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8년 3월 21일, 프랑스의 수학자 · 물리학자 조제프 푸리에 (Jean-Baptiste Joseph Fourier, 1768 ~ 1830) 출생
장바티스트 조제프 푸리에 남작 (Jean-Baptiste Joseph Fourier IPA, 1768년 3월 21일 ~ 1830년 5월 16일)은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이다.

– 조제프 푸리에 (Jean-Baptiste Joseph Fourier)
.출생: 1768년 3월 21일, 프랑스 왕국 오세르
.사망: 1830년 5월 16일 (62세), 프랑스 왕국 파리
.국적: 프랑스
.분야: 수학, 물리학
.소속: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 에콜 폴리테크니크
.출신 대학: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
.저서: The Analytical Theory of Heat
.부모: 에드미 제르맹 레베끄, 조셉 푸리에
.지도 교수: 조제프루이 라그랑주
.지도 학생: 페터 구스타프 르죈 디리클레, 조반니 플라나 (이: Giovanni Plana)
.주요 업적: 푸리에 급수, 푸리에 변환
고체 내에서의 열전도에 관한 연구로 열전도 방정식 (푸리에 방정식)을 유도하였으며, 이 방정식을 풀기 위해서 푸리에 해석으로 불리는 이론을 전개했다. 푸리에 해석은 복잡한 주기함수를 보다 간단하게 기술기 위해, 소리나 빛 등 파동의 연구에 넓게 이용되며 현재 조화 해석이라고 하는 수학의 한 분야를 형성하고 있다.
이 외에도 방정식론이나 방정식의 수치 해법을 연구했으며, 차원 해석의 창시자로 여겨지기도 한다. 또 통계국에 근무할 당시의 경험을 토대로 확률론이나 오차론의 연구도 실시했다.

○ 생애 및 활동
푸리에는 9살에 고아가 되었는데, 후견인이 베네틱트 수도회가 운영하는 군사학교에 조제프를 다니게 했다. 거기에서 수학에 강한 흥미를 갖게 된 푸리에는 16살에 또래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공식 직위를 얻기도 했다. 이 학교를 졸업한 뒤의 진로는 군대 장교로 가거나 수도원으로 가는 것 중 하나였는데, 르장드르라는 수학자의 추천에도 불구하고 국방장관이 귀족이 아닌 푸리에가 군대로 가는 것을 불허하면서, 1787년 수도원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
프랑스 혁명이 나면서 푸리에의 인생은 크게 달라진다. 오세르의 군중에 했던 연설이 주목을 받으면서 오세르 민중회의의 의장까지 된다. 그러나 푸리에는 폭력적인 일에 전혀 연루되지 않았다. 로베스피에르가 실각한 뒤에도 시민들이 푸리에의 석방을 강하게 요구하면서 처형을 면하기도 했다.
26살에 막 생긴 사범학교 (École normale de l’an III)에 입학했는데, 이 학교는 불과 4개월밖에 지속되지 않았지만, 푸리에에게 수학을 가르친 사람은 조제프-루이 라그랑주, 가스파르 몽주, 피에르드시몽 라플라스였다.
자코뱅이 약해지면서 푸리에는 다시 감옥에 가게 되었는데, 라그랑주와 몽주가 힘을 써서 다시 석방된 뒤 몽주가 운영하던 학교 (l’École centrale des travaux publics)에 가서 수학을 가르치게 된다. 1795년 몽주의 ‘중앙학교’의 후신으로 ‘에콜 폴리테크닉 (l’École polytechnique)’이 설립되면서 푸리에는 몽주나 라그랑주와 더불어 이 새로운 학교에서 화법기하학과 해석학 (미적분학)을 가르치게 된다.
에콜 폴리테크닉은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이공계 대학이다. 이 학교 졸업생들 중에는 군대에 장교로 가는 경우도 많았지만, 동시에 수학과 물리학이 교육과정에서 크게 강조되었다. 사관학교와 최고의 공과대학을 합해 놓은 셈이다. 이 학교 졸업생들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업적을 내면서 프랑스에서 엘리트 학교로 정립되었다. 19세기 동안에도 에콜 폴리테크닉 출신들은 정계와 학계에 널리 진출하여 프랑스의 엘리트주의를 만드는 데 악명 높은 기여를 했다. 노벨상 수상자가 세 명 있고, 푸와송, 코시, 앙리 푸앵카레 같은 수학자나 코리올리, 카르노, 게-뤼삭, 르샤틀리에 같은 과학자뿐 아니라 오귀스트 콩트 같은 철학자도 이 학교 출신이다.
푸리에는 바로 그런 학교를 설립한 주요 인물 중 하나이다.
나폴레옹이 1798년에 이집트 원정을 갈 때 외교관 자격으로 동행했는데, 1802년 프랑스로 되돌아 와서 에콜 폴리테크닉 교수직을 다시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나폴레옹이 푸리에를 그르노블의 총독에 임명해 버린다. 천상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였던 푸리에는 마지 못해 그르노블로 가지만, 여기에서 독감에 걸리고 이것은 평생 지병으로 남아 결국 죽음의 원인이 된다. 이집트에서 5년 동안 적응했던 몸이 춥고 습한 곳으로 가는 바람에 감기로 고생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1822년에 푸리에가 그의 평생의 업적인 “열의 해석학적 이론 (Théorie analytique de la chaleur)”을 출간했는데, 사람들은 감기와 독감으로 늘 고생했던 푸리에가 열의 전달과 속성을 이해하는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 푸리에의 법칙과 열전도 방정식
어떤 고체 안의 온도분포는 어떠한 방정식으로 나타내질까하는 문제의 답이 푸리에가 유도해낸 열전도 방정식 (열방정식이나 푸리에의 방정식등이라고도 불린다 )이다.
푸리에는 “각 점에서 열이 이동하는 속도는 그 점의 온도의 기울기에 비례한다” (푸리에의 법칙)는 사실을 밝혔다.
이에 따르면 특정 시각, 특정 영역에 있는 열량은 그 영역에 들어온 열과 나간 열의 차이로 나타낼 수 있다.
또, 열량과 비열 · 온도의 관계식으로 부터 열량을 나타낼 수도 있다.
푸리에는 이러한 관계식을 이용해 열전도 방정식을 유도하여 다양한 경계 조건에서 열 분포를 구해냈다.
○ 푸리에 해석
어느 유한구간에서 정의된 함수를 삼각함수의 급수로 나타내는 것을 푸리에 전개라고 하며, 이것을 무한 구간으로 확장한 것을 푸리에 변환이라 한다.
푸리에 해석이란 푸리에 전개나 푸리에 변환을 이용해 함수를 해석하는 것, 특히 함수를 주파수성분 으로 분해해 조사하는 것이다.
푸리에는 저서 ‘열의 해석적 이론’에 “임의의 함수는, 삼각함수의 급수로 나타낼 수 있다” (푸리에의 정리)라고 주장했다. 이 정리의 증명은 불충분한 것이었지만, 후에 많은 수학자들에 의해서 엄밀하게 증명되었다.
푸리에 해석은 거의 모든함수가 주기함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고 하는 역설성으로부터 많은 수학자들의 주목을 받아 “거의 모든”의 범위나 “나타낼 수 있다”라고 하는 근거를 둘러싼 논의가 19세기의 해석학을 방향 지었다. 후의 리만의 적분론이나 게오르크 칸토어의 집합론도 이에 관한 연구로부터 태어나게 된다.

○ Works
Théorie analitique de la chaleur, 1888
“Sur l’usage du théorème de Descartes dans la recherche des limites des racines”. Bulletin des Sciences, Par la Société Philomatique de Paris: 156–165. 1820.
Théorie analytique de la chaleur (in French). Paris: Firmin Didot Père et Fils. 1822.
Théorie analitique de la chaleur (in French). Vol. 1. Paris: Gauthier-Villars. 1888.
“Remarques Générales Sur Les Températures Du Globe Terrestre Et Des Espaces Planétaires”. Annales de Chimie et de Physique. 27: 136–167. 1824a.
Gay-Lussac, Joseph Louis; Arago, François, eds. (1824b). “Resume theorique des Proprietes de la chaleur rayonette”. Annales de Chimie et de Physique. Paris. 27: 236–281.
Mémoire sur la température du globe terrestre et des espaces planétaires. Vol. 7. Mémoires de l’Académie Royale des Sciences. 1827a. p. 569–604. Translation by W M Connolley
Mémoire sur la distinction des racines imaginaires, et sur l’application des théorèmes d’analyse algébrique aux équations transcendantes qui dépendant de la théorie de la chaleur. Vol. 7. Memoirs of the Royal Academy of Sciences of the Institut de France. 1827b. p. 605–624.
Analyse des équations déterminées. Vol. 10. Firmin Didot frères. 1827c. pp. 119–146.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011-09-30. Retrieved 2011-04-20.
Remarques générales sur l’application du principe de l’analyse algébrique aux équations transcendantes. Vol. 10. Paris: Memoirs of the Royal Academy of Sciences of the Institut de France. 1827d. p. 119–146.
Mémoire d’analyse sur le mouvement de la chaleur dans les fluides. Vol. 12. Paris: Memoirs of the Royal Academy of Sciences of the Institut de France. 1833. p. 507–530.
Rapport sur les tontines. Vol. 5. Paris: Memoirs of the Royal Academy of Sciences of the Institut de France. 1821. p. 26–43.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