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영화
알렉산더 : Alexander
감독) 올리버 스톤 / 주연) 콜린 패럴, 안젤리나 졸리, 발 킬머, 재러드 레토, 로사리오 도슨, 앤서니 홉킨스 / 2004년
알렉산더 (Alexander)는 2004년 개봉한 미국 영화이다. 마케도니아 왕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생애를 그리는 영화이다.
– 그토록 원대했던 젊은 그의 꿈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역사의 판도를 바꾼 위대한 정복자!
술주정뱅이인 아버지이자 마케도니아의 왕인 필립, 그와 왕비는 서로 저주를 퍼부으며 증오한다. 그 사이에서 위대한 영웅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알렉산더는 세계를 하나의 제국으로 통일하는 원대한 꿈을 꾸며, 20세에 왕위에 오르게 된다. 이후 13년만에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3개의 대륙을 정복해 대제국을 건설하고, 헬레니즘 문화를 형성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 33세 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그의 짧지만 화려하고 무모하면서도 용감한 그의 인생이 펼쳐진다.
올리버 스톤의 <알렉산더>는 대군을 이끌고 막강한 페르시가 군에 대항해 싸웠던 역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콜린 파렐)의 이야기를 그린 서사 대작이다. 알렉산더 대왕은 단 8년 만에 페르시아 영토를 모두 점령하고, 33세 죽음의 순간까지 거침없는 정복과 승리를 이루어 왔으며,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영화 <알렉산더>는 젊은 지도자의 거침없고 가열찬 패기와 야망을 화려한 영상으로 표현한 동시에 부왕(발 킬머)으로부터 진정으로 인정받고 싶었으며, 권력욕에 휩싸인 어머니(안젤리나 졸리)와의 역사적 갈등을 통해 대왕의 인간적인 면까지 담고 있다.
알렉산더 대왕의 비범한 여정은 그가 페르시아의 통치 아래있던 서아시아를 정복하기 위해 마케도니아를 떠나면서부터 시작된다. 알렉산더 대왕의 군사들은 강력한 페르시아 군과 대적해 도저히 믿기 힘든 승리를 이끌어 낸다. 유럽의 다른 제국들이 히말라야 산맥을 넘는 원정은 엄두도 내지 못했던 그 시대에, 알렉산더 대왕은 최초로 미지의 세계였던 중앙아시아 지역까지 제국을 확장 시켰으며, 그의 정복은 인도로 까지 이어졌다. 알렉산더 대왕은 자신의 군대를 사막과 산, 정글까지 사정없이 밀어붙였고, 전쟁사에서 전무후무한 무패의 전적을 세우며 그에게 대항하는 모든 제국을 정복했다.
<알렉산더>는 야망과 꿈으로 불타 올랐던 알렉산더 대왕의 젊은 시절에서부터 광대한 제국의 통치자로써의 활약상과 의문의 외로운 죽음을 맞이한 순간까지 연대기적으로 그리고 있는 동시에, ‘운명은 용기있는 자를 선택한다’는 역사적 평가를 입증하듯 젊은 나이에 전 세계의 통일을 이룩한 신화가 된 정복자의 삶을 스펙터클하게 그리고 있다.
○ 제작 / 출연
– 제작진
.감독: 올리버 스톤
.제작: 토머스 쉴리, 존 킬릭, 이언 스미스, 모리츠 보먼
.각본: 올리버 스톤, 크리스토퍼 카일, 레이타 캘로그리디스
.출연: 콜린 패럴, 안젤리나 졸리, 발 킬머, 재러드 레토, 로사리오 도슨, 앤서니 홉킨스
.촬영: 로드리고 프리에토
.편집: 토머스 J. 노드버그, 얀 에르베, 앨릭스 마케즈
.음악: 방겔리스
.배급사: 콘스탄틴 필름
.개봉일: 2004년 1월 24일
– 출연진
콜린 패럴 – 알렉산더 대왕(알렉산드로스 대왕)
앤서니 홉킨스 – 늙은 프톨레마이오스
안젤리나 졸리 – 올림피아스
발 킬머 – 필리포스
제러드 레토 – 헤파이스티온
로사리오 도슨 – 록사네
크리스토퍼 플러머 – 아리스토텔레스
○ 주요 인물 소개
– 알렉산더: 복합적인 인물로 영화의 전개를 드라마틱하게 만드는 주인공으로 야망을 품고 밀어붙이려는 소신을 보여준는데 그에 대한 집착이 심한 나머지 여러 사람들과 심한 갈등을 빚으며 원정을 중단하고 돌아온 후에도 함대를 꾸려서 재정복길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배우는 콜린 파렐.
– 올림피아스: 알렉산더의 어머니. 남편에 대한 증오심과 경멸이 심하고 아들을 큰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야심이 남달라 알렉산더와 갈등을 빚는다. 뱀을 무척 좋아하고 기괴한 모습들을 많이 보여 광기 어린 마녀 같은 느낌이 난다. 배우는 안젤리나 졸리.
– 필리포스: 알렉산더의 아버지이자 선대 왕. 작중에서는 필립이라고 나온다. 주정뱅이에 호색한으로 포악하고 권위적인 성격까지 가지고 있어 가부장적인 가장 같은 느낌이 나고 그 때문에 아내 올림피아스와는 상당히 사이가 나쁘지만 그래도 아들과는 크게 다투다가도 부자의 정을 나누는 모습을 보인다. 배우는 발 킬머.
– 프톨레미: 알렉산더의 심복이었지만 사후 제국이 분열되는 과정에서 이집트를 통치하게 된다. 배우는 안소니 홉킨
– 헤파이스티온: 배우는 자레드 레토. 알렉산더의 충성스러운 심복으로 책사와 같은 위치에 있으며 동성연인 같은 느낌의 수하다. 작중에서 알렉산더와 가까운 인물 중 가장 충성심과 지혜가 나은 사람으로 보여진다. 당장 필리포스가 살해된 현장에서 곧바로 알렉산더의 손을 들며 알렉산더가 새로운 대왕이라고 외치는 장면부터가 알렉산더에 대한 충성과 애정이 있어 보이는데 당시 알렉산더는 공식적으로 즉위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고 왕이 죽은 자리에서 후계자라는 이유로 그렇게 한 것이었다.
– 록산느: 알렉산더의 부인. 마케도니아 그리스인이 아닌 이방인 출신이어서 혈통 조건을 충족 시키지 못 하는데다가 아이까지 갖지 못 해서 작중에서 신하들이 심하게 반발하여 알렉산더를 매우 힘들게 했고 알렉산더가 부하들을 휘어잡지 못 하는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가 된다. 전략적 차원에서 한 결혼인 것으로 보인다. 배우는 로사리오 도슨.
– 카산드로스: 알렉산더의 최측근 중 하나. 실제 역사에서는 원정에 참여하지 않았으나 여기서는 전쟁의 주역 중 하나로 그려진다. 배우는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
○ 줄거리
BC 356년 마케도니아의 전쟁영웅이자 왕인 ‘필립’ (발 킬머)과 왕비 ‘올림피아’ (안젤리나 졸리) 사이에서 태어난 알렉산더 (콜린 파렐)는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스스로 살아나야 했다.
어릴적 알렉산더는 아버지 필립 왕이 이민족의 피가 섞인 어머니 올림피아를 구박하며 자주 싸우는 환경에서 자란다.
이에 어머니는 아버지의 구박에 한이 맺혀 알렉산더를 왕위 계승자로 만들기 위해 쉴 틈 없이 그의 삶에 간섭한다.
여기에 더해 아버지마저도 알렉산더를 반쯤 불신하는 눈으로 바라본다.
어느날 아버지가 암살당하고 왕이 된 알렉산더 (콜린 파렐)는 곧장 동방정벌에 나서더니 페르시아, 서아시아, 인도로 강행군한다.
군대가 지쳤음에도 알렉산더는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동서의 융합을 꿈꾸었던 이상주의자 알렉산더는 병과 술에 취해 젊은 날의 권좌를 뒤로 한 채 33세의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둔다.
○ 언론소개
영화 ‘알렉산더’ “알렉산더 대왕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 콜린 파렐, 안젤리나 졸리, 발 킬머 주연”
2004년 12월 31일 개봉된 올리버 스톤 감독의 <알렉산더(Alexander)>는 출연진으로 콜린 파렐, 안소니 홉킨스, 안젤리나 졸리, 발 킬머, 자레드 레토 주연, 데이빗 베델라, 제시 캄, 코너 파올로 조연, 평점 정보로 네티즌 평점 6.98, 누적관객수 1,310,651명을 기록한 175분 분량의 전쟁영화다. 2015년 9월 17일 재개봉되기도 했다.
네이버 영화가 소개하는 영화 <알렉산더>의 줄거리를 알아보자.
“그토록 원대했던 젊은 그의 꿈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역사의 판도를 바꾼 위대한 정복자!”
술주정뱅이인 아버지이자 마케도니아의 왕인 필립, 그와 왕비는 서로 저주를 퍼부으며 증오한다. 그 사이에서 위대한 영웅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알렉산더는 세계를 하나의 제국으로 통일하는 원대한 꿈을 꾸며, 20세에 왕위에 오르게 된다. 이후 13년 만에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3개의 대륙을 정복해 대제국을 건설하고, 헬레니즘 문화를 형성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 33세 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그의 짧지만 화려하고 무모하면서도 용감한 그의 인생이 펼쳐진다.
한편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은 마게도냐의 왕으로서 필립 2세와 에피로테의 공주 올림피아스 사이에서 태어난(B.C. 356년) 헬라 제국의 창건자다. 그는 부친 사후 20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라(B.C. 336년) 당시 맹위를 떨치던 바사(페르시아) 제국에 대항하는 세력의 지도자가 되었다.
알렉산더 대왕은 B.C. 334년 헬라군을 이끌고 동방 원정길에 오른다. 그는 먼저 헬레스폰트를 지나 소아시아로 진군해 그라니쿠스 강가에서 바사 군을 무찌르고, 계속해서 잇수스에서도 바사 군을 격퇴시킨다. 곧이어 남쪽으로 방향을 돌려 수리아 해안을 따라 이집트로 진군하여 큰 어려움 없이 이집트를 접수한 후에 그곳에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하였고, 바사의 다리우스 군대를 물리친 알렉산더는 자신을 다리우스의 후계자로 자처하며 바사의 새로운 통치자로 천명하게 된다.
그는 바사 제국의 체제는 그대로 접수하되, 정복지마다 헬라화된 도시들을 건설하면서 동시에 정복지의 문화와 인종을 혼합시키는 정책을 펼치게 된다.
그는 바벨론과 수사와 바사의 수도 페르세폴리스를 함락시켰으며, 다시 군대를 동쪽으로 진군시켜 중앙아시아와 인도까지 진격하여 제국의 영토를 크게 넓혔다.
영화를 본 한 관람객은 다음과 같은 리뷰를 남겼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결말까지 영웅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역사책도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서 지루해지기도 하고, 때론 어느 소설책보다 재밌고 감동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가 역사책 같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적인 고증을 바탕으로 제작된 것은 사실입니다. 너무 사실에 치중한 영화에서 느껴지는 중압감 때문에 객석을 관객에서 끌어내린다는 평을 보았습니다. 사실입니다. 한국에서는 흥행에 실패했지요. 그러나 평가의 기준이란 것은 모든 이에게 적용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도 생각해야겠지요.
알렉산더는 후세에 영웅으로 평가되어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며 존경 또는 흠모의 대상이 되어있습니다. 단지 알렉산더가 역사상 유례없는 대제국을 건설했기 때문일까요? 물론 그 때문에 그가 역사의 주인공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오직 거대한 제국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는 저의 추측입니다. 이 영화는 알렉산더라는 위대한 영웅을 그렸습니다. 올리버스톤의 역량으로 최대한 사실적으로 말입니다.
이 영화에서 알렉산더의 인격, 이상, 업적을 비교적 자세히 엿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모두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초등학생도 알고 있지만 철저한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제작된 것이라면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알렉산더는 영웅입니다. 그러나 철저하게 이기주의, 개인주의적 영웅이었습니다. 자신의 꿈과 이상을 향할 줄만 알았지 부하들의 안위와 그들의 꿈은 철저하게 무시한 독재자였습니다. 그런 역사 속 이기주의자를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요?
그는 꿈을 쫒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바빌론을 정복하고도 7년이 넘는 대원정을 강행한 사람이었습니다. 분명 아랫사람을 돌아보지 않은 것은 그의 오점이지만, 거대한 제국의 왕으로써 자신의 이상을 향해 제국을 이끄는 것은 강력한 리더십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또한 그는 용맹한 사람이었습니다. 전투에 있어서 늘 앞장서는 그의 모습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맹함은 영화를 보면서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이 아닐 수가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두 가지가 그의 업적을 더욱 빛냈고, 그의 오점을 묻어버렸으며 지금도 역사속의 그를 수많은 사람들이 존경과 흠모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역사는 꿈을 쫒는 사람을 기억한다” 알렉산더는 꿈꾸는 자의 귀감이 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꿈을 쫒는 자라면 반드시 봐야할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주연을 맡은 콜린 파렐(Colin Farrell)은 1976년 아일랜드에서 태었으며, 1996년 영화 <핀바를 찾아서>로 데뷔한 영화배우다. 영화로는 <덤보>, <위도우즈>, <킬링 디어>, <신비한 동물사전>, <솔러스>, <퍼펙트>, <토탈 리콜>, <프라이트 나이트>, <런던 블러바드>,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 <킬러들의 도시>, <뉴 월드>, <알렉산더>, <S.W.A.T. 특수기동대>, <데어데블>, <리크루트>, <폰 부스> 등이 있다. 수상경력으로 2010년 샌디에고비평가협회 남우주연상, 2009년 제66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뮤지컬코미디영화부문 남우주연상 외 다수가 있다.
주연을 맡은 안젤리나 졸리 (Angelina Jolie)는 1975년 미국에서 태어났으며, 뉴욕대학교 영화학과를 졸업했다. 1982년 영화 <라스베가스의 도박사들>로 데뷔했으며, 영화배우 겸 영화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영화로는 <바이 더 씨>, <언브로큰>, <말레피센트>, <투어리스트>, <솔트>, <체인질링>, <원티드>, <베오울프>,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월드 오브 투모로우>, <알렉산더>, <테이킹 라이브즈>, <머나먼 사랑>, <툼 레이더2-판도라의 상자>, <오리지널 씬>, <툼 레이더>, <식스티 세컨즈>, <본 콜렉터>, <처음 만나는 자유> 외 다수가 있다. 수상경력으로 2013년 제5회 영화예술과학 아카데미 거버너스 어워즈 장 허숄트 인권주의상, 2011년 제13회 틴 초이스 어워드 액션영화부문 여자배우상 외 다수가 있다. _ 한상형 기자 (2021.5.1, 한국강사신문)
○ 후대의 알렉산더 평가
알렉산드로스의 행보는 사실 냉철한 현실주의에 기반한 합리적 행적들이라기보다는, 야망에 불타오르는 청년의 겁없는 모험담에 가까운 면모가 많다. 이를테면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기록된 그의 왕자 시절 모습과 군주 시절의 원정 준비 작업을 들여다보자.
알렉산드로스는 아버지가 어느 중요한 도시를 함락했다거나 큰 승리를 거두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조금도 기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투덜거렸다. “이러다가는 아버지한테 일을 다 뺏겨서, 우리는 크고 빛나는 사업도 못하고 말겠어.”
쾌락과 돈보다는 영광과 명성을 더욱 갈망했던 그는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을 영토가 넓어질수록 자기가 정복할 땅이 적어진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결코 안일한 생활과 호사스러움이 보장되는 평화롭고 번영된 나라를 물려받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수많은 외적을 가진 나라의 왕위를 계승 받아 용기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의 군대는 보병 3만 명과 기병 4천 명이었다는 설도 있고, 보병 4만 3천 명 그리고 기병 3천 명이었다는 설도 있다. 아리스토불로스의 설에 의하면 그는 70탈렌트 정도의 군자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며, 두리스의 설로는 군량미 30일 분밖에 없었다고 한다. 또 오네시크리토스는 당시 알렉산드로스에게 2백 탈렌트의 빚이 있었다는 얘기도 전한다. 어쨌든 대규모적인 계획의 준비로서는 변변치 못한 준비였음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부하들의 일이 염려되어 모든 사람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었다. 어떤 자에게는 많은 토지를 주고, 어떤 자에게는 한 마을을,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항구를 주기도 하였다. 그는 이렇게 신분에 맞도록 각각 재산을 나누어 준 다음에야 군비를 수송시켰다. 그러나 이렇게 하느라고 그는 대부분의 왕실 재산을 다 써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페르디카스가 그에게 물었다.
“대왕께서는 자신을 위해 무엇을 남겨 놓으셨습니까?”
알렉산드로스가 대답했다. “희망”.
그러자 페르디카스가 말했다.
“그럼 대왕을 모시고 떠나는 저희들도 그 희망을 나누어 갖겠습니다.” _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알렉산드로스 열전’ 중
또한 그는 전장에서도 자신의 안전을 뒤로하고는, 전투 대형의 맨 앞에서 보통 병사들과 함께 싸웠고, 위험을 무릅썼다. 물론 적들은 복장을 통해 알렉산드로스를 알아볼 수 있었음에도 말이다. 또한 유사시 그가 사망하여 발생할 정국의 불안정을 막기 위해 혼인해서 자식을 낳을 때까지 정복을 멈춰달라는 조언들마저도 무시했을 정도다. 마지막으로, 신빙성이 의심스러운 일화이기는 하지만 그는 후계자에 대해서 “가장 강한 자 (kratistos)!”라는 말만 남기고는 역사에서 퇴장했다.
후대 많은 군주들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따라 대왕병을 앓게 된다. 대표적으로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들 수 있는데, 카이사르가 33살의 나이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내 나이에 세계를 정복하고 죽었지만, 나는 이 나이에 이를 때까지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구나”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석상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그리스와 오리엔트 문화가 결합된 헬레니즘 문화를 만들어낸 사람으로 유명하다. 물론 헬레니즘 제국은 그리스, 이집트, 레반트, 소아시아, 메소포타미아, 이란 고원, 인도 일대 지역을 알렉산드로스는 정복했다.
친구 헤파이스티온과의 연모, 또한 부하 장병들에게 현지 여성과의 결혼 장려 역시 그리스와 동양을 혈통적으로 결합하여 이상적인 세계시민을 양성하려는 의도였다고 추정된다. 이런 동서 문화 융합 정책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측근들에게도 이해받지 못해서 반역 음모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이런 융합 정책 때문인지 로마 때는 폭군으로 기록되는 일이 많았지만 소아시아의 왕들 중에는 자신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후예로 부르며 알렉산드로스 대왕 또한 영웅시되는 일이 더 많았다. 일례로 티무르의 생애를 다룬 열전에서 그 지역의 위대한 왕들의 이름을 얘기할때 알렉산드로스도 언급된다.
알렉산드로스는 동쪽으로 행군하면서 수많은 신도시를 건설하였고 이들을 모두 알렉산드리아라고 명명한다. 이 알렉산드리아들은 알렉산드로스가 꿈꾼 완벽하게 이상적인 도시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추측된다. 실제로 이 도시들은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과 문화가 어울리도록 조치하였고 그에 따라 당시 서방에서 모을 수 있었던 거의 모든 문헌을 수집 배분하여 도서관을 설치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는데 당시에 있어서 책의 가치를 생각해본다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이러한 생각이 얼마나 시대를 앞서간 것인지 알 수 있다. 헬레니즘 문화의 발흥도 바로 이러한 배경에 의한 것이다.
세계 방방곡곡에 건설되었던 알렉산드리아는 모두 폐허가 되어 위치조차 알 수 없고, 현재까지 유일하게 살아남은 곳이 바로 이집트 제2의 도시인 알렉산드리아다. 터키의 항구도시인 이스칸데룬 (Iskenderoun 또는 Iskenderun) 역시 그리스어로는 알렉산드렛타라고 불리며, 스스로는 알렉산드리아의 후신이라 주장하고 있으나 학계에서는 멸망한 뒤 같은 위치, 혹은 인근에 세워진 새로운 도시라는 설이 유력하다.
서양에서는 동양에 대한 우월감을 상징하는 인물로 쓰이기도 하며 이 인물 때문에 과거의 마케도니아와 관련없는 현재의 마케도니아도 그리스와 관계가 복잡해진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그리는 역사서들은 옹호와 비판의 두 갈래로 나뉜다.
이슬람권에서는 침략자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한편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거쳐 서아시아 세계에 전파되어 그의 정복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이슬람 신학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그리스도교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스콜라 철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인도 쪽에서는 역사적으론 침략자란 인상이다. 전 인도 수상 네루는 딸에게 야만족의 우두머리라고 가르쳤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그가 오래 살았다면 세계 제국과 과학의 발전이 일찌감치 성공했으리라고 예상했지만, 거꾸로 그가 단명하지 않았으면 그나마 남아 있던 헬레니즘 문화의 바탕인 오리엔트 문명이 그리스인들에게 더욱 파괴되었을 것이란 반론도 있다. 사실상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제국을 그대로 계승한 셀레우코스 왕조의 현실을 볼 때 설득력 없는 의견이라고 볼 수는 없다. 알렉산드로스 개인의 성격이 어쨌든 상관없이 말이다. 앞에서 말한 계획대로 로마로 진공했다고 해도 한니발이나 피로스의 신세가 되었을 수도 있다는 해석도 있다. 로마의 역사가 리비우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로마로 왔다고 해도, 최종적으로는 로마의 승리로 끝났을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기독교 성경 저자들은 유대인들의 땅을 침략한 인물이다 보니 다소 부정적인 시선으로 평가하고 있다. 다음은 마카베오기의 기록이다.
“키팀 땅 출신의 마케도니아 사람으로, 필리포스의 아들인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인들과 메디아인들의 임금 다리우스를 쳐부순 다음, 그 대신 왕위에 올랐다. 그 이전에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를 다스리고 있었다. 그는 많은 전쟁을 치르고 요새들을 점령하고 세상의 임금들을 죽였다. 알렉산드로스는 땅끝까지 진격하여 많은 민족에게서 전리품을 차지하였다. 그가 막강한 군대를 모아 여러 지방과 민족과 통치자를 굴복시키자, 그들은 그에게 조공을 바쳤다. 그 뒤에 알렉산드로스는 앓아 눕게 되자 죽음이 닥친 것을 알고는, 젊은 시절부터 함께 자란 대장군들을 불러, 죽기 전에 자기 나라를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열두 해를 다스리고 죽었다. 그의 장군들은 저마다 자기 영토를 다스렸다. 그들은 그가 죽은 뒤에 모두 왕관을 쓰고, 그들의 자손들도 그 뒤를 이어 오랫동안 그렇게 하였다. 그들은 세상을 악으로 가득 채웠다.” _ 마카베오기 상권 1장 1~9절
○ 알렉산더 어록
.가장 강한 자! (알렉산드로스의 유언으로, 후계자를 누구로 정할 지 신하들이 물어보자 한 대답.)
.두려움을 정복하는 자가 세계를 정복한다!
.내가 죽거든 손을 밖에 내놓아 남들이 볼 수 있게 하라. 천하를 쥐었던 알렉산드로스도 떠날 때는 빈손으로 간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할 뿐.
.내가 파르메니온이었다면 받아들였을 것이오. (다리우스가 아시아의 절반과, 자신의 딸, 금은보화를 주는 대가로 휴전을 요청했는데, 알렉산더가 거절하자 파르메니온이 “내가 왕이었다면 받아들였을 것입니다.”라고 투덜거렸을때 알렉산로스가 한 말.)
.좋다. 왕들과 겨룰 수 있다면. (알렉산드로스가 왕자 시절부터 뛰어난 운동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잘 아는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올림픽 경기에 출전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자 이에 답변한 말. 알렉산드로스의 웅대한 면을 볼 수 있는 일화.)
.희망. (페르시아 원정 준비 동안 부하들에게 왕실의 재산을 모두 나눠주어 거의 빈털털이가 되었을때, “대왕께서는 자신을 위해서 무엇을 남겨 놓으셨습니까?”라는 페르디카스의 질문에 답하며.)
.내가 알렉산드로스가 아니었으면 디오게네스가 되었을 것이다. (당시 그리스의 유명한 관유파 철학의 창시자인 디오게네스의 명성을 들은 알렉산드로스가 부하들과 함께 직접 그를 찾아가 도와줄 것이 없냐고 묻자, 디오게네스가 “있소. 햇빛을 가리지 마시오.”라고 말하며 그를 경멸했고 이에 알렉산드로스는 권력에 굴하지 않는 그의 당당한 정신에 감명을 받았다고 하며, 이후 돌아가는 길에 부하들이 그를 모두 비웃자 여기에 반응한 알렉산드로스의 말. 위의 ‘희망’과 더불어 알렉산드로스의 가장 유명한 발언.)
.나는 승리를 훔치지 않겠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가우가멜라 전투 직전에 병력의 열세를 감안해 야간 기습을 하자는 파르메니온 등의 제의를 거절하며. 바로 위의 두 어록들과 더불어 알렉산드로스의 가장 유명한 어록.)
.우리의 가장 큰 승리는 패자들과 다르게 처신하는 것임을 그대들은 모르는가! (페르시아 제국 정복 후 사치와 안락에 빠져가는 부하들을 꾸짖으며. 출처: ‘알렉산더’ 프랑수아 슈아르 저. 해냄출판사 p.329)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할 수 있는 한, 연기를 계속하리라. (알렉산드로스가 자신이 출정한 모든 전쟁에서 늘 선두에 서서 싸우다가 많은 부상을 입고,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기자 측근들이 눈물을 흘리며 ‘세계의 제왕이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십니까?’라고 말하면서 더 이상 전쟁에서 선두에 서서 싸우지 말라고 간곡히 만류하자 이에 답한 말. 알렉산드로스가 역대 전 세계의 정복자들과 가장 다른 면모중 하나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