다. 디킨스는 오페라 대본 한 편과 희극 한 편을 집필하는 중인 데다 장편 소설까지 고려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캐서린과 결혼할 예정이라서 돈이 많이 필요할 때였다. 디킨스는 캐서린에게 보낸 편지에 밝혔듯이 “마음에 안 들지만 보수가 좋아서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그래서 『피크위크 클럽』 첫 호는 1836년 3월 31일 목요일에 나오고, 이틀 뒤 4월 2일에는 첼시 ‘성 루카’ 성당에서 캐서린과 결혼한다. 양쪽 집안 식구만 참석한 소박한 결혼식으로, 신혼부부는 고즈넉한 시골 마을에 가서 신혼여행을 즐겼다.
『피크위크 클럽』은 판매가 부진한 데다 화가 시모어가 정신쇠약으로 자살하니, 디킨스는 중심인물로 부상해서 ‘해블롯 브라운’을 삽화가로 선택하고, 브라운은 ‘보즈’와 어울리도록 ‘피즈’로 필명을 정해, 두 사람은 20년 넘게 협업 관계를 유지한다. 『피크위크 클럽』은 4호부터 독자의 관심을 끌고, 선거를 재미있게 묘사한 5호가 나올 즈음에는 “보즈가 모든 사람의 이목은 물론 마음마저 사로잡아” 사람들이 서점 유리창에 딱 달라붙어서 최신호를 본다는 신문 기사까지 실리니, 판매량은 꾸준히 늘고, 디킨스는 “더할 나위 없이 위대한 보즈”로 명성을 떨친다. 새로운 성공에 힘입어 디킨스는 “집필 작업에 완전히 빠져든다.” 1836년 11월에 출판인 ‘리처드 벤틀리’가 월간지 편집주간을 제의하자, 디킨스는 소설 집필 계획을 잡아놓고도 제안을 받아들인다. 월급과 따로 원고료를 받는 조건이었다. 부인이 첫아이를 낳기 직전이라 가장으로 책임감을 절실하게 느낄 때였다. 이듬해 1월 6일에는 첫 아이를 낳고, 디킨스는 너무 기쁜 나머지 자기 이름 ‘찰스’를 물려준다.
디킨스는 자신이 편집주간으로 근무하는 ‘벤틀리 미셀러니’에서 장편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를 본격적으로 연재한다. 공리주의에 근거해서 ‘신 빈민구제법’을 제정해, 빈자와 고아를 교구 구빈원에서 무자비하게 다루는 비인간적인 제도를 비판하는 내용인데, 작품에 몰두할수록 디킨스는 어린 시절에 겪은 비참한 느낌과 굶주림과 소외감에 빠져들어, 폭력과 사기가 난무하는 런던 빈민가에서 어린애가 살아남으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이야기에 온 힘을 쏟아부었다. 당시의 전형적인 소설기법대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또렷하게 대비하면서도 ‘낸시’라는 독특한 인물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매춘부 사기꾼 ‘낸시’를 연민이 가득한 눈길로 묘사하는 방식에 독자는 커다란 충격과 반감을 느낀다. 하지만 새로운 해석에 빠져드는 독자도 많아, 디킨스는 월간지로 발행한 내용을 나중에 단행본으로 묶어서 발행할 때 본인 이름을 사용할 걸 단호하게 주장하고, 비평가들은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대작가 반열에 디킨스를 올려놓는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디킨스는 고급주택으로 이사해서 쾌적한 생활을 시작하고, 처제 메리(Mary)는 당시 풍습에 따라 그 집에 함께 살면서 아기를 돌본다. 디킨스는 이런 처제에게서 이상적인 여인상을 발견하고 정신적으로 독특한 유대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이듬해에 처제가 병으로 죽자, 디킨스는 너무나 커다란 충격을 받은 나머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소설 연재를 중단한다. 처제 손가락에서 뺀 반지를 죽을 때까지 손가락에 낄 정도였다. 메리에 대한 그리움은 3년 뒤에 발표한 작품 『골동품 상점』에서 ‘넬리’로 나타난다. 커다란 비극에 가정은 구멍이 뚫리고, 디킨스는 오후에 친구들과 어울리며 말을 타고 시내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걸 피난처로 삼는다. 그러면서 여유도 생기고 사고력도 풍부하게 변하니, “상상력을 자극하려면 몸을 꾸준히 움직여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할 정도였다. 평생에 걸친 문학적 조언자로 나중에 ‘찰스 디킨스 전기’까지 집필하는 존 포스터(John Poster)를 만난 것도 이즈음이다. 디킨스는 포스터와 공통점이 많았다. 나이도 같고, 중하층 계급 출신도 같고, 법률을 공부하다 저널리즘과 문학으로 방향을 바꾼 것도 같고, 명랑한 성격에 연극과 파티를 좋아하는 것도 같았다. 포스터는 디킨스에게 평생 헌신하고, 디킨스는 포스터에게 평생 의지하며 살았다.
1839년에는 『니콜라스 니클비』를 출간하고, 1841년에는 『골동품 상점』과 『바너비 러지』를 출간하면서 디킨스는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올라선다. 런던 사교계에서 추앙받고, 특권 신사 클럽에 가입하고, 공공장소에서 연설하는 사례도 늘었다. 1841년에는 에든버러 시민들이 디킨스에게 경의를 표하며 에든버러 명예시민으로 추대했다. 20대 청년에게 “더없이 커다란 영광”으로 디킨스는 크게 감격했다. 집필활동에 왕성하던 디킨스는 서른세 살에 견문을 넓히고자 아내 캐서린과 함께 미국 방문길에 나선다. 왕도 없고 계급도 없는 자유로운 민주주의 국가라는 사실에 잔뜩 기대하고, 뉴욕에서 3천 명이 넘는 독자가 환호하니, 디킨스는 미국과 미국인에게 감동한다. 뉴욕의 활기찬 분위기와 보스턴의 아름다우면서도 고상한 분위기에 감탄한다.
하지만 체류하는 나날이 늘어나면서 언제나 대중에게 드러나는 생활이 버겁게 다가왔다. 향수병에 시달리고 런던에 두고 온 아이들도 눈앞에 어른댔다. 남쪽으로는 필라델피아와 워싱턴과 리치먼드를 둘러보고, 서쪽으로는 루이빌과 세인트루이스를 방문하고, 북동쪽으로는 신시내티를 찾아가는데, 너무나 갑작스럽게 변하는 기후가 고통스러웠다. 열차와 배를 타거나 역마차를 타고 울퉁불퉁한 도로를 달리는 것도 힘에 겨웠다. 영국인이 흔히 그렇듯, 지나치게 잘된 난방도 싫고, 담배를 질겅질겅 씹어대다 퉤퉤 뱉어내는 습관도 싫었다. 노예제도를 목격한 순간에는 “인간으로 크나큰 굴욕감”을 느꼈다. 무엇보다 화난 건 ‘국제저작권 협정’에 미국이 서명하지 않는 현실이었다. 그러니 영국 작가는 아무리 인기가 많아도, 심지어 미국 출판사와 계약까지 해도, 저작권 침해를 문제 삼을 수 없으니, 디킨스는 미국에서 판매하는 작품에 공정한 대가를 받을 수 없었다. 자신을 열렬히 환영하고 환호하면서도 저작권 침해를 묵인하는 자세는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문제 삼으면 신문에서는 “문학적 명성보다 달러”를, “월계관보다 화려한 조끼”를 좋아하는 “속물”이라며 비판했다.
귀국길에 오른 디킨스는 “상상 속 공화국”에 실망하고 “배고픈 40년대”로 신음하는 영국 사회에 더욱 커다란 관심을 보이며 사회 운동에 동참한다. 여성과 아동이 땅속에서 노동하는 걸 금지하는 ‘탄광 노동자 법안’을 지지하며 열정적인 글을 신문에 투고하고, 대여섯 살 어린애를 공장에서 부려먹는 현실에 “철퇴를 내리겠다”고 맹세한다.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페이긴 영감이 은신하던 빈민가와 빈민학교를 찾아간다. 굶주림에 허덕이느라 선악조차 구별할 수 없는 아이들을 보고서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하고 모색한다. 그리고 1843년에 작심하고 불과 보름이란 짧은 시기에 『크리스마스 캐럴』을 집필해서 발표한다. 디킨스는 작품을 집필하는 동안 몇 날 밤이고 캄캄한 런던 거리를 돌아다니며 상상력을 끌어올렸다.
자본주의 병폐를 처절하게 비판하는 책은 놀라운 파문을 일으켰다. 초판 6천 부가 며칠 만에 동나고,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책이 여름철에도 팔려나갔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분위기와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며 디킨스에게 고맙다는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캐럴』은 디킨스에게 엄청난 성공과 동시에 좌절을 안긴다. 호화로운 표지와 금박 장식에 삽화까지 천연색으로 넣어서 독자에겐 책값이 비싸도 그 돈으론 제작비를 충당할 수 없었다. 디킨스는 출판사와 분쟁까지 겪으며 고통스러워하다 결국엔 다른 출판사와 ‘크리스마스 캐럴 2탄’을 쓰기로 계약하고 선금으로 금화 이천팔백 냥을 받아서 낡은 대형마차에 가족을 태우고 이탈리아 제노바로 떠난다.
메리가 사망한 뒤에 디킨스 집으로 들어와서 아이들을 돌보던 막내 처제 조지나는 활달하고 총명한 아가씨인 데다 언니 메리를 신기할 정도로 빼닮았다. 디킨스는 조지나를 “귀염둥이”라고 불렀는데, 아내가 열 번째 아이를 낳고 무기력증에 빠져서 방구석에 틀어박히니, 둘 사이는 더욱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연극도 함께 기획하고, 산책도 함께했다. 조지나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디킨스 집안 살림을 맡았는데, 언니 캐서린이 이혼한 다음에도 디킨스가 임종하는 자리까지 지킨다. 디킨스는 1845년 7월에 가족을 데리고 런던으로 돌아와, 아마추어 연극을 준비한다. 곱슬곱슬하고 까만 수염에 화려한 의상을 차려입고 겁많은 허풍쟁이 군인으로 출연하고, 연극은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켜서 자선공연까지 이어진다. 디킨스는 의상과 배경과 조명과 광고 포스터까지 전담하는 건 물론 무대감독처럼 총연습까지 지휘하고, 이후 10년 동안 간헐적으로 공연하니, 디킨스에겐 불행한 가정생활의 도피처고 기분전환이며 “동료들과 함께 책을 쓰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돌아오는 길에 지나친 스위스가 계속 떠올라, 디킨스는 가족을 데리고 스위스로 건너가서 로잔 호숫가 조용한 집에 머물며 집필에 몰두한다.
서른여덟 살에는 뉴게이트 감옥을 방문한다. 디킨스는 감옥에서 젊은 여성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특히 많은 관심을 보인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부모에게 사랑을 못 받고 어린 나이에 거리를 떠돌다 구렁텅이에 빠지거나 매춘으로 접어드는 악순환을 정확히 이해한다. 후원자를 모아서 런던에 ‘집 없는 여성을 위한 쉼터’를 설립한다. 매춘부와 여성 노숙자에게 일정한 규율 아래 포근한 보금자리를 제공하며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쳐서 사회로 복귀하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마흔을 눈앞에 두고 디킨스는 자신이 살아온 길이 자주 떠오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별다른 보살핌도 못 받고 고생하던 어린 시절”이 유난히 많이 떠올랐다. 구두약 공장에 다니던 굴욕적인 어린 시절을 친구 포스터에게 처음 고백한 것도 이즈음이다. 얼마 뒤에는 사랑하는 누나 ‘프랜시스 엘리자베스’가 결핵으로 사망하자, 디킨스는 자신이 보낸 어린 시절에 더욱 집착한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좋아하는 자전적 작품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쓰기 시작한 거다. 한겨울에 야머스에 가서 광활하게 뻗어 나간 해안을 보고 강렬한 영감도 받는다. 디킨스 자신은 물론 아버지와 어머니, 첫사랑과 결혼, 마흔 평생을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과 느낌과 생각을 모두 정리한다. 작가 자신과 주변을 “사실과 허구로 복잡하게 뒤섞는” 작업에 열정을 얼마나 쏟아부었는지, 나중에 “제일 좋아하는 자식은 ‘데이비드 코퍼필드’”라고 고백한다.
마흔한 살에는 ‘가정 이야기’라는 잡지를 창간하고, 19개월에 걸쳐서 ‘황폐한 집’을 연재해 “내가 쓴 어떤 책보다도 이 책을 좋아하는 독자가 많”을 정도로 환호를 받는다. 1854년에는 런던에서 콜레라가 들끓고, 크림전쟁을 둘러싼 정부 실책은 잇따라 드러나고, 영국 북서부 프레스턴 면공업 지역에서 장기 파업이 일어나니, 디킨스는 사회 문제에 깊이 빠져들다 사장과 노동자 사이를 가로막은 거대한 벽에 몰두한다. 그래서 의회를 “국립 쓰레기장”이라 비판하고, 노동자들이 비참하게 살아가면서도 의리를 지키는 순박함과 인간애에 집착하며 모든 열정을 쏟아부으니, 『어려운 시절』이란 작품이 나온다. 『어려운 시절』은 크게 성공하나 비평가들 역시 크게 당황하니 이 작품은 디킨스 작품 가운데 평가가 가장 엇갈리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우익 정치인 맥컬리는 “기분 나쁜 사회주의”라며 무시하지만, 유명한 비평가 존 러스킨은 디킨스 최대 작품이라고 극찬하며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정독해야 한다고 평가한다. 1870년 6월 8일, 오십구 세 나이로 저택에서 ‘에드윈 드루드의 수수께끼’를 온종일 쓰고 저녁 식사를 하다 쓰러져 다음 날 세상을 떠난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시인의 묘역’에 묻혀 묘비에 다음 같은 글을 새긴다.
“가난하고 고통받고 박해받는 사람을 동정했다. 이 사람이 죽으면서 세상은 영국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를 잃었다.” 디킨스가 세상을 떠났다는 말에 노동자들은 술집에서 “우리 친구가 죽었다”며 울부짖고, 신문과 잡지는 찰스 디킨스 일대기로 도배하고, 한 신문은 부고란에 “디킨스가 발표한 소설은 언제나 화제를 불러모았다. 디킨스가 쓴 소설에는 현실정치와 사건이 그대로 담겼다. 디킨스가 소설에 담아낸 건 소설이 아니라 현실 세계였다”고 적었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에 성공해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하는 나라였다. 디킨스는 번듯한 마차를 타고 저명인사와 교류하면서도 대다수 서민이 진흙탕을 밟고 힘겹게 살아가며 신음하는 소리를 듣고 영국 최고 전성기가 남긴 아픈 그림자를 직시하면서 위대한 작품을 남겼다. 당시에는 다섯 살 어린애가 공장에서 열두 시간씩 일하고 겨우 동전 몇 닢을 손에 쥔 채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잦고, 노동자 평균수명은 겨우 스물여덟 살이었다.
디킨스는 가난한 사람을 깊이 동정하고, 사회적인 악습을 공격하고, 사회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사로 작성하고 소설에 담았다. 칼 맑스가 “정치 현실과 사회현실에 대해 전문 정치인이나 정치 평론가나 학자보다 많은 진실을 말했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초기 소설은 풍자가 강하지만, 후기 소설은 풍자 대신 치밀한 구성과 사회비평이 돋보인다. 디킨스 문학에서 가장 독특한 역할을 한 건 연극이다. 디킨스 자신이 어릴 때부터 연극에 깊이 빠지고, 한때는 연극배우로 살아갈 염원까지 품었다면, 작가로 성공한 다음에는 아마추어 연극에 배우로 참여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총연출까지 맡았다. 원고를 집필할 때는 스스로 다양한 등장인물을 직접 연기하며 캐릭터를 만들어나가니,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를 비롯한 대문호는 물론 수많은 독자가 감탄하는 캐릭터가 나오는 배경이다. 또 하나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사건이나 캐릭터를 중심으로 인물 성격을 잡아나가고, 사회현실을 대변하는 독특한 사건이 신문에 실리면 그 내용을 조사해서 작품에 싣는 식으로 허구를 구성하니, 탁월한 현실감이 작품을 지배하는 배경이라 할 수 있다.
![](https://chedulife.com.au/wp-content/uploads/황폐한-집-1-2-3-1024x551.jpg)
– 작품해설 및 역자 후기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이 한창이었다. 역마차로 인력과 물자를 수송하던 시대는 곳곳에서 건설하는 철도에 밀리기 직전이다. 사회의 근간이 뒤바뀐다. 새로운 지배구조가 부상하고, 계급 갈등이 고조되고, 빈부 격차는 크나큰 사회 문제로 나타난다. 찰스 디킨스는 영국 성공회 분위기에서 성장했으나, 기본적으로 “신자” 혹은 “종교인”이 아니다. 하지만 성서의 가르침을 삶의 지혜로 받아들이고,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려 애쓴다. 그래서 ‘억압하는 세력’을 비판하고 ‘억압받는 자’를 위로한다. 디킨스 작품에 관통하는 정신이며, 디킨스 작품에 등장하는 이상적인 삶이다.
‘황폐한 집’ 역시 기본적으로 인간을 ‘억압하는 제도’를 폭로하는 소설이다. 노아의 홍수는 인간에게서 악을 씻어내나, 그 악은 다시 짙은 안개와 매연으로 영국 전역을 집어삼키고, 대법정을 물들이고, 디킨스는 그 대법정을 처절하게 비판하는 것으로 작품을 시작한다. 여기서 말하는 대법정은 3심제도가 확립된 이후의 대법정이 아니다. 당시 영국은 보통법(Common Law)과 형평법(Equity)으로 이원화됐으며, 보통법은 영주가 성문법으로 국왕의 권한을 제한하는 거라면, 형평법은 성문법 대신 판례와 전통에 근거해서 유언과 신탁(trust)을 판결하는 것으로, 리처드 2세가 대법원을 세우고 대법관을 임명하는 식으로 시작됐다.
그래서 분쟁이 인 재산은 대법원에 묶이고, 판결이 나올 때까지 누구도 손댈 수 없었다. 문제는 법관과 서기와 변호사 등, 재판에 관여하는 모든 인력이 그 비용을 유산에서 충당했다는 사실이다. 이들에게 유산 분쟁은 유일한 수입원이었으며, 따라서 유산이 많으면 재판을 최대한 오래 끄는 식으로 돈벌이에 몰두하니, 재판은 수십 년간 계속되고, 소송 당사자는 막대한 유산이라는 신기루에 시달리다 현실과 괴리된 채 정신병에 걸려서 자살하거나 죽어가기 일쑤였다. ‘황폐한 집’이 나오고 약 20여 년이 지난 1875년에 형평법은 폐지되고 보통법과 합쳐지나, 아직도 영미법에 ‘판례법’이라는 형태로 남아있다. ‘대법정 소송 중이다’는 의미의 ‘in chancery’는 ‘궁지에 빠졌다’는 숙어로 영미권에서 아직도 사용하니, 당시 병폐가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다.
악을 증오하는 인간의 선의는 나쁜 제도를 고치자는 개혁운동으로 나아갈 수도 있고, 이기적 속성을 이겨내고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이타적 유형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황폐한 집’에 등장하는 개혁론자들은 개혁 주장을 밥벌이로 삼고 주변을 희생시키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이기적 속성을 이겨내려고 애쓰는 후자는 개혁론자들을 후원하면서도 그 한계를 지적한다. 1859년 3월 말에 디킨스는 ‘가정 이야기 – Household Words’라는 주간지를 창간한다. 30년대는 ‘피크위크 페이퍼스’와 ‘올리버 트위스트’, 40년대는 ‘골동품 상점’에서 ‘데이비드 코퍼필드’까지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뒤였다. ‘가정 이야기’는 사회 문제를 다양하고 깊이 있게 파악해서 보도하는 게 목적이었다. 디킨스 역시 사회 이슈를 직접 조사하고 취재해서 독자들에게 제공했다. 그러다 1852년 3월부터 1853년 9월까지 19개월에 걸쳐서 ‘가정 이야기’에 ‘황폐한 집’을 연재하니, 당연히 ‘가정 이야기’에서 조사하고 취재한 내용은 새로운 소설의 재료가 될 수밖에 없었다. 팩트에 근거한 픽션이 나오고, ‘황폐한 집’은 본격적인 폭로 소설이 되는 배경이다. ‘버킷’이라는 등장인물 역시 디킨스가 여러 번 인터뷰한 런던 경시청 수사관 ‘Jack Whicher’를, ‘스킴폴’이라는 황당한 인간은 수필가 ‘Leigh Hunt’를 모델로 했다.
재미있는 건 ‘자연 발화’에 대한 디킨스의 입장인데, 당시 과학계는 인간의 몸뚱이가 저절로 타오르는 ‘자연 발화’를 불가능한 현상으로 보았다. 그런데도 디킨스는 작품 중에 “사악한 몸뚱이가 사악한 알코올을 잔뜩 쑤셔 넣다 썩어 문드러지는” 현상으로 묘사하고, 서문에서는 ‘자연 발화’의 다양한 사례를 역설한다. 그래서 ‘사악한 제도’가 썩어 문드러져서 불에 타서 없어지기를 바라는 디킨스의 소망으로 해석하는 평론가도 많다. ‘황폐한 집’은 로맨스 소설이기도 하다. 에스더는 천연두에 걸려서 미모를 잃고 좌절하나, 우드코트는 성실하고 이타적인 삶을 보면서 사랑을 꽃피운다. 에이다는 첫사랑에 모든 것을 바치나, 상대는 미망에 빠져서 고생하다 죽어간다. 데드록 귀부인은 젊을 적 로맨스로 파멸하고, 거피는 자만심에 들뜬 로맨스로 인간의 교만과 허영을 코미디처럼 펼쳐나간다.
‘황폐한 집’은 추리소설이기도 하다. 아니, 최초의 추리소설이다. 그래서 처음 읽을 때는 뭐가 뭔지 파악하기 바쁜데, 두 번째 읽을 때는 전체 그림이 그려지고, 등장인물의 언행이 오밀조밀하게 연결되면서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디킨스는 다른 작품에서 캐릭터를 탁월하게 그려내고 사물을 묘사하는 천재성이 돋보인다면, 이 작품에서는 전체를 파악한 다음에 비로소 각각의 이면에 담긴 의미가 드러나는 성숙한 천재성이 새롭게 가미되는 것이다. 현대 최고의 추리소설가 스티븐 킹이 “가장 좋아하는 책 10선”으로 꼽을 정도다.
작품에는 은유도 가득하다. 하인이 쓴 가발도, 법정에서 재판관과 변호사 등이 쓴 가발도 든 게 없는 머릿속을 숨기려는 것이며, 런던에 가득한 안개와 매연은, 상류층이든 하류층이든, 모두를 평등하게 한다. 진흙탕을 파헤쳐서 고물을 긁어모으는 크룩은 ‘대법관’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그걸 잔뜩 쌓아놓은 고물상은 ‘대법정’으로 불린다. 서류를 잔뜩 만들기만 하고 판결은 않는 대법정이나, 고물을 잔뜩 쌓아놓기만 하는 고물상이나, 사람 가죽을 벗기는 대법관이나 고양이 가죽을 벗기는 크룩이나 비슷한 것이다. 대법정 서류는 하나같이 폐지로 변해서 크룩한테 가고, 그 속에서는 소송을 마무리할 결정적인 단서가 나오는 것도 흥미롭다.
디킨스는 민중의 삶을 피폐하게 하는 법 제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법은 인간이 바람직하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질서를 보장해야지, 착취하고 억압하는 수단으로 쓰이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국에서 그랬듯, 한국에서도 법이 독재정권의 시녀일 때가 있었다. 6·25 때는 법조차 없이 시민과 농민을 잡아다 죽이더니, 군부독재 때 경찰과 검사는 민주인사를 불법연행하고 감금하고 고문하고 사건을 조작해서 감옥에 가두는 공로로 승진하고, 판사는 민주인사를 범죄자로 판결해서 자리를 유지하며 특권을 누렸다. 그렇게 죽이고 조작한 사건을 이제 한국에서도 밝혀야 한다. (조작 사건이 여럿 밝혀지긴 했지만 아직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과거에 조작한 수많은 사건의 진실을, 그로 인해 병들고 죽어간 수많은 인물의 고통을 밝히고 사죄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한국 사회는 진실에 근거한 역사적 정당성이 생겨날 것이다.
– 편집자의 말
번역은 원문에 담긴 내용과 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우리글로 옮기는 과정이어야 한다. 찰스 디킨스 작품은 다양한 인물을 풍자와 유머와 화려한 문장으로 재미있게 묘사하는 특징이 탁월하다. 따라서 문장은 어렵고 복잡한데, 지금까지 번역한 작품은 한글 어법을 무시한 영어 사대주의에다 오역까지 넘쳐서 극히 어렵고 난해했다. 고전문학은 다양한 경쟁과 도전 속에서 독자에게 다양한 즐거움과 감동을 주며 백 년 이상 살아남은 작품이니, ‘재미와 감동’은 물론 ‘술술 읽히는 느낌’ 역시 어느 작품보다 탁월할 수밖에 없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는 기능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훌륭한 작품을 엉터리로 번역해서 독자를 괴롭히며 쫓아낸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인문학은 독서가 시작이다. 고전문학을 제대로 해석해서 한글 어법에 정확히 담아 독자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어야 한다. 그래서 내면세계를 풍요롭게 가꿀 원형을 제시해야 한다. 광복 35년이 지난 다음에 비로소 우리는 ‘일본어 중역 몰아내기 운동’을 했다. 35년이 또 지났다. 이제는 ‘우리말 살리는 번역운동’을 할 때가 왔다. ‘도서출판 비꽃’은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한국어 어법에 합당한 번역을 추구하며, ‘찰스 디킨스 선집’을 필두로 고전문학을 새롭게 담아내, 독자에게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면서 공동체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한다.
○ 추천평
‘영문학의 거장 디킨스! 생명력이 넘쳐흐르는 인물군! – 옥스퍼드 대학
짜임새가 탄탄하고 완성도가 높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 Stephen King
‘영국 중산층의 애환을 그린 ‘영문학의 백미!’ – 톨스토이
‘황폐한 집’은 찰스 디킨스가 발표한 가장 훌륭한 작품 가운데 하나다. – [Britannica]
작가로서는 ‘황폐한 집’의 문학적 기교에 감탄하고, 평론가로서는 뜨겁게 분노하는 디킨스의 사회의식에 감동한다. 하지만 오해하지 마시라, 이 책에는 뜨거운 가슴도 있다. – [INDEPEN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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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