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영화
현기증 : Vertigo
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 주연) 제임스 스튜어트, 킴 노박, 바바라 벨 게데스 / 195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근무하는 형사 존은 범인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동료 경찰이 추락사하는 것을 목격한다. 그 뒤로 심한 고소 공포증을 겪게 되었으며, 형사 퇴직을 하였다. 어느 날 친구 개빈의 부탁으로 개빈의 아내를 감시하게 된 존은 그 부인이 자살 충동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
은퇴한 형사 존 퍼거슨이 옛 친구 개빈 엘스터의 부탁으로, 그의 아내 매들린을 미행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지금의 여러 평론가와 감독들의 극찬과는 달리, 개봉 당시에는 큰 혹평에 시달렸다. 흥행도 실패하여 수익 집계조차 남아있지 않다. 심지어 파라마운트가 재정 악화로 1983년에 판권을 유니버설에 팔아버릴 정도의 영화였는데, 이후에 재평가가 이루어져 지금의 극찬을 받게 된 것이다.
○ 스텝 / 제작
.감독•제작: 앨프리드 히치콕
.각본: 새뮤얼 테일러
.음악: 버나드 허먼
.촬영: 로버트 벅스
.편집: 조지 토마시니
.제작사•배급사: 파라마운트 픽처스
.개봉일: 1958년 5월 9일 (미국)
.시간: 128 분
○ 등장인물
존 “스코티” 퍼거슨 (John “Scottie” Ferguson) – 제임스 스튜어트
매들린 엘스터 (Madeleine Elster) – 킴 노박
밋지 우드 (Midge Wood) – 바바라 벨 게디스
개빈 엘스터 (Gavin Elster) – 톰 헬모어
○ 줄거리
1950년대, 샌프란시스코. 형사 존 퍼거슨은 용의자를 추격하는 중에, 지붕에서 떨어져 죽는 동료 경찰관을 보고 트라우마가 생겨서 고소공포증에 걸린다. 아주 조금이라도 높은 곳에 올라가면 현기증에 걸릴 정도로 중증인지라, 퍼거슨은 형사직을 그만둔다.
그러던 중 옛 친구 개빈을 만나는데, 개빈은 퍼거슨이 전직 형사임을 이유로 자기 아내를 미행해 달라는 부탁을 한다. 퍼거슨은 차라리 탐정을 쓰라며 거절하지만, 개빈은 자기 아내가 유령에 홀린 것 같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선 미행을 통해 상황을 알아보자고 하며 퍼거슨이 미행을 해주기를 부탁한다.
퍼거슨은 개빈의 아내 매들린을 미행하기 시작한다. 매들린을 뒤좇다보니 실제로 매들린이 유령에 홀려 있는 것 같은 여러 상황들을 접한다. 그 와중에 금문교 밑 바닷가에서 물속에 뛰어드는 매들린을 구출하고, 이를 통해 퍼거슨은 매들린과 인연을 맺는다.
퍼거슨은 매들린의 정신병 가능성까지 열어두며 매들린의 증상을 파헤치려고 하나, 문제는 오히려 복잡해져만 가고, 급기야 매들린과 사랑에 빠지기 까지 한다. 퍼거슨은 어떻게든 매들린을 유령 (또는 정신병)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려 최선을 다하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 매들린은 교회 종탑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하고 만다. 퍼거슨은 자신의 고소공포증 때문에 종탑에 제대로 올라가지도 못하고 사랑하는 매들린이 죽는 것을 막지도 못한다.
이때의 충격과 죄책감으로 완전히 폐인이 되어버린 퍼거슨은 한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나온다.
퇴원 후에도 매들린과의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퍼거슨. 그러던 어느 날, 매들린과 외모가 똑같은 주디라는 여자를 만나고, 환상에 사로잡힌 퍼거슨은 다짜고짜 주디와 인연을 맺는다.
그런데 사실 주디는 죽은 줄 알았던 매들린이었다! 애초에 모든 것이 친구 개빈이 꾸민 음모였다. 아내와 똑같은 외모의 주디를 불러와 자기 아내를 연기하게 하면서 유령에 홀린듯한 행동을 하게 하고, 실제 아내는 미리 죽인 다음 종탑에서 떨어트린 것이었다. 물론 주디는 종탑에 올라가는 연기를 한 것이다. 개빈은 아내의 죽음을 꾸며내기 위해서, 퍼거슨을 아내 죽음의 목격자로 이용한 것이었다.
그러나 퍼거슨은 주디가 매들린을 연기했었다는 걸 모르고 만남을 가지고, 주디는 이 모든 음모를 알면서도 만남을 가진다. 그렇게 그 둘은 연인이 된다.
그러나 퍼거슨은 죽은 매들린에 집착해 주디를 자기가 사랑했던 매들린과 똑같은 외모가 되도록 어떻게든 노력하여 매들린의 옷과 헤어스타일을 주디에게 강요한다. 퍼거슨의 집착을 못 견딘 주디는 어쩔수없이 퍼거슨의 부탁을 들어주고 (주디도 퍼거슨을 사랑해서 그러는 것일수도 있다) 과거 자신이 연기했던 매들린처럼 꾸미게 된다.
허나 결국 진실이 밝혀지고, 퍼거슨은 주디를 그 종탑위로 끌고가 왜 그랬냐며 거칠게 추궁한다. 주디는 매서운 퍼거슨의 모습에 당황하고 키스로 퍼거슨의 입을 막으나, 그때 갑자기 나타난 수녀에 놀라 주디는 종탑에서 떨어져 죽는다.
○ 평가와 해설
현재는 히치콕 감독 최고의 걸작이라고 꼽히며, 역대 최고의 영화를 꼽을 때에도 반드시 언급되는 영화 중 하나다. 그 명성에 힘입어 2012년 사이트 앤 사운드 선정 역대 최고의 영화 1위에도 선정되었다.
마틴 스콜세지, 브라이언 드 팔마, 스티븐 스필버그, 장 뤽 고다르 등이 이 영화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으며, 감독들 중에서도 특히 박찬욱이 이 영화의 광팬으로 유명하다. 이 영화를 보고서 영화 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하며, 항상 최고의 영화로 꼽는 것은 물론이요, 자신의 작품에서도 그 영향을 서슴없이 드러낸다.
– 히치콕 감독의 가장 개인적인 영화
트뤼포: 감독님으로서는 ‘현기증’이 좀 실패작이겠군요?
히치콕: 상업적으로는 그런 셈이죠. (침묵) 이게 좀 판단하기 힘든 게, 흥행에서 실패하면 항상 변명하게 되죠. 홍보팀을 비난하게 되는 겁니다.
트뤼포: 감독님은 ‘현기증’을 무척 아끼시는 것 같습니다.
히치콕: 네, 맞아요. 제겐 즐거웠습니다. _ 1962년, 프랑수아 트뤼포와의 인터뷰 中
히치콕은 평생동안 금발 여배우를 선호했다. ‘오명’의 잉그리드 버그만, ‘이창’의 그레이스 켈리 등, 여주인공으로 꼭 금발 여배우를 기용했다. 허나 모두 그 인연을 오래 이어나가지 못하고, 1편씩만 작업하곤 헤어졌다. 히치콕은 이에 대해 많은 상실감을 느꼈다고 한다.
히치콕은 이 감각과 경험을 영화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는 1940년대부터 차근차근 이 영화의 제작을 준비하였고, 그 결과물이 바로 ‘현기증’이었다. 작중 핵심인물인 매들린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로저 이버트는 ‘마들렌’이라는 이름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의 연관성을 추측하였으며, 듀나는 히치콕의 아내와 딸이 모두 안경을 썼다는 것을 근거로, 밋지 우드가 히치콕 가정 내 여성을 의미하는 것이라 해석하기도 했다)
연단위의 노력을 들여 만들어진 ‘현기증’은, 샌프란시스코라는 실제하는 장소를 배경으로 꿈과 환상이 뒤섞인, 형언하기 힘든 매력의 심리극이 되었다. 온갖 편집증과 강박증이 서로 뒤엉켜 있으며, 부분적으로 네크로필리아까지 뒤섞인, 매혹적이고 혼란스러우며 냉정하지만 낭만적인 걸작이 탄생한 것이다.
– 최고의 제작진
히치콕 감독은 의상 전문가 이디스 헤드 의상감독과 많은 논의를 통해 이 영화의 의상을 설정했다. 존 퍼거슨이 학력 좋은 백인 남성이라는 것을 근거로, 이디스 헤드는 당시 지식인 상류층이 즐겨입는 정장을 퍼거슨에게 입혔으며, 금색과 은색이 서로 불협화음이라는 것을 역이용하여, 히치콕 감독은 금발인 매들린의 정장을 은색으로 주문했다. 이런 식으로 의상 하나하나에 많은 공을 들였고, 이 영화를 통해 이디스 헤드는 경력의 정점을 찍었으며, 특히 킴 노박 배우가 입고 나온 옷들은 하나하나가 할리우드의 신화가 되었다.
역시 히치콕 감독과 많은 협업을 한 버나드 허먼 음악감독은 바그너의 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바탕으로 ‘현기증’ 음악을 만들었다. (그 근거로, 트리스탄 화음이 ‘현기증’ 음악에서 나온다) 허먼의 대표작으론 ‘사이코’ 음악이 꼽히나, 허먼 매니아들은 이구동성으로 ‘현기증’의 음악을 최고로 꼽으며 그 완성도와 성취를 높게 평가한다.
전설적인 그래픽 디자이너 솔 바스 (Saul Bass)가 ‘현기증’의 오프닝과 포스터 디자인을 맡았다. 기하학적 형태만으로 표현하는 그의 디자인 스타일은 지금도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데, 당시 1955년 영화 ‘황금팔을 가진 사나이’ (The Man with the Golden Arm)의 포스터 디자인을 맡아 할리우드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때맞춰 히치콕은 그에게 홍보와 오프닝을 맡겼고, ‘현기증’의 내용만큼이나 유명하고 아름다운 포스터를 내놓았다.
참고로, 솔 바스가 만든 오프닝 영상은 그래픽을 활용한 최초의 영상물로 평가된다. 이에 마틴 스콜세지는 솔 바스의 영향에 대해 “영화를 모더니즘의 시대로 이끌었다”고 평했다.
– 현기증 기법과 비스타비전
히치콕 감독은 1940년 ‘레베카’ 촬영 중에 심리 표현에 큰 어려움을 느끼며, 인물의 어지러운 심리를 표현할 영화 기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여러 실험을 통해 마침내 원하던 기법을 얻게 되는데, 현기증 기법 (Vertigo Effect)이라고도 불리는 “트랙아웃 / 줌인 기법 (Track-out/Zoom-in)”이었다.
트랙아웃 / 줌인 기법 (Track-out/Zoom-in)
카메라를 뒤로 빼면서 렌즈를 줌하면 발생하는 영상효과로, 카메라맨 어민 로버츠 (Irmin Roberts)와의 협업을 통해 개발했다. 히치콕 감독은 이 기법을 ‘현기증’ 곳곳에 배치하였다. 헌데 당시 기술로는 카메라의 빠른 움직임이 힘들었고, 영화에 몇 번 등장하지 않는 이 기법을 위해 19,000불을 투입하여 세트와 별개로 미니어처까지 만들어가며 촬영했다.
이 기법은 후대에도 쓰이는데,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에서 프로도 배긴스가 나즈굴이 다가옴을 느낄 때도 이 기법이 쓰였으며, ‘라이프 오브 파이’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역시 이 기법이 쓰였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서는 아예 의도적인 오마주로 기법을 사용했다.
또한 ‘현기증’은 당시 최고의 촬영포멧인 “비스타비전”으로 촬영되었다. 좌우로 긴 시네마스코프와 달리 1.85:1의 화면비를 가진 대형포멧으로, 1950년대 할리우드가 텔레비전의 보급에 대응하기 위해 대형화면 포멧을 만들 때, 시네마스코프와 함께 만들어졌다.
파라마운트 픽처스가 개발한 포멧으로, 필름은 그대로 두고 렌즈만 개조해 좌우를 늘려 대형화면을 만들었던 시네마스코프와 달리, 비스타비전은 35mm 필름을 90도 돌려서 대형화면을 만들었다. 이로 인해 억지로 좌우만 늘린 시네마스코프와 달리, 비스타비전은 대형화면에 걸맞는 괴물 같은 해상도와 심도를 자랑했다.
이 비스타비전으로 히치콕 감독은 ‘현기증’을 촬영했으나, 개봉 당시엔 35mm 필름으로 격하되어 상영했기에 그 화질을 느낄 수 없었다. 1997년 리마스터 작업을 거친 후에 비로소 그 막강한 화질을 뽐내게 되었고, 현존하는 ‘현기증’ 판본은 최신 영화보다도 뛰어난 고화질을 자랑한다.
히치콕 감독의 고해성사 – 로저 이버트
내 인생의 영화, 내 무의식에 자리잡은 영화 – 박찬욱
가장 위대한 유성영화 중 하나 – 장 뤽 고다르
미국의 영화감독 ‘서스펜스의 대가’ 앨프리드 히치콕 (Sir Alfred Hitchcock, 1899 ~ 1980)
알프레드 히치콕 경 (Sir Alfred Hitchcock, KBE, 1899년 8월 13일 ~ 1980년 4월 29일)은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한 영화 감독, 영화 제작자이다. ‘서스펜스의 대가’라는 칭송을 받고 있으며, 그의 영화는 공포 영화 장르가 많다.
– 알프레드 히치콕 (Alfred Hitchcock)
.본명: 앨프리드 조지프 히치콕 (Alfred Joseph Hitchcock)
.출생: 1899년 8월 13일, 잉글랜드 런던 레이턴스톤
.사망: 1980년 4월 29일 (80세), 미국 캘리포니아주 벨에어
.국적: 미국, 영국
.다른 이름: 히치 (Hitch), 서스펜스의 대가
.직업: 영화 감독, 영화 프로듀서
.활동 기간: 1919 ~ 1980년
.배우자: 앨마 리빌 (1926 ~ 1980)
.자녀: 팻 히치콕
.수상: 골든 글로브상, 아카데미상 등
그의 작품은 대부분 죄 없는 사람들이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으며, 이런 영화는 사소한 실수가 불러일으키는 것을 일깨우게 한다. 그는 감독 외에도 제작, 각본, 편집, 미술에 능하였다. 최초의 스타 감독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현기증’, ‘싸이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이창’, ‘오명’ 등이 있다. 대부분의 그의 대표작들은 아카데미상을 한 번도 받지 못하였으며 그의 작품들 중에 작품상을 받은 작품은 ‘레베카’가 유일하다.
○ 생애 및 활동
– 성장 과정
히치콕은 1899년 농산물 가게를 운영하는 부부의 막내아들로 잉글랜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윌리엄 (William)은 어부 출신의 야채상인 조지프 (Joseph)와 일용직 노동자의 딸 앤 머호니 (Anne Mahoney)의 9남매의 자식들 중 한 명이었고 어머니 에마 (Emma)는 경찰관 존 웰런 (John Whelan)의 딸이었다. 히치콕은 1910년부터 스탬퍼드힐 (Stamford Hill)에 있는 예수회 소속 성 이그나티우스 학교에 다니게 되었는데, 이 학교의 엄격한 규율과 그에 따른 체벌은 10대 시절의 히치콕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13년 학교를 마친 히치콕이 아직 뚜렷한 진로를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버지 윌리엄이 1914년 신장염으로 사망했다. 히치콕은 전신회사에서 기술자로 일하게 되었으나 이 직업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상관의 도움으로 광고부로 이직한 히치콕은 영화와 문학에 심취했다. 주로 영국 탐정소설을 읽었지만 미국 작가 에드거 앨런 포에 매료되어, 훗날 자신이 공포영화를 만들게 된 것은 포의 작품을 읽었기 때문이라고 술회했다.
– 영화계 입문
히치콕은 영화사에서 자막을 도안하는 일을 하면서 영화계에 입문하였고, 그곳에서 영화 제작 기술을 익혔다. 1922년 히치콕은 시모어 힉스 (Seymour Hicks)와 함께 공동으로 영화 ‘항상 부인에게 얘기하세요’ (Always Tell Your Wife)를 감독했고, 본격적으로 영화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첫 작품’기쁨의 정원’ (The Pleasure Garden)과 두 번째 영화 ‘마운틴 이글’ (The Mountain Eagle)은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평범한 일상 속에 갑작스럽게 악이 침투한다는 히치콕 특유의 설정을 바탕으로 한 세 번째 영화 ‘하숙인’ (The Lodger)에 이르러서 히치콕은 자신의 독특한 연출 스타일을 탄생시켰다.
영국 영화계에서 주목받는 신인 감독으로 자리잡은 히치콕은 1926년 1월 2일 영화 편집자 앨마 리빌 (Alma Reville)과 결혼했고, 브리티시 인터내셔널 픽처스 (British International Pictures)에 스카웃되었다. 이 회사에서 만든 첫 번째 영화 ‘링’ (The Ring)은 문학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이전의 영화들과는 달리, 히치콕과 엘리엇 스태너드 (Eliot Stannard)가 시나리오를 집필했고 그 외에도 여러가지 실험적인 기법이 도입되었다. ‘링’은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았으나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이후 유성영화의 시대가 열리면서 히치콕은 연극 대본을 원작으로 하는 자신의 영화 ‘협박’ (Blackmail)에서 부분적으로 소리를 집어넣었고, 이 영화는 평단과 관객 양쪽에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히치콕은 영화제작사 측의 ‘무대에서 성공을 거둔 연극작품을 영화화하려는 경향’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부인 앨머와 밸 밸런타인 (Val Valertine)이 공동으로 시나리오를 집필한 ‘부자와 이방인’ (Rich and Strange)과 히치콕 본인이 제작한 영화 ‘캠버 경의 여인들’ (Lord Camber’s Ladies)의 연이은 실패로 히치콕은 브리티시 인터내셔널 픽처스와 결별했다.
– 범죄 스릴러
고먼트 브리티시 (Gaumont-British) 사와 재계약한 히치콕은 자신이 바라던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일련의 범죄 스릴러 영화를 제작할 수 있었다.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 (The Man Who Knew Too Much), ’39계단’, ‘비밀 첩보원’ (Secret Agent), ‘사보타주’ (Sabotage), ‘젊음과 순수’ (Young And Innocent) 등 히치콕의 영국에서 만든 영화 중 대표작들이 이 시기에 발표되었다.
– 미국 진출
30년대 후반 히치콕은 미국 진출을 결정지었고, 1938년 7월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인 미국의 제작자 마이런 셀즈닉 (Myron Selznick)의 동생 데이비드 O. 셀즈닉과 계약했다. 감독들에게 일일이 세세한 부분까지 지시를 내리는 셀즈닉과의 공동 작업은 곧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치콕의 할리우드에서의 첫 영화 ‘레베카’는 아카데미상 작품상, 촬영상을 받으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히치콕은 자신의 장기인 서스펜스 영화 ‘의혹’ (Suspicion), ‘의혹의 그림자’ 외에도 코미디 ‘스미스 부부’ (Mr. & Mrs. Smith), 첩보 영화 ‘파괴 공작원’ (Saboteur) 등 제작자 측의 요구에 따라 다양한 영화를 만들었다. ‘패러딘 부인의 사랑’ (The Paradine Case)을 끝으로 히치콕은 셀즈윅을 떠났다.
– 영화사 설립
제작자로부터 독립해 자신의 영화 제작사 트랜스애틀랜틱 픽처스 (Transatlantic Pictures)를 세운 히치콕은 첫 컬러 영화 ‘로프’ (Rope)를 발표했고, 이어서 ‘염소자리 아래서’ (Under Capricorn)를 만들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영화사는 문을 닫았고 인기 배우를 기용하여 제작한 다음 작품 ‘무대 공포증’ (Stage Fright)도 실패했다. 그러나 이 시기의 히치콕은 주식과 부동산 투자, 각종 방송과 강의에 출연함으로써 부와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히치콕은 신인 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의 판권을 사들여 영화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을 만들어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이 즈음부터 히치콕은 ‘다이얼 M을 돌려라’, ‘이창’, ‘현기증’,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싸이코’, ‘새’ 등 그의 대표작들을 발표했다. 이후에 발표한 ‘찢어진 커튼’ (Torn Curtain), ‘토파즈’ (Topaz)는 이전만큼의 좋은 결과를 거두지 못했으나, 히치콕은 일흔을 넘긴 나이에 다시 메가폰을 잡고 1972년 《프렌지》(Frenzy)를 발표해 흥행했다.
평소 과체중에 음주가 잦았던 히치콕은 점차 건강이 악화되었고, 자신의 마지막 영화 《
‘가족 음모’ (Family Plot)를 발표했다. 그는 차기작을 준비할 생각이었으나 더 이상 기력이 남아있지 않다는 걸 깨닫고 영화일에서 은퇴했다. 1980년 4월 16일 미국 영화연구소 시상식에서 한 연설이 그가 마지막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장면이었다. 같은 해 4월 29일 히치콕은 로스앤젤레스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 영화 기법
프랑수아 트뤼포와의 대담에서 남긴 그의 발언은 그야말로 고전이 되었다. 트뤼포와 대담집 ‘히치콕과의 대화’는 훌륭한 히치콕 영화 해설서다.
“나는 삐걱거리는 문소리로 서스펜스를 자아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두운 거리에서 죽은 고양이와 폐물들이 나뒹구는 것보다, 밝은 대낮에 졸졸 흐르는 냇가에서 일어나는 살인이 더 흥미 있습니다. 서스펜스가 무엇인지 알려드릴게요. 네 사람이 포커를 치러 방에 들어갑니다. 갑자기 폭탄이 터져 네 사람 모두 뼈도 못 추리게 됩니다. 이럴 경우 관객은 단지 놀랄 뿐이죠. 그러나 나는 네 사람이 포커를 하러 들어가기 전에, 먼저 한 남자가 포커판이 벌어지는 탁자 밑에 폭탄을 장치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네 사람은 의자에 앉아 포커를 하고, 시한폭탄의 초침은 폭발시간이 다 되어갑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똑같은 무의미한 대화도 관객의 주의를 끌 수 있는 것이죠. 관객은 ‘지금 사소한 얘기를 할 때가 아니야. 조금 있으면 폭탄이 터질 거란 말이야’ 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 되니까요. 폭탄이 터지기 직전 게임이 끝나고 일어서려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말하죠. ‘차나 한잔 하지.’ 바로 이 순간 관객의 조바심은 폭발 직전이 됩니다. 이때 느끼는 감정이 ‘서스펜스’라는 겁니다.”
빈틈없고 재빠른 영화 촬영도 히치콕의 특징 중 하나. 히치콕은 영화 촬영 전에 영화 전체를 콘티로 만든 후, 콘티와 단 하나의 차이도 없이 영화를 만들었으며, 때문에 현장에서의 수정 같은 게 없어 영화 촬영이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런 촬영은 배우들은 철저히 감독의 부품이 되어야 하는 식이라 배우들에 따라선 불만을 가지기도 했다.
– 맥거핀
히치콕의 영화에는 맥거핀이라는 요소가 자주 등장한다. 맥거핀이란 영화의 플롯 진행에 있어서 특정한 내용이나 인물에 관해 관객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내용상 무언가 중요한 것임을 암시하지만 실상은 플롯의 진행에 있어 아무런 관련성도 없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히치콕은 맥거핀을 관객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하나의 방법으로 사용하였다.
트뤼포는 히치콕에서 맥거핀에 대해 질문했고 이에 대해 히치콕이 든 예는 오명에서의 와인병이었다. 히치콕은 맥거핀이란 관객과 등장인물들의 관심을 끄는 그 무엇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레이터인 감독의 관심 밖에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와인병에 든 우라늄 가루’는 원자폭탄을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설명을 덧붙인다. 맥거핀에 대한 일화로 히치콕은 트뤼포에게 ‘오명’ (Notorious)의 일화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히치콕은 제작자들을 상대로 맥거핀이 되는 우라늄 가루에 대해 설득하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고 성토했다. 프로듀서들은 원자폭탄을 만드는 물질이 왜 사랑이야기에 들어가야 하는지 전혀 납득하지 못했다. 결국 ‘오명’의 시나리오는 대부분의 프로듀서들로부터 거절됐고 히치콕은 이 영화의 제작과 맥거핀을 고집하기 위해 스스로 나서서 제작비를 충원했다. 맥거핀에 대한 히치콕의 신념은 확고했다. 맥거핀은 관객이 중심이 되는 히치콕의 영화에서 관객을 통제하는 장치였다. 따라서 극의 서스펜스를 위해서 맥거핀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에서 첩보활동을 위해 나치 비밀조직의 수장 알렉스 세바스찬과 결혼까지 불사한 알리시아는 안주인으로서 세바스찬의 집으로 들어가 살게 된다. 그녀는 저택의 거실 장식장에 있던 와인병 하나를 두고 나치 조직원들끼리 냉랭한 기류가 형성되는 것을 눈치챈다. 이 와인병은 그들 사이에서도 일급비밀인 중대한 것으로 보인다.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데블린은 알리시아와 함께 와인창고로 들어가기로 한다. 그는 알리시아에게 세바스찬이 결혼 축하파티를 열도록 청하라고 종용한다. 파티 당일, 세바스찬의 결혼기념 파티에 초대되어 온 데블린은 알리시아와 함께 지하창고에 잠입해 와인병을 찾는다. 그는 실수로 와인병 하나를 깨뜨리고 안에 들어있던 검은 색 모래입자들은 바닥에 쏟아진다. 숨막힐 듯 조여오는 서스펜스의 순간. 두 사람이 우라늄 가루와 병조각의 흔적을 치우는 동안 세바스찬은 하인을 데리고 파티에 쓸 술을 가지러 지하창고로 내려간다. 이 일로 세바스찬은 알리시아가 나치조직의 비밀을 캐기 위해 위장 결혼한 미국의스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는 어머니에게 아내의 처분을 두고 의논하고 결국 두 사람은 작당해서 알리시아를 독살하기로 한다.
이렇게 검정색 가루가 든 와인병은 사건이 진행되는 모터의 역할을 한다. 관객에게 관심사는 데블린과 알리시아의 불가능해보이는 사랑의 감정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있다. 관객은 와인병에 호기심을 기울이게 되고 나중에 와인병이 깨져 버리면서 사건은 더 발전하지만, 중요한 점은 관객은 더 이상 와인병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된다. 와인병은 깨어져 관심을 끈 순간, 그것으로 본래 임무를 완수한 것이다. ‘원자폭탄을 제조하는 데 꼭 필요한 우라늄 입자가 든 와인병’ 은 나치의 구체적인 계획과 미국의 첩보활동이라는 서브 테마에 관심을 두게 유도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와인병은 이야기를 진전시키고 중간에 사라져버리는 맥거핀이라 할 수 있다.
1958년에 만들어져 큰 성공을 거둔 작품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서 맥거핀은 두 가지가 있다. 그것들은 관객과 등장인물들의 주의를 끄는 사람과 사물로 나타난다. 주인공 로저 O. 쏜힐 (캐리 그란트)은 악당들로부터 아무 잘못없이 캐플란으로 오인이 되어버린다. 쏜힐은 캐플란이 과연 누구인가를 알아내기 위해 유엔빌딩으로 가게 된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살인누명까지 쓰게 되고 도주자 신분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는 미국을 횡단하며 갖은 모험을 겪게 된다. 그런데 쏜힐의 도주라는 사건의 발단이 되는 ‘캐플란’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다. 조직내에서 일명 ‘교수’라 불리는 CIA 요원은 회의중 반담이라는 악당의 조직에 잠입시킨 요원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지어낸 인물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캐플란이 맥거핀이었다는 사실은 영화 시작 45분이 경과한 후 간단하게 밝혀진다. 관객은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는 쏜힐이 캐플란을 만나기 위해 기차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 서스펜스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기차안에서 만난 이브 캔달이라는 묘령의 여인의 도움을 받아 경찰과 반담무리들의 눈을 속인다. 이브는 쏜힐에게 캐플란의 전언이라면서 황야 한 가운데로 가서 기다리라고 한다. 그러면 캐플란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캐플란을 쏜힐은 결코 만날 수 없다.
이 영화에서 사용된 또 하나의 맥거핀은 손에 들 수 있는 작은 고대 조각상이다. 이것은 이브가 반담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빼앗아서 도주하는 물건으로 나온다. 하지만 반담이 경매장에서 낙찰받은 고가의 유물로만 나올 뿐, 구체적으로는 언급되지 않는다. 러쉬모어산으로 도주한 이브와 쏜힐은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까지도 조각상을 악당들에게 넘겨 주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조각상이 땅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는 순간 관객은 그 안에 마이크로 필름조각이 들어있는 것을 보지만 그것은 잠시 화면에 잡힐 뿐이다.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것이 기밀정보를 담은 것이라는 암시에 그칠 뿐 그 내용에 대해서 히치콕은 영화에서 전혀 다루지 않는다. 쏜힐은 이브를, 이브는 이 조각상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다는 사실 자체는 서스펜스를 낚는 미끼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 카메오 출연
히치콕의 영화는 또한 감독 자신이 영화 속 어딘가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유명하며, 그것을 찾는 것 또한 한 재미가 된다. 영화의 등장방법은 지나가는 행인등이나 때로는 영화속 신문기사에 등장하기도 한다.
○ 작품 목록
히치콕은 타이틀 디자이너로 영화계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으며 1925년 ‘프리주어 가든’으로 영화감독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후 ‘현기증’, ‘싸이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등의 영화를 감독하였다.
– 무성 영화 시기
1923 〈Number 13〉, 〈Always Tell Your Wife〉
1925 〈The Pleasure Garden〉
1926 〈The Mountain Eagle〉, The Lodger (하숙인)
1927 〈Downhill〉, 〈Easy Virtue〉, 〈The Ring〉
1928 〈The Farmer’s Wife (농부의 아내)〉, 〈Champagne〉
1929 〈The Manxman〉
– 유성 영화 시기
1929 〈Blackmail (협박)〉
1930 〈Murder! (살인)〉, 〈Juno and the Paycock〉, 〈Elstree Calling〉
1931 〈The Skin Game (스킨 게임)〉, 〈Rich and Strange (리치 앤 스트레인지)〉, 〈Mary〉
1932 〈Number Seventeen (17번지)〉
1934 〈Waltzes from Vienna〉, 〈The Man Who Knew Too Much (나는 비밀을 안다)〉
1935 〈The 39 Steps (39계단)〉
1936 〈Sabotage (사보타주)〉
1936 〈Secret Agent (비밀 첩보원)〉
1937 〈Young and Innocent (젊음과 순수)〉
1938 〈The Lady Vanishes (사라진 여인 / 반드리카 초특급)〉
1939 〈Jamaica Inn (자마이카 인/암굴의 야수)〉
– 할리우드 흑백 시기
1940 〈Rebecca (레베카)〉, 〈Foreign Correspondent (해외 특파원)〉
1941 〈Mr. & Mrs. Smith (스미스 부부)〉, 〈Suspicion (의혹)〉
1942 〈Saboteur (파괴공작원)〉
1943 〈Shadow of a Doubt (의혹의 그림자)〉
1944 〈Lifeboat (구명 보트)〉, 〈The Fighting Generation〉
1945 〈Spellbound (스펠바운드)〉
1946 〈Notorious (오명)〉
1948 〈The Paradine Case (패러다인 부인의 재판)〉
– 컬러 시기
1948 〈Rope (로프)〉
1949 〈Under Capricorn (염소좌 아래 / 염소자리)〉
1950 〈Stage Fright (무대 공포증)〉
1951 〈Strangers on a Train (열차 안의 낮선 자들 / (히치콕의) 스트레인저)〉
1953 〈I Confess (나는 고백한다)〉
1954 〈Dial M for Murder (다이얼 M을 돌려라)〉, 〈Rear Window (이창)〉
1955 〈To Catch a Thief (나는 결백하다)〉, 〈The Trouble with Harry (해리의 소동)〉
1956 〈The Man Who Knew Too Much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 The Wrong Man (누명 쓴 사나이 / 오인)
1958 〈Vertigo (현기증)〉
1959 〈North by Northwest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1960 〈Psycho (싸이코)〉
1963 〈The Birds (새)〉
1964 〈Marnie (마니)〉
1966 〈Torn Curtain (찢어진 커튼)〉
1969 〈Topaz (황옥 / 암호명 토파즈)〉
1972 〈Frenzy (프렌지)〉
1976 〈Family Plot (가족 음모)〉
○ TV드라마 사회
히치콕 감독은 ‘히치콕 극장’ 시리즈 (Alfred Hitchcock Present, 1955 ~ 1961년)의 사회,작품의 원작과 주제선정,감수를 맡았는데, 이 프로그램은 1958년 그 해의 최고 방송 시리즈로서 골든 글로브상을 받았다. 후에 드라마의 인기가 높아지자 1961년부터 방영 시간이 30분에서 한시간으로 늘어났다. 제목도 ‘Alfred Hitchcock Hour’로 바뀌었다. 영화업계가 새로운 매체인 TV와의 경쟁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을 때, 히치콕은 TV시리즈에 출연함으로써 자신의 인기를 높이고 이름을 알렸다.
○ 추리소설 잡지 창간
히치콕 감독은 1956년 12월 추리소설 잡지 ‘앨프리드 히치콕 미스터리 매거진’ (Alfred Hitchcock Mystery)를 창간했다 (실제로 히치콕 감독은 잡지의 편집 등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으며 단순히 이름과 초상권을 대여해준 것 뿐이었지만 이 잡지로 인해 그는 연간 1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초기에는 콘텐츠가 평범해서 금방 사라질 것으로 보았으나, 우수작가들의 참여로 콘텐츠의 수준이 높아지고, 대중들에게 작품성을 인정받으면서 꾸준히 간행되고 있다.
1997년에는 코지 (Cozy) 장르 (한정된 공간에서 범죄가 벌어지는 설정의 미국 추리소설장르, 하드보일드에 상대되는 용어)의 ‘누가 머피 부인의 차우더에 독을 넣었는가?’ (Who Put The Poison In Mrs.Murphy’s Chowder?)를 선보이기도 했다.
○ 서훈
1980년 대영 제국 훈장 2등급 (KBE, 작위급 훈장)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